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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주태세 굳혀가는 박정환
 

박정환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거칠 것 없는 페이스로 질주하는 모양새다. 이세돌과의 치열한 선두 경쟁 앞에 드리워졌던 안개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바둑계의 모든 지표가 박정환의 1인자 등극을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가지 씩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타이틀 영토다. 박정환은 1월 22일 현재 3관왕으로 국내 최대 주주(株主) 지위를 지키고 있다. 올해 연초 최철한과 겨룬 천원전 결승서 승리함으로써 잠깐 동안이지만 4관왕에 올랐다가 바둑왕전을 이세돌에 내주면서 3관왕으로 재편됐다. 물가정보배, 맥심배, 천원전이 그의 영토다. 타이틀 지분(持分) 2위는 2관왕 김지석(올레배, GS칼텍스배)이고, 최철한(명인) 이세돌(바둑왕), 조한승(국수)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랭킹서도 박정환은 선두 체제를 굳혀가고 있다. 2014년 발표된 첫 랭킹서 박정환은 전달에 이어 1위를 고수, 2회 연속 선두를 지켰다. 통산 회수로 따지면 11번째 1위다. 주목할 것은 2위(김지석)와의 점차를 전월 19점에서 무려 51점으로 벌렸다는 점. 1위도 그냥 1위가 아니라 추격자들을 더 멀리 따돌리며 1위를 고수해 나간다는 점을 유의해 봐야 한다.

프로는 수입으로 말하는 법. 박정환은 2013년 한 해 7억 8천여 만원을 대국 상금으로 벌어들여 이 부문서도 1위로 등극했다. 2위 최철한(5억 5600만원)에 비해 2억 원 이상 많은 월등한 액수다. 주강배(단체전) 우승과 잉씨배 준우승, 중국리그 등이 주 수입원. 물론 국내 3개의 타이틀과 바둑리그 상금 등도 한 몫씩 맡았다. 박정환의 연간 상금왕 등극은 생애 처음으로 그가 현재 우리 바둑계의 ‘대세’임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다.

또 있다. 그는 2013년 한 해 가장 뛰어난 프로기사, 즉 MVP에 선정됐다. 전리품 가운데 국제대회 개인전 제패가 없다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지만 농심배 주강배 등 국제 단체전 우승을 선두에서 이끈 공로가 컸다. 세계대회 준우승 2개(잉씨배, TV아시아)도 평년작은 충분히 넘는다. 2006년 입단한 박정환이 MVP에 등극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영웅 탄생엔 극적인 장면들이 여럿 찬조(?)로 등장해 신화(神話)를 치장하게 마련이다. 박정환은 지난 2013년 1년 간 다승과 승률 2개 부문서도 1위를 차지했는데 그 과정이 극적이었다. 박정환의 연간 성적은 77승 20패로, 최철한(76승 1무 29패)과의 다승 경쟁서 단 1승 차로 승부가 났다. 승률도 드라마틱했다. 박정환의 1년간 승률은 79.38%로, 김지석(62승 17패)의 78.48%에 비해 불과 0.9% 포인트의 근소차였다.

박정환이 우리 바둑계에서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젊은 나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박정환은 93년 생으로 이제 막 만 21세가 됐다. 이른바 ‘90후(後)‘세대로 중국 최정상권 스타들과 어깨를 겨루는 한국 기사는 아직 박정환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거느리고 있는 6명의 현역 세계챔피언들 의 나이를 보면 춘란배 보유자인 천야오예 한 명만 89년생이고 나머지 5명은 전원 ’90후‘들이다.

특히 잉씨배를 보유 중인 판팅위, 몽백합배 초대 우승자로 떠오른 미위팅은 96년생으로 소위 ‘95후(後)’ 세대에 속한다. 한국의 박정환보다도 3살이나 적은 소년들이 척척 세계를 제패하는 마당이다. 박정환의 존재마저 없었더라면 한국 바둑이 얼마나 초라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박정환에게 걸린 기대는 더욱 크다. 지금보다 좀 더 분발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13세 입단, 14세 첫 우승(마스터즈 챔피언십), 16세 첫 본격타이틀(4기 십단전)에 이어 2011년 8월 마침내 세계 제패(제24회 후지쓰배)까지 출세가도를 달렸던 박정환이다. 그의 세계제패 당시 나이 18세 7개월은 박영훈(19세 3개월)이 보유 중이던 종전 국내 최연소 세계제패 기록을 6개월가량 단축한 신기록이었다.

박정환은 아시안게임 2관왕이란 희귀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혼성페어와 남자단체 우승을 이끌었다. 앞으로 바둑의 아시안게임 진입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이 기록은 어쩌면 영원히 재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박정환은 그 공로로 九단을 받아 국내 최연소 입신(17세 11개월)이란 또 하나의 훈장을 단 바 있다. 이는 박영훈이 갖고 있던 종전 최연소 九단 기록(19세 3개월)을 1년 이상 앞당긴 것이다.

박정환은 지난 해 11월 25일 이후 파죽의 14연승을 달렸다. 이 기간 그가 상대한 기사들의 면면도 화려함 그 자체다. 최철한 김지석 박영훈 이세돌 쿵제 천야오예 등 국내외 초1류들이 망라됐다. 연승 행진은 이세돌과의 바둑왕전 결승 1국 패배로 일단 중단됐으나 언제 다시 질주를 재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박정환에게 쏠린 기대는 그가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어느만큼 활약해주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앞서 살펴본 발군의 성적과 스타성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선 2011년 8월 후지쓰배 제패 이후 3년 째 우승을 추가하지 못한 상태다. 그가 한국바둑계에서 갖는 위상으로 볼 때 안타까운 부분이다. 박정환은 과연 현재 세계무대에서 어느 정도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재미 과학자이자 랭킹 전문가인 배태일 박사가 2014년 1월 기준으로 새 세계랭킹을 발표했다. 이에 의하면 1위가 중국의 스웨이고 2위가 박정환이다. 둘 간의 점수 차는 37점으로 크지 않다. 10위까지 좀 더 살펴보면 3위 김지석, 4위 천야오예, 5위 이세돌, 6위 미위팅, 7위 구리, 공동 8위 최철한과 저우루이양, 10위 탕웨이싱이다. 마치 일부러 배치라도 한 것처럼 한-중 두 나라가 기사가 번갈아 등장하고 있다. 10위권 내에 한국이 4명, 중국이 6명이다.

아무튼 여기서도 박정환은 한국의 간판스타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배태일박사에 따르면 2009년 초 무렵에는 스웨가 가장 점수가 높았으나 이후 박정환과 천야오예의 점수가 올라갔다. 2011년 중반에는 박정환이 슬럼프에 빠진 구리를 제치고 2위에 오르기도 했고, 2012년 중반쯤에는 세계 랭킹 1위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 이후 박정환은 슬럼프에 빠졌다가 2013년 4월 이후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배박사는 분석했다.

박정환에게 가장 큰 무기는 아직 21세에 불과한 젊음이다. 배태일 박사가 꼽는 세계 최정상급 중 가장 어린 기사가 박정환이란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의 진퇴는 올해 2014년이 매우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다. 박정환의 무한 정진(精進)과 더불어서, 그의 과중한 짐을 덜어줄 더 나이어린 신예 유망주의 등장도 함께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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