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난 1년 바둑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숱한 프로들이 명예를 걸고 명승부를 펼쳤다. 어떤 타이틀은 주인이 바뀌고, 또 어떤 기전의 성주(城主)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13년 최고의 스타는 누구일까. 12월 26일 저녁 소공동 롯데호텔서 열리는 ‘바둑 대상(大賞)’ 행사 때 발표된다.
시상 부문은 모두 10개. 최우수기사상(MVP)을 비롯해 우수기사상, 시니어기사상, 신예기사상, 여자기사상 등 5개 부문은 각 언론사의 바둑담당 기자들의 투표에 의해 수상자가 선정된다. 다승상, 승률상, 연승상 등 3개 기록 부문은 시상식 당일까지의 기록에 의해 자동으로 주인이 가려진다. 이밖에 공로상과 미디어상 수상자도 함께 발표될 예정이다.
이중 관심의 초점은 역시 최우수기사상이다. 다른 스포츠종목이나 연예 분야와 달리 프로기사가 상을 탈 기회는 이 행사뿐이다. MVP에 대한 가치가 그만큼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특기할 것은 올해부터 MVP 선정 기자단 투표 방식이 변경됐다는 점. 투표권자들이 1~3순위 후보를 기재해 제출하면 한국기원에선 순위에 따라 각각 5점, 3점, 1점의 배점을 부여, 그 집계로 최종 MVP를 선출하기로 한 것. 지난해까지의 단순 종다수(從多數) 방식과 달라진 점이다.
2013 MVP 후보에 오른 기사는 이세돌(30) 박정환(20) 김지석(24) 3명이다. 연말 이세돌을 눕히고 생애 처음 명인을 따낸 최철한(28)도 후보 자격이 충분하지만 마감 후(?) 거둔 실적이어서 제외된 게 다소 아쉽다. 아무튼 올해 한국바둑 MVP는 이세돌 박정환 김지석의 3파전으로 압축됐다.
우선 이세돌. 만약 그가 12월 중순에 끝난 제18회 삼성화재배를 품에 넣었더라면 아마도 올해 MVP는 이의 없이 그의 수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한국이 2013년 한 해 획득한 유일한 세계 우승이었을 테니까. 그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면서 2013년은 한국이 18년 만에 단 하나의 세계타이틀도 수확하지 못하는 해로 기록되고 말았다.
이세돌은 뒤이어 최철한과 겨룬 명인전마저 패해 13년만의 무관(無冠)을 맛보고 말았다. 올해 맥심배 GS칼텍스배 명인전과 국제대회인 춘란배, 삼성화재배까지 5개 대회 결승서 모두 패했다. ‘은메달 5개’란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실적으로 보느냐, 좌절로 보느냐에 따라 그의 MVP 수상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박정환도 손색없는 1년을 보냈다. 바둑왕과 물가정보배, 맥심배를 손에 넣어 현재 국내 최대주주(3관왕)으로 군림 중이다. 천원전서도 결승에 올라 내년 초 최철한과 패권을 다툴 예정. 다만 국제무대에선 ‘마지막 한 방’이 아까운 한 해였다. 잉씨배에서 판팅위에게, TV아시아선수권에선 이야마에게 각각 결승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렇긴 해도 농심배와 초상부동산배 등 단체전서 한국 우승에 기여한 공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김지석은 4월 천적이던 이세돌을 3대0으로 셧아웃시키고 GS칼텍스배를 따낸데 이어 11월엔 목진석을 같은 스코어로 따돌리고 올레배를 품에 안았다. 2관왕은 김지석의 기사생활에서 정점(頂點)에 해당한다. 타이틀 지분(持分)도 박정환에 이은 2위다. 하지만 그 역시 국제무대에선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LG배와 몽백합배서 첫판에 탈락했고, 삼성화재배 8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수훈이라면 초상부동산배서 한국 우승에 기여한 정도.
한국 랭킹도 이들 ‘빅3’의 비교 평가를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다만 랭킹은 그 특성상 올해 11월까지의 활약도를 근거로 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12월 초 발표된 최근 랭킹에 따르면 한 달 전 2, 3위였던 박정환과 김지석이 한 계단씩 올라가 1, 2위로 자리 잡았다. 11월 톱랭커 이세돌은 10월 한 달 부진으로 인해 3위로 처졌다. 랭킹을 놓고도 이들 셋은 올 한해 뜨거운 각축을 펼쳐왔던 셈. 김지석과 박정환은 기록부문인 승률 1위를 놓고도 12월 마지막 날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칠 전망이다.
바둑 대상은 1979년 ‘기도(棋道)문화상’이란 이름으로 출발해 ‘프로기사 MVP‘, ’바둑문화상‘을 거쳐 2003년부터 오늘날의 ’바둑대상(大賞)’으로 바뀌었다. 중간 몇 년의 공백을 빼면 30년 간 꾸준히 최고 기사를 뽑아왔는데, 이 영광된 지위에 올라본 기사는 단 6명에 불과하다. 가장 많이 최우수기사에 뽑힌 사람은 이창호의 11회였고 조훈현과 이세돌이 각 8회로 뒤를 이었다. 그밖에 유창혁 서봉수 최철한이 1회씩 최정상 등정 경험이 있다.
기간을 2004년 이후 최근 10년간으로 좁혀보면 이세돌의 절대 강세가 확인된다. 총 6회나 최우수기사에 올랐다. 지난해까지 최근 MVP 3연패(連覇) 중이어서 올해까지 접수한다면 4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국제대회만을 보면 이세돌은 지난해 제17회 삼성화재배를, 2011년엔 비씨카드배와 춘란배 우승으로 2관왕을 기록했었다. 2010년에도 비씨카드배와 광저우 아시안게임 2개를 잡았다. 이를 바꿔 말하면 올해는 이세돌도, 한국바둑 전체도 국제대회서 유난히 부진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MVP엔 못 미치지만 다른 상(賞)의 향방도 관심을 끈다. 우선 신예기사상. 입단 3년차 이하의 기사로 최고의 성적을 낸 기사가 대상이다. 바둑이 젊은이들의 싸움터로 변한데다 경쟁국인 중국서 발군의 신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어서 누가 이 상의 주인이 될지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 후보로 4명이 노미네이트됐다. 우선 이동훈(15) 二단. 지난 1년 간 신인왕전 준우승, 천원전 16강, GS칼텍스배 8강, 올레배 32강 등의 실적을 올렸다. 국제대회에선 인천 실내 & 무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로 분전했다. 하지만 가을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것이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변상일(16) 二단도 인천 실내 & 무도 아시안게임서 남자 단체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의 수훈을 세웠다. 국내 무대에선 신인왕전서 우승했고 명인전과 올레배서 16강까지 올랐다. 김성진(24) 三단은 제18회 LG배서 거함 구리(古力)을 꺾고 본선 16강까지 진격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명인전과 신인왕전서 8강, 십단전 16강의 수확도 올렸다. 이밖에 류수항(23) 三단도 명인전과 올레배 16강에 오르며 7할에 육박하는 승률로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 신예.
신예기사상과 정반대의 상이 시니어기사상이다. 만 45세 이상으로 우수한 성적을 올렸거나 바둑 발전에 기여한 기사가 대상이다. 조훈현(60) 서봉수(60) 서능욱(55)이 후보에 올라있다. 조훈현은 올레배 32강과 제4회 대주배 우승, 서봉수는 3회 대주배 및 바둑nTV배 준우승, 서능욱은 3회 대주배 우승 등의 실적을 내세우며 팽팽히 경합하고 있다.
여자기사상은 최정(17)의 독주에 김혜민(27) 오정아(20) 김채영(17) 등 3명이 도전하는 형국이다. 최정은 여류명인과 여류기성 등 국내 2관왕에 올랐다. 국제대회서도 황룡사쌍등배 한국 우승을 이끌었으며 인천 실내 & 무도 아시안게임 여자단체 은메달에 기여했다. 다승 부문서도 여성기사 중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김혜민은 여류국수전 우승이 돋보이고, 오정아는 삼성화재배 본선 진입 및 SG페어대회 우승을 내세운다. 김채영도 인천 실내 & 무도 아시안게임 외에 화정차업배, 황룡사쌍등배 등 국제 여자 단체전의 한국 우승에 힘을 보탰다. 10년 가까이 여자바둑의 쌍두마차로 활약해 온 박지은(30)과 조혜연(28)이 후보에서 제외된 것이 눈길을 끈다.
그밖에 기록부문 중 연승상은 이희성(31)으로 확정됐다. 이 九단은 올해 초 2월부터 4월까지 파죽의 17연승을 달렸다. 우수기사상은 최우수기사상 경합자 중 2위 득표자에게 돌아간다. 공로상 및 미디어상은 한국기원에서 선정, 발표할 예정.
상(賞)이란 과거에 대한 칭찬의 의미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와 격려의 의미가 더욱 크다. 올해는 어떤 기사들이 MVP를 비롯한 각 부문의 주인공으로 선발될까. 팬들은 중국의 발호(跋扈) 속에 위기에 빠진 한국 바둑의 구원투수가 될 올해 수상자들의 등장을 비상한 관심 속에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