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진석 九단이 때 아니게 화제다.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가 올해 서른 셋, 한국식 나이로는 두 달 뒤 서른다섯이 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바둑은 20대 중반이면 이미 ‘하산’을 서둘러야 하는 ‘젊은이들의 게임’이다. 서른셋이면 무어라고 불러야 하나. 청년? 중년? 호칭이 아리송하다. 분명한 것은 그가 ‘바둑계의 아이돌’로 대접받을 나이는 아니란 사실이다. 요즘 유행어를 빌리자면 ‘꽃보다 아저씨’ 쯤 되겠다.
목진석은 11월 초 발표된 한국랭킹에서 10위에 자리 잡았다. 겨의 300명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프로기사 집단에서 톱10에 든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른바 특A급쯤 된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참고로 1~9위 랭커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이세돌(30) 박정환(20) 김지석(24) 최철한(28) 박영훈(28) 강동윤(24) 백홍석(27) 원성진(28) 조한승(31) 순이다.
30대가 목진석 말고도 이세돌 조한승 등 2명이 더 있다. 하지만 이 2명은 꾸준히 10위권 이내를 지켜온 ‘상주(常住)멤버’들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20위권 대까지 하락했다가 오히려 순위가 상승한 목진석과는 경우가 다르다. 목진석은 2010년대 초반까지 10위권을 지키다가 서서히 하락, 2012년 10월 22위까지 떨어진 경험이 있다.
며칠 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국내 최고기전인 올레배 준결승서 거함 이세돌을 눕히고 결승에 올라간 것이다. 이세돌은 이 대회 3연패(連覇)를 포함해 국내 간판스타이고, 그 전까지 각종 기전에서 승승장구하던 터였다. 목진석이 이 대회 결승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목진석과 김지석이 펼치는 결승 5번기가 막 시작됐다. 연말 바둑계의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목진석으로선 2008년 제52 국수전 준우승 이후 무려 5년 만의 결승 진출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목진석의 올해 나이는 서른 셋이다.
목진석이 랭킹 10위권에 진입한 것은 2010년 8월 이후 무려 3년 3개월 만이다. 이 정도 나이에 3년 세월이면 보통 기사들의 경우 최소 10계단은 떨어지게 마련. 더구나 요즘은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천재 소년‘들이 다투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이런 가운데 30대 중반의 나이로 오히려 랭킹을 끌어올린 전례가 없다. 만약 목진석이 한 발짝만이라도 더 나아가 9위로 상승한다면 2010년 3월 이후 거의 4년 만에 ’한 자리수 랭커‘로 귀환하게 된다.
랭킹이 현재의 위상을 가늠하는 ‘상대평가’라면 통산 다승 부문은 누적 성적표로 가치가 크다. 목진석은 최근 948승을 올려 1904승의 1위 조훈현을 비롯해 이창호 서봉수 유창혁 이세돌 서능욱에 이어 당당 7위에 랭크됐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풍부한 전력(戰歷)으로 무장한 40대~60대 대선배들 틈에서 누적 승수 7위를 기록한 것은 대단한 가치가 있다. 목진석은 1994년 입단했으니 총 프로생활이라고 해봐야 만 20년이 채 안 된다.
목진석은 이세돌도, 조훈현이나 이창호도 해보지 못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7년 그는 무려 122국을 두어 93승 29패를 마크했는데 이것은 연간 최다대국 및 최다승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창호가 최전성기에 해당했던 93년 수립한 91승(21패)을 갈아치웠다. 당시 목진석의 나이 27세였다. 그에겐 20년 간 ‘슬럼프에 빠진 해’, ‘부진한 시즌’ 같은 게 따라다니지 않았다.

목진석은 올해 국제대회인 제18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 출전, 16강까지 진격했다. 험난한 통합예선을 뚫은 직후 인터뷰에서 나이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젊은이들에 비해 힘에 부치는 것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내가 승부를 포기할 만큼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꼭 실증해 보이고 싶다.”
이세돌을 꺾고 올레배 결승에 오른 뒤엔 이런 소감을 내놓았다. “30대의 패기로 꾸준히 도전하겠다”. 어떻게 성적이 좋아질 수 있었느냐는 질문엔 “바둑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열심히 둘 수 있는 동력이 된다. 10살 정도 어린 후배들과의 연구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말만 앞세우지 않고 실제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정상급 후배들이 선뜻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자 목진석은 결연히 따로 연구실을 차렸다. 그리곤 하루 몇 시간씩 쉬지 않고 공부한다. 승부에 전념하기 위해 요즘엔 TV해설 출연도 대폭 줄였다.
나이가 좀 들었다고 지레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야 말로 승부사 목진석에겐 최고의 자산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 상식이나 관습 같은 것을 무작정 따라하는데 인색하다. 일종의 리버럴리즘 같은 것인데, 이런 자유로움이 ‘늙지 않는 목진석’을 유지하게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
그의 자유스런 발상은 반상(盤上)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최근 후배들과의 중요한 바둑에서 목진석은 대고목, 6의六, 양외목에 이은 변칙 굳힘 등 기상천외한 포석을 구사하며 승리했다. 이세돌과의 올레배 준결승에선 1, 3, 5 등 초반 세 수를 모두 외목에 두었다. 판에 박힌 정형(定型)을 무작정 반복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기피한다.
2000년대 초반엔 TV 속기전서 흑번일 때 첫 수를 천원에 두는 과감한 시도를 잇달아 펼쳐 주목받기도 했다. 최근 10년간 삼연성 포진을 가장 많이 구사한 기사는 아마도 목진석일 것이다. 최규병 九단은 목진석을 가리켜 “누구보다 스케일이 큰 바둑”이라며 일찌감치 그의 대성을 예언했었다.
목진석은 바둑판을 벗어난 일상생활에서도 자유롭다. 그는 유럽 축구(EPL)와 관련해 전문가 뺨칠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곤 주말마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공을 찬다. 그런가 하면 중국어 일어 영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하다. 특히 중국어 실력은 단연 발군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엔 중국과의 교류가 늘면서 웬만큼 중국어를 구사하는 기사 수가 꽤 되지만 목진석과는 치수(?)가 다르다고 한다.
십여년 전 중국리그를 개척해 오늘날의 토대를 만든 원조도 목진석이었다. 2004년엔 음반을 취입하고 가수 추두엽씨(요즘 바둑TV 직장대항전 MC도 맡고 있다)와 함께 리사이틀을 열어 바둑계를 뒤집어 놓았었다. 방송에 출연할 때면 차분하면서도 논리 정연한 해설이란 극찬이 쏟아진다. ‘팔방미인’이란 애칭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팔방미인 말고도 별명이 많다. 그 중 하나가 ‘괴동(怪童)‘이다. 어린 시절 목진석의 통신바둑 아이디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겨 2세까지 둔 가장으로 변신했으니 이제는 ’괴청년‘이나 ’괴중년‘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주에서 온 소년‘이란 유니버설한 별명은 프로 데뷔 초년병 시절 중국에서 선사한 것이다. 한 중 단체전서 당시 중국바둑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던 녜웨이핑을 눕히자 다음 날 아침 신문에 그런 제목이 떴다.
목진석의 원래 이름자는 鎭錫이었다가 鎭碩으로 개명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있지 않다. 쇠 금(金)변보다는 돌 석(石)변이 바둑 두는 기사에게 어울린다는 할아버지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목진석의 아버지 목이균씨는 평생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사이버오로, 바둑TV 주주로 활동하는 등 바둑 쪽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목진석으로선 온 가족의 전폭적 성원 아래 바둑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목진석은 싸움과 계산 모두 능하지만 기풍을 분류하자면 파이터 형에 속한다. 대부분의 바둑이 상대방과 초반부터 끝까지 붙어 뒹구는 난전 스타일이다. 이세돌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힘바둑들도 목진석을 호락호락 대하지 못한다. 10년 전 쯤 한 국제대회에 출전했던 일본 중견기사가 “3년을 나와 봤지만 목진석이 제일 무서운 상대였다”고 실토했을 만큼 목진석의 매운 펀치력은 정평이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자신보다 후배들의 타이틀 도전을 모조리 뿌리치던 이창호가 2000년 제19기 바둑왕전서 목진석에게 처음 길을 내준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예의 강력한 전투력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목진석은 10위권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한국식으로 서른다섯을 바라보는 나이를 감안하면 섣불리 낙관적 전망만을 쏟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목진석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자신의 나이가 많지 않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을 경우 나이 핸디캡의 절반 이상이 달아나 버린다.
젊은 후배들 이상으로 공부하고, 꾸준히 창의적 발상으로 시야를 넓혀 가는데 순위가 쉽사리 하락할 리 없다. 그토록 쉽게 물러날 기사라면 이번에 보여준 랭킹 역류(逆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둑에서 나이와 성적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정답일까. 목진석의 향후 행보는 이 해묵은 바둑계 최고 관심사를 풀어줄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