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대회가 9월 8일부터 10일까지 중국 쑤저우(蘇州)시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전 세계 여성 기사들에게만 참가가 허용되는 현존 유일의 개인 타이틀전이다. 남자 개인전보다 관심이 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구촌 여성 최고수를 뽑는 행사에 대한 관심도가 너무 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궁륭산병성배의 궁륭산은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孫武)가 은거하며 병법을 연구하던 유서깊은 산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지혜의 산’으로 통한다. 쑤저우시 우중구 인민정부가 중국바둑협회와 손잡아 공동 주최하는 행사다. 우승상금도 20만 위안(약 3600만원)으로 꽤 짭짤한 편이다.
본선전은 한 중 일 대만을 비롯해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를 망라한 16명이 출전해 세계대회의 구색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패자부활전 없는 토너먼트에 이어 결승전도 단판으로 치러져 우승까지는 4승이 필요하다. 1인당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를 준다.
궁륭산병성배는 2010년 창설됐다. 한국의 박지은이 대만 대표로 나온 헤이자자(黑嘉嘉)를 결승서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박지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1년 2회 대회서도 중국 탕이(唐奕)를 제물로 우승, 2연패를 달성했다. 지난 해 3회 결승에선 리허(李赫)와 루이나이웨이(芮乃偉)가 패권을 겨뤄 리허가 우승, 현재 디펜딩 챔피언으로 군림하고 있다.
세계 여자 개인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루이나이웨이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한국기원 객원기사 신분으로 상당기간 머물렀던 루이는 최초의 국제 여자 개인전이었던 1993년 제1회 취보배에서 같은 중국의 양후이(楊暉)를 2대0으로 따돌리고 세계 석권의 길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2년 뒤 한국 주최의 보해배가 탄생했는데, 5년 간 지속된 보해배서 루이는 1회, 3회, 4회 등 3번에 걸쳐 정상에 섰다. 2회 대회에선 펑윈(豊雲), 5회 때는 장쉔(張璇)이 우승을 가져갔다.
루이의 위세는 그 이후에도 한 동안 더 계속됐다. 2000년 한국이 창설한 제1회 흥창배에서 한국 신예 조혜연에게, 이듬해 2회 흥창배에선 박지은에게 각각 2대1로 승리하며 우승했다. 그 무렵 동방항공배라는 중국주최 대회가 한 차례 열렸는데 그 대회의 임자 역시 루이였다. 루이의 독주는 영원히 계속될 듯 보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한국기사들이 분연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2002년 역시 딱 한 차례 열렸다가 바로 폐지된 호작배를 윤영선이 접수한 것이다. 윤영선은 결승서 같은 한국의 후배 박지은에게 2대0으로 승리, 중국 독점에 제동을 걸었다(루이나이웨이는 불참).
2003년 정관장배가 출범했다. 정관장배는 2005년 제3회 대회부터 국가대항 연승전 방식으로 전환했지만 초기 2년 동안은 개인전으로 치러졌다. 첫 대회 패권의 주인은 루이나이웨이였고 2회 대회 우승컵은 박지은에게로 넘어왔다. 여기서부터 ‘박지은 천하’가 시작됐다. 박지은은 2007년 1회 대회로 막을 내린 대리배, 이듬해 역시 단발로 사라져 버린 제1회 원양부동산배를 연속 접수했다. 앞서 언급했던 궁륭산병성배 2연패를 포함하면 박지은은 세계대회 5연속 우승을 달성한 셈이었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총 17회에 걸쳐 세계 여자개인전이 벌어져 루이가 8번, 박지은이 5번 정상에 섰다. 前芮後朴, 전반부는 루이이고 후반부는 박지은이었던 셈이다. 나머지 4번을 펑윈 장쉔 윤영선 리허 등이 나눠가졌다.
이제 궁금한 것은 올해 대회 패권의 향방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결국 패권은 한국과 중국의 싸움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국 대표로는 박지은 최정 오정아 등 3명이 선정됐다. 박지은은 국내 여자랭킹 1위 자격으로 선발전 없이 포함됐고 나머지 2명은 선발전을 거쳤다. 박지은(30) 九단은 경험과 실력 양면에서 한국 여자바둑을 대표하는 대들보. 국내 랭킹서도 여자기사 중 유일하게 100위 안에(95위) 들어있다.
올해 17세의 최정 三단은 미래 한국여자바둑의 간판으로 불리는 대형 신인이다. 국내무대서 이미 여류명인전 2연패(連覇)를 달성하는 등 최고스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 파워는 국제무대서도 통하기 시작해 지난 4월 벌어졌던 제3회 황룡사쌍등배(국제 여자 단체전)서 위즈잉(於之瑩) 리허 왕천싱(王晨星) 등 중국 간판 3총사를 모조리 꺾고 한국의 우승을 이끈 바 있다. 7월 인천서 치러진 실내&무도 아시안게임에선 여자단체전 및 혼성페어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해 20세인 오정아 二단도 주목의 대상이다. 아직 큰 실적은 없지만 최근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며 한국 여자바둑의 주력부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여자단체 은메달, 제3기 SG 페어바둑 최강전 우승(파트너 진시영)에 이어 8월에 벌어진 제18회 삼성화재배에선 통합예선을 뚫고 한국대표로 선발됐다.

중국의 출전자 명단을 보면 최강의 진용으로 구성됐다. 질(質)도 질이지만 숫적으로도 5명으로 한국(3명)을 압도한다. 왕천싱(22) 五단, 위즈잉(16) 二단, 리허(21) 五단, 루이나이웨이(50) 九단, 루자(魯佳, 25) 二단이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중국 팀의 라인업이다.
왕천싱은 지난 해 11월 벌어졌던 제10회 건교배 중국 여자 바둑대회 결승 3번기서 루이나이웨이를 2대1로 꺾고 이 대회서 처음 우승, 정상권의일각을 굳혔다. 이에 앞서 전국 지력운동회, 전국스포츠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2012년 벌어졌던 황용사배 세계바둑 여자 단체전에서는 8연승을 질주, 중국 우승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위즈잉은 지난 해 제2회 황룡사배 단체전서 왕천싱의 8연승 바통을 이어받아 중국의 우승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올해 3회 대회 때는 중국 팀의 3번 주자로 나와 6연승을 내달리다 최정에 막혀 한국에 우승을 내준 바 있다. 7월 열린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때는 중국의 여자단체전 우승의 한 축을 맡았다.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도 벌써부터 중국 대표팀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는 셈.
리허는 루이나이웨이를 제외하면 중국 대표선수들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2007년 제2기 백령배 우승을 신호탄으로 2008년 여자 신인왕전, 전국 여자 정영전 패권을 거머쥐었다. 2009년 제7회 정관장배에선 3연승을 올리며 중국 우승을 견인했고, 2010년과 2012년엔 2회 및 4회 비씨카드배 본선에 연거푸 올라왔다.
리허는 지난해 벌어졌던 2012 스포츠어코드 세계마인드게임즈 바둑종목 여자 개인전서도 루이나이웨이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차지, 기염을 토했다. 지난 해 제3회 궁륭산배 우승에 이르면 현역 세계 최강 전력이라고 주장해도 좋을 정도의 실적들이다. 루자는 건교배 세 차례 우승에 이어 지난 5월 제2회 여자 국수전을 제패, 역시 녹록치 않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루이나이웨이의 경력은 생략한다.
경력만 비교하면 중국이 한국을 앞서는 것 같지만 실제론 5대5의 팽팽한 전력이다. 올해 벌어졌던 국제 여류대결(단체전) 성적을 보아도 한국이 2개, 중국은 1개 대회서 우승했다. ‘여자 농심배’로 불리는 제3회 황룡사쌍등배에서 한국은 최정의 막판 3연승에 힘입어 주장 박지은의 칼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도 우승했다. 팀 리그전 형식으로 열린 제2회 화정차업배는 더욱 극적이었다. 한 중 일 3개국이 2승 1패로 동률을 이룬 뒤 주장 승수에서도 양국이 동률이 됐고, 2장 승수에서 한국(3승)이 중국(2승1패)을 앞섰다. 한국 주장과 2장은 박지은과 김미리, 중국 1, 2장은 리허와 탕이였다. 중국은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여자단체전 결승서 한국을 2대1로 누르고 우승해 체면을 세웠다. 한국은 오정아만 이기고 최정과 오유진이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한-중 간 남자 대결에서 한국이 올들어 다소 밀리는 인상을 주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 여성 대결서 중국의 기를 꺾어준다면 한국바둑은 다시 원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금석이 될 무대가 9월 펼쳐질 궁륭산병성배다. 관전 포인트는 2가지. 우승자가 한국이냐, 중국이냐가 그 하나고, 박지은 루이급의 노장이냐, 최정 위즈잉급의 소장이냐가 그 둘이다. 어떻든 지난 해 중국에 잠시 ‘빌려주었던’ 우승컵을 한국 낭자군이 꼭 되찾아올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