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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태일 세계랭킹으로 본 한국바둑의 현 주소
 

바둑동네엔 유감스럽게도 아직 공식 세계랭킹이 없다. 세계바둑협회 같은 권위를 갖춘 조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팬들은 그래서 간헐적으로 열리는 국제대회 성적을 통해 대충 ‘체감 랭킹’을 매겨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배태일박사가 2010년부터 본격 세계랭킹을 발표하면서 이같은 갈증이 크게 해소됐다. 저명한 재미 물리학자인 배박사는 한국기원 공식 랭킹위원을 맡고 있는데 세계랭킹도 같은 방식으로 집계한다. 매일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수십, 수백 판의 결과를 수집해 최첨단 통계 방식으로 뽑는 데이터인 만큼 신뢰도도 매우 높다.

배태일 박사가 최근 7월 세계랭킹을 발표했다. 이 지료에서도 최근 중국바둑이 보여온 위세가 뚜렷이 확인되고 있다. 순위를 권역별로 세분해 동양 3개국 기사들의 분포를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은 표가 만들어진다.

국가별 랭킹 분포표(2013.7월 기준)


배박사의 세계랭킹은 매 3개월 단위로 발표된다. 직전 랭킹인 2013년 4월 기준 국가별 분포는 다음과 같았다.

국가별 랭킹 분포표(2013.4월 기준)


생각했던 것보다는 한 중 두 나라 간 랭킹 격차가 (한국 기준으로) 더 악화되지 않았다. 국내 팬이나 바둑계가 최근 석 달 간 체감한 판도 변화와 비교하면 오히려 너무 보수적으로(?) 랭킹을 매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배태일판 랭킹이라고 해서 배박사가 임의로 순위를 매기는 것은 물론 아니다.

7월 랭킹의 40위권과 50위권 숫자 합계가 40명과 50명을 넘는 것은 동점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4월 랭킹에서 일본은 1인자 이야마(井山裕太)를 38위에 올려놓았으나 7월엔 69로 추락하는 바람에 이 표에서 사라졌다. 결국 50위까지의 세계랭킹 순위표는 온통 한-중 두 나라만의 대결장으로 변해버렸다. 이쯤 되면 세계랭킹이라고 부르기에도 뭔가 낯간지러운 전형적인 ‘독과점’의 양상이다.

10위권 내 최정상급 랭킹 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선두자리 경쟁일 것이다. 4월에만 해도 이세돌이 1위, 중국 구리(古力)가 2위로 둘이 천하를 다투는 모양새였는데 단 3개월 만에 최고무대의 주역들이 바뀌었다. 구리는 4위, 이세돌은 뚝 떨어져 9위로 전락해 버렸다. 이세돌이 무려 여덟 계단이나 추락한 것은 꽤 충격적이다. 2013년 상반기 전적이 14승 15패에 머문 데 대한 업보(?)였다. 내용적으로도 맥심배, 춘란배 등 국내외 기전 결승서 단 하나의 우승컵도 추가하지 못했다.

새롭게 1위로 떠오른 스웨(時越)에 대해 배태일 박사는 “어린 나이 때부터 강자 대열에 끼었으나 최상위 그룹엔 포함되지 않았는데, 2011년 초부터 꾸준히 성적을 올려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400점이나 랭킹 점수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스웨는 올해 초 LG배를 우승하면서 실질적으로도 세계 최고수 등급임을 입증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스웨도 세계타이틀 획득 이후 많이 패하고 있어 3개월 뒤엔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주목된다.

흥미로운 것은 배박사의 세계랭킹과, 7월 초순 중국기원이 발표한 중국랭킹이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배박사 세계랭킹이 스웨-천야오예(陳耀燁)-탄샤오(檀嘯)-구리-저우루이양(周睿羊)-퉈자시(柁嘉熹) 순으로 1~6위를 형성하고 있는데 비해 중국의 1~6위는 천야오예-스웨-퉈자시-탄샤오-저우루이양-왕시(王檄)의 순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점수 계산법의 차이에도 기인하겠지만, 그보다는 최정상권 기사들의 실력이 매우 근접해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로 보인다. 약간의 계산법에 따라 바로 순위가 뒤바뀔 만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이 자체 발표하는 랭킹만 하더라도 올해 상반기 1위는 구리→퉈자시→스웨→천야오예로 몇 차례나 요동질쳤다. 그야말로 불안한 ‘정정(政情) 속에 춘추전국의 양상이다.

최상위 6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기사 이름이 처음 보인다. 7위 박정환이다. 사실 그로선 3개월 전 랭킹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니 박정환에겐 죄(?)가 없다고 할까. 아무튼 한국기사 중엔 박정환이 가장 높고 8위에 김지석, 그 다음 9위 자리에 이세돌이 랭크됐다. 10위권 한국 기사는 이들 3명뿐이다.

하지만 점수 차이를 보면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1위 스웨는 9782점, 9위 이세돌은 9701점으로 점차가 단 81점에 불과하다. 3개월 전 1위 이세돌(9818점)과 당시 9위였던 펑리야오(彭立堯, 9642점) 간 점차와 비교할 만 하다. 근소한 점차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3개월 뒤엔 또 한 번 크게 순위가 요동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선수층의 두께다. 10위권을 넘어 20위, 30위 권으로 범위를 넓히다 보면 저변(低邊)에서 중국의 한국에 대한 우세가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50위 이내 한-중 비율 32대 19에서 100위권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61대 39로 바뀐다. 점유 비율은 둘 간에 큰 차이가 없지만 머릿수 차이는 더욱 벌어졌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두터운 선수층은 공포스러울 정도다.


또 한 가지는 나이와 관련된 것이다. 미래를 다툴 저연령층 유망주들의 랭킹 및 숫자를 비교하면 한 번 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올해 박정환을 따돌리고 잉씨배를 차지한 96년생 판팅위(笵廷鈺)는 이른바 ‘95후(後)’ 세대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13위에 자리잡고 있다. 같은 96년생인 미위팅(羋昱廷)이 24위, 95년셍 핀윈러(范薀若)가 36위를 꿰찼다. 46위 리쉬엔하오(李軒豪)도 95년생이다. 98년생인 양딩신(楊鼎新)과 리친청(李欽誠), 셰얼하오(謝尒豪)는 각각 40위, 45위, 53위로 도약했다.

한국의 ‘95후(後)’ 중 최고랭커는 나현(95년생)으로 39위다. 98년생 이동훈이 40위, 97년 태어난 변상일은 60위, 99년생 신민준이 61위에 등재됐다. 2000년에 출생한 국내 최연소기사로 앞날을 촉망받고 잇는 신진서는 아직 세계랭킹에 ‘입적(入籍)’도 하지 못했다. 갓 입단한 설현준 최영찬(이상 99년생)이 세계 100위권에 오르려면 순조롭게 성장하더라도 앞으로 2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영재레벨에서도 한국은 중국에 비해 양적, 질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월 제17회 LG배 결승전 결과가 나오기 직전 단장으로 내한했던 중국 위빈(兪斌)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을 많이 따라잡긴 했지만 전체적으론 아직 한국에 뒤진다. 우리에겐 아직 이세돌, 박정환 같은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건 우승인데….” “20명 대 20명, 또는 그 이상으로 맞대결하면 중국이 우세할 것이다. 10 대 10은 백중해 보인다. 운이 좋으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는데 자신이 없다.”
올해 시즌 메이저급 국제 개인전 4개 대회 결승이 열렸고 중국이 우승을 독점했다. 위빈의 엄살(?)과 달리 최정상권마저 중국이 한국을 분명하게 추월해버린 것이다.

한국바둑이 중국의 독주에 맞서려면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바둑처럼 단 한 수로 일거에 형세를 뒤엎을 묘수를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나마 승부처로 삼을 만 한 구역은 어린 영재들이다. 미취학 연령대의 꼬마들을 대상으로 많은 대회를 열어주고 다양한 방식으로 영특한 어린이들을 바둑의 세계로 유인해야 한다. 그들을 최대한 단련시키면서 경쟁을 부추기다 보면 ‘일당백’의 스타가 나올 수 있다. 대학 진학에까지 특전을 주고, 주말마다 벌어지는 아마추어 바둑행사에 수 천명이 몰려들며, 각 기업들이 다투어 기전 창설에 나서는 14억 인구 중국에 맞서려면 보통 아이디어로는 불감당(不堪當)이란 게 이 글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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