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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중국 일본의 우승 사냥꾼들
 
일본서 활약 중인 조치훈(59)이 최근 열린 제5회 일본 바둑마스터즈컵서 다케미야(武宮正樹·64)를 꺾고 우승, 통산 74회째 타이틀을 목에 걸었다. 자신이 줄곧 보유해 온 일본 최다우승 기록을 또 한 번 스스로 경신한 것이다. 마스터즈컵은 일본의 50세 이상 현역 프로기사 중 7대 메이저기전 우승 경력자들만 출전하는 시니어 대회다. 조치훈은 통산 5번 치러진 이 대회서 3번이나 우승했다. 게재에 한국 중국 일본의 최다타이틀 획득을 둘러싼 경쟁 판도를 정리해 본다(2015년 7월 15일 현재)


▨일본

조치훈의 최다우승 기록은 다른 경쟁자에게 좀처럼 쉽게 빼앗기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빼앗기기는커녕 그의 1위 아성은 해마다 더 두터워질 가능성까지 보인다. 첫 째 이유는 2위 이하 그룹과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 이 부문 2위 기록은 64회로 조치훈에게 무려 10회나 뒤져있다. 그나마 2위 기록을 보유한 사카다(坂田榮男)는 2010년 타계한 고인이다.

3위 고바야시(小林光一·63), 4위 오다케(大竹英雄·73), 5위 가토(加藤正夫·별세) 등의 추격도 겁낼 일 없다. 모두가 조치훈보다 훨씬 나이 많은 선배들로, 활약이 미미하거나 아예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노장들의 타이틀 획득 수는 각각 59회, 48회, 47회에 불과하다.
더 내려와도 별로 위협적인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나이로 보면 총 38회 우승으로 6위에 올라있는 장쉬(張栩)가 아직 만 35세여서 그 중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장쉬는 2012년을 끝으로 만 3년째 타이틀 추가가 없다. 게다가 올해부터 출신국인 대만으로 거처를 옮겼다. 대국 때마다 일본을 드나드는 식이어서 안정적인 타이틀 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7위 린하이펑(林海峰)이 또한 73세나 되는 노장이어서 39승 차이인 1위 조치훈를 따라잡기엔 너무 까마득하다. 린하이펑과 같은 35회 우승으로 공동 7위인 요다(依田紀基)는 49세인데 2005년 이후 타이틀 금맥이 끊겼다. 이밖에 이시다(石田芳夫·68), 다케미야(武宮正樹·64), 하네(羽根直樹·39) 등이 각각 24회 정상을 밟아 공동 10위 그룹을 형성 중이다. 나이와 지금까지의 업적 모두에서 조치훈을 위협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가장 강력한 추격자는 역시 현재 일본 바둑계의 군계일학 격인 이야마(井山裕太)다. 올해 26세인 그는 현재 기성(棋聖), 명인, 본인방, 기성(碁聖), 아함동산배 등 5개 타이틀을 쥐고 있다. 13세 때인 2002년 입단, 불과 13년 만인 금년까지 누적 타이틀 수 29회까지 쌓아올렸다(이 부문 일본 9위). 무서운 속도다. 2013년엔 일본 바둑사상 처음으로 6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선두인 조치훈과의 차이는 45회. 이야마가 매년 5개의 우승컵을 추가하는 현재 페이스를 고수한다면 9~10년 뒤면 조치훈을 따라잡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이야마는 89년생으로 아직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다. 10위권에 포진한 다른 기사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젊다.

과연 이야마는 10년 안에 조치훈을 추월할 수 있을까. 필자 생각엔 일단 부정적이다. 이야마가 각종 일본 신기록을 고쳐 쓰고 있는 엄청난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마냥 그의 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망 신예들이 쑥쑥 성장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점유율을 10년씩 이어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마스터즈 대회서 보았듯 시니어 동네에서 조치훈은 아직 발군이며 타이틀 행진도 동결(凍結)된 것이 아니다. 이야마의 조치훈을 향한 추격 레이스는 앞으로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흥미로운 구경꺼리가 될 것이다.


▨한국

한국의 ‘타이틀 사냥게임‘은 조훈현(62)과 이창호(40)의 사제(師弟) 싸움으로 요약된다. 현재 ’타이틀 통장‘의 잔고는 조훈현이 160회, 이창호는 140회(비공식전 2회 포함)다. 표면적으론 둘의 나이 차이가 20년이 넘는데다 획득 타이틀 수의 간격이 20개뿐이라면 볼만 한 승부를 기대할 요건을 갖췄다.

하지만 현재 흐름으로 볼 때 역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두 기사 모두 메이저급 기전서는 맥이 끊긴지 제법 됐다. 조훈현은 2002년 제1회 KT배와 제7회 삼성화재배 우승 이후 13년째 ‘개점 휴업’이다. 이창호 역시 2010년 53기 국수전 제패 이후 5년 간 우승 소식을 전해주지 못 하고 있다.

전성기 시절 전관왕(全冠王), 사이클링 히트 등 극상의 수식어 속에 타이틀 사냥을 밥 먹듯 하던 두 사람이지만 현재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2015년 7월 랭킹을 살펴보면 이창호가 30위, 조훈현은 63위다. 본격기전 우승 전선에 복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둘 간의 격차가 앞으로 좀 더 벌어질 것으로 점치는 시각도 존재한다. 조훈현에겐 이른바 ‘시니어 기전’이란 텃밭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그는 만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시니어 대회를 거의 석권하면서 타이틀 수를 불려왔다. 아직 이런 대회에 출전할 나이가 아닌 이창호로선 스승과의 레이스가 더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둘이 기록해 온 점유율이 워낙 천문학적이어서 타이틀 수를 놓고 그들을 겨냥할 후보자는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세돌(45회), 중국으로 돌아간 여성 기사 루이나이웨이(33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남철 김인 서봉수(이상 각 30회) 등이 그 뒤를 쫓고 있다. 조남철 선생은 작고했고 김인이 72세, 서봉수가 62세다. 루이나이웨이(52)의 경우는 여성에게만 출전이 허용되는 이른바 ‘제한 기전’서 쌓은 게 태반이어서 엄격히 따진다면 같이 비교할 수 없다. 그 뒤를 유창혁(24회)이 따르고 있다.

젊은 층으로 내려가면 19회 우승한 박영훈, 16회 정상에 선 최철한과 만난다. 둘은 그러나 이미 30대로 접어들었다. 조훈현 이창호를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현 톱랭커 박정환(22)은 총 15회 우승해 이 부문 역대 랭킹 12위에 올라있다. 현재 박정환이 보유 중인 타이틀은 국내, 국제 1개씩 도합 2개. 일본 1인자 이야마처럼 매년 다관왕을 질주하는 모양새가 아니어서 역시 ‘혁명’을 꿈꾸긴 힘들다. 요즘 바둑계는 예전 같은 1인 독주를 허용치 않는 백가쟁명의 정글이다.


▨ 중국

우선 전제할 것은 중국 자료의 미흡함이다. 역대 우승 횟수 집계자료를 전해 준 중국 전문가는 “그냥 참고만 하라”는 단서를 덧붙였다. 통계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데다 각 지역별 초청대회가 많은 중국의 특성상 기준이 애매한 것도 한 원인이란 얘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통산 우승횟수 경쟁은 앞으로 한국보다는 흥미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타이틀전 역사가 동북아 3국 중 상대적으로 가장 짧아 멀리까지 독주한 기사가 없는데다, 풍부한 저변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쳐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1위는 구리(古力). 32세인 그는 총 41회에 걸쳐 정상에 올라 선두를 질주 중이다. 이 안에 포함된 국제대회 우승 8회도 중국 기사 중 가장 많다.

2위는 마샤오춘(馬曉春). 구리보다 8회가 뒤진 33번 우승컵에 키스했다. 89년부터 2001년까지 13연패(連覇)를 이뤘던 명인전이 그의 텃밭이었다. 국제대회서도 두 차례 우승했지만 나이가 어언 51세다. 3위는 63세의 녜웨이핑(聶衛平)으로 24회 정상에 올랐다. 4위는 19번 최고 자리에 오른 39세의 창하오(常昊), 5위는 16개의 타이틀을 따낸 쿵제(孔杰)였다. 류샤오광(劉小光·55)도 13회로 6위에 이름을 올렸다. 8위 저우허양(周鶴洋·39)은 11개의 우승컵을 챙겼다.

역시 관심사는 젊고 패기 넘치는 주니어 그룹이다. 우승 13회로 공동 6위에 천야오예(陳耀燁)가 올랐고, 24세인 저우루이양(周睿羊)도 9차례 우승 트로피를 포옹하며 역대 9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뒤를 24세 동갑내기 장웨이제(江維杰)와 퉈자시(柁嘉熹), 19세인 판팅위(范廷鈺) 등이 공동 10위(6회) 그룹을 형성했다. 현재 중국의 투톱으로 대접 받는 24세 스웨(時越)와 18세 커제(柯潔)는 각각 4번, 3번 우승자로 호명됐다.

중국의 최다우승 경쟁 판도를 정리하하면, 구리의 1위 자리가 위협받을 여지는 당장은 없다. 바로 뒤 순위자인 마샤오춘, 녜웨이핑, 창하오, 쿵제 등의 타이틀 사냥이 오래 전 멈췄기 때문이다. 또 커제, 판팅위, 스웨, 장웨이제, 퉈자시, 저우루이양, 천야오예 등 ‘세계 제패를 경험한 신예그룹‘ 멤버들도 선두 구리와의 격차가 30승에 육박한다. 주니어들 간의 자체 경쟁도 치열해 독주가 힘들다. 중국 역시 10년 이내 구리를 따돌리고 최다 우승기록을 경신할 기사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점치는 이유다.

바둑계엔 숱한 호칭과 형태의 타이틀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것을 집대성한 ‘최다 타이틀 횟수’야 말로 어떤 타이틀도 넘보지 못할 최고의 영관(榮冠)이다. 그 자체가 과녁은 아님에도 그 결과가 가장 위대한 승부사를 논쟁의 여지없이 명확하게 가려주는 것이 ‘최다 타이틀‘이란 이름의 타이틀이다. 한 중 일 3개국이 제각기 펼쳐나갈 최다 우승자 경쟁 레이스가 각각 어떤 식으로 전개돼 나갈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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