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챌린저스컵은 대회의 의의나 흥행 효과, 그리고 결과(한국 기사의 우승) 등 모든 면에서 매우 성공적인 행사였다. 지난 4월 10, 11일 양일간 한국기원서 벌어진 이 이벤트엔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동양 3강 바둑 관계자들과 팬들의 비상한 관심 속에 진행됐고, 한국의 변상일 三단이 우승을 차지했다.
LG 챌린저스컵은 상설대회는 아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을 기념하는 특별행사로 기획됐다. 가장 중요한 대회 컨셉트는 출전기사들의 연령을 만 18세 이하로 제한한 것. 1997년 1월 1일 이후 출생한 기사 16명이 총 토너먼트로 겨뤘다. 나이 제한에서 감지되듯 미래 세계 바둑을 이끌 주인을 점치기 위한 대회였다. 국가별 출전 쿼터는 한국 8, 중국과 일본은 4명이 주어졌다. 한국은 랭킹 순으로 6명을 추리고 나머지 2명은 연구생 선발전을 거쳐 선정했다.
누가 우승할 것인가. 막강한 신예들이 즐비해 대회에 들어가기 전 우승자를 점쳐보는 것부터가 상당한 즐거움이었다. 우선 중국에선 98년생 트리오 양딩신(楊鼎新) 리친청(李欽誠) 셰얼하오(謝尒豪)가 주목받았다. 양딩신은 2008년 9세 9개월의 나이로 입단했던 천재 중 천재다. 조훈현보다 2개월 늦은 입단이었지만 실질적으론 역대 세계 최연소 프로 진출이란 게 정설이다(최연소 기록 보유자인 조훈현은 자신의 호적이 53년생으로 돼 있지만 실제론 52년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양딩신은 2011년 리광배 신수전, 이듬해 리광배, 2013년 유부부동산배서 연거푸 우승했다. 리광배는 그의 메이저 기전 첫 우승 무대였는데, 당시 나이 13세 5개월로 중국 역대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에 해당했다. 이창호가 보유 중인 한국 최연소 타이틀 획득기록(바둑왕전, 14세 1개월)보다도 약 반 년 빠르다. 양딩신은 최신(4월) 중국 랭킹 13위로 이번 대회 출전 중국기사 중 가장 높았다.
리친청도 11세 때인 2009년 입단해 2012년 벌써 제4회 비씨카드배와 제1회 바이링배 등 세계대회 본선에 몸을 실었으며 삼성화재배에선 16강까지 올랐다. 그리고 2013년 제18회 LG배에선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중국내 랭킹은 20위.
셰얼하오 또한 벌써 세계대회 4강(2012년 1회 바이링배)과 8강(2014년 제19회 LG배) 등의 실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 98년생 트리오보다 한 살 많은 황원쑹은 2012년 제19기 중국 신인왕전서 준우승했고 2014년 제2회 바이링배 64강에 오르며 세계 본 무대를 밟았던 유망주다.
일본도 만만치 않은 얼굴들이 이번 대회를 찾았다. 97년생인 이치리키(一力遼)는 지난 해 일본이 의욕적으로 창설한 제1회 글로비스배(20세 이하 세계대회)서 당당히 우승했던 인물이다. 오카게배 2연패, 일본 신인왕전 우승을 거쳐 중앙 무대에 본격 진출 중이다. 함께 내한한 동갑내기 쉬자위안(許家元)은 글로비스배 결승서 이치리키와 패권을 다퉜던 기사. 대만 출신으로 일본서 2013년 입단했다. 일본에선 이밖에 급성장 중인 여성기사 후지사와(藤澤里菜)도 동행했다. 괴짜 기사 고 후지사와(藤澤修行)의 손녀인 후지사와 또한 98년생이다.
이에 맞서는 한국 진용도 호화로움에선 부족하지 않다. 랭킹이 가장 앞서는 기사는 김명훈으로 20위. 2014년 초 입단하자마자 최단기간 본선 진출로 화제를 모았고, 올해는 제20기 GS칼텍스배서 뭇 강자들을 연파하고 4강까지 올라 주목 받았던 슈퍼루키다. 97년생인 김명훈은 전달 한때 랭킹 15위에 올랐다가 4월 20위로 조정됐다.
변상일은 김명훈과 동갑(97년생)이지만 김명훈보다 2년 먼저 입단했다. 이미 신인왕전 2연패, 2013년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남자단체 금메달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랭킹은 김명훈보다 11단계 아래인 31위지만 둘 간의 대결에선 변상일이 앞선다. 김명훈은 이번 대회를 포함해 변상일과 세 차례 격돌을 가져 세 번 모두 패배, 천적 관계가 형성되는 모양새다.
김명훈과 변상일 이상으로 기대를 받았던 기사가 신진서와 신민준 등 이른바 ‘양신(兩申)’이다. 둘은 2012년 하루 차이로 입단한 입단 동기이자 ‘영재 입단 1호‘이다. 그래서 라이벌 의식도 강하다. 신진서는 하찬석국수배 영재대회를 3년 연속 제패하면서 신민준보다 한 발 앞서 달리고 있다. 2014년 이민배 세계신예 최강전서는 한국 기사 중 가장 높은 4강까지 올랐다.
신민준은 올해 천원전 결승까지 올라 주변을 놀라게 했다. 비록 결승서 네 살 형인 나현에게 져 준우승에 그쳤지만, 정규기전 정복 경쟁에선 경쟁자 신진서보다 더 높이까지 올라가 본 셈. 지난 해엔중국 을조리그에 참가해 6승 1패의 호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은 이밖에 요즘 여성바둑계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오유진(98년생), 영재입단 2기생 설현준(99년생), 그리고 연구생 선발전을 통과한 아마추어 임지혁과 김기범이 출사표를 던졌다.
뚜껑을 연 결과 16강전 첫날부터 이변이 속출했다. 무엇보다 우승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신진서의 1회전 탈락이 아팠다. 리친청에게 흑으로 불계패한 것. 하지만 변상일이 황원쑹을, 김명훈이 이치리키를, 신민준이 셰얼하오를 눌러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설현준이 일본의 복병 무스우라(六浦雄太)에게 반 집을 져 탈락했지만 오유진이 ‘홍이점’ 대결서 일본 후지사와를 완파했다.
2회전(8강전)서 변상일이 김명훈을, 신민준이 오유진을 제쳐 4강에 진출했다. 쉬자위안과 양딩신은 각각 리친청과 무스우라를 누르고 4강에 합류했다. 쉬자위안의 기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변상일은 쉬자위안을 힘으로 제압했고, 양딩신은 신민준의 결승행을 제지하며 자신이 결승 무대에 올랐다.

변상일 대 양딩신의 결승은 양딩신이 다소 우세하리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변상일은 초반 포석 열세를 딛고 중반에 집으로 앞섰고, 쫓기던 중원 흑 대마를 멋지케 타개함으로써 대망의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변상일로선 2013년 초 김성룡 九단 인솔로 중국 원정에 나서 치른 한중 교류전 때 양딩신에게 당했던 패배를 설욕한 일전이었다.
우승자 변상일은 당초 발표된 대로 통합예선을 면제받고 6월 8일 시작되는 제20회 LG배 본선에 직행하게 됐다. 군웅들이 득실거리는 국제 무대에서 통합예선을 뚫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변상일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던 것도 우승의 기쁨 외에 LG배 본선 티켓을 확보한 안도감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변상일의 본선 티켓 획득으로 그와 통합 예선 1회전서 겨룰 예정이었던 중국 궈원차오(郭聞潮)는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제 주목할 것은 LG챌린저스컵 우승자인 변상일이 본선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리느냐 하는 것이다. 챌린저스컵서 우승하던 날 목표를 묻는 질문에 “아직 실력이 없어서…”하며 특유의 겸손으로 넘어가려하던 변상일은 “솔직히 말하라”는 기자들의 다그침에 이내 “결승까지 진격하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지난 해 통합예선을 거쳐 16강까지 올랐던 변상일인 만큼 결코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란 느낌이다.
바둑계 일각에선 이 행사를 한 차례에 그칠 게 아니라 정례화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예산 문제 등 선결 과제들이 놓여있지만 미래 동량들의 가능성을 미리 점검해 본다는 점에서 명분과 흥행과 재미를 모두 노릴 수 있는 훌륭한 행사라는 것. 바둑계를 주도하는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짊어질 10대 젊은 사자들의 맞대결 무대는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 마력을 갖고 있다. 과연 대성황 속에 마무리된 LG 챌린저스컵 행사를 해마다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