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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가쁜 세대교체…판도 변화 시작
 

2015년에 접어들면서 바둑계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새 얼굴들이 마침내 정상권으로 발돋움하면서 타이틀 보유자 명단에 지각변동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혁명군이 정부군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수도(首都)를 함락하고 물밀 듯 밀려오는 형국이다.

혁명군의 선봉은 나현(20)이 맡았다. 2월 13일 벌어진 제19기 천원전 우승으로 일약 2관왕에 오른 것이다. 나현은 앞서 4개월 전인 작년 9월 제10기 물가정보배를 접수한 바 있다. 4개월 사이 2개의 기전에서 우승하는 것은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등 역대 최정상들이 전성기 시절에나 보여주던 광경이다.

나현은 한국 바둑계가 오래 전부터 가장 유력한 ‘미래 권력’으로 점찍어오던 유망주이니 의외일 것은 없다. 2010년 15세 때 프로가 돼 이듬해 제16회 삼성화재배 준결승까지 점프, 국내외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전력이 있다. 2012년 제7회 LG배서도 8강까지 진격했다.

이번 천원전에서 나현은 예선을 4연승으로 통과한 뒤 전기 챔프이자 한국 부동의 1인자인 박정환을 눕히며 우승까지 치달아 무르익은 기량을 과시했다. 예선 본선 합해 파죽의 9연승 퍼레이드였다. 물가정보배에서도 예선서 이세돌을, 본선에선 박정환을 제친 이창호를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최강 대열에 끼기 위한 손색없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나현은 입단한지 만 5년이 채 안 됐는데 벌써 六단이다. 물가정보배 우승 때 五단에 오르고 천원전 우승으로 또 한 계단 올라섰다. 엄청난 승단 스피드다. 예전과 달리 요즘엔 각종 기전에서의 성적이 곧장 단위에 연계되는 시스템이어서 승단 속도는 기사의 활약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지표다.

나현은 95년 1월 생으로 이른바 ‘95후(後)’ 세대의 기수 역할을 해왔다. 약관(弱冠) 진입을 스스로 기념하고 자축하는 연속 타이틀 퍼레이드를 펼쳤다고 할까. 자신에게나 한국 바둑계로 보나 매우 경사스런 일이다. 하지만 ‘95후(後)’란 그동안 미래를 걸머쥘 10대 최고 유망주들을 칭하는 조어(造語)였다. 그의 20대 진입과 양대 타이틀 획득은 나현이 더 이상 유망상품이 아닌 기성(旣成) 최고급품 대열로 넘어갔음을 뜻하는 것이어서 아쉬움도 없지않다.

그런 아쉬움을 덜어준 대표적 기사가 이동훈이다. 이동훈은 2월 23일 열린 제33기 KBS바둑왕전 제패로 타이틀 홀더 명단에 이름 석 자를 아로새겼다. 놀라운 것은 결승 상대가 천하의 박정환이었다는 점. 1년 넘게 부동의 1인자로 군림 중인 박정환을 결승에서 2대0으로 셧아웃 시켰다. 박정환은 바로 열흘 전 우승 상금 3억원짜리 대형 기전인 LG배를 품에 안았고 16개월 연속 한국 랭킹 1위를 지켜온 간판스타다.

이동훈은 이번 우승으로 나현이 내놓은 20대 미만 한국 주니어 계보의 리더로 일단 자리매김한 느낌이다. 이번 쾌거에 앞서 지난 연말엔 명인전서도 결승에 진출하는 등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당시 박영훈과의 대결서 1대3으로 물러섰으나 우승자에 비해 크게 손색없는 내용을 보여주었다는 호평을 받았었다. 두 번의 결승 진출로 이동훈의 단위는 벌써 五단에 올랐다.

이동훈의 화려한 이력은 이밖에도 많다. 2011년 5월 13세 3개월의 나이로 입단한 그 해 신인왕전 준우승, 이듬해 농심배 대표 티켓 획득, 2013년 두 번째 신인왕전 준우승,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남자단체 금메달 주역, 그리고 바둑리그 챔피언 결정전 최종국에서의 짜릿한 결정타 등이 그가 걸어온 길이다.

바둑이 ‘나이의 게임’이라고 할 때 이동훈의 페이스는 매우 주목할 만 하다. 우선 입단 연령. 13세 3개월의 프로 진입은 이 부문 역대 10위 안에는 못 들지만, 입단 경쟁이 10~20년 전보다 훨씬 격화된 요즘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빠른 입단이다. 국내 최연소 九단 기록을 갖고 있는 박정환의 입단 당시 나이와 비교해도 약 한 달가량 빠르다. 영재 입단대회가 도입되면서 한국기원 최연소기사 감투는 벗었지만, 98년생은 우리 바둑계에서 여전히 ‘귀하신 몸’이다.

첫 타이틀 획득 연령도 비교해 보자. 이동훈의 이번 바둑왕 등극은 17세 19일 만에 이뤄낸 것으로, 역대 개인기준 5위에 해당한다. 이창호가 자신의 첫 타이틀인 바둑왕전(89년 제8기)서 우승할 때의 14세 10일이 최연소 부분 최고기록이다. 그 뒤 박정환 송태곤 박영훈이 2~4위를 기록했고 그 다음 5위가 이동훈이다. 이세돌 강동윤 최철한, 심지어 조훈현도(일본 유학을 다녀오느라 그랬지만) 이동훈보다 한참 늦게 첫 타이틀을 땄다.

97년 1월생인 변상일도 주목의 대상. 만 15세 되던 2012년 1월 프로가 된 후 2013-4년 신인왕전 2연패,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개인 은, 단체 금 등 순조로운 ‘황태자 수업’ 코스를 밟아왔다. 최근 약간 슬럼프 기미가 보이지만 변상일은 국가대표 팀 코칭스태프들이 인정하는 기재다. 곧 이동훈 못지않은 실적을 곧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공식 ‘영재‘ 출신인 신진서(2000년생)와 신민준(1999년생)에 쏠린 기대도 엄청나다. 영재 입단대회 1호 출신 신진서는 하찬석 국수배 영재대회 3연속 우승 외에도 2013년 천원전 8강, 2014년 국수전 8강, 세계 신예 대회인 이민배 4강 등의 고공행진을 계속해왔다. 신민준은 입단 동기 신진서에 다소 밀리는 느낌을 주지만 금년 초 나현과 천원을 놓고 결승을 펼친 끝에 준우승을 따냈다. 결승전(도전기 포함) 경력에선 라이벌 신진서에 한 발 앞선 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대상은 97년 4월생인 김명훈이다. 2014년 1월 일반인 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한지 19일 만에 본선 진입(바둑왕전)이란 역대 최단기간 기록을 쓰더니 성인 최고 무대 중 하나인 제20기 GS칼텍스배에선 김지석을 꺾고 올라가 박정환을 탈락시킨 진시영마저 제압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준결승서 목진석에게 역전패해 아깝게 4강에 그치긴 했지만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런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랭킹 첫 진입 때 일약 20위로 ‘호적’에 오르더니 3월엔 15위로 점프했다. 첫 랭킹 20위는 나현의 16위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나현, 이동훈의 진입으로 타이틀 판도가 매우 젊어졌다. 그 명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정환=LG배 국수전
김지석=삼성화재배 GS칼텍스배
이세돌=TV아시아 레츠런파크배 맥심배
나현=물가정보배 천원전
박영훈=명인전
이동훈=바둑왕전

국내외 메이저 타이틀 11개를 6명의 한국기사가 지배하고 있다. 이세돌이 현재 기준으론 3관왕으로 가장 많은 영토를 보유 중이다. 복수(複數)의 영주(領主)는 이세돌 박정환 김지석 나현 등 4명이다. 참고로 꼭 1년 전인 지난 해 3월 기준 타이틀 보유자 리스트를 올린다. 비교해 보면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실감이 난다.
박정환=물가정보배 천원 맥심배
김지석=올레배 GS칼텍스배
최철한=명인전
강동윤=십단전
조한승=국수전
이세돌=바둑왕

중국은 이미 3명의 ‘95후’가 현역 세계챔프로 당당히 군림하고 있다. 판팅위(응씨배)와 미위팅(몽백합배)이 96년생, 커제(바이링배)가 97년생이다. 미래 우리 바둑계를 생각한다면 젊은 층이 비전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솔직히 현재 상황은 우선 양적(量的)으로 중국에 크게 뒤지는 것이 현실이다. 올 한 해 동안 기재가 뛰어난 어린 새 얼굴들이 쏟아져 나와 기존 판도를 갈아엎고 우리 미래 바둑계에 밝은 등불을 비춰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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