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수하는 신진서-박정환.
제24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결승 3번기가 10일 시작됐다. 이미 알려진 대로 박정환과 신진서 등 한국을 대표하는 두 거물기사끼리 패권을 다툰다. LG배는 4반세기를 바라보는 역사, 거대한 대회 규모(우승 상금 3억원, 준우승 1억원), 매력적인 운영 방식 등으로 세계 프로기사들이 가장 선망하는 국제기전이다.
한-한 결승전은 다소 눈길이 덜 가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바둑은 개인 대 개인 간 경기임에도 언젠가부터 소속국가를 대표하는 종목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팬들은 우리 기사가 외국인 기사, 특히 중국 선수와 맞붙어 우승하는 시나리오를 가장 통쾌하게 여긴다.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색채가 가장 강한 종목 중 하나가 바둑이다.
하지만 그것도 ‘메뉴’ 나름이다. 올해처럼 한국랭킹 1, 2위가 세계대회 패권을 놓고 결승서 격돌하는 것은 2015년 제19회 대회(박정환 대 김지석) 때 이후 두 번째다. 두 기사는 한국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투톱‘으로 불린다. 비공인 세계랭킹 사이트 ’고 레이팅‘도 신진서를 1위, 박정환을 2위로 올려놓고 있다(2월 8일 현재).
LG배는 다른 어떤 국제 메이저기전 보다도 한국 대 한국 결승이 많이 치러진 대회로 유명하다. 24회를 치르는 동안 무려 9번이나 우승과 준우승을 한국기사가 나눠가졌다. 중국 대 중국 결승도 5판에 이른다. 58.3%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비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승전은 항상 비상한 관심 속에 화제와 얘기꺼리를 양산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LG배 특유의 권위와 콘텐츠 가치가 작동한 것이다.
LG배 결승전의 한-한 ‘형제 대결’은 대회 원년인 1회(96년~97년) 때부터 시작됐다. 이창호와 유창혁이 결승전을 치른 주역들이었다. 한국 바둑 세계 제패의 주역을 맡았던 두 기사 모두 전성기에 해당한 시점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결과는 이창호의 3대0 완봉승. 이창호의 독주를 제지할 가장 강력한 브레이크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유창혁은 이를 출발점으로 4회 대회까지 세 차례 준우승에 머무는 불운을 맛본다.
한국바둑의 최대 황금기라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의 약 10수년 가량을 의미한다.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서봉수 이세돌 등 내로라하는 천재기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계 바둑을 석권하던 시기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국기사끼리 결승서 만나 우승을 다투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국바둑의 에이스 이창호와, 신진세력의 기수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던 17세 소년 이세돌이 세계 타이틀을 놓고 처음 격돌한 것도 2001년 제5회 LG배였다. 이 결승전은 2001년 2월 하순 벌어진 1라운드에선 이세돌이 1, 2국을 모두 이겨 우승이 떼놓은 당상처럼 보였으나 5월 7, 9일 열린 2라운드 두 판을 이창호가 이겨 타이를 만들었다. 이어 5월 21일 치른 최종 5국서도 이창호가 승리,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쓰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2001년~2002년 벌어진 제6회 대회는 LG배 초창기 ‘준우승 전문가’로 불리던 유창혁의 한풀이 무대였다. 그는 대선배이자 라이벌이기도 한 거함 조훈현과 패권을 놓고 맞붙었다. 이 대결 역시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유창혁이 승리, 대망의 첫 LG배 대관(戴冠)에 성공했다. 싸움바둑의 대가들인 두 파이터가 원 없이 싸우면서 팬들을 열광시켰던 한-한 결승전이었다.
이듬해 7회 대회 결승도 공전의 화제 속에 거행됐다. 2년 전 이창호에게 대 역전패한 이세돌이 또 다시 결승에 올라 이창호와의 국제대회 결승 리턴매치를 성사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다지고 또 다지는 신중한 행마 속에 3대1로 승리를 안았다. 이세돌은 후지쓰배 우승에 이어 두 번째 세계제패 날개를 달며 웅비하기 시작했다.
▲ 제8회 결승에 진출한 목진석 7단과 이창호 9단
2003년~2004년 벌어진 제8회 LG배도 한국 기사끼리의 각축장이었다. 이번에 등장한 ‘공동 주연’은 이창호와 목진석. 목진석은 최절정기를 맞은 이창호를 상대로 선제점을 뽑는 등 선전했지만 결국 1대3으로 분패했다. 그래도 목진석으로선 메이저 기전 결승 진출이란 기사 생활 최대의 실적을 올린 값진 무대였다.
이세돌은 2007년~2008년 사이 벌어진 제12회 대회 때 한국 기사를 상대로 맞은 세 번째 LG배 결승전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결승 파트너도 큰 화제를 몰고 왔다. 19세 한상훈은 프로 입단 후 단 61일 만에 LG배 본선에 상륙했고, 우승 후보 구리를 포함해 파죽의 8연승으로 결승까지 치달았다. 비록 1대2로 역전패하긴 했지만 2단 한상훈은 세계 최저단 준우승 기록을 경신하며 스타덤에 올라섰다.
이후 LG배 패권은 7년 연속 중국에 머물다가 2014년~2015년 19회 대회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놀라운 분전이었다. 한국 기사들은 8강전서 전승해 4강을 독점했고, 박정환과 김지석을 결승전 멤버로 선출하면서 또 한 번의 한-한 패권다툼을 성사시켰다. 세계 바둑사상 처음 있는 한국 랭킹 1위와 2위 간의 메이저 결승전이었다. 박정환은 이 대회 우승으로 개인 2번째 세계 정상을 맛보았다.
한국기사끼리의 결승전은 이듬해까지 이어져 2년 연속 계속됐다. 2015년~2016년의 제20회 LG배 우승컵을 놓고 강동윤과 박영훈이 사투를 벌여 강동윤이 2대1로 승리, 정상에 올랐다. 이후 3년 간 다시 중국기사들 품을 전전하던 LG배는 올해 24회 대회에서 신진서, 박정환만을 남기고 9번째 한-한 결승 파티 준비를 마쳤다.
한-한 결승 매치의 장점은 가슴을 졸이면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누가 이겨도 한국 우승이니 편한 마음으로 관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바둑이 지난 해 하반기 이후 국제무대에서 잇달아 실망스런 성적을 남겼던 터여서, 그 부진을 끊어내고 결승전이 벌어지기도 전 한국 우승을 확정지어준 두 기사의 공로는 매우 크다.
이 같은 ‘편한 결승전’은 팬이나 관전객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당사자인 두 기사도 결승전 개막을 앞두고 “부담 없이 편한 마음으로 둘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국제대회서 한국이 몰패를 당할 때마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아홉 차례의 한-한 결승전과 함께 다섯 번 이뤄진 중-중 결승의 족적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간다. 2005년~2006년 제10회 LG배 대회서 구리와 천야오예가 대회 사상 처음 중국기사끼리 결승전을 성사시켰다. 5년 뒤 15회 때는 박문요와 쿵제가, 18회 때는 퉈자시와 저우루이양, 21회 때 당이페이와 저우루이양, 그리고 지난 해 23회 때 양딩신과 스웨가 LG배 결승 무대를 장식했다.
LG배는 해마다 시즌 벽두 가장 먼저 결승전을 치른다. 그 해 첫 세계 챔피언을 배출하는 통로라는 뜻이다. 한 해 농사처럼 바둑도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기사 2명이 사이좋게 결승에 올라 우승과 준우승을 나누게 되었으니 이것도 보통 행운이 아니다. 박정환과 신진서 두 라이벌의 치열한 패권 전쟁이 예상되지만 여느 때처럼 가슴 졸일 필요도, 아깝게 우승을 내줘 분통 터뜨리는 일도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