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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만난 쥐띠해 출생 프로기사들
 
2020년 새해는 경자년(庚子年), 쥐띠 해다. 쥐라는 존재는 인류에게 환영받는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영특하고 부지런하다는 긍정적 이미지도 갖고 있다. 쥐를 의미하는 자(子)는 12지를 구성하는 12가지 동물 가운데 첫 번째다. 그 뒤를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소대장’ 같은 위치다.

한국기원 현역 프로기사 수는 2019년 12월 말 현재 371명(남자 303, 여자 68명)이다. 이 중 쥐띠 해에 태어난 기사 수가 얼마나 되나 뽑아봤더니 27명(남 24, 여 3명)으로 전체의 약 7.3% 수준이다. 12간지의 각 동물은 대략 8.3% 정도 돼야 평균치인데, 쥐띠 기사 숫자는 평균보다 적다. 그만큼 희소성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쥐띠 기사의 출생연도 비율이 가장 높은 해는 84년과 96년으로 각각 11명씩이었다. 84년생은 새해 만 36세, 96년생은 24세가 된다. 둘 모두 인생의 황금기에 해당하는 연령대다. 바둑뿐 아니라 스포츠맨, 학자, 예술가도 평생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다. 이 연령대에 가장 많은 프로기사가 몰려 있다는 건 우리 바둑계로선 다행스런 일이다.

요즘 한국 바둑계에서 가장 핫한 쥐띠 프로기사 1명을 꼽으라면 단연 최정 9단이다. 96년생인 최정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세계 여자개인전만 2개, 국내 여자 타이틀도 2개를 지녀 4관왕으로 군림 중이다. 74ㄴ개월째 한국 여자랭킹 1위인데 언제 끝날지 끝이 안 보인다. 국내 여자기사 상대 47연승 역시 마찬가지다.

최정은 최고의 2019년을 보낸데 이어 2020년 새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할 태세다. 남자 최상위권 기사들도 최정을 만만하게 보지 못한다. 역대 최강의 여성 기사로 자타가 공인하는 루이나이웨이의 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마다 새 기록을 쏟아내는 최정이야 말로 바둑계 전체를 대표하는 대표적 ‘쥐띠’ 프로다.

96년생 중엔 또 한 명의 여성 프로기사가 있다. 김채영 5단이다. 최정을 가장 근거리에서 위협하면서 오유진과 2위 경쟁 중인 여성 바둑계 실력자다. 2018년 제1회 우칭위안배서 최정 등을 제치고 우승한 경력도 있다. 최정과는 쥐띠 동갑인데 언니 소리를 듣는다. 김채영이 1월생, 최정은 10월생으로 한 학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여성 바둑쪽은 96년생 쥐띠가 꽉 잡고 있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다.

96년생 쥐띠 중엔 이밖에 바둑리거로 맹활약 중인 한승주 6단을 비록해 김진휘 4단, 오장욱 3단, 박재근 3단, 이창석 5단, 강지범 2단, 박주민 초단, 문중호 2단, 김민석 2단 등이 있다. 하나같이 20대 중반의 젊음을 폭발시키기 직전의 유망주들이다. 다만 최정과 김채영의 여성 투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남성쪽 활약이 좀 미흡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84년생, 만 36세는 이른바 장년(壯年)에 해당한다. 두뇌 활동 속도는 24세 때를 따를 수 없지만 인생의 지혜를 터득해 모든 사물을 깊이 성찰하는 능력은 20대를 훨씬 앞서는 나이다. 인생 전체를 통해 순발력 기억력 판단력 통찰력 등의 종합 점수를 매긴다면 가장 많은 점수가 나올지도 모를 연령대다.

84년생 프로기사들의 명단을 보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박정상 9단, 박승현 8단, 윤혁 8단, 이민진 8단, 김주호 9단, 홍민표 9단, 윤재웅 4단, 주형욱 8단, 김선호 3단, 박지훈(소) 5단, 최원용 8단 등이 84년생 쥐띠 기사들이다. 모두가 일당백의 용사들이다.
▲ 박정상 9단 후지쯔배 우승!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

박정상은 2006년 제19회 후지쓰배서 우승한 세계 챔피언 출신이다. 현재 국가대표 팀 코치로, 바둑TV 최고 인기 해설자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쥐띠 프로기사들 가운데 세계제패 경험자는 최정, 김채영과 함께 3명인데, 이 중 남녀가 함께 출전하는 메이저 무대를 정복한 기사는 박정상이 유일하다.

84년생 쥐띠 기사 중 유일한 여성인 이민진도 개인전은 아니지만 정관장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단체전에 대표로 나가 한국의 우승을 주도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단체전도 포함한다면 세계 제패를 경험한 쥐띠 프로기사는 박정상 최정 김채영에 이민진까지 모두 4명으로 늘어난다.

쥐띠 기사들 중 가장 ‘어른’은 누구일까. 36년생부터 찾아봤는데 현재 활동 중인 프로기사는 1명도 없었다. 현역 최고령 프로인 최창원 6단은 37년생으로 소띠다. 그 뒤로 고재희(39년생) 백흥수 권경언(이상 41년생) 순이다.

48년생 쥐띠 프로기사는 3명이 활동 중이다. 전성기 시절 묘수를 잘 터뜨린다고 해서 ‘유묘수’란 별명으로 불렸던 유건재 8단, 한국기원 부총재로 기원 행정도 돌보고 있는 한상열 6단, 그리고 여성 기사 조영숙 3단이다. 조 3단은 75년 윤희율씨와 함께 제1회 여자 입단대회를 통과했던 한국 여성기사 1세대다. 출생 달까지 따지면 2월생인 한 6단이 현역 최고령 쥐띠 프로로 집계됐다.

48년에서 다시 12년을 내려가 60년생 쥐띠 프로기사는 박영찬 5단 딱 1명뿐이다. 60년 전 경자년에 출생해 다시 경자년을 맞았으니 올해가 환갑에 해당한다. 박 5단은 지난 연말 끝난 시니어리그서 9승 7패의 호성적으로 소속 팀 김포원봉루헨스가 종합 3위에 오르는데 톡톡히 기여했다.

72년생 쥐띠 기사 그룹도 단 1명이 지킨다. 새해 48세가 되는 김찬우 6단이다. 김 6단은 98년 열린 제20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서 한국 기사로는 최초로 입단했고, 그 공로로 이듬해 추천 입단한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알파고 등장 이전 북한 인공지능(AI)을 한국에 소개해 보급한 대목도 영특한 쥐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제 막내급으로 가 볼 차례다. 96년생까지 점검해 봤으니 다음 쥐띠는 2008년생인데, 안타깝게 아직 1명의 쥐띠 프로도 출현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될수록 대성 확률이 높다는 걸 감안하면 아쉬운 일이다. 현재로는 지난 연말 입단한 여성 기사 정유진 초단이 가장 막내다. 06년 생이니 새해 14세가 된다. 2020년 1년 간 2008년생 프로가 탄생해 12세 쥐띠 최연소 기사가 자리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0년 경자년 쥐띠 운세를 뒤져 보니 이런 ‘짐괘’가 나온다. “인연(因緣)의 수와 인복(人福)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해다. 금전을 손에 쥐려하면 샌다. 인연 수와 인복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쥐띠에게 힘을 주는 용띠와, 안정감을 주는 소띠가 궁합이 좋다. 타인의 고충을 지나치지 않고 베풀면 운세가 흥(興)한다.”

점괘는 믿거나 말거나다. 과학적 근거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도 보인다. 한국 바둑이 위기라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모든 기사들이 분발해야 하겠지만, ‘쥐띠’해를 맞아 쥐띠 기사들은 좀 더 의욕과 사명감을 갖고 올해를 자신들의 해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래야 내년엔 소띠, 후년엔 범띠 기사들이 마음 놓고(?) 바둑판 361로를 휘젓고 다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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