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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을 달군 바둑계 뉴스메이커들
 
2019년이 저물어간다. 올 한해도 바둑계에선 숱한 사건과 기록, 그리고 뒷 얘기들이 쌓였다. 세계 바둑계 뉴스면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대표적인 기사 3명을 재조명하면서 저무는 2019년 한 해를 정리해보았다.

▲ 한국랭킹 1위(오른쪽)와 중국랭킹 1위의 대결이었던 2019 CCTV 하세배 한ㆍ중ㆍ일 바둑쟁탈전 결승.

▨커제

2019년 2월 2일 중국 쓰촨성 청두. 중국이 매년 구정 명절에 맞춰 개최하는 하세배 대회 최종 결승이 열린 날이다. 패권을 다툰 기사는 중국 커제와 한국 박정환. 예선 격인 1월 31일 대결에서 승리했던 커제는 이날 결승서도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전패였고, 그 과정이 세계 각국 바둑계에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

필승의 판세를 구축한 커제는 주의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박정환은 노림수를 보고 있었던 반면 커제는 못 보고 있었다. 커제가 엉뚱한 곳을 두자 박정환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다 응수했다. 그리고 결정적 장면에 그 수를 발동하자 바둑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만약 박정환이 뜸들이지 않고 수를 결행했더라면 역전은 없었다.

실수를 깨달은 커제가 이성을 잃었다. 우승 직전 역전패한 것도 아팠지만 그 과정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커제는 손에 쥐고 있던 바둑돌을 흩뿌리며 자신의 뺨을 두 차례나 때렸다. 비명도 질렀다. 상대를 향한 것은 아니더라도 예도(禮道)의 게임인 바둑에서 비명 소리는 금기 중의 금기다. 제 정신이 아닌 커제는 바둑돌을 제 자리에 두지도 못했고, 박정환이 침착한 표정으로 상대 착점을 바로잡아 주었다.

바둑 야사(野史)에 길이 남을 이 해프닝은 2개월 뒤 다시 한 번 반복됐다. 무대가 일본으로 바뀌었을 뿐 상대는 변함없이 박정환이었다.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승전인 이 바둑서도 커제는 필승의 형세를 구축했으나 결과는 역전패였다. 커제는 종반 어려운 고비에서 갑자기 흔들린 듯, 이미 놓인 바둑돌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반칙까지 저질렀다. 그런데 옮겨놓은 그 수가 바로 패착이었다. 그 순간 커제의 광기가 다시 발동했다.

그는 이번에도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자책했다. 쥐고 있던 바둑돌을 거칠게 내던지는 모습도 재연됐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신을 탓하는 욕설을 곁들였는데, 공개된 현장 비디오를 보면 그것이 한국어인 것 같다는 얘기가 꽤 오랫동안 나돌았다. 커제가 2019년 초 열린 2개 국제대회 결승서 연속 두 번이나 연출한 이 최악의 장면들은 아마도 영원히 바둑 야사에 지워지지 않고 남을 것 같다.

커제는 올해 9월 중국 최고 명문 칭화대 대학생이 됐다. 국가체육총국이 커제의 신청을 수용, 2019년 우수선수 무시험 입학추천 명단에 올린 결과였다. 전공은 공상관리학(경영학). 학업과 프로기사 생활을 병행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지금까지는 스스로 만족하며 2개의 길을 걷고 있다. 이래저래 2019년은 커제에게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다.


▲ 모친 나카무라 미유키 씨(왼쪽부터), 스미레 초단, 부친 나카무리 신야 9단.

▨나카무라 스미레

일본 바둑계는 2019년 하나의 실험을 단행했다. 비장하다면 비장하고 기발하다면 기발한 실험이다. 나카무라 스미레란 만 10세 소녀에게 프로기사 면장(免狀)을 준 것이다. 정식 입단 절차를 밟지 않고 특별채용 형식으로 데뷔시켰다. 이 꼬마는 올해 4월 1일부로 일본기원 관서본부 소속 프로 초단이 됐다.

10세 프로 입단은 일본 바둑 역사상 최연소에 해당한다. 하지만 세계 최연소 기록은 아니다. 조훈현이 1962년 9세 7개월의 나이로 프로가 된 기록이 있다. 현재 세계 최강자 그룹의 일원인 중국 양딩신의 9세 9개월 입단도 있다. 그렇다곤 해도 스미레의 10세 입단은 주목받기 족하다. 특별 채용이라서 더 그렇다.

스미레의 아버지는 프로기사인 나카무라 신야 9단이다. 이모도 프로기사이고, 엄마는 프로는 아니지만 바둑 강사다. 이런 가정 분위기 속에서 3살 때 처음 바둑돌을 잡았고, 5살 때 여류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천재성을 보였다. 2018년 1월부터는 한국에 유학, 1년 여 동안 한종진 도장에서 수학했다.

바둑 기량은 나이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할수록 대성하고, 어떤 천재라도 일정 연령에 다다르면 쇠퇴한다. 일본은 스미레란 ‘기획 상품’을 통해 침체에 빠진 바둑계의 회생을 꾀하러 나섰다. 낙후한 일본 바둑의 기량을 끌어 올리려면 붐을 조성해야 한다. 가능성 있는 인재를 통해 화제가 쏟아지면 경기력과 붐이 함께 따라온다. 스미레에게 기대한 역할이다.

이 전략은 기가 막히게 적중하고 있다. 스미레가 가는 곳마다, 대국할 때마다 매스컴과 팬들이 따라다닌다. 10살 꼬마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뉴스다.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의 천재성과 희소성이 어필하는 것이다. 파격적인 대우도 줄을 잇는다. 애송이의 프로 데뷔전이 특별 대국실에 배정됐고, 이를 취재하러 100여명의 보도진이 쇄도했다.

5월 베이징서 열린 제4회 몽백합배 때는 통합예선 첫판서 탈락했지만 와일드카드를 받아 본선 무대도 경험했다. 12월 초엔 중일 초신성대항전에 초대받아 우이밍과 내년 우칭위안배 출전권을 놓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는 특혜도 받았다(결과는 0대2패). 우이밍은 2018년 입단한 중국 최연소 여성 프로기사로 스미레보다 2살 위다.

일본 바둑계 일각에선 ‘가불(假拂)’로 입단한 스미레가 프로 초기엔 저조한 성적표에 시달릴 것을 우려했는데 이것도 기우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10살 소녀답게 승패 결과에 따른 희비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전체적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착실하게 성장 중이다.

4월 데뷔해 11월 말까지 8개월 간 스미레가 기록한 총 전적은 14승 5패다. 두 번의 4연승을 거쳐 현재 5연승 중이다. 올해 연말까지 2판 남았다. 데뷔 첫 해에 2자리 수 승수에 7할이 넘는 승률을 마크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일본 바둑은 올해 10세 소녀 스미레를 통해 대박을 쳤다.

▨이세돌

2019년은 바둑계의 대표적 거인(巨人) 중 한 명인 이세돌이 장막 밖으로 사라진 해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아직 36세에 불과한 나이임에도 이세돌은 24년 여에 걸친 세월 동안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기사 생활을 보냈다. 올해 3월 커제와 겨룬 3.1운동 100주년 기념대국서 패한 뒤 은퇴 의사를 비쳤던 그는 11월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퇴장을 공식화했다.

조훈현 이창호가 그렇듯 이세돌을 빼고는 한국 바둑의 역사를 논하기 어렵다. 1995년 12세의 나이로 프로에 뛰어든 이세돌은 세계 타이틀 18회를 포함해 총 50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등, 우선 기량 면에서 역대 최고 중 한 명이었다. 한국기원의 집계에 따르면 그가 평생 프로기사로서 벌어들인 상금 총액은 98억 원에 이른다.

이세돌 바둑 인생의 정점은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결이었다. 당초 낙승하리라던 예상이 빗나가고 패배로 끝났지만, 제4국에서 극적인 1승을 따냄으로써 인류의 자존심을 지켜 주었다. 그에 앞서 2014년 열린 중국 동갑나기 스타 구리와의 10번기(6승 2패 승리)도 이세돌 바둑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세돌의 바둑은 아기자기하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언행도 이에 못지 않았다. 그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냈다. 그것이 파열음을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2009년 동료 기사들이 자신의 징계를 결의했을 때 6개월 간의 휴직을 결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2016년엔 프로기사회가 친목단체란 원래 취지를 벗어나 월권한다며 탈퇴했다. 기사회 및 한국기원과의 충돌이 잦았다. 한국기원이 올해 7월 정관을 수정, “프로기사회 소속 기사만 한국기원 주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한 것이 그에겐 결정타가 됐다. 이세돌 측은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졌다”며 은퇴를 앞당겨 선언했다.

이세돌은 은퇴 후에도 한국기원과 함께 마무리할 송사(訟事)가 남아있다. 프로기사회 적립금 일부를 되돌려 받기 위한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다. 이세돌은 12월 18일부터 21일까지 국산 AI ‘한돌’과 은퇴기념 3번기에 나선다.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로 최고의 순간을 맛보았던 그가 인공지능을 마지막 파트너로 선정했다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이세돌이 은퇴를 택한 지점은 결국 승부사로서의 자존심과 직결된다. 은퇴 직전 그의 마지막 한국 랭킹은 14위였다. 바둑계 대평원을 일망무제로 내달리던 그로선 한계를 느꼈을 만큼 거리가 벌어졌다. 그리고 적당한 ‘적응’ 아닌 ‘퇴장’을 택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은퇴 회견에서 “AI의 주체 못할 발전에 전의를 잃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움직이는 게 모두 뉴스’였던 바둑계 풍운아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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