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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호-창하오 5번 격돌...국제무대 최다 결승커플
 
지난 달 국내 타이틀전에 이어 이번 달에는 국제기전서 단골로 만난 숙적 커플들을 정리해 보았다. 국제무대 최다 결승 커플은 한국 이창호와 중국 창하오로 5번에 걸쳐 패권을 다투었다. 국내무대 최다 결승 기록인 조훈현-서봉수의 72회에 비하면 훨씬 적다. 기전 수와 대회 역사, 난도(難度) 등의 차이에 기인한다. 지금까지 열렸던 메이저 국제대회 결승 숫자는 모두 합해 120회에 지나지 않는다.

30세 이전 이창호 천하 무적

이창호와 창하오는 총 5번 패권을 겨뤄 이창호가 3번, 창하오가 2번 승리했다. 뜻밖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동년배인 둘은 199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 한 중 양국 바둑을 대표하는 라이벌 관계였지만 성적은 이창호가 월등했다. 3판을 겨루면 두 판을 가져오는 비율이었다. 실제 두 사람 간의 총 상대전적도 이창호 기준 29승 14패로 승률이 67.4%에 달한다. 97년 7월부터 2000년 11월 사이엔 무려 12연승을 질주하기도 했다.

▲ 이창호(오른쪽)와 창하오의 제4회 잉씨배 결승 최종 4국. 2001년 열린 이 대국 결과 이창호가 3대1로 승리, 우승했다. 둘은 다섯 번이나 결승서 격돌, 이 부분 최다 기록을 공유하고 있다.




세계 무대 결승 전적도 초기엔 이 같은 기조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창호는 둘 간의 첫 결승 만남이었던 11회 후지쓰배(98년 8월)를 승리로 장식한데 이어 제4회 잉씨배(01년 2월)서도 창하오를 3대1로 제치고 우승했다. 그리고 2년 뒤 열린 제1회 도요타덴소배 결승(03년 1월) 단판 승부서 또 이겼다. 이 시기는 이창호의 나이 23~28세 때로 그의 전성기에 해당한다.

이창호의 10대~20대 시절은 총 18번 세계 결승에 나가 17번을 이겼을 정도로 무적이었다. 2003년 3월 제7회 LG배서 약관 20세의 이세돌에게 1대3으로 진 것이 유일한 패점이었다. 그가 생애 통산 따낸 메이저 타이틀 수 17개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세계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그 모두가 20대 때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30대에 진입하면서 이창호의 국제대회 결승 승률은 뚝 떨어졌다. 그는 서른이 넘은 뒤에도 9번 결승무대에 올랐으나 한 번도 우승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창호가 창하오에게 결승서 당한 2패의 시점이 바로 30살을 넘긴 후였다. 각각 그의 나이 32세, 34세 때였다. 창하오는 제11회 삼성화재배(07년 1월)와 제7회 춘란배(09년 6월) 결승서 이창호에게 연속 2대0 완봉승을 기록하며 과거 당했던 연패의 아쉬움을 씻었다. 이창호는 1975년생, 창하오는 1976년생인 친구 사이다. 그런 두 사람 중 한 명은 30대 진입 후 급락하고, 또 한 사람은 서른 이후 전성기를 맞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마샤오춘, 이창호에 4연패하며 추락

전성기 이창호에게 가장 많은 매(?)를 맞은 기사는 마샤오춘이다. 1991년 첫 만남(4회 후지쓰배 16강전) 이후 총 33판을 겨뤄 고작 6승(18.2%)에 그칠 만큼 이창호에 약했다. 타이틀 결승 스코어는 더 비참해서, 4번을 만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각종 국제기전의 중요한 길목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이창호를 기준으로 10연승이 한 번, 6연승과 5연승이 각 한 번씩 기록될 정도였다.

이창호와 마샤오춘의 첫 결승은 96년 2~3월 열린 제7회 동양증권배였다. 이 대결은 세계 바둑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이창호는 92년 3회 동양증권배, 이듬해엔 4회 동양증권배서 린하이펑과 조치훈을 연파하고 세계 2관(冠)에 오른 떠오르는 스타였다. 마샤오춘 역시 6회 동양증권배(95년 5월)와 8회 후지쓰배(95년 8월)를 연속 따내는 등 기세등등했다. 전문가들은 “마샤오춘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이창호의 고전을 예상했다.

▲ 조훈현(왼쪽)과 유창혁도 세 차례나 국제대회 결승서 공방을 펼치며 라이벌 관계를 이어갔다. 사진은 2002년 4월 제6회 LG배 결승 최종 5국으로, 유창혁이 3대2로 이겼다.




하지만 승자는 이창호, 스코어는 3대1의 완승이었다. 당시 나이는 이창호 21세, 마샤오춘은 32세. 중국 팬들은 녜웨이핑 시대를 마감하고 대륙의 새 일인자 자리를 꿰찬 마샤오춘이 곧장 반격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4개월 뒤 둘은 제9회 후지쓰배 결승서 두 번째 패권 다툼을 펼쳤는데 이번에도 승자는 이창호였다. 다시 3년이 흐른 99년 마샤오춘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제3회 삼성화재배와 제3회 LG배 등 한국 주최 양대 빅타이틀 결승이었다.

세계의 주목 속에 두 편의 블록버스터가 ‘연속 개봉’됐다. 먼저 열린 삼성화재배에선 마샤오춘이 그 무렵 이창호에게 기록 중이던 10연패에서 탈출, 선제점을 따냈다. 곧 1대1이 됐지만 3국을 이겨 모처럼 세계 제패의 서광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창호가 4, 5국을 따내 단숨에 역전 우승을 장식한 것. 3주 뒤 이어진 LG배는 이창호의 3대0 스트레이트 승리였다. 마샤오춘이야 말로 이창호란 천적에 막혀 제대로 꽃 한 번 피워보지 못한 채 스러져간 대표적 희생양이었다.

도쿄 하늘에 태극기 휘날린 조훈현-유창혁

조훈현과 유창혁은 세계 우승을 놓고 세 번이나 마주 싸운 숙적이다. 나이는 조훈현이 1953년, 유창혁은 1966년생. 같은 한국 기사인데다 연령 차이가 꽤 큰데도 정상 다툼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실력이 출중하고 균형도 이뤄졌기 때문이다. 80~90년대 두 사람은 무적함대 이창호를 견제하며 ‘남버 2’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다.

▲ 2012년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 최종 3국서 복기하는 구리(왼쪽)와 이세돌. 동갑인 두 기사는 세계대회 결승서 3번이나 맞붙으며 최고의 흥행 듀오로 각광받았다.




국내외 대회를 통틀어 조-유는 총 17번 결승서 맞섰다. 국내외 무대 결승서 격돌해 조훈현이 8번, 유창혁이 9번 우승했다. 타이틀전서 거둔 승패 누계는 쌍방 33승 1무 33패로 팽팽하다. 결승전 17번 중엔 3번의 국제대회 성적이 포함돼 있는데 여기선 유창혁이 2승, 조훈현이 1승을 챙겼다. 평생 대국 성적은 조훈현이 72승 1무 54패로 약간 우세하다. 난형난제가 따로 없다.

유창혁과 조훈현은 2년 연속 같은 국제대회 패권을 다툰 이색 경력을 공유한다. 제6회(93년 8월 7일) 및 7회(94년 8월 6일) 후지쓰배 결승서 연거푸 맞서 6회 때는 유창혁이, 7회 때는 조훈현이 이겨 우승했다. 광복의 달 8월에 일본 한복판에서 2년 연속 한국 기사들이 결승을 펼쳐 우승을 주고받는 극적인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두 기사는 약 8년 뒤 제6회 LG배(02년 4월 1일) 결승서 세 번째로 만났고, 거의 ‘사생결단’ 끝에 유창혁이 3대2로 승리했다. 그로선 꿈에도 그리던 첫 LG배였다.

이세돌-구리전 구름 관중 몰고다녀

길지 않은 세계 바둑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라이벌 커플로 이세돌과 구리가 있다. 83년생 동갑이면서 전투적 기풍도 닮아 둘의 대결은 항상 구름같은 관중을 몰고 다녔다. 중국의 거부가 이들 2명만을 특별 초대, 거액의 상금을 걸고 10번기를 치렀을 정도였다(2014년. 이세돌 6승 2패 우승). 둘 간의 공식 총 전적은 이세돌 기준으로 23승 1무 25패. 이세돌의 은퇴로 이 자료는 이제 수정의 여지가 없게 됐다.


▲ 박정환(왼쪽)과 박영훈도 12회 춘란배를 포함해 2번 세계 결승을 치렀다. 지난 33년 동안 한한 결승 대결은 총 23번에 걸쳐 이루어져 중중 결승(20번)에 비해 약간 많았다. /사진 한국기원




이세돌과 구리는 세 차례의 공식전 결승서 만나 이세돌이 2번, 구리는 1번 우승을 따냈다. 최초의 결승 대결은 2009년 2월 25일 끝난 제13회 LG배였다. ‘백담사 혈투’로 이름 붙여진 이 대결에서 구리가 2대0으로 완봉승했다. 하지만 약 2년 뒤 열린 제3회 비씨카드배 결승에선 접전 끝에 이세돌이 3대2로 신승, 균형을 맞췄다. 이세돌은 제17회 삼성화재배(2012년 12월 13일)서 세 번째로 만난 구리를 2대1로 꺾고 둘 간의 대결사를 마감했다.

2번에 걸쳐 메이저 타이틀을 다툰 커플은 제법 많다. 국제대회 초창기 일본 천하를 이끌었던 다케미야 대 린하이펑 조합을 필두로 이창호-유창혁, 유창혁-왕리청, 조현현-창하오, 이창호-이세돌, 이세돌-창하오, 이세돌-쿵제, 박정환-박영훈 등의 조합이 그것이다. 가장 최근엔 커제와 신진서가 챔피언 트로피를 놓고 두 번 칼을 섞었다.

88년 후지쓰배로 시작해 지난 9월 15일 신진서의 우승으로 끝난 제13회 춘란배에 이르기까지 33년 동안 벌어진 국제 메이저 결승은 총 120회에 이른다. 이를 소속기원 별로 뷴류하면 한국 대 중국 50판(한국 기준 27승 23패), 한국 대 일본 16판(13승 3패), 중일전 6판(일본 4승 2패), 중 대만전 1판(대만 1승)이다. 한한전은 23판, 중중전 20판, 일일전 4판으로 집계됐다. 한국과 중국이 국제 바둑대회의 ‘주연배우’였고, 배역의 비중은 한국이 중국에 비해 약간 앞서고 있음이 확인된다. 앞으로 국제 ‘바둑극장’이 어떤 드라마를 쏟아낼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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