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관한 한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하늘이 점지한 라이벌이다. 그나마 현재의 국제 경쟁 구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이 두 나라가 맞서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본과 대만이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바둑이 보급된 나라가 백 몇 십국이면 무엇하나. 두 살 코흘리개와 거구의 프로레슬러 같은 사이여서 의미가 없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중 어느 하나가 바둑 쇄국정책을 편다고 상상해보자. 그나마 지탱해온 국제 바둑 조직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 1995년 열린 제1회 보해배 결승전. 루이나이웨이(왼쪽)가 펑윈 7단을 2대0으로 누르고 원년 챔프로 등극했다. 루이는 5년간 열린 보해배서 3번 우승하는 등 총 8번 정상에 오르며 초기 여자 국제무대를 석권했다.
이번엔 여성바둑 경쟁 역사를 살펴봤는데 이쪽도 예외는 없었다. 대상은 여성 메이저대회 개인 기전으로 국한했다. 1993년 개최된 취보배를 효시로 지금까지 11개의 메이저급 국제 개인대회가 치러졌다. 그 중 일부는 1회 대회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일부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총 30번의 대회를 치러 연인원 30명의 우승자를 배출했다. 개최국 별로 보면 한국이 3개 대회를 9년 간, 중국은 7개 대회를 18년 간, 일본은 1개 대회를 3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30번의 잔치에서 가장 많이 보좌(寶座)에 오른 기사는 누구일까. 예상했던 대로 루이나이웨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기사로 꼽히는 ‘철녀(鐵女)’ 답게 8번이나 세계 정상을 밟았다. 그 뒤를 박지은(5회) 최정(5회) 위즈잉(4회)이 따르고 있다. 복수(複數) 우승자는 이들 4명뿐이다. 한국의 윤영선 오유진 김채영 등 3명, 중국 장쉬안 펑윈 왕천싱, 리허, 저우홍위 등 5명이 한 번씩 정상 등반의 희열을 맛보았다. 30 차례 대회의 국가별 우승 회수는 한국 13번, 중국 17번으로 백중세다. 일본 등 제3국은 1명의 우승자도 내지 못했다.

▲ 역대 여자 세계대회서 최고 연륜을 자랑하고 있는 궁륭산병성배 2회 대회(2011년) 결승 광경. 박지은 9단(오른쪽)이 탕이 2단을 꺾고 2년 연속 우승했다.
루이나이웨이는 63년생으로 올해 58세다. 그녀는 전성기였던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불장군으로 군림했다. 1993년 벌어진 취보배 결승에서 양후이를 2대0으로 일축하고 최초의 여성 세계대회 챔프로 등록했다. 한국 양조업체 보해가 창설한 보해배는 그녀의 운동장이었다. 루이는 94년 1회, 96년 3회, 97년 4회 대회를 연속 제패했다. 펑윈(95년)과 장쉬안(98년)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한 번씩 우승했을 뿐이다.
보해배가 5회 대회를 끝으로 간판을 내린 뒤 한국 흥창그룹이 흥창배란 이름의 여자대회를 2년 간 열었는데 2번 모두 루이나이웨이를 위한 잔치가 됐다. 그녀는 2000년 동방항공배, 2002년 개인전으로 치러졌던 정관장배 1회 대회를 장식하며 여자 메이저 8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99년 한국서 객원기사 생활을 시작한 루이는 그러나 국내대회와 국제 단체전서 맹위를 떨치면서도 그 이후 국제 메이저 명단엔 더 이상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대망의 새 천 년대에 진입하면서 2가지 새로운 현상이 발생했다. 하나는 중국내 기업들이 국제 여자기전 창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루이의 노쇠 기미 속에 젊은 한국 여성기사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국 기업들의 후원 속에 호작배(2002년) 대리배(2007년) 원앙부동산배(2008년) 등이 꼬리를 물고 창설됐다. 아쉬운 것은 이들 신생 대회가 1회만 치르고 사라졌다는 점. 원년 대회가 마지막 대회가 돼 버렸다.
2002년 호작배의 주인공은 윤영선이었다. 이영신과 함께 국내 여자바둑 쌍두마차로 군림하던 윤영선이 떠오르는 후배 박지은을 2대0으로 누르고 세계대회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하지만 이 대회는 세계 여자바둑의 새로운 헤로인 박지은의 탄생을 알리는 팡파르이기도 했다. 2003년 제2회 정관장배 결승서 윤영선을 다시 만나 2대0 스트레이트 승으로 빚을 갚고 첫 세계 정복의 꿈을 이룬 것. 20세 때였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박지은은 2007년엔 후배 김혜민을, 이듬해엔 거목 루이나이웨이를 눕히고 대리배와 원앙부동산배를 연거푸 차지했다. 승단 규정에 따라 두 대회 우승으로 국내 최초의 입신(9단)에도 올랐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9단은 중국 루이나이웨이와 펑윈 등 단 2명뿐이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 초반 10년 남짓한 기간 박지은의 존재는 보석처럼 빛났다.

▲ 2017년 제8회 궁륭산병성배 최정(오른쪽) 대 왕천싱 간의 결승전. 최정이 승리해 대회 두 번째 우승컵을 가져왔다. 최정은 이 대회 네 차례 등 세계대회서 총 5회 우승 중이다.
박지은의 세계 제패 시리즈는 2010년과 2011년 궁륭산병성배 2연패(連覇)로 이어졌다. 궁륭산배는 10회를 넘겨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역대 최장수 여성 국제기전이다. 그만큼 중국으로선 의욕을 갖고 시작한 대회인데 박지은이 잇달아 꽃가마에 올라탄 것. 2년에 걸친 결승전 희생자는 대만의 헤이자자와 중국 탕이였다. 국내 무대서 루이와 조혜연에 자주 막히면서도 세계무대만 나가면 잇달아 우승을 차지했던 점도 화제가 됐다.
박지은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기사가 13년 후배 최정이다. 박지은이 2연속 우승했던 궁륭산배 우승 트로피는 이후 리허와 왕천싱을 거쳐 2014년 제5회 대회 때 다시 최정의 품에 안겼다. 불과 18세의 하이틴 톱스타였던 최정은 이후 같은 대회 8~10회에서 3연속 우승을 추가, 궁륭산배만 네 차례 정복하는 신화를 썼다. 그는 2019년 제2회 오청원배도 접수, 통산 우승 회수를 5회로 늘이며 루이의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최정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중국의 대들보 위즈잉이다. 최정보다 한 살 아래인 위즈잉은 유일한 일본주최 국제기전인 센코배에서 3연속 우승 중이다. 그 3차례 우승 과정에서 번번이 최정을 탈락시켰다는 점이 최정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 위즈잉은 개인 최초의 세계 제패였던 2015년 제6회 궁륭산배(박지은 제압)를 포함해 총 4번 세계 정상에 섰다.

▲ 최정(오른쪽)과 위즈잉이 2019년 센코배 결승서 대국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 위즈잉은 이 대회를 포함해 센코배를 3연패하는 등 총 4번 우승, 최정의 강력한 라이벌로 군림 중이다. (사진 한국기원)
최정과 위즈잉의 세계 여성 1인자 다툼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때 위즈잉에게 11승 17패로 뒤지던 최정은 이후 6연승을 거두며 타이를 만들었지만 올해 3월 센코배 결승전서 다시 제동이 걸리며 한 발 뒤져있다. 신진서와 커제를 능가하는 라이벌 관계가 된 둘은 앞으로도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사사건건 맞부딪칠 전망이다.
이들 외에 제1회 오청원배(2018년) 챔피언 김채영(25), 제7회 궁륭산배(2016년) 우승자 오유진(23) 등도 절정 연령대를 맞아 타이틀 추가가 기대된다. 중국에선 지난 연말 위즈잉을 제치고 제3회 오청원배의 주인이 된 2002년생 저우홍위의 돌진이 점쳐지고 있다. 아직 우승이 없지만 우승을 넘 볼 실력자들도 많이 숨어있을 것이다.
오는 7월 18일부터는 제4회 오청원배가 24강전으로 막을 올린다. 주최국 중국이 9명, 한국과 일본이 각 4명 나온다. 여전히 한국과 중국의 양강 체제가 유지될지, 유지된다면 그 주인공은 누구일지, 혹시 이번엔 제3국 기사가 여성 메이저 첫 챔피언으로 탄생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