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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배 한국 장악 흐름 계속될까
 
승부사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우승이고,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연속 우승이다. 조훈현은 전성 시절 패왕전을 무려 16년 연속 독식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를 통틀어 단일기전 최다 연패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창호의 왕위전 12연패도 기억할 만 하다. 조훈현과 이창호는 전성기 때 특정 기전 7~8기 연속 우승 정도는 식은 죽 먹듯(?) 달성하곤 했다.

험난한 국제대회 연속 우승

일본에선 조치훈의 본인방전 10연패 기록이 작성된지 20년이 넘도록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현역 1인자 이야마 유타가 기성전에서 9연패를 달성하면서 조치훈을 바짝 추격 중이다. 중국에선 마샤오춘이 89년부터 2001년까지 기록한 명인전 13연패 기록이 빛난다.

▲ LG배 디펜딩 챔피언 신민준. 25회 대회 결승서 거함 커제에게 2대1 역전승을 거두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열릴 26회 대회서 LG배 첫 연속 우승기록에 도전한다.


국제대회에 비해 국내 타이틀전에 연패(連霸) 기록이 많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과거 국내 기전은 대부분 선수권제 아닌 도전제로 치러졌다. 도전제는 타이틀 보유자는 이듬해 대회 때는 출전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마지막 남은 한 명으로부터 도전을 받는 방식이다. 한 명만 꺾으면 되므로 연속 우승의 산술적 확률은 50%에 달한다.

그래도 국제대회 연패(連霸) 기록은 제법 많다. 지금은 사라진 후지쓰배에서도 다케미야, 조훈현, 이세돌 등이 2년 연속 우승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 메이저기전은 아니지만 월드바둑챔피언십은 3회를 치르는 동안 3번 모두 박정환을 우승자로 가려내고 폐지됐다.

▲ 2020년 2월 거행된 제24회 LG배 결승 신진서(왼쪽) 대 박정환전 모습. 이 승리에 이어 이듬해 신민준도 우승하면서 LG배는 2년 연속 한국 기사들이 장악하게 됐다.


삼성화재배의 경우 대회 초창기 이창호가 3연패를 이뤘고 조훈현 이세돌 커제도 연속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TV아시아선수권 같은 대회에선 1~4회 패권을 일본 다케미야 9단이 독식하는 기록도 작성됐다. 같은 대회서 중국 쿵제도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개인아닌 국가 連霸 전통을 쌓아온 LG배

LG배 조선일보기왕전은 몇 가지 전통으로 유명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 한 번도 특정 기사의 연속 우승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징크스다. 4반세기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오는 동안 1명의 연패(連霸)자도 없었다는 건 불가사의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특정인의 연패는 불허하지만 국가별, 또는 혈통별로는 연속 우승을 허용하는 현상이다. 허용에 더해 오히려 유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회○○○○ ○○○○우승자○○○○
5회(2001)~8회(2004)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이창호(한국)
9회(2005)~11회(2007) 장쉬 구리 저우쥔쉰(중국 혈통)
13회(2009)~18회(2014) 구리 쿵제 퍄오원야오 장웨이제 스웨 퉈자시(중국기원 소속)
19회(2015)~20회(2016) 박정환 강동윤(한국)
21회(2017)~23회(2019) 당이페이 셰얼하오 양딩신(중국)
24회(2020)~25회(2021) 신진서 신민준(한국)

퍄오원야오(朴文堯)는 조선족으로 불리는 재중 동포이므로 우리 핏줄이지만 바둑 족보로는 중국 기사로 분류된다. 어떤가. 이 정도면 5회부터 25회 대회까지 범한(汎韓) 대 범한(汎中)의 구도 속에서 정연한 순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느낌이 전달돼오지 않는가. 현재 한 중 양국의 LG배 제패 회수는 공교롭게도 11대 11로 똑같다. 절묘한 균형이자 치열한 용쟁호투다.

이렇게 보면 LG배는 개인의 연패엔 매우 인색한 대신 국가나 혈통 등 큰 영역 차원에선 연속 우승을 오히려 유도, 장려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대회 초기 1~4회를 제외하면 20년 넘는 세월 동안 이같은 패턴이 줄기차게 반복돼 왔다.

한 중 양국 LG배서 11번씩 우승

이 흐름이 앞으로 한 중 어느 나라 쪽으로 방향을 잡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으로선 모처럼 되돌린 물줄기를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신진서와 신민준 등 소위 ‘양신(兩申)‘이 중국의 3연패에 종지부를 찍고 한국 연승 무드로 바꿔 놓았다. 이들이어도 좋고 다른 한국기사여도 좋다. 2022년 2월 가려질 26기 LG배 챔피언은 또 한 번 태극전사이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 중국기사로는 마지막으로 LG배를 차지했던 양딩신(왼쪽). 2019년 제23회 LG배서 스웨를 꺾고 우승 후 2년 연속 한국 기사들이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26기 LG배는 4월 12일 국내 예선에 돌입, 26일까지 이어진다. LG배는 올해부터 본선 멤버를 종전 32강에서 24강으로 축소했다. 1998년 2회부터 2005년 9회 대회까지 8년간 적용했던 방식으로 환원하는 것. 10회 대회부터 지난 25회까지 16년간 이어져온 32강 방식은 일단 사라졌다. 원년(1996년) LG배는 31강전으로 치러졌었다.

출전 인원이 조정되면서 출전자 수 감소도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국내 기사 선발전에 할당된 티켓 7장은 줄지 않는다. 지난해와 똑같은 숫자다. 올해 국내 예선엔 총 237명(프로 229명+아마추어 8명)이 참가, 33.9대1의 치열한 경쟁을 펼치게 됐다.

본선 방식 32강전서 24강전으로 환원

대신 각국 간판급 기사들에게 예선을 면제해 주는 국가 시드 수가 종전 6장에서 4장으로 줄었다. 한국의 국가 시드 4장은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김지석에게 돌아갔다. 대회 시드를 받은 전기 우승자(신민준)를 포함하면 한국은 본선행 티켓 12장을 확보한 셈. 추후 선정될 와일드카드까지 차지해 최종 13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국가선발전 쿼터가 지난 해 6장서 올해 4장으로, 국가 시드는 3장에서 2장으로 줄었다. 전기 시드(준우승자 커제) 1장을 보태면 총 7장이다. 이밖에 일본은 국가선발전 1장과 국가시드 2장을 포함해 3장, 대만엔 국가시드 1장이 제공된다. 우승자 3억원, 준우승자 1억원의 상금액은 줄지 않는다.

▲ 제3회 LG배를 놓고 격돌 중인 이창호(왼쪽)와 마샤오춘. 이창호는 이 대회 통산 최다우승 기록(4회)을 보유 중이지만 개인 연패(連霸)가 없는 LG배 전통까지 깨지는 못 했다.


출전 국가별 예선 종료와 함께 참가 기사들의 명단이 확정되면 5월 본선 1라운드(24강전 및 16강전), 11월 2라운드(8강전 및 4강전)가 이어지고 내년 2월 최종 3라운드(결승 3번기)를 통해 LG배의 새로운 ‘별’을 맞아들이게 된다. 온라인으로 진행될 1, 2라운드와 달리 최종 3라운드는 대면(對面) 방식으로 치를 방침이다.

국제 바둑기전 중 26회까지 연륜을 쌓아온 대회는 LG배가 유일하다. 세계 메이저 대회 사상 최초, 최장 기록이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프로 제도가 정착된 4개국 기사가 최소 1번 이상씩 고루 정상을 밟아본 유일한 기전이기도 하다. 코로나 환란을 뚫고 올해는 또 어떤 감동 스토리로 바둑 팬들을 열광시킬지 기대된다. 26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의 출발 총성이 세계를 향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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