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국 국제 신예대항전이라고 있었다. 지금은 중단 상태지만 바둑 국제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의미있는 대회였다. 97년 한중전으로 시작, 이후 일본과 대만이 가세하면서 4개국 행사로 발전했다. 세계 바둑을 휘젓거나 장악해온 현재 연령 20대, 30대 강자 치고 이 무대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프로 입문 7~8년만에 이룬 세계 정상 랑데뷰
4개국이 돌아가며 개최하는 방식인데 2012년 대회는 일본 도쿄서 열렸다. 갓 입단한 신진서와 신민준이 막내로 한국 대표선수로 뽑혀 함께 출전했다. 두 기사끼리도 서먹서먹했다. 맞대결한 경험은 있었지만 아직 친해지기 전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낯선 상황에 놓이면 같은 연령대끼리 어울리게 마련이다). 허장회 최규병 김영삼 사범이 인솔했다.

▲ 양신의 환희. 지난 2월 26일 끝난 제22회 농심배 국가대항전서 한국이 우승했다. 5승으로 마무리한 신진서(오른쪽)와, 3장을 맡았던 신민준이 함께 시상대에 섰다.
1999년생 신민준과 2000년 태어난 신진서, 바둑계가 ‘양신(兩申)’이라고 부르는 둘은 이렇게 국제무대에도 동반 데뷔했다. 두 사람 간의 숙명적 관계는 2012년 7월 제1회 영재 입단대회에서 시작해 무서울 정도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새로 생긴 제1회 영재 입단대회를 함께 통과한데다 성씨(姓氏)도 같다. 지난해 신진서가 제24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을 통해 첫 세계 제패에 성공하더니, 신민준도 질 수 없다는 듯 1년만인 올 2월 제25회 LG배를 품에 안았다.
양신이 입단했을 당시 국가대표 팀 코치였던 목진석 9단은 둘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진서는 자유분방한 기풍이 돋보이고 민준이는 침착함과 인내력이 장점이라고 했었다. 두 유망주의 세계 제패 시점에 대해서도 희망적 전망이 잇달았다. 최규병은 “이세돌이 7년 걸렸는데 그 때보다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이세돌보다 빠를지 아슬아슬해 보인다”고 했었다. 실제로는 세계 정복까지 입단일 기준으로 신진서가 7년 7개월, 신민준은 8년 7개월이 걸렸다.
양신(兩申)의 릴레이 세계 제패는 한국 바둑 행정사(史)에 가장 성공적 순간 가운데 하나로 남을 것이다. 동기생이 나란히 세계를 정복한 것은 국내에선 양신이 유일무이하고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원래 국내 입단 정원은 연간 12명이었는데 2010년 영재 입단대회 도입을 결정했다. 입단 문호가 지나치게 좁아 뛰어난 영재들이 바둑을 포기, 학업으로 돌아버리는 일이 잇따르자 대응책으로 등장한 것이 영재 입단대회였다.

▲ 2018년 제23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개막식 겸 대진 추첨 때 모습. 신진서(오른 쪽)와 신민준이 나란히 앉아 휴대폰의 기보를 함께 보며 웃음 짓고 있다.
제1회 영재입단대회를 통과할 때 2000년생 신진서는 초등학교 6년생으로 12세 4개월, 중학 1년인 신민준(1999년생)은 13세 6개월의 나이였다. 박정환(13세 4개월)과 비교해 볼 일이다. 영재입단대회의 핵심은 1998년 이후 출생자, 즉 만 14세 이하에게만 출전자격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고(高) 연령대 고수들의 입단 독점을 막아주었다는 의미다. 입단하기 직전 연구생 리그 랭킹은 신진서가 2위, 신민준은 15위였다.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
중국은 조금 다른 형식의 영재입단 대회를 한국보다 6년이나 이른 2006년 도입했다. 남자 17세, 여자는 20세 이하로 출전을 제한하고 매년 한 차례 20명(남자 17명 여자 3명)을 프로로 선발했다. 남자의 경우 상위 13명까지만 성적 순으로 입단시키고 나머지 4명은 15세 미만의 어린 출전자 몫으로 돌렸다. 이 정책으로 셰얼하오 양딩신 리친청 미위팅 판팅위 퉁멍청 당이페이 타오신란 등이 프로가 돼 중국 바둑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 영재 시절의 신민준.
입단 후 첫해 성적은 신민준이 신진서보다 좋았으나 이듬해부터 신진서의 보폭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2015년 10월 랭킹이 신진서 23위, 신민준은 28위였는데 이것이 둘 간의 가장 접근된 랭킹이었다. 현재는 신진서가 1위, 신민준은 4위를 기록중이다.
요즘 신진서와 신민준 두 사람은 꽤 친하게 지낸다. 서로 견제를 하면서도 코흘리개 시절부터 한 배를 탔던 동료의식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 신민준이 커제와 LG배 패권을 겨루는 동안 신진서는 TV 해설에 직접 나와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2대1로 역전 우승을 거두었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축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1년전 신진서가 먼저 등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월 농심배서 3년만에 우승을 되찾았을 때 주역을 맡은 두 기사가 나란히 시상대에 서기도 했다.
격화될 세계무대서 활약 기대
둘은 숱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라이벌이라고 부르기엔 지금까지의 전적이 다소 일방적이다. 신민준의 신진서 상대전적은 6승 20패로 승률이 23.1%에 지나지 않는다. 연패가 쌓일 때마다 신민준은 “진서는 나보다 많이 강하다”고 했고, 이번 우승 직후 인터뷰서도 “라이벌이 누구냐. 신진서냐”는 질문에 “아니다. 진서는 너무 세다”며 즉각 고개를 가로저었다.

▲ 영재 시절의 신진서
둘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추상 조형물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신진서가 신민준을 압도했지만, 결정적일 때 신민준이 신진서의 발목을 잡은 경우도 제법 있었다. 특히 2019~2020 한국바둑리그 최종전 결과는 센세이셔널 했다. 신민준은 그 판을 승리, 팀의 우승과 대회 MVP를 모두 따냈고 신진서에 대한 연패 콤플렉스를 끊었다. 신진서에게 신민준은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경고등이다. 신민준 입장에서 신진서는 또 다른 목표이니 소중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신진서는 25회 LG배 챔피언 벨트를 풀면서 세계대회 무관(無冠)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2개 메이저 결승 티켓을 확보해 놓아 지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잉씨배를 놓고 중국의 동갑나기 셰커와, 춘란배에선 탕웨이싱과 각각 패권을 다툴 예정이다. 최대 2관왕까지 바라볼 수 있다. 당당히 세계 메이저 챔프부대의 일원으로 합류한 신민준은 영토 확장을 노릴 것이다. 양신(兩申)이 한국 바둑의 모든 것을 두 어깨에 걸고 동반 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