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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번째 대관식 마친 LG배
 
25번째 LG배 왕관의 주인공은 한국의 신민준(22)이었다. 2월 4일 끝난 제25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결승 3번기서 신민준은 예상을 뒤엎고 거함 커제(24)에 2대1로 역전승, 생애 첫 메이저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신민준의 우승으로 한국은 중국과의 LG배 우승 회수 경쟁에서 12대 12로 균형을 되찾았다. 또한 LG배를 놓고 벌어진 한 중 결승서 22년 만에 승리했다. 한국은 1999년 제3회 LG배서 이창호가 마샤오춘을 3대0으로 꺾은 이후 5번의 한 중 결승서 중국에 전패를 기록 중이었다. 1999년은 신민준이 태어난 해이기도 해서 더욱 화제가 됐다.

▲ 25번째 LG배 주인으로 등록한 신민준. 세계바둑 판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커제는 총 8번이나 세계 메이저 정복을 이룬 강호지만 이번에도 LG배 등정은 실패로 끝났다. 공동 선두인 구리를 제치고 중국 바둑사상 최다 메이저 우승 기록을 수립하려던 야심도 좌절됐다. 뜻밖의 역전으로 준우승에 그친 커제는 기자 회견 중 눈물을 보이는 등 이번에도 많은 화제를 제공했다. 신민준의 부상(浮上), 커제의 좌초로 세계 바둑계는 또 한 번 요동치고 있다.

LG배는 어느덧 4반세기의 역사를 쌓았다. 그때마다 배출된 우승자들은 당대 바둑 최고수로 군림하며 세계 바둑을 이끌어왔다. 연인원 25명, 중복을 빼면 20명의 우승자가 쏟아졌다(이창호 4회, 이세돌 및 구리 각 2회). 세계 지배자를 가리는 결승전은 해마다 예외없이 비상한 관심 속에 바둑계 톱뉴스로 주목받았다. 25년에 걸친 LG배 결승전 역사를 되짚어보았다.

▲ 커제는 이번 25회 대회 결승서 신민준에 1대2로 역전패, 첫 LG배 등정이 무산됐다.

<1회> 1997년 5월. 이창호 3-0 유창혁
이창호와 유창혁 등 한국바둑을 이끌던 ‘양창(兩昌)’이 맞붙어 이창호가 3대0으로 완승, 원년 챔피언으로 탄생했다. 이창호는 이 우승으로 후지쓰배, 동양증권배, TV아시아선수권대회를 포함해 4관왕에 등극, 세계 최강자의 위치를 더욱 다졌다. 첫 인터넷 중계 도입, 8강전 뉴욕 개최도 큰 화제를 몰고온 원년 대회였다.

<2회>98년 3월. 왕리청 3-2 유창혁
전기(前期) 준우승자 유창혁이 2년 연속 결승에 진출, 대만출신 일본기사 왕리청과 패권을 다투었다. 결과는 왕리청의 3대2 승리. 5국 모두 흑을 쥔 쪽이 승리하는 등 접전의 연속이었다. 일본 최초의 LG배 제패였고, 왕리청 개인으로도 첫 세계 우승이었다. 2연속 준우승의 유창혁에겐 ‘비운의 사나이’란 딱지가 붙었다.

<3회> 99년 5월. 이창호 3-0 마샤오춘
이창호가 당시 중국의 1인자 마샤오춘을 일축하고 1회 대회에 이어 다시 우승했다. 이창호는 이 우승으로 4개 국제기전 스트레이트 우승의 위용을 과시했다. “중국 기사가 아무리 여럿 올라가도 이창호가 남아있으면 어렵다”는 중국 측 푸념이 현실화됐다. 이 대회는 국제 바둑대회서 흑이 부담하는 덤의 크기를 5집 반에서 6집반으로 늘린 첫 무대였다.

<4회>2000년 5월. 위빈 3-1 유창혁
중국 위빈이 결승서 예상을 뒤엎고 한국 유창혁을 3대1로 눌렀다. 위빈으로선 생애 첫 우승이었고, 유창혁에겐 1회와 3회 대회에 이은 세 번째 ‘은메달’로 ‘준우승 전문가’란 별명이 붙었다. 95년 먀샤오춘의 제8회 후지쓰배 제패 이후 4년여 만에 세계 챔프를 탄생시킨 중국은 이후 한국을 향한 맹추격에 발동을 걸었다.

<5회>2001년 5월. 이창호 3-2 이세돌
관록의 이창호, 패기의 이세돌이 결승전을 벌였다. 17세 이세돌이 2월 벌어진 1, 2국을 연승했다. 당시 결승 5번기는 3국부터는 2개월 뒤에 열리는 방식이었다. 두 달의 조정기간을 거친 이창호가 반격에 나서 3~5국을 모두 이겨 역전 우승했다. 이창호는 홀수 회수 우승 징크스를 이어가며 개인 통산 100번째 우승을 이뤘다.

▲5회 대회 결승서 열전 중인 이세돌(왼쪽)과 이창호

<6회>2002년 4월. 유창혁 3-2 조훈현
한국 바둑의 또 다른 주전 조훈현과 유창혁이 결승서 만났다. 유창혁 선승, 조훈현 2, 3국 연승으로 역전, 다시 유창혁의 4, 5국 연승으로 재역전 끝에 유창혁의 우승으로 끝났다. 바둑 내용도 모든 판이 역전을 거듭한 백열전이었다. 유창혁은 앞서 세 차례 준우승으로 얻었던 ‘LG배 준우승 전문가’란 별명을 떨치며 국제대회 그랜드슬램에 성공했다.

<7회>2003년 3월. 이세돌 3-1 이창호
이창호와 이세돌이 결승서 다시 만났다. 5회 LG배 때에 이은 2년만의 리턴매치였다. 약관 20세의 이세돌이 3대1로 이겨 설욕하면서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이세돌이 이창호를 번기(番棋) 승부서 제압한 최초의 사건이기도 했다. 이세돌은 규정에 따라 3단에서 일약 6단으로 3계단이나 벼락 승단했다.

<8회>2004년 4월 이창호 3-1 목진석
24세의 목진석이 결승에 올라 LG배 터주대감 이창호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창호는 첫판을 내주었으나 2~4국을 연승해 LG배 통산 4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당시 치러진 LG배 8번의 절반을 독식한 셈이니 그의 당시 위상이 실감 난다. 이창호는 국제적으로 도요타덴소배, 춘란배 포함 세계 3관왕을 다지며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9회>2005년 4월. 장쉬 3-2 위빈
일본 장쉬와 중국 위빈이 LG배 사상 최초로 외국 기사끼리 결승전을 펼친 끝에 장쉬가 우승했다. 일본 바둑계로선 20대 신예의 첫 세계 메이저제패였다. 결승 3국과 4국은 한국기원서 거행됐다. 점심 메뉴로 위빈은 짜장면을, 장쉬는 우동을 주문해 ‘짜장 대 우동’ 대결이란 우스개를 남겼다.

<10회>2006년 4월. 구리 3-2 천야오예
중국세가 점차 드세지는 가운데 LG배 최초의 중국 VS 중국의 결승전이 열렸다. 23세의 구리가 1, 2국을 연승했지만 40일 뒤 속개된 3, 4국서 16세 소년 천야오예가 반격, 타이가 된 뒤 최종 5국서 구리가 이겨 우승했다. 천야오예는 최연소 세계 제패의 기회를 놓쳤지만 대기(大器)로 인정받았다.

▲ 2009년 2월 제13회 LG배 결승 대국 후 복기를 나누고 있는 이세돌(왼쪽)과 구리

<11회>2007년 3월. 저우쥔쉰 2-1 후야오위
3년째 연속 외국 기사끼리 결승서 마주 앉았다. 특히 이번엔 이른바 양안(兩岸) 대결이었다. 결승 5번기에서 3번기로 줄어든 이 해 중국과 대만기사의 우승 다툼에서 대만 저우쥔쉰이 승리했다. LG배는 물론이고 세계 타이틀 사상 대만기사가 메이저 정상에 오른 유일한 사건이었다. 얼굴 오른쪽에 붉은 점을 지닌 저우쥔쉰 스토리는 ‘홍면기왕(紅面棋王)’이란 제목으로 대만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다.

<12회>2008년 2월 이세돌 2-1 한상훈
3연속 외국기사 결승이 마감되고 한-한 결승전이 열렸다. 이세돌과 마주 앉은 19세 한상훈에 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초단이 8연승하며 결승까지 올라온 것도 진기록이었다. 세계 3관왕이던 이세돌이 2대1로 역전 우승했다. 한상훈은 최저단 메이저 준우승(결승 당시 2단) 기록을 보태며 일약 5단으로 뛰어올랐다.

<13회>2009년 2월. 구리 2-0 이세돌
당시 세계 바둑계를 양분하고 있던 구리와 이세돌이 격돌한 해였다. 동갑나기끼리 벌인 백담사 혈투는 구리의 2대0 승리였다. 그 결과 구리는 세계 4관왕에 올라선 반면 이세돌은 3관왕의 꿈이 날아갔다. 상대전적도 구리가 9승 8패로 한 발 앞서기 시작했다. 이세돌은 이 대회 이후 LG배에서 깊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

<14회>2010년 2월. 쿵제 2-0 이창호
전성기를 맞은 쿵제가 이창호를 2대0으로 완파하며 삼성화재배, TV아시아선수권 포함 세계 3관왕으로 올라섰다. 중국세 속에서 다시 한 번 구세주 역할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되던 이창호가 힘을 쓰지 못했다. 당시 이창호의 나이는 35세, 쿵제는 28세였다.

<15회>2011년 2월. 박문요 2-0 쿵제
중국 물결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이다. 한국 기사들은 그해 단 1명도 4강에 조차 오르지 못한 채 다시 중-중 결승을 지켜봐야 했다. 23세의 조선족 청년 박문요(퍄오원야오)의 등장이 특히 주목받았다. 전기 챔피언 쿵제를 상대로 2대0 완봉승, LG배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6회>2012년 2월. 장웨이제 2-0 이창호
중국 신예 장웨이제가 한국의 베테랑 이창호를 셧아웃 시키고 생애 첫 우승을 자축했다. 만 20세 4개월로 당시까지 LG배 사상 최연소 우승이었다. 중국이 4회 연속 LG배를 보유한 가운데 한국은 세계 메이저 기전 결승 10연속 패배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17회>2013년 2월. 스웨 2-0 원성진
이번에도 중국은 기존 멤버 아닌 새 얼굴이 나타나 홀연히 LG배를 가져갔다. 그때까지 자국 신인왕전 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던 스웨가 원성진을 2대0으로 무릎 꿇리고 일약 세계 제패에 성공했다. 해군 입대에 앞서 일정을 연기하며 LG배 우승을 향해 전력투구했던 원성진은 준우승에 그친 채 입영열차에 몸을 실었다.

<18회>2014년 2월. 퉈자시 2-1 저우루이양
우승 상금이 2억 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대폭 인상된 해. 그러나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이 돼 버렸다. 한국 기사들이 초반에 전원 탈락, 8강에 중국 6명, 일본 2명만 올라간 것이다. LG배 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결승에선 중국 퉈자시가 동갑의 저우루이양에게 2대1로 이겨 우승했다.

<19회>2015년 2월. 박정환 2-1 김지석
잇단 부진에 시달리던 한국 바둑이 각성한 해였다. 김지석과 박정환이 모처럼 결승에 동반 진출해 박정환이 우승했다. 2008년 12회 대회 이후 7년만의 ‘형제 결승’이었다. 박정환은 후지쓰배 이후 4년만에 타이틀 추가에 성공했다. 반면 김지석은 2개월전 삼성화재배 우승에 이어 세계 2관왕에 오르려던 꿈이 깨졌다.

<20회>2016년 2월. 강동윤 2-1 박영훈
역대 LG배에서 한국 기사끼리 펼친 여덟 번 째 결승전에서 동생 강동윤이 박영훈을 누르고 우승했다. 그때까지 국내외 우승 회수서 19대 7로 앞선 박영훈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나이 핸디캡을 뛰어넘지 못했다. 당시 박영훈은 31세, 강동윤은 27세였다. 강동윤은 2009년 제22회 후지쓰배 이후 두 번째 세계 정상을 맛보았다.


▲24회 대회 때는 신진서(오른쪽)가 박정환을 꺾고 기존 바둑계 지형을 뒤집어놓았다.

<21회>2017년 2월. 당이페이 2-0 저우루이양
박정환 대 저우루이양, 신진서 대 당이페이. 준결승 대진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한-한 결승전을 기대했으나 정작 결승 카드는 저우루이양 대 당이페이로 결정됐다. 결승서도 예상을 뒤엎고 중국 33위 당이페이가 2위 저우루이양에게 2대0으로 완승하며 정상에 섰다. 당이페이는 통합예선 포함 10전 전승을 기록했다.

<22회>2018년 2월. 셰얼하오 2-1 이야마 유타
LG배 사상 두 번째로 벌어진 중일 간 결승서 셰얼하오가 2대1로 이겨 처음 세계를 정복했다. 일본은 에이스 이야마가 커제를 꺾고 결승에 오르자 결승전을 유치하는 정성을 보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셰얼하오는 통산 열 번째 LG배서 우승한 중국 기사가 되면서 5단에서 일약 9단에 올랐다.

<23회>2019년 2월. 양딩신 2-1 스웨
이번에는 스무 살 중국 기사 양딩신을 위한 잔치였다. 17회 LG배 우승자로 두 번째 정상 등극을 노리던 선배 기사 스웨에게 2대1 역전승했다. 양딩신 역시 중국 승단 규정에 따라 7단에서 일약 9단으로 입신 대열에 올랐다. 중국 기사의 LG배 제패는 3년째 계속됐다.

<24회>2020년 2월. 신진서 2-0 박정환
국내외 바둑 판도를 바꾼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최고 유망주로 꼽히면서도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정환에게 막혔던 신진서가 마침내 첫 메이저 정복을 이룬 대회다. 신진서가 세계 톱클래스로 도약하는 시발점이 됐다. 유일한 2000년대 출생 세계 챔프인 신진서는 2021년 상반기 잉창치배와 춘란배 등 2개 기전 결승 티킷을 확보,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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