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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생으로 옮겨붙은 세계바둑 패권 전쟁
 
▲세계 메이저 최다 우승(17회) 기록 보유자인 이창호. 한국 70년대생이 거둔 세계 제패 회수 모두를 혼자 책임졌다.

1988년 후지쓰배와 잉창치배가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세계 바둑대회 시대가 시작됐다. 그리고 올해로 어언 33년째를 맞는다. 그 사이 117회의 세계 기전이 열렸다. 주니어, 여성, 이벤트 기전 등을 제외한 메이저급 대회만 계산한 것이다(7명이 출전해 속기로 겨루는 TV아시아선수권대회와, 아직 본격 국제대회 규모에 못 미쳤던 1, 2회 동양증권배도 뺐다). 이 과정에서 배출된 우승자 수는 44명이다.
 
이들을 출생세대 별, 국가별로 분류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 아래의 표다. 몇 가지 특기할 만 한 내용이 도출됐다. 미래 판도 예측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은 본격 프로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4개국, 그리고 1회 이상 세계 우승자를 배출한 1940년대~2000년대 출생 기사가 대상이다.



⓵ 압도적인 한-중 점유율
 
세계 바둑 정상 다툼은 한국과 중국의 경쟁 역사였다. 한국이 14명, 중국은 21명의 세계 챔프를 배출했다. 이 두 나라를 합치면 35명으로, 전체 44명의 79.5%에 달한다. 세계 우승자 5명 중 4명이 한국 아니면 중국 기사란 얘기다. 일본과 대만의 비중은 그만큼 미약했다.
 
머리 수 아닌 타이틀 수로 따지면 한 중 양국의 위세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이 61개로 최다 우승국으로 군림 중이고 44개의 중국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양국의 우승 회수를 합하면 105개에 달하는데 이는 전체 117개 대비 89.7%에 달한다. 세계 메이저 타이틀 33년의 역사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놀이터였다고 말해서 지나치지 않다.
▲은퇴하기 전 이세돌은 한국 바둑을 이끈 80년대생 중에서도 핵심이었다. 모두 14차례 세계 정상에 섰다.

⓶ 한국은 80년대, 중국은 90년대생이 주축
 
한국은 80후, 즉 1980~89년 사이 태어난 기사들이 황금세대로 꼽힌다. 이 연령대에서 8명의 세계 메이저 챔피언이 배출됐다. 그들이 따낸 타이틀 수는 무려 23개로, 국가와 연령별 어떤 그룹보다 많다. 이세돌이 14회에 걸쳐 우승하면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다. 박영훈 강동윤이 두 차례 정상에 섰고 박정상 최철한 원성진 백홍석 김지석이 한 번씩 세계대회를 정복했다.
 
중국의 ‘핵심부대’는 ‘90후’ 세대다. 13명의 기사가 22회에 걸쳐 우승하면서 그 전까지 이어지던 ‘한국 천하’를 종식시켰다. 기사 수로는 중국 전체(21명)의 절반이 넘고, 획득 타이틀 수에선 딱 절반이다. 통산 8회 우승에 빛나는 커제를 선봉으로 탕웨이싱(3회)과 장웨이제 저우루이양 스웨 판팅위 미위팅 퉈자시 당이페이 탄샤오 구쯔하오 셰얼하오 양딩신이 한 번씩 세계 정상에 깃발을 꽂았다.
 
⓷ 소수 천재 중심의 한국, 다수의 준재가 이끈 중국
 
한국이 중국에 세계 챔프 수 14대 21로 뒤지면서도 획득 타이틀 수에서 61대 44로 앞서는 것은 세계 다관왕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이창호가 무려 17번, 이세돌이 14번, 조훈현이 9번 우승해 역대 1~3위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유창혁(6회) 박정환(4회)까지 합하면 이들 5명의 우승 회수가 50회에 달한다. 전체 117회의 42.7%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연령대에서 유일한 ‘대표’ 역할을 하며 고군분투해 왔다. 60년대생을 대표하는 유창혁, 70년대생 이창호, 90년대 태어난 박정환이 그렇다. 한국의 50년대생 성적은 2명이 합작한 것으로 돼 있지만 서봉수에게 단 1회 ‘도움’ 받았을 뿐, 나머지 9회가 조훈현의 실적이었다. 한국 바둑 우승 역사는 불세출의 천재가 각 세대별로 1명씩 나와 릴레이 하듯 쌓아올린 역사였다.
 
이에 반해 중국은 별표에서 보듯 ‘빈 칸’이 많다. 1964년생인 마샤오춘이 1995년 동양증권배와 후지쓰배를 잇달아 따냈는데, 이것이 현대 세계메이저 타이틀사에서 중국이 맛 본 1, 2호 우승이었다. 1959년 이전 출생 세계 챔프 수가 0인 이유다. 21명 중 14명이 단관(單冠)에 그치고 있다.
 
⓸ 초창기를 지배했던 일본, 단 1명 배출한 대만
 
일본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타 공인의 세계 바둑 최강국이었다. 지금까지 8명의 기사가 11회에 걸쳐 우승했는데, 그 중 6번이 40년대생과 50년대생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다케미야 조치훈 왕리청이 각 2회, 고바야시 고이치가 1회 세계를 제패했고, 40년대 출생인 린하이펑과 오다케가 한 번씩 최정상에 올랐다. 일본은 66년생 요다의 삼성화재배(1996년), 80년생 장쉬의 LG배(2005년) 우승 후 16년째 세계 제패의 맥이 끊겼다.
 
대만 기사 중에선 1980년 태어난 저우쥔쉰이 2007년 제 11회 LG배 때 중국 후야오위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것은 LG배뿐 아니라 대만 바둑이 세계를 제패한 유일무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자칫 한 중 일 3개국만의 대결장으로 좁혀질 수 있었던 세계바둑 판도를 4개국으로 확장시킨 우승이었다.
▲97년생인 커제는 8번 메이저 우승을 기록, 중국 90년대 출생기사 중 '대표 선수'로 활약 중이다.

⓹ ‘80후’와 ‘90후’가 가장 활발했던 세대
 
국가를 불문하고 연령대별로만 보면 1980~1989년 사이 태어난 세대와 1990~1999 출생 세대에서 각 14명씩의 챔프가 탄생, 가장 활발했던 세대로 기록됐다. 다른 연령대 그룹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파워가 실감난다. 바둑이 번성해 경기 인구가 상대적으로 풍부했던 시대란 분석이 가능하다. 국제대회 숫자는 시대에 따라 증감을 반복하게 마련인데 그 조건도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다. ‘80후’는 한국이, ‘90후’는 중국이 각각 주도했다.
 
⓺ 궁금해지는 2000년대 출생자 판도
 
최근까지 세계 바둑계에서 ‘주역’ 역할을 맡아했던 90년대생 기사들도 새해로 많게는 서른 살을 넘기게 됐다. 그들이 압도적 우승 점유율이 조금씩 꺾일 때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눈길이 그 다음 세대인 2000년대 출생 기사들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2000년~2005년생이면 새해 만 16세~21세가 되는데, 이는 상당수 선배 기사들이 첫 세계 챔피언에 발돋움했던 연령대다.
 
2000년대 세계 정복자는 이미 신진서 1명이 배출된 상황이다. 2020년 2월 열린 제24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서 선대(先代) 1인자 박정환을 꺾고 116번째 왕관(117번째는 11월 열린 삼성화재배 우승자 커제)을 썼다. 다른 연령대가 그렇듯 2000년대생 그룹 역시 한국의 소수 정예, 중국의 인해전술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로선 세계를 통틀어 신진서가 발군이다. 

중국 2000년대 출생 기사들 중에선 신진서와 동갑인 중국 셰커가 선두에 나서는 분위기다. 1월 초 열린 제4회 몽백합배 준결승서 판팅위(25)를 2대0으로 제치고 결승에 진출한 상태다. 셰커는 제9회 잉씨배서도 일본 이치리키와 준결승을 앞두고 있다. 신진서와 셰커가 결승을 치를 가능성도 크다. 한국 영재들이 중국과의 밀레니엄 대결서 어떤 판도를 그려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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