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배 조선일보기왕전은 국제 메이저 바둑기전이다. 역사와 권위에서 한국을 대표한다고 말해 과하지 않다. 지난 4반세기 동안 묵묵히 이어져 오면서 명국의 산실로, 스타 배출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프로기사라면 가장 품어보고 싶은 기전으로 누구나 LG배를 꼽을 정도가 됐다.
세계적 스타로 꼽히는 거장들 대부분이 LG배 우승을 거쳤다. 당대 최고 기사라면 LG배를 놓칠 리 없고, 최고 권위의 LG배가 당대 1인자를 외면하지 않아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는 게 승부세계의 묘미다. LG배가 24년의 역사를 쌓는 동안, 당연히 우승했을 거라고 믿어지는 기사가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못 올린 경우가 꽤 있다.
LG배 24년 동안 우승컵을 들어 올린 기사 수는 총 19명이다. 이창호(4회) 이세돌 구리(이상 2회) 등 복수(複數) 우승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외에 나머지 19명은 단 1번씩 최고 자리에 올랐다. LG배는 세계 어떤 기사에게도 연속 우승을 허용하지 않은 대회로도 유명하다. 삼성화재배나 동양증권배서 연패(連霸)를 밥먹듯 했던 이창호도 마찬가지다.
생애 통산 9번이나 메이저 정상을 밟았던 파이터 조훈현은 뜻밖에도 LG배 ‘금메달’ 수상 이력이 없다. 2002년 6회 대회 때 한 차례 결승 무대를 밟았으나 유창혁과 풀세트 사투 끝에 2대3으로 패했다. 조훈현은 그 직전 제14회 후지쓰배(대 최명훈), 제6회 삼성화재배(대 창하오)서 연속 우승한 세계 2관왕이었다. 조훈현은 5판 모두 제한 시간을 다 쓰는 투혼을 보였으나 LG배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훈현의 LG배 등정 야망을 분쇄시킨 유창혁은 거꾸로 그 승리를 통해 LG배 첫 우승의 염원을 풀었다. 그는 LG배 역대 최다 준우승 기사로 기록되고 있다. 1회 때 이창호, 2회 때는 왕리청에게 막혔고 4회 대회에선 중국 위빈에게 묶였다. 유창혁을 꺾은 왕리청과 위빈은 단숨에 첫 메이저 우승의 꿈을 달성했다.
마샤오춘은 세계바둑의 국제화 초창기이던 1995년 무렵 세계 1인자 후보로 거명되곤 했었다. 동양증권배와 후지쓰배를 석권하며 2관왕으로 군림한 덕이었다. 하지만 그 마샤오춘도 LG배로부터는 한 번도 미소를 받지 못했다. 3회 대회 때 결승까지 오르는 기회가 있었지만 천적 이창호를 만나 0대3으로 스트레이트로 무릎을 꿇었다. 그 뒤로는 LG배를 넘볼 기회가 없었다.
천야오예는 중국이 꼽는 천재 기사 중 한 명이다. 3번에 걸쳐 세계 메이저봉을 정복해 중국 기사들 중 최다 우승 공동 3위에 올라있다. 나이 서른이 넘은 요즘에도 그는 중국 랭킹 10위 안팎을 오르내린다. 이런 천야오예도 LG배만큼은 품어보지 못했다. 17세 소년이던 2006년 제10회 대회 때 결승에 올랐으나 당시 절정을 구가하던 구리에게 2대3으로 무릎을 꿇었다.
천야오예의 천적으로 불리는 또 한 명의 천재 저우루이양도 LG배에서 ‘은메달’만 2개다. 18회 대회 때 동갑 친구인 퉈자시에게, 3년 뒤 21회 대회 때는 당이페이에게 연속 결승서 패했다. LG배 두 차례 준우승 기록은 유창혁 3회에 이어 이창호와 함께 공동 2위에 해당한다.
한국에도 LG배 눈앞에서 눈물을 뿌린 기사들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기사가 박영훈이다. 어느덧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메이저 우승 2회, 준우승 6회 등 8번이나 메이저 결승 무대를 밟아본 천부의 승부사다. 하지만 박영훈은 20회 LG배 때 딱 한 번 찾아온 우승 기회를 놓쳤다. 강동윤과의 패권 다툼에서 1대2로 분패했다.

김지석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14년 12월 열린 제19회 삼성화재배 결승서 중국 탕웨이싱을 2대0으로 일축, 생애 첫 메이저 제패의 꿈을 이룬 상태에서 LG배 결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듬해 초 시작된 LG배 결승 상대는 박정환. 하지만 결과는 1대2 패배였고, 천적의 벽을 넘지 못한 김지석의 세계 2관왕 꿈도 날아갔다.
원성진은 2012~2013년 벌어진 제17회 LG배서 펄펄 날았다. 당시 중국 1인자였던 탄샤오를 제치는 등 4연승 가도를 달리자 결승전을 앞두고 입대 일자를 연기했다. 하지만 중국 스웨와의 결승서 분패했고, 곧바로 입영열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두 차례 준결승 진출을 포함해 LG배와의 질긴 인연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원성진도 다른 기전에선 한 차례 세계제패(2011년 삼성화재배) 경력이 있다.
이야마 유타는 2018년 22회 대회 결승서 중국 셰얼하오에게 1대2로 분패했다. 그는 당시 일본서 전관왕을 달리던 독보적 존재였는데, 조국과 자신의 바둑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저우루이양 양딩신 커제 등 중국 간판들을 연파하고 올라간 터여서 일본 홈 팬들이 느낀 아쉬움은 더욱 컸다.
이밖에도 8회 대회 때의 목진석, 12회 대회 때의 한상훈 등 세대교체의 기수들은 쾌진격을 계속하며 결승까지 갔으나 마지막 순간 이창호와 이세돌이란 거목에 막혀 정상 정복 직전 산화했다. 이들이 최후의 고비마저 넘었더라면 세계 바둑 판도도 바뀌었을 것이다.
11회 LG배 결승전 카드는 중국 후야오위와 대만 저우쥔쉰이었다. 세계 바둑 사상 최초, 유일의 양안(兩岸) 결승전이었던 이 대결은 후야오위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저우쥔쉰의 손이 올라갔다. 저우는 일약 세계 스타 반열에 올랐고, 이 대결은 유일무이한 대만 기사의 세계바둑 제패 기록으로 남았다. 저우쥔쉰 스토리는 대만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돌아보면 기회란 슬그머니 찾아왔다가 번개처럼 사라지는 요물이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인재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우승이란 신기루는 기다려주는 법 없이 매번 딱 한 명만을 선택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찾아온 기회를 살리는 한 사람만 스타덤에 오른다. 그 기회를 놓치면 거의 예외 없이 도태한다. “찬스를 낚아채라.“ 4반세기 째를 맞이하는 LG배 조선일보기왕전이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