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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진서에게 새 별명 달아주기
 
스포츠맨 등 유명 엔터테이너들은 별명으로 불릴 때 더 가깝게 느껴진다. 류현진이란 실명보다는 ‘괴물’ 또는 ‘베이브류스’가 훨씬 친숙하다. 박태환이 ‘마린보이’, 손흥민이 ‘손세이셔널’로 불릴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둑계는 어떨까. 국내외 많은 프로기사들이 애칭 또는 별명을 갖고 있다. 팬과 매스컴이 지어준 것들이다. 대체로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에게 별명도 많다. 조훈현은 '바둑 황제'외에도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했다는 뜻으로 '전신(戰神)', 행마가 제비처럼 빠르다 해서 '제비'로 불렸다.

조훈현의 동시대 경쟁자였던 서봉수도 여러 개의 아호(?)를 가지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초식으로 바둑계를 호령해 '야전사령관', ‘잡초류’ 등의 별명을 얻었다. 일본 유학파들을 제치고 정상에 오른 순국산 기사임을 빗대 '된장 바둑’이란 애칭도 오래 회자됐다.

이창호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답게 많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부동심(不動心)을 강조한 '돌부처', ‘강태공', 놀라운 계산능력에 초점을 맞춘 ’신산(神算)‘이 이창호 바둑의 특징을 비쳐준다. 이창호에게 1인자 바통을 이어받은 이세돌은 '비금도 소년'을 거쳐 ’쎈돌‘로 정착했다.

별명엔 규칙이 없다. 이세돌의 ‘쎈돌’처럼 이름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장기(長技)나 특성에서 따온 것도 있다. 이것은 바둑 외에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송아지 3총사 멤버 중 원성진의 ‘원펀치’는 그의 파괴력과 이름이 믹스된 별명이다. 최철한을 가리키는 ‘독사’는 그의 집요한 공격력에서 따왔다. 귀공자적 이미지의 박영훈은 ‘어린 왕자’로 불렸다.

‘원펀치’처럼 이름과 기풍을 합성한 또 다른 예가 ‘홍타이슨’이다. 지금은 은퇴한 홍태선은 현역 시절 막강한 힘바둑으로 유명했었다. 서능욱을 가리키는 ‘손오공’, 하수 골리기의 귀신 김영환에게 붙여진 ‘영환도사’도 이름과 기풍이 배합된 별명이다. 파이터들만 별명을 지닌 건 아니다. 바둑 교수로 유명한 정수현은 ‘나비류’로 통했다. 그는 파괴력 대신 급소에 사뿐히 내려앉는 실전 감각으로 전성시절을 보낸 기사다.

출신 지역이 별명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무등산 검객’ 오규철, ‘대전 신사‘ 안관욱, ’합천거사‘ 하찬석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찬석은 고향인 합천을 떠나 대구에서 활약하다 말년에 낙향, 고향 땅에서 후진들을 가르치던 중 2010년 타계했다.

용모나 이미지로 만들어진 별명으로는 유창혁의 ‘일지매’가 대표적이다. 적시에 등장해 능숙한 무예로 신출귀몰하는 캐릭터와, 섬세하고 일면 여성적인 일지매의 두 가지 캐릭터를 유창혁에게 오버랩했다. 그는 한국 바둑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인물답게 굵은 족적을 남겨 별명에 부응했다. 김만수의 별명 ‘피노키오’ 역시 용모에서 따왔다.

어떤 프로기사의 별명이 가장 멋질까. 필자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의 바둑기사 별명은 다음 3개다. 목진석의 ‘괴동’, 일본 다케미야의 ‘우주류’, 그리고 중국 녜웨이핑의 ‘철의 수문장’이다. 목진석의 ‘괴동’은 중국에서 붙여주었다. 15세 초단 시절 당대의 거물 녜웨이핑을 눕히면서다. ‘우주에서 온 소년’이란 별명도 함께 따라왔다.

‘우주류’는 별명 하나로 바둑의 품격과 차원을 몇 단계는 더 끌어올린 걸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귀나 변의 작은 실리에 매달리지 않고 중원을 향하면서 웅장한 스케일을 펼치는 다케미야 바둑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겼다. 실제로 바둑을 전혀 몰랐다가 우주류란 애칭에 끌려 오로삼매에 빠졌다는 팬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철의 수문장‘은 녜웨이핑이 1980년대 중반 열린 중-일 슈퍼대항전 때 중국 팀 주장으로 나와 총 11연승을 거두며 일본을 패퇴시키면서 얻은 별명이다. 그 철벽같은 강인함과 방어 능력을 철(鐵)과 수문장(守門將)의 절묘한 앙상블로 엮어낸 작명 솜씨가 놀랍다.

조치훈의 ‘폭파전문가’도 핵심을 찌른다. 알뜰살뜰 실리부터 빼먹은 뒤 광활한 상대 진영에 뛰어들어 폭파하는 것이 그의 기풍이다. 역시 실리를 좋아해 저위(低位)로 기는 경우가 많은 고바야시 고이치의 별명은 ‘지하철 바둑’이다. 이밖에도 ‘면돗날’ 사카다, ‘괴물’ 슈코, ‘컴퓨터’ 이시다 ‘이중허리’ 린하이펑, 대마 포획 전문가인 가토의 ‘살인청부업자’ 등 걸작품은 무수히 많다.

지난 2월 제24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서 우승해 한국 바둑의 새로운 대표 주자로 나선 신진서에게도 별명을 하나 선사했으면 한다. 신진서 개인을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바둑계 활성화 차원에서도 멋진 애칭은 꼭 필요하다. 본인도 “팬들께서 별명을 지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우승 이전 신진서는 ‘한국바둑의 미래’, ‘저승사자’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세계 톱스타 계열에 올라선 그에게 이제 기존 별명들은 시효가 지났다. 한국바둑의 ‘현재’로 시점 이동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저승사자’ 역시 과거 같은 또래 경쟁자들을 사정없이 무찌르던 시절에 붙여진 것이어서 지금은 맞지 않는다.

별명 작명에서 지켜져야 할 조항 중 하나는 당사자가 언짢아하는 별명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여성 최고수 루이나이웨이가 한국 여성바둑계를 초토화하기 시작했을 때 매스컴은 그녀에게 ‘마녀’란 별명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녀가 불만을 표시하면서 ‘마녀’가 ‘철녀(鐵女)’로 수정된 사례가 있다.

최철한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독사‘를 초기에 꺼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진서의 ‘저승사자’도 그랬다. 그의 부친은 아들의 LG배 우승 후 “앞으로는 다른 것으로 대체되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 섬뜩한 내용이어서 그 동안 마땅치 않게 느끼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신진서에겐 어떤 새 별명이 어울릴까. 막상 머리를 짜내 봤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팬들이 지혜를 모아 참신한 새 별명을 선물했으면 한다. ‘nparadigm’, ‘카운트다운’ ‘이과수’, ‘비수’, ‘유성검’ 등은 인터넷 바둑을 많이 두는 신진서의 인터넷 대화명들인데 참고할 만 하다. 그의 어릴 적 대화명인 ‘수미성모’는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어반자카파’는 지난 해 TV ‘복면기왕’ 대회 때 신진서가 사용했던 가명이다.

혼자 고심 끝에 필자도 몇 개 후보를 만들어봤다. 우선 ‘불침항모(不沈航母)’. 수십 판을 치르면서 한 번도 지지 않는 경우가 밥 먹듯 잦아 인용했다. 국내외 타이틀이 주렁주렁 달려 덩치도 딱 항공모함 수준이다. 다음은 ‘부도옹(不倒龍)’이다. 넘어지지 않는 용이란 뜻인데, 그가 용띠임을 부각했다. 오뚝이란 의미에 덩샤오핑의 별칭이기도 한 ‘부도옹(不倒翁)’과 이웃이다. 또 ‘폭주 기관차’도 있다.

‘불계전문가(不計專門家)’는 어떨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여간해선 계가까지 가지 않는다. 거의 모든 바둑을 불계로 장식한다. 복싱으로 치자면 1~2점 차 박빙 스코어는 그의 사전에 없다. 전적표 대부분이 KO 로 채워진 것이 저 무시무시한 마이크 타이슨을 닮았다. 신진서도 타이슨 못지않은 ‘KO 아티스트’란 사실을 별명에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밀레니엄보이’. 좀 진부하지만 2000년대 출생을 강조하는 의미로 뽑아봤다. 신진서란 천재 기사를 특화, 차별화, 상품화함에 있어 2000년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영재, 연승질주, 새천년 컨셉이 혼합된 멋진 별명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성(姓)인 ‘신‘을 활용하는 방법도 유력하다. 우선 ‘신공’이 있다. ‘神攻’ ‘新攻’ ‘申攻’ ‘神功’ ‘新功’ ‘申功’ ‘神公’ ‘新公‘ 申公’ 등을 놓고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면 된다.‘ ‘신검’도 ‘神劍’ ‘新劍’ ‘申劍’ 등 중의적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신풍’도 마찬가지. ‘新風’ ‘申風’ 모두 해당된다. 단 ‘神風’은 안 된다. 일본 자살 특공대 ‘가미가제‘를 뜻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참슬기’가 남았다. 그의 이름 진서를 한자(漢字)로 푼 것이다. 眞은 ‘참’을 의미하고, 言과 胥가 결합된 ‘서’ 字는 ‘슬기’를 뜻한다. 고도의 지혜와 집중을 요하는 바둑 승부에서 ‘참된 슬기’만큼 완벽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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