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배 조선일보 기왕전 28번째 대회 첫 라운드가 5월말 높은 관심 속에 종료됐다. 전통에 따라 LG배는 일단 8강까지만 추려낸 뒤 열기를 식히고 있는 중이다. 8강이 겨루는 준준결승전과 4강 준결승전은 오는 12월 10일부터 열리고, 최후까지 남은 2명이 내년 1월 하순 우승을 놓고 결승 3번기를 치르게 된다.

▲ 제28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1회전 대국장 전경. 5월 29일 경기도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렸다.
LG배를 신호탄으로 굵직한 국제 대회가 꼬리를 물고 열릴 태세다. 새로 출범하는 대회도 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연기를 거듭하다 올해 스케줄이 잡힌 대회도 많다. 올해엔 또 4년 간격 스포츠 제전인 아시안게임도 개막일을 기다리고 있다. 아시안게임 역시 당초 지난 해 개막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탓에 1년 연기됐다.
▨신진서와 구쯔하오가 맞붙는 란커배
가장 임박한 대회는 제1회 란커배로, 다음 주 6월 14일부터 결승 3번기가 중국 취저우 시에서 열린다. 42개월 째 한국 랭킹 1위를 질주 중인 신진서(23)가 우승컵 한 개를 더 품을 절호의 기회다. 신진서는 란커배 원년 대회서 리친청 딩하오 리웨이칭 탄샤오 등 중국 기사 4명을 연파하고 올라왔다. 8강전서 리웨이칭을 상대로 고전하기도 했으나 극적 역전드라마를 완성했다.
결승서 맞설 기사는 중국랭킹 4위 구쯔하오(25). 그는 반대로 한승주 박정환 안성준 박건호 등 한국기사 4명을 디딤돌로 결승 고지를 밟았다. 신진서와 구쯔하오는 지금까지 열 판을 겨뤄 신진서가 6대4로 앞서 있다. 농심배 최종국서 맞서는 등 올해 두 번 모두 이긴 것을 포함해 신진서가 막판 3연승 중이다.

▲ 제1회 란커배 준결승서 격돌한 신진서(왼쪽)와 탄샤오. 이 대국서 승리한 신진서는 6월 14일 시작되는 결승 3번기서 구쯔하오와 패권을 다툰다.
란커배 결승 진출을 확정할 때까지 29연승을 질주하며 올해 94.0%의 초인적 승률(47승 3패)을 마크했던 신진서는 귀국 직후 충격의 2연속 패배로 잠시 주춤했으나 다시 컨디션을 회복한 상태. 역대 메이저 4회 우승 관록의 신진서가 우승한다면 통산 메이저 정복 수를 5회로 늘리게 된다. 구쯔하오로선 2017년 제22회 삼성화재배 우승 이후 두 번째 메이저 정상 도전이다. 란커배 우승 상금은 180만 위안(약 3억 5000만원).
▨춘란배 놓고 변상일-리쉬안하오 격돌
7월엔 제14회 춘란배 결승 3번기가 열린다. 코로나로 미뤄졌던 변상일(26) 대 리쉬안하오(28) 간의 혈투가 16일부터 21일까지 예고돼 있다. 변상일은 한국 랭킹 3위, 리쉬안하오는 두 달 전 커제 아성을 무너뜨리고 잠깐 1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3위로 내려갔다.
두 기사 모두 생애 첫 세계 도전을 걸고 배수진을 친 일전이다. 변상일은 지난해 연말 삼성화재배 준결승 최정과의 대국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눈물을 쏟았을 만큼 국제대회 우승에 한이 맺혀있다. 리쉬안하오는 신진서를 준결승에서 꺾은 뒤 일부 동료들이 제기한 화장실 치팅 의혹에 휘말려 지난 연말 이후 극심한 마음 고초를 겪었다.
리쉬안하오로선 갑작스런 도약이 AI 아닌 노력에 의한 것임을 우승으로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두 기사는 지금까지 네 판을 겨뤄 변상일이 1대3으로 뒤져있다. 변상일은 이치리키 구쯔하오 리웨이칭 탕웨이싱을, 리쉬안하오는 캐나다 대표 라이언리, 대만 쉬하오홍, 양당신, 신진서를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신진서와 셰커, 잉씨배 쟁패
8월에 접어들면 제9회 잉창치배 결승 3번기가 기다리고 있다. 출전 기사는 한국 신진서와 중국 셰커. 2000년생 동갑나기 간의 대결이다. 이 대결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2년 여 동안 연기를 거듭하다 8월 21~24일로 일정이 잡혔다. 두 기사는 6년 전 20세 이하 세계 주니어들만 출전하는 리민배서 딱 한 차례 만나 셰커가 승리했다.

▲ 변상일은 오는 7월 제14회 춘란배 패권을 놓고 3번기로 대결한다. 두 기사 모두 첫 세계대회 결승이다.
결승에 오르기까지 신진서는 셰얼하오 판팅위 구쯔하오 자오천위 등 중국 강호들과만 만나 모두 제쳤다. 반면 셰커는 이탈리아 대표 알리자 바린을 일축한 뒤 양딩신 커제 이치리키를 차례로 눌렀다. 결승 진출까지의 과정은 난도(難度) 면에서 신진서 쪽이 조금 더 높았다는 느낌을 준다.
잉씨배는 실질적인 세계 최고(最古) 국제 메이저 기전이란 점, 4년마다 한 번씩 열려 올림픽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 우승 상금이 40만 달러(약 5억 2000만원)에 달한다는 점 등 때문에 각국 스타들이 특히 눈독을 들이는 기전이다. 8회까지 치르는 동안 한국이 5회(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최철한) 우승하는 등 친한(親韓) 기전으로도 유명하다.
▨몽백합배-삼성화재배도 대기
8월에 접어들면 제5회 몽백합배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3, 4, 6일 장쑤성에서 64강전으로 개막, 16강까지 추린다. 우승자는 올해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64명 중 한국에 배정된 인원은 14명. 최근 국내 선발전을 치러 한국대표 진용이 확정됐다. 우승 상금은 180만 위안(약 3억 4000만원).

▲ 2022년 연말 삼성화재배 결승서 최정을 연파하고 우승한 신진서. 올해 가을 2연속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몽백합배와 달리 삼성화재배는 곧바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을 취해왔다. 올해는 11월 16일 개막해 28일 결승 3번기까지 스트레이트로 마칠 예정. 지난 해 결승서는 신진서가 최정을 누르고 개인 통산 네 번째 메이저 기전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삼성화재배 우승 상금은 3억원이다.
▨9월엔 항저우 아시안게임
4년 주기 아시안게임이 코로나 사태로 1년 연기되면서 올해 9월 23일부터 10월 8일 사이 항저우서 열리는 것으로 발표됐다. 바둑 경기가 아시안 게임 종목에 포함된 것은 2010년 이후 사상 두 번째이며 13년만이다. 남자 단체, 여자 단체 2개 종목은 두 아시안게임이 똑같다. 반면 광저우 때 실시된 혼성페어전을 없애는 대신 항저우에선 개인 종목이 치러진다.
한국은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신민준 김명훈 이지현, 중국은 양딩신 리친청 자오천위 미위팅 양카이원 커제 등이 출전한다. 일본과 대만도 단체전 멤버를 확정했다. 한국이 지난해 선발전 때 결정한 명단을 그대로 가지고 가는데 반해 중국은 2단계 선발전을 새로 실시, 6명 중 4명을 교체했다. 양국의 대조적인 선수 선발방식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주목된다. 여자 팀도 한국은 최정 오유진 김채영 김은지가 그대로 나간다.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 경기 모습. 남자단체전 7라운드가 치러지고 있다. 한국은 이 종목을 포함해 여자 단체와 혼성 페어까지 세 종목을 석권했다. (사진=한국기원)
남자 개인전 우승을 누가 차지 하느냐도 큰 관심꺼리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세계 메이저대회 우승컵보다 기회가 훨씬 적다. 지금까지 남녀 2관왕은 광저우 대회 때의 박정환(남자 단체 및 혼성페어), 이슬아(여자 단체 및 혼성페어) 2명뿐이다. 항저우 대회 남자 개인전 엔트리는 2명으로, 신진서 1명만 확정됐고 나머지 한 자리는 박정환 대 변상일전 승자에게 돌아간다.
6월 10일 현재 국제 메이저대회 판도는 신진서(삼성화재배, 춘란배), 딩하오(LG배), 탕웨이싱(잉씨배), 미위팅(몽백합배) 등으로 분산돼 있지만 한바탕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선 기사는 신진서다. 난가배와 잉씨배를 모두 우승할 경우 3관왕으로 올라선다. 통산 세계 제패 숫자도 6회로 올라선다.
박정환은 아시안게임 통산 금메달 4관왕까지 넘볼 수 있는 입장이다. 물론 남자 개인전 참가 티킷 확보부터 해서 건너야 할 강이 많다. 변상일이 국내용 딱지를 벗는 한 해가 될지도 관심이다. 올 여름 이후 세계 바둑계에 불어 닥칠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