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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에 빠진 일본 바둑계
 
올해는 일본 바둑계 역사에서 최악의 한 해로 기록될지 모른다. 존립을 위협하는 치명적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최고(最古) 전통의 기전인 본인방전의 축소 소식이 일본 바둑계를 강타했다. 주최사인 마이니치 신문사가 발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틀에 걸쳐 거행되던 도전기를 당일에 끝내고, 7번기를 5번기로 축소했다. 도전자 선발리그는 16인 토너먼트로 변경됐다. 우승 상금은 2800만엔에서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850만엔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5월 시작되는 79회 대회부터 적용된다.

▲ 1961년 열린 제16기 본인방전 도전기 모습. 사카다(오른쪽)가 다카가와를 4대1로 눌렀다.


이 조치로 일본 기전 서열 3위이던 본인방전의 위치는 5위로 강등된다. 기성(棋聖)전 명인전 왕좌전 천원전 본인방전 기성(碁聖)전 십단전의 순서로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마이니치 측은 “본인방전에 대한 사회적 역할, 그리고 사업적 자금 부담 등을 고려해 기전 유지를 최종 결정했다. 최선을 다 해 본인방전이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없애지 않고 축소에 그친 것을 고마워하라는 뉴앙스다. 고바야시 사토루 일본기원 이사장은 “축소는 아쉽지만 각자의 입장이 있는 것”이라며 “대회 유지 결정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축소 대상이 된 기전이 하필 본인방전이란 점에서 일본 바둑계는 더 큰 충격에 빠져있다. 본인방전은 일본 7대 타이틀전 중 유일하게 2차대전 발발 전인 1939년 출범한 대회다. 세습제로 내려오던 본인방 전통을 깨고 실력으로 후계자를 이어왔다. 단위를 무시한 총 호선(互先), 흑에게 덤(공제) 부과, 제한시간과 봉수(封手) 등 현대바둑의 모든 틀이 본인방전과 함께 출발했다. 일본 바둑의 혼이 서려있는 기전인 셈이다.

▲ 조치훈은 1989년부터 1998년까지 본인방을 10회 연속 우승, 훗날 2022년 이야마가 유타가 11연패를 달성할 때까지 7대기전 최장 방어기록을 보유했다.


일본은 과거 기전 출전권을 놓고 후원 신문사끼리 사활을 걸고 싸웠던 나라다. 1960년 당시 1위 기전이던 명인전 개최권을 놓고 요미우리와 아사히 등 두 라이벌 언론사가 펼친 공방이 대표적이다. 이 싸움은 결과적으로 최대 규모의 기성(棋聖)전이 추가로 창설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바둑의 당시 위상은 그토록 높았다. 이번 본인방전 축소 발표는 화려했던 일본 기전 역사의 종언을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본인방전 축소안이 발표되기 약 열흘 전인 3월 말, 일본에선 바둑과 관련된 또 하나의 ‘나쁜 뉴스’가 떴다. 일본기원이 발행하는 기관지 ‘슈칸고(週刊碁)’의 휴간 소식이었다. “오는 8월 28일 발행되는 9월 4일자를 끝으로 휴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1977년 11월 창간호를 낸지 47년째, 호수(號數)로는 통권 2320호 째를 일단 마지막 호로 발간하고 휴간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슈칸고는 타블로이드 판형의 바둑 전문 주간신문이다. 내용이 알찬데다 편집도 유려해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도 정기 구독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기원은 “언론환경이 크게 변화한데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어쩔 수 없이 휴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때 20만부를 발행하던 것이 최근엔 2만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 80년대 초 바둑 인구가 1000만명을 넘다가 최근 150만명으로 감소한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 슈칸고 2022년 3월 28일호 1면. 이치리키 료의 NHK배 2연패를 다루고 있다.


폐간이 아닌 휴간이란 표현이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슈칸고가 언젠가 소생하리라고 믿는 바둑 팬은 많지 않다. 현재 바둑계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인기도를 말해주는 지표여서, 일개 주간지의 휴간을 놓고 호들갑을 떤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전 축소, 바둑 매체 위축 등은 한국과 중국 등 다른 나라에도 악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같은 일본 바둑 인프라 위축은 바둑 성적 저하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프라와 성적은 항상 한 몸이 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국내외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붐을 조성하면 기전이 다투어 창설되고, 반대로 기전들이 문을 닫아 ‘운동장’이 좁아지면 선수들의 경기력도 동반 하락한다. 올들어 유난히 많은 악재를 만나고 있는 일본의 사정이 이를 방증한다.

현재 거행 중인 KB한국바둑리그엔 한국 10개 팀 외에 일본과 대만 팀이 출전 중이다. 온라인으로 대국하고 참가비, 대국료 등도 없어 출전해 옵저버 성격이 짙지만 국제 리그의 모양새를 띠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올리는데는 성공했다. 외국 단일팀이 2개나 가세한 것은 19년 역사의 한국리그 사상 처음이다.

문제는 성적이다. 일본기원 간판을 달고 출전해 15경기를 치러 른 결과 14연패를 하다 대만을 상대로 첫승을 올렸으나 탈꼴찌엔 실패했다. 대만이 사실상 국가 대표팀 진용인데 반해 일본은 젊은 신예 위주로 팀을 꾸렸다고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일본은 세키 고타로(천원), 히라타 도모야(아함동산배), 사카이 유키(신인왕) 등 타이틀 홀더들이 여럿 포진한 팀이다.

▲ 한국바둑리그에 출전한 일본기원 팀 선수 후쿠오카 고타로 4단의 온라인 대국 모습.


이것이 일본바둑 경기력의 적나라한 현 주소다. 국제대회를 주최해 정원의 절반을 자국 기사로 채우고도 막판에 이르면 남의 나라 결승전을 뒷바라지 하는 사례가 계속 반복된다. 성인 대표뿐 아니라 주니어나 여성 대회를 열어도 기대에 못 미칠 때가 태반이다. 일본 기사의 국제 메이저 대회 우승 소식은 2005년 제9회 LG배 때의 장쉬 이후 18년째 완전히 두절된 상태다. 성적과 기전 환경이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5월초 벌어진 제1회 란커배서도 출전자 5명 전원이 1회전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일본 바둑은 20세기 세계 바둑의 메카로 통했다. 한국 대만 중국의 어린 유망주들은 일본 유학을 다녀 와야만 대성한다고 굳게 믿었고 실제로 그랬다. 조치훈 조훈현 린하이펑 조선진 류시훈 왕리청 장쉬 왕밍완 등이 모두 그런 케이스다. 일본은 남미나 유럽 바둑 보급에도 앞장서면서 100년 가까이 바둑 종주국 행세를 해왔다. 그 결과 세계 바둑용어는 모두 일본어로 굳어졌다.

그랬던 일본이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 중국에 정상을 내주기 시작해 새천년 들어선 완전히 뒤쳐졌다. 부진이 거듭되자 대형 국제대회 일본인 스폰서들도 하나둘씩 발을 뺐다. 후지쓰배를 비롯해 도요다 덴소배, 월드바둑챔피언십 등이 차례차례 폐지됐다. 동양 3국 TV 속기전인 TV아시아선수권대회가 사라진 것도 일본 탓이 컸다.

▲ 한국바둑리그에 첫 출전, 온라인으로 한국 팀과 대국 중인 일본 선수들. 예상보다 훨씬 못 한 성적표를 받아들어 일본 바둑의 현실을 또 한 번 드러내는 결과가 됐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일본 바둑 몰락의 원인은 어디 있을까. 변화에 대비하지 않은 채 현실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컴퓨터 게임, 일본 장기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젊은 팬 확장에 실패하면서 동호인 층이 노인들로만 가득 찼다. 국내 기전의 여러 제도 혁신을 전통 고수란 명분으로 막았다. 국제대회에선 매번 패하는데 국제대회 이상의 상금을 변함없이 지급하자 팬들이 떠나갔다. 일본은 동양 3국 중 공식 랭킹제도가 아직도 없는 유일한 나라다.

바둑은 유구한 역사와 월등한 컨텐츠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고작 한 중 일 대만 등 동북아 4개국에서만 성행할 뿐, 유럽이나 미주는 아직 관심권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 축을 맡아온 일본이 주저앉는다면 그나마 버티던 초라한 구조물이 무너질 것이다. 한 중 두 나라 바둑계가 일본의 연속된 악재를 심상치 않게 지켜보는 이유다.

한국 바둑계도 일본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동호 인구 감소, 대학 바둑학과 폐지 움직임, 경기력 쇠퇴, 프로지망생 감소 등 한국도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특정 기사가 몇 아례 세계를 지배한다고 착각하다 보면 잠깐 사이에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지구촌 바둑마을 전체에 비상등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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