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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바둑계 최초의 인물들
 
양성(兩性) 평등의 시대다. 인류 역사는 남자와 여자의 조화(調和)와 역할 분담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양성 평등이 기계적, 무조건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위와 권리는 평등하지만 기능과 역할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남성이 더 잘 하는 분야가 있고,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직역도 많다. 이 역시 조물주의 섭리일 것이다.

▲ 2000년 제43기 국수전 조훈현(왼쪽) 대 루이나이웨이의 도전기 종국 후 복기 장면. 루이 9단이 2대1로 승리, 우승했다. 여성이 종합기전서 남성을 꺾고 우승한 세계 첫 사건이었다.

바둑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 바둑 분야는 중세 이래 지금까지 남성이 여성을 압도해왔다. 승부를 다투는 숱한 종목 가운데 가장 정적(靜的)인 종목이 바둑이고, 그래서 여성에게 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남성 쪽의 경기력이 훨씬 앞서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직 아무도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 학설만 존재한다.

하나는 태생적 뇌 구조론이다. 좌뇌와 우뇌 구조 연결망 차이로 인해 남자는 감각 인지와 통합행동 연결이 활성화돼 있고, 여자는 분석, 직관, 사회적 인지에 앞선다는 이론이다. 구체적으로 여자는 집중, 언어, 얼굴기억, 추론 속도 면에서 남자보다 앞선 수행력을 보이고, 남자는 공간 처리, 감각운동, 운동 속도 면에서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이론이다.

두 번째 가설은 환경론이다. 동양권 국가들 대부분이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의 지배 속에 내려왔고 여성들이 바둑을 접할 기회가 남성에 비해 현격히 적어 발생한 결과란 풀이다. 진입 장벽이 같았더라면 지망생 수, 대국 기회, 학습 환경, 저변도 비슷했을 것이고, 배출되는 인재 역시 대등한 수준을 유지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환경론에 가까운 쪽이지만 아직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판가름 나지 않았다.

▲ 윤영선(오른쪽) 5단은 98년 제2기 SK가스배 신예10걸전에 출전, 국내 여성 기사가 혼성기전서 남성 기사를 꺾는 첫 기록을 남겼다. 사진은 제1기 여류국수전으로 왼쪽은 김민희 2단.

사랑방 시대를 지나 프로기사 제도가 확립된 이후에도 남녀 간 바둑 실력은 엄청난 편차를 보였다. 1945년 한성기원 설립 후 1954년 첫 입단대회를 열었지만 남성들만이 대상이었다. 첫 여성 입단자는 1975년이 돼서야 배출됐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여자기사 수가 비로소 10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대진{(對陣) 추첨에서 여성 기사와 만나게 된 남성 프로들은 “꽃조를 뽑았다”며 노골적으로 좋아할 정도로 여자바둑은 하수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여성 바둑은 그런 수모 속에서도 착실히 성장을 계속했다. 새 질서가 자리잡으려면 혁명이 일어나고, 그 이면엔 혁명을 주도한 영웅이 존재하는 법이다. 새천년 진입을 눈앞에 둔 20세기 말, 일단의 여성 기수들이 새 역사를 향한 횟불을 치켜들었다. 첫 주인공은 이영신 2단(당시)이었다. 95년 열린 제4호 SBS 연승바둑최강전서 뭇 남성들을 꺾고 최초의 (혼성대회) 본선 진입기록을 세웠다.

이영신은 그러나 본선 1회전서 양재호에 패해 첫 승리까지 따내는 데는 실패했다. 본선 첫 승 기록 수립자는 현재 독일서 활동 중인 윤영선이다. 98년 제2기 SK가스배 신예프로십걸전에서 김강근을 꺾고 10명 중 8위를 차지했다. 본격 종합기전의 본선 상륙 1호는 이지현이었다. 99년 제11기 기성전에 입성해 화제를 뿌렸다.

▲2002년 제1회 도요타덴소배에서 일본 요다(왼쪽)를 격파할 때의 박지은. 국내 여성 기사로 종합 국제대회서 거둔 최초의 승리로 기록됐다.

국내 종합기전 본선 첫승의 주인공은 박지은이다. 99년 제19회 바둑왕전서 이동규 조훈현 윤혁을 연파, 승자 준결까지 올랐다. 이상훈(大)에 패해 패자조로 내려간 뒤에도 유창혁을 누르고 패자 준결승까지 갔다. 박지은 돌풍은 목진석에게 막히면서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성바둑 혁명을 본격적으로 주도한 인물로는 역시 중국 출신의 루이나이웨이가 꼽힌다. 99년 한국에 정착한 루이 9단은 이듬해 2000년 제43기 국수전서 이창호 조훈현 등 당대 최고수들을 잇달아 꺾고 우승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종합기전 첫 제패에 해당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루이의 활약상은 이보다 먼저 세계무대서도 입증된 바 있다. 93년 열린 제2회 잉창치배에서 이창호를 눕히고 4강까지 올라 세계를 경악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중국 강자들 전원이 불참한 대회였다곤 하지만 세계 여성바둑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첩이었다.

루이가 물꼬를 트면서 (혼성) 세계기전에 등장하는 여성 고수들이 꼬리를 물었다. 93년 제6회 후지쓰배의 양후이는 다케미야를, 이듬해 7회 후지쓰배 때는 화셰밍이 오다케를 따돌리고 당당 8강을 달성했다. 2002년 제1회 도요타덴소배에선 박지은이 사고(?)를 쳤다. 첫 관문을 통과하고 16강까지 올랐는데, 첫판 상대가 당시 세계 최강자 그룹에 속했던 요다 9단이었다.
국내 종합기전 본선 첫승의 주인공은 박지은이다. 99년 제19회 바둑왕전서 이동규 조훈현 윤혁을 연파, 승자 준결까지 올랐다. 이상훈(大)에 패해 패자조로 내려간 뒤에도 유창혁을 누르고 패자 준결승까지 갔다. 박지은 돌풍은 목진석에게 막히면서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성바둑 혁명을 본격적으로 주도한 인물로는 역시 중국 출신의 루이나이웨이가 꼽힌다. 99년 한국에 정착한 루이 9단은 이듬해 2000년 제43기 국수전서 이창호 조훈현 등 당대 최고수들을 잇달아 꺾고 우승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종합기전 첫 제패에 해당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루이의 활약상은 이보다 먼저 세계무대서도 입증된 바 있다. 93년 열린 제2회 잉창치배에서 이창호를 눕히고 4강까지 올라 세계를 경악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중국 강자들 전원이 불참한 대회였다곤 하지만 세계 여성바둑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첩이었다.

루이가 물꼬를 트면서 (혼성) 세계기전에 등장하는 여성 고수들이 꼬리를 물었다. 93년 제6회 후지쓰배의 양후이는 다케미야를, 이듬해 7회 후지쓰배 때는 화셰밍이 오다케를 따돌리고 당당 8강을 달성했다. 2002년 제1회 도요타덴소배에선 박지은이 사고(?)를 쳤다. 첫 관문을 통과하고 16강까지 올랐는데, 첫판 상대가 당시 세계 최강자 그룹에 속했던 요다 9단이었다.

▲ 2022년 11월 열린 삼성화재배 준결승전 광경. 최정(왼쪽)이 한국랭킹 2위 변상일(오른쪽)을 눌렀다. 최정은 루이의 잉씨배 4강을 능가한 세게 여자바둑 사상 최고 성적(준우승)을 기록했다. (사진=한국기원)

박지은은 한국 여성기사 최초의 세계 혼성국제대회 본선 진입 외에 또 하나 큰 족적을 남겼다. 2003년 벌어진 제5회 농심배 국가대항 연승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것이다. 대표 선발전서 안관욱 홍장식 옥득진 오주성 이동규를 제압했다. 하지만 본선에선 일본 고바야시 고이치에 져 승점을 남기지는 못했다.

루이나이웨이의 세계 종합기전 4강 기록은 29년만인 올해 최정에 의해 새로 씌였다. 제27회 삼성화재배에서 사다, 이치리키, 변상일, 양딩신 등 한 중 일 강자들을 고루 연파하면서 4연승으로 결승까지 내달은 것. 마지막 우승 결정전서 신진서에 패하긴 했지만 가위 혁명적 레이스였다.

최정은 그 전에도 기억할 만 한 성적을 여러번 냈다. 2016년 제21회 LG배 때 세계 여자바둑 사상 최초의 예선통과 기사로 기록됐다. 이후 21, 22, 24회(이상 예선 통과) 및 25회(와일드카드) 대회서 무려 4번이나 LG배 본선을 밟았다. 특히 21회 및 24회 때는 16강에 진출, 루이의 LG배 최고기록인 8강 눈앞까지 진격했다. 2018년 삼성화재배 때도 최정은 스웨와 타오신란을 누르고 16강을 밟았다.

최근 현역 은퇴를 선언한 박지연의 2010년 삼성화재배 16강 진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사건이었다.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 경쟁에서 그녀는 김지석을 꺾고 본선행을 이룬 뒤 본선 첫 판서 김지석에 설욕 당해 더 이상 전진하지는 못했다.

최정이 주도하는 요즘 여성 바둑의 강세를 지켜보노라면 실로 눈이 부실 정도다. 바둑계에서 ‘화초’ 취급을 받으면서 1승, 본선행, 첫 타이틀 등의 ‘기본 목표’에 목말라하던 20여년 전 상황을 떠올리면 금석지감이 있다. 위의 사례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이 정도 전과(戰果)를 올렸는데도 남성의 태생적 우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빠진다. 하지만 문제는 빈도(頻度)다. 더 많은 데이터가 쌓여야 바둑의 ‘양성 평등론‘을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다.

여성 바둑계가 더 저변을 넓혀가면서 남성쪽과 5대5의 균형을 이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필자는 그간 여성 바둑이 보여준 성적(成績) 열세의 주범은 저변의 차이였고, 저변 열세를 이끈 원인은 불평등했던 사회적 환경이였다고 여전히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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