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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계 일곱 번째 훈장 언제쯤 나올까
 
한국 바둑의 보배 신진서 9단이 최근 대한국민대상(大賞)을 수상했다. 지난 9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서 열린 시상식서 축구스타 손흥민, 골프 선수 이승민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스포츠 발전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상을 받았다. 바둑 관계자나 팬들로선 매우 뿌듯한 순간이었다.

이 상은 대한국민대상위원회가 주최하고 대한국민운동본부가 주관했다.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스포츠 등 사회 각계 각충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바둑인 중에선 신진서에 앞서 박정환과 김지석도 먼저 수상한 바 있다.

▲ 1980년 일본 명인위에 등극, 국내 바둑인으로는 최초로 은관문화훈장을 서훈받고 있는 조치훈 9단(오른쪽). 수여자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


신진서는 금년 초 제26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서 우승했고 국가대항전인 제23회 농심배서 마무리 4연승으로 한국의 우승을 결정했다. 9월엔 GS칼텍스배에서 국내 선수권전 사상 최초로 5기 연패 위업을 이루었다. 34개월 연속 한국랭킹 1위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시상식 때 신진서는 “큰 상을 받아 영광스럽다. 내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한국바둑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신진서는 이번 대한국민대상 외에도 여러 번 큰 상을 받았다. 국민희망대표 20인에 선정돼 지난 5월 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2017년엔 한국스카우트연맹 주최의 제11회 유스 히어로 프라이즈(Youth Hero Prize), 즉 자랑스러운 청소년 대상(大賞) 체육부문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훈장 수상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 1989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조남철 9단(오른쪽). 한 평생 한국바둑을 위해 헌신한 조 9단은 2006년 타계 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돼 2개의 훈장을 받은 국내 유일의 바둑인이 됐다. 가운데는 최병렬 당시 문공부 장관.


①조치훈 은관문화훈장(1980년)

대한민국 바둑인 중 국가가 주는 훈장을 최초로 받은 사람은 일본서 활약해 온 조치훈 9단이다. 1980년 오다케 히데오 9단을 꺾고 명인 타이틀을 획득한 뒤 그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일본 바둑은 압도적으로 강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정부는 금의환향한 조치훈에게 은관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1962년 만 6살의 나이에 숙부 조남철의 손에 이끌려 도일 유학길에 올랐던 조치훈은 기타니 도장서 당대의 천재들과 경쟁하며 절차탁마, 기량을 닦았다. 조치훈은 명인 즉위를 기점으로 메이저 타이틀을 독점하는 등 일본 바둑계를 완전 초토화했다. 문화훈장 수상을 위해 내한했을 때 한국이 배출한 또 한 명의 천재기사 조훈현과 기념대국을 갖기도 했다.

②조남철-③조훈현 은관문화훈장(1989년)

1989년 10월엔 조남철 9단과 조훈현 9단이 함께 나란히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는 경사를 맞았다. 조훈현은 그 해 바둑올림픽이라 불리는 제1회 잉창치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서 중국 녜웨이핑을 따돌리고 우승했다. 또 조남철은 일제 말기부터 바둑 보국(報國)의 일념으로 한국 바둑의 발전에 절대적 공을 세운 개척자다.

▲ 조훈현(가운데) 9단이 1989년 조남철 9단과 함께 은관문화훈장을 전달받는 모습. 조훈현은 제1회 잉창치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우승 공로로 서훈됐다.


한국기원 이사장실에서 거행된 서훈식에서 최병렬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은 대통령을 대신해 훈장을 전달하고 수상자들과 환담했다. 두 기사가 받은 훈장 역시 앞서 조치훈이 수상한 것과 같은 은관문화훈장이었다. 20여명의 국내 전문기사들이 이 자랑스러운 자리를 함께 하며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한국 바둑의 융성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④이창호 은관문화훈장(1996년)

이번엔 이창호 차례였다. 만 11세에 프로기사가 된 뒤 16세 때 세계 최연소 국제기전 우승을 따내는 등 바둑계 모든 기록을 새로 쓰기 시작한 이창호 7단(당시)에게 1996년 훈장이 서훈됐다. 조치훈 조훈현 조남철에 이어 훈장을 받은 네 번째 프로기사다. 이번에도 은관문화훈장이었다.

훈장 서훈의 가장 큰 계기가 된 대회는 그해 3월 열렸던 동양증권배 세계 기전이었다. 대만 출신으로 일본서 맹활약해온 거함 린하이펑과 접전 끝에 역대 최연소 세계 챔피언 기록을 작성했다. 당시 이창호는 국내 무대서도 이미 전체 타이틀 15개 중 절반이 넘는 8개를 지배하는 등 무시무시한 기세로 세력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⑤조남철 금관문화훈장(2006년)
2006년 7월 2일, 한국 바둑계에 큰 별이 졌다. 조남철 9단이 83세를 일기로 타계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관계자는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던 고인의 빈소를 방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금관이 서훈된 것도, 은관에 이어 두 번이나 문화훈장을 수상한 것도 모두 한국 바둑계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 한국 바둑의 본격 르네상스를 열었던 이창호 9단은 1996년 은관문화훈장 수상자가 됐다. 왼쪽 전달자는 김영수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


그만큼 고인이 끼친 공로는 컸다. 1941년 한국 최초의 프로기사가 된 고인은 한 평생 바둑 보급과 발전에 매진해 한국 바둑의 개척자로 추앙받았다. 1955년 한국기원을 설립한 사람도 조남철이었다. 일본어 해적판 서적이 판을 칠 때 그는 ‘바둑개론’ 등 27종에 달하는 학습서를 직접 집필, 보급에 힘썼다.

조남철은 아직 사랑방 잡기(雜技) 취급을 받던 바둑을 사회의 건전한 도(道)의 지위로 이끌어낸 공로자였다. 프로기전 우승 회수도 30회에 달했다. 한국 바둑이 이후 세계 정상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상당 부분이 그의 이같은 노력 덕으로 평가된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신진서 등 막강한 후배들을 배출하게 만든 연원(淵源)이었다는 뜻이다.

⑥김인 체육훈장 맹호장(2021)

‘영원한 국수(國手)’로 불리는 김인 9단이 2021년 4월 영면했다. 정부는 약 6개월 뒤 열린 2021 체육발전유공 정부포상 전수식 겸 제59회 대한민국체육상 시상식에서 고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추서했다. 황희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유족 대표로 참석한 김 9단의 외아들 김산씨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 영원한 국수로 존경받던 김인 9단이 2021년 4월 별세한지 반년 후인 10월 정부는 고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추서했다. 문화훈장 아닌 체육훈장을 받은 유일한 바둑인으로 기록됐다. 오른쪽은 김인 9단의 외아들 김산씨, 왼쪽은 황희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인 9단은 1960~70년대 한국바둑 도약의 발판을 놓은 주역이다. 1966년 제10기 국수전에서 조남철의 철옹성을 깨고 우승한 것을 신호탄으로 1977년까지 30번이나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일인자로 활약했다.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국내외 바둑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소탈하면서도 강직한 성격과 낭만적 기질로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훈장의 종류

대한민국을 위해 뚜렷한 공로를 세운 사람에 대해 정부가 서훈을 목적으로 수여하는 징표가 훈장이다. 훈장은 오로지 명예의 상징일 뿐이며 다른 물질적 포상은 없다. 훈장의 최고 정점은 무궁화대훈장이며 그 밑으로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궁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 총 12종으로 분류된다. 훈장 간에 차등은 없다.

▲ 한국 바둑의 현역 1인자인 신진서(오른쪽)는 지난 9월 세계적 축구스타 손흥민 등과 함께 2022 대한국민대상을 수상했다. 선배들의 뒤를 이어 훈장 서훈에까지 이를지 기대된다. 왼쪽은 대한국민운동본부 신현두 대표. (사진=한국기원)


프로기사들이 서훈된 훈장의 종류가 문화훈장(조치훈 조훈현 조남철 이창호)과 체육훈장(김인)으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 바둑의 정체성 변화 역사를 말해 준다. 과거 바둑은 문화 장르에 소속돼 있었으나 이후 스포츠로 적(籍)을 옮겼다. 앞으로 훈장을 받게 될 바둑인들도 체육훈장으로 서훈된다.

훈장에는 못 미치지만 바둑인의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는 포상제도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시상은 주로 표창 형식이며 수여 기관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다양하다. 이들 기관과 연계된 바둑 실무조직이 과거 한국기원에서 대한바둑협회로 바뀐 것도 바둑의 정체성이 과거 문화에서 스포츠로 바뀐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 포상을 받은 프로기사는 조영숙 박정환 최정 정수현 권갑용 권경언 신진서 오유진 양상국 김찬우 서봉수 신민준 김채영 원성진 오정아 등 10수명에 이른다. 한국바둑고, 중고바둑연맹, 세계사이버기원 등 바둑관련 기관도 포함됐다. 의정부시, 영암군, 울산시, 함양군, 화성시, 평창군, 전주시, 인천시, 부안군, 문경시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자체 또는 행정 책임자나 바둑협회장 명의로 표창 받았다.

바둑 관련 종사자들에게 격려는 꼭 필요하지만 표창 대상자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기관,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 각종 기전 스폰서들이 망라돼 있는데 어디는 상을 주고 어디는 안 주다 보니 형평의 원칙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시상자와 수상자의 업무적 구획도 명확하지 않다. 2018년 제정된 바둑의 날의 4년간 표창 수혜자만 꼽아도 50명이 넘는다.

가장 궁금한 것은 바둑인 중 누가 일곱 번째 훈장 서훈의 영예를 안을 것인가하는 점이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조치훈 이창호는 한국과 일본서 자기 시대를 구가했던 1인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역 1인자 신진서를 비롯한 천재 기사들이 이들의 뒤를 이어 훈장 서훈에 들었다는 뉴스가 기다려진다. 물론 프로기사가 아닌 일반 명사들 중에서 바둑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서훈을 받는 모습도 멋질 것이다. 일곱 번째 훈장의 주인공은 정말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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