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국내 바둑계 타이틀전 구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진서와 박정환이 독점하던 결승전(도전기 포함)에 신, 박이 아닌 다른 기사의 이름이 등장하는 빈도가 크게 높아진 것이다.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22년 열린 국내기전 결승 결과표(8월 9일 현재)

이 중 올해 첫 테이프를 끊었던 크라운해태배는 25세 이하만 출전이 가능한 제한기전이다. 박정환(29)은 출전 자격이 없고, 신진서는 자격이 있지만 출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표에 포함시켜 본 것은 제3의 타이틀 홀더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 신진서는 올해 들어 열린 국내 기전서 3번이나 중도 탈락했으나 국내 5관왕을 유지하면서 각 부문 상을 독식하는 등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최강 기사로 군림 중이다.
크라운해태배를 빼면 올해 7월말까지 열린 메이저기전 결승(도전기 포함)은 모두 5개다. 연인원 10명이 그 자리에 올랐고 머릿수로는 5명이다. 박정환(우승 2, 준우승 1), 신진서(우승 2), 강동윤(우승 1, 준우승 1), 이동훈(준우승 2), 신민준(준우승 1)이 그들이다.
크라운해태배를 포함한다면 올해 7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결승에 진출한 기사 수가 7명이나 된다. 지난해(2021년) 신진서는 5개 종합기전 결승에 나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상대기사는 박정환 3회, 변상일 2회).

▲ 7월에 벌어진 제1회 YK건기배 결승 3번기 모습. 랭킹 4위 강동윤(왼쪽)이 2위 박정환에게 예상을 뒤엎고 2대0으로 완승, 2016년 20회 LG배 우승 이후 6년 여만에 우승을 따내 화제가 됐다.
독불장군 신진서가 올해 열린 5개 국내 메이저기전 가운데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경우가 3번이나 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맥심배에선 복병 윤준상에게 반집을 져 16강서 탈락했고, 우슬봉조배 리그서는 이동훈에게 덜미를 잡혔다. 제1회 YK배에선 6승 3패의 충격적 성적(90%에 육박하는 그의 평소 승률에 비해 20% 포인트 이상 뒤진다) 전적으로 4위에 그쳤다.
타이틀 무대 출연 얼굴의 다변화, 그로 인한 바둑 인기 상승을 기대한다면 신진서의 독주는 바람직하지 않다. 1인 왕조가 군림하는 승부세계는 반드시 정체, 낙후 현상을 겪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신진서 개인이 미워서가 아니다. 누군가 다른 기사들이 신진서를 자꾸 이겨야 함께 발전한다.
신진서가 잠깐 멈칫 하는 사이 발생한 공간을 가장 많이 확보한 기사는 박정환이다. 무려 3개 기전 결승 고지를 밟았고 그 중 2개를 정복했으니 최근 2년 여 사이에 쌓아올린 최대 실적이다. 신진서의 2개 기전 결승보다도 1개가 더 많다. 지난 연말 우승한 국제 타이틀(삼성화재배)을 포함하면 3관왕으로 전성시절의 위용을 되찾았다.
가장 놀라운 인물은 강동윤이다. YK건기배와 용성전 2개 기전 결승고지까지 진격, 우승과 준우승 트로피를 한 개씩 들어올렸다. 33세라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놀라운 분전이다. 신진서 박정환 등 국내 투톱을 상대로 거의 동시에 연속 결승을 펼쳐 극적 효과를 더 했다.

▲ 제25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서 온라인 대국 중인 이동훈. 올해 우슬봉조배와 맥심배 등 2개 국내 기전 결승에 올라 건재를 과시했으나 4개월째 결장 중이다.
이동훈의 2개 기전 결승행도 박수 받을 일이다. 올 연초에 연속으로 이룬 성과였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이동훈의 해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두 기전 모두 우승을 놓쳤다. 박정환과의 연속 결승에서 각각 0대3, 0대2로 완봉패했다. 이동훈이 그 이후 수 개월 동안 잠행모드에 들어간 것은 우승을 따내지 못한 아쉬움 때문으로 보인다.
제25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챔피언 출신 신민준은 준우승 1회(제3기 쏘팔코사놀)로 체면치레를 했다. 입단 동기생 신진서와의 도전 5번기는 1대3 패배로 끝났으나 대부분의 판들이 반집을 다투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번쩍이는 돌발 출세는 없어도 페이스가 꾸준하다.
8월 18일부터는 신진서와 변상일이 27번째 GS칼텍스배 패권을 놓고 결승 5번기에 돌입한다. 준결승서 신진서는 박진솔, 변상일은 박정환을 제치고 올라왔다. 두 기사는 작년에도 결승서 격돌, 신진서가 3대2로 이겨 이 대회 4연패(連覇)를 이루었었다. 이 결승도 타이틀 지도 재편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2020년 1월 커제와 제25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준결승 대국 중인 변상일. 올들어 크라운해태배 접수에 이어 8월 18일부터는 27회 GS칼텍스배를 놓고 신진서와 결승 5번기를 갖는다.
타이틀 무대 출연진이 다양해진 건 사실이지만 신진서의 아성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유 타이틀 수 외에 랭킹, 상금, 승률 등 각종기록 등 전 부문서 그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이번 글에서 제외한 국제 부문까지 더하면 신진서를 능가할 기사는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신진서에게 가장 위협적 존재일지, 그리고 가장 유망한 차기 후보는 누구일지 한국 톱7의 상대 전적을 뽑아봤다.
⃟한국 바둑 톱7명의 상대전적 비교

(8월 9일 현재 승-패. 괄호 안은 2022년 전적)
상대 전적 통계를 놓고 보더라도 신진서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톱7 멤버 가운데 신진서와의 상대전적에서 앞선 기사는 단 1명도 없다. 가장 근접한 기사가 박정환인데 23승 29패로 간격이 크다.

▲ 신민준의 바둑리그 대국 모습. 제25기 LG배 챔피언인 그는 올해 제3기 쏘팔코사놀배 도전자로 뽑혀 신진서와 접전 끝에 1대3 패,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제공=한국기원)
마지막으로 2022년 랭킹 추이를 정리해 보았다. 랭킹은 가장 객관화된 전력 분석으로 꼽힌다
⃟한국 톱7 2022년 랭킹 월별 변화표

(2022년 8월 9일 현재)
여기서도 신진서와 박정환은 32개월째 1, 2위를 분점하면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변상일이 그 벽을 허물기 위해 틈 새를 꾸준히 노리는 양상이다. 변상일은 2020년 12월 이후 20개월째 붙박이 3위다. 올들어 연속 기적을 연출 중인 강동윤의 역주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주목거리.
강동윤을 포함해 신민준 김지석 이동훈 등은 한 덩어리가 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누구건 투톱을 넘어설 수도, 자칫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동훈이 심기일전해 복귀, 기존 판도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10위권 언저리에서도 피나는 랭킹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김명훈 박건호 한승주 이창석 박하민 설현준 등의 도약 가능성도 충분하다. 태풍이 덮친 지구촌 기상도처럼 언젠가 요동칠 수도 있다. 명인전 등 올해 하반기 벌어질 타이틀전에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변화의 흐름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그 열쇠는 ‘절대 지존‘으로 군림 중인 신진서가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