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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리그 MVP 관련 소고
 
올해 바둑리그가 6월 8일 폐막식과 함께 종료됐다. 팀 간 경쟁도 치열했지만 MVP 선정을 놓고도 이견이 분분한 혼전이었다. 최고의 성적을 올린 기사가 소속된 팀이 리그에서 우승하면 정답(?)이 쉽게 나오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둑리그 시즌 종료 후 한국기원은 MVP 후보로 4명을 선정, 발표했다. 우승 팀 수려한합천 팀의 박정환 박영훈 박종훈, 그리고 준우승 팀 셀트리온의 신진서 등 4명이었다. 한국기원은 올해도 일반 바둑 팬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투표와 바둑 기자단 투표를 각 50%씩 반영, 합산하는 방식을 취했다. 투표는 5월 17일부터 1주일 간 진행됐다.

▲ 8일 열린 2021~2022 한국바둑리그 시상식서 MVP의 주인공이 된 신진서 9단. 2017년에 이은 두 번째 수상으로 상금 1000만원도 차지했다.


MVP 후보로 뽑힌 4명은 저마다 개성 넘친(?) 성적표로 투표권자들에게 어필했다. 우선 우승 팀 후보부터 보자. 1지명자(주장)를 맡았던 박정환은 정규 시즌 11승 5패, 포스트시즌 2승 1패로 대회를 마쳤다. 2지명 박영훈은 12승 4패와 2승 2패였다. 5지명으로 출전했던 박종훈은 정규 시즌 9승 7패, 포스트 시즌 3승 1패를 마크했다.

셋 중 누구의 팀 우승 기여도가 가장 높을까. 쉽게 답이 안 나온다. 다승 부문만 보면 박영훈이 가장 앞서는데, 우승에 가장 중요한 포스트 시즌서 2패(2승)나 당했다. 박종훈은 포스트 시즌 최다승(3승)이 돋보이는 대신 전체 승수(12승)에서 셋 중 가장 처졌다. 박정환도 팀내 다승 2위에 그쳐 주장으로서 예년과 같은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우승 팀에서 정답(?)을 찾지 못하면서 눈길은 당연히 신진서에게로 옮겨갔다. 신진서의 바둑리그 활약상은 새삼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눈 부시다. 정규 시즌 16전 전승, 포스트 시즌 11전 전승이다. 이번 시즌 27판을 소화해 한 판도 패하지 않았다. 지난해 시즌 말미 성적까지 합산하면 29연승이다. 셀트리온이 정규 시즌 전후기 합계 6위까지 쳐지고도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며 정규 5~2위 팀을 모두 제치는 데는 신진서가 1등공신 역할을 했다.

▲ 우승 팀 수려한합천의 주장 박정환. 올해 바둑리그 시즌서 합계 13승 6패를 기록했으나 2014~2016 MVP 3연패의 영광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단체 경기이므로 우승 팀에서 최고 수훈선수를 꼽는 것이 옳을까, 팀이 우승을 못 했더라도 압도적 성적으로 리그를 빛 낸 기사에게 상을 주어야 할까.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단체 경기에서 매번 등장하는 MVP 딜레마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최우수 기사의 영예는 신진서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득표 내역이 흥미롭다. 신진서는 인터넷 팬 투표에선 18.2%로 2위에 그쳤지만 기자단 투표에서 93.3%의 몰표를 받았다. 합산 득표율 55.8%로 1위다. 그 뒤를 이은 기사는 수려한합천의 박종훈. 인터넷 투표에서 가장 높은 70.9%를 받았지만 기자단 투표에서 0%를 기록, 합산 득표율 35.4%에 머물렀다. 박영훈(7.0%)과 박정환(1.8%)이 3-4위를 차지했다.

요약하면 팬들은 소속 팀 우승 기여도를 절대적으로 중시했고, 기자단은 전체 성적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바둑 네티즌들은 정규 시즌서 9승에 그쳤지만 우승 결정 단계에서 팀내 최다승(포스트시즌 3승)을 올린 박종훈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 박종훈에게 기자단이 단 한 표도 주지 않은 대목도 예상 밖이었다. 최종일 1대2에서 천금의 동점타를 기록, 역전승의 발판을 놓은 박정환의 기자단 득표가 제로였다는 점도 그렇다.

▲ 5월 8일 챔피언 결정 2차전 신진서(왼쪽)와 박영훈의 복기 광경. 이날 셀트리온은 이 판만 승리해 수려한합천에게 1대3으로 패배, 2연패로 몰렸다.


과거에도 우승 결정타냐, 화려한 성적표냐의 논쟁이 펼쳐진 전레가 있다. 2019~20 시즌 신민준(한국물가정보)이 신진서(셀트리온)를 단 한 표차로 꺾고 MVP에 올랐다. 팬 투표는 719표 동수(同數)가 나왔고, 기자단이 13표 대 12표로 신민준의 손을 들어주었다. 신진서는 리그 성적에서 앞서고도 우승 결정 최종 대국서 승리한 신민준에게 MVP를 내주었다.

바둑리그 MVP 선정 기준은 어떻게 돼있을까. ▲챔피언 결정전 진출팀 선수로 ▲정규리그와 플레이인 토너먼트, 포스트시즌을 합해 10국 이상을 두어 60% 이상의 승률을 올린 기사로 규정돼 있다. ‘챔피언 결정전 진출팀 선수‘ 란 대목이 주목을 끈다. 소속 팀 성적 1, 2위 팀 선수로 자격을 한정한 것이다. 이 규정에 의거하면 준우승 팀 소속인 신진서의 MVP 등극엔 전혀 하자가 없다.

바둑계에서 준우승 팀 선수가 MVP에 선정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말 끝난 여자바둑리그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준우승팀인 보령 머드 최정이 MVP로 뽑혔다. 정규리그 14승, 포스트시즌 5승 등 19전 전승을 올린 공로로 기자단(66.7%)과 팬 온라인 투표(53.7%)를 석권했다. 우승 팀 삼척해상케이블카의 조혜연은 11승 2패의 손색없는 성적을 올리고도 총 득표율 26.4%에 머물렀다.

▲ 수려한합천 박종훈(왼쪽)이 전기 MVP이기도 한 셀트리온 2장 원성진을 꺾은 뒤 복기하고 있다. 박종훈은 이번 MVP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대회 사상 최초의 5지명 MVP로 선정될 뻔했다.


한국바둑리그서 준우승팀 MVP가 배출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출범 첫해인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16년 간 MVP는 모두 우승팀 소속이었다. 그 중 11명이 1지명자였고, 나머지 5명은 2~3 지명자였다. 하지만 팀원들끼리의 다툼이었을 뿐, MVP가 우승 팀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수백년 역사를 지닌 본격 스포츠 단체 종목들은 어떤지 살펴 보았다. ‘배구 여제’로 불리는 김연경이 지난해 4월 끝난 V리그서 MVP로 뽑혔다. 개인 통산 4번째였지만, 준우승 팀 선수로 MVP에 선정된 것은 개인적으로 처음이었다. 그가 소속된 흥국생명은 GS칼텍스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투표권자들은 팀 순위보다 개인 압도적 역량에 주안점을 뒀다. 여자배구 준 우승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16년만이었다.

여자 농구 슈퍼스타 박지수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소속 팀 KB가 2020~2021 2위에 머물렀음에도 기자단 투표를 통해 최우수선수가 된 것. 정규 시즌 2위 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여자 프로농구에서 사상 두 번째였다.

▲ 바둑리그 사상 가장 큰 화제를 몰고왔던 2019~2020 시즌 최종국 신진서(왼쪽) 대 신민준전 모습. 신진서는 22연승에서 이 판을 져 팀 우승과 MVP를 모두 놓쳤다. (사진=한국기원)


외국의 경우도 찾아보았다. 미프로농구(NBA)의 전설적 스타 제리 웨스트가 소속 팀 LA레이커스의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시즌 최우수 선수에 뽑힌 일이 있었다. 축구엔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팀은 독일에 져 준우승했지만, 월드컵 취재 기자단이 최우수선수로 선정한 선수는 메시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내로라하는 빅리그들의 공통점은 MVP에 관한 한 확고한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리그 우승팀과 최고 스타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MVP 선발을 투표인단에게 미뤄버린다. 소속 팀의 순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경기단체는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리그 MVP에 자격 규정에 대해 좀 더 확고한 원칙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필자 생각엔 우승팀 소속 선수해 한해 MVP를 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유는 단체 종목이 ‘최고의 개인’ 아닌 ‘최고의 팀’을 가리는 전장이기 때문이다. 팀 구성원 전원이 힘을 합쳐 우승의 꿈을 이뤘을 때 최고 수훈 선수 1명에 안겨주는 꽃다발이 MVP다. 개인 종목인 바둑이 특정 개인의 성취도에 집착하려면 굳이 단체전에까지 뛰어들 필요가 없다. 일반 타이틀전 1대1 대회만으로 족하다.

굳이 우승팀 소속 규정을 풀어주고 싶으면 전면적으로 해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챔피언 결정전 진출팀 선수’란 규정 아래 1-2위 팀에 한정하는 것은 어정쩡하고 명분도 없다. 비(非) 우승팀 선수에게도 MVP 문을 열어 놓겠다면 소속 팀 순위는 따지지 말아야 한다. 확률은 낮지만 3위 이하 팀에서도 최고 선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신진서가 전승 행진 속에 MVP까지 오르는 동안 소속 팀의 정규리그 순위는 6위였다.

아무튼 신진서의 바둑리그 MVP 등극은 축하할 일이다. 정관장황진단 선수로 뛰던 2017년에 이어 이번이 5년만이고 두 번째다. 그러고 보면 실력에 비해 바둑리그에선 자주 상을 받지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국보(國寶) 신진서가 앞으로 바둑리그에서 몇 번의 MVP를 추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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