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바둑제전인 LG배 조선일보기왕전 27번째 잔치 개막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올해도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수 24명이 출전, 내년 2월까지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 상금 3억원의 주인을 가린다. 그 첫 라운드가 5월 29일 시작돼 6월 1일까지 8강을 가려낼 예정이다.

▲ 26회 LG배 패권을 놓고 중국 양딩신과 결승전을 펼치고 있는 신진서. 올해도 우승할 경우 LG배 사상 최초의 2년 연속 우승자가 된다. LG배 최다 연승기록에도 도전한다.
출전 기사는 한국이 13명으로 가장 많다. 조한승 원성진 박진솔 설현준 김명훈 박하민 박건호 등 7명이 국내 선발전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김지석 신민준 등 5명은 시드로, 강동윤은 와일드카드로 합류했다. 중국은 스웨 미위팅 커제 양딩신 구쯔하오 자오천위 딩하오 등 7명, 일본은 위정치 사다 시바노 등 3명, 대만은 왕위안쥔 1명으로 대표단을 구성했다. 이번 대회 5대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 봤다.
①LG배 사상 첫 연속 우승자 출현할까
30년 역사를 바라보는 LG배의 대표적 징크스 중 하나는 우승자의 차기 대회 조기 탈락이다. 다른 국제기전들과 달리 2년 연속 우승자는 단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LG배 역대 최다 우승(4회) 기록 보유자인 이창호 조차 이런 전통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창호가 국내외 각종 기전을 휩쓸던 시절이었는데도 우승 이듬해엔 결승무대 조차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4번 모두 4강에 머물렀다.
25회 대회까지 배출된 연인원 25명 우승자의 이듬해 기록을 보면 준우승 2번이 최고 성적이었다. 이세돌(12회 우승, 13화 준우승)과 쿵제(14회 우승, 15회 준우승)가 그들. 그 다음으로 우승 이듬해 4강이 4명, 8강과 16강이 각 6명과 5명이었다. 첫 판서 패해 24강 또는 32강에 머문 기사는 8명으로 전체의 32%에 달했다. LG배의 지독한 ‘우승자 저주’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 25회 LG배 결승에서 중국 커제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신민준. 역대 LG배 와일드카드 최고 성적(4강)도 보유 중인 신 9단은 올해 2년만의 LG배 정상 복귀에 도전한다.
다른 국제기전과 비교해 봐도 LG배의 징크스가 확인된다. 삼성화재배에선 이창호가 3년 연속 우승한 적이 있고, 조훈현 이세돌 커제는 2연패(連覇)를 달성했었다. 후지쓰배 역시 다케미야 조훈현 이세돌이 2연 연속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박정환은 3회를 끝으로 재작년 중단된 월드바둑챔피언십서 3연속 우승해 종신 챔피언(?)이 됐다. 마이너로 분류되는 TV아시아선수권 1~4회 우승자 다케미야가 국제대회 최다 연패(連覇) 기록 작성자로 남아있다.
연속 우승을 불허하는 LG배 징크스가 올해는 깨질까. 그 열쇠는 전기(前期) 챔피언인 신진서 9단이 쥐고있다.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신진서의 페이스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첫 연속 우승 달성 기대가 높아져가고 있다. 29개월째 연속 한국 랭킹 1위(5월 기준)인 그는 현재 LG배와 춘란배를 한 손에 쥔 현역 유일의 세계 메이저 2관왕이다.
②연승-다승 부문도 불꽃경쟁 예고
신진서는 2000년생 동갑인 중국 딩하오와 함께 올해 LG배 최연소 출전선수지만 누적 통계 각 부문에서 십수년 위의 선배들을 제치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대회 연승 부문이다. 현재 이 부문 기록 보유자는 이창호 9단이다. 원년 대회를 7전 전승으로 마친 뒤 2회 대회서 2승을 추가한 9연승이 역대 최다로 남아있다.
신진서는 24~25회 대회에 걸쳐 작성한 7연승이 개인적으로 최다 연승이다. LG배 통산으로 따지면 4위에 해당한다. 신진서는 올해 대회서 본인기록과 대회 통산 기록 모두를 경신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직전 대회인 26회 본선 16강전부터 출전해 결승 2연승까지 퍼펙트 우승을 따내며 5연승을 기록 중이다. 올해 대회에서 만약 지난 26회 연승 행진을 한 번 더 답습, 10연승을 채울 경우 이창호의 기록을 능가하게 된다.

▲ 제25회 LG배 8강전서 양딩신과 대국하는 박정환. 이 판을 이겼으나 준결승서 신민준에게 막혔다. 19회 대회 이후 8년만의 정상 등극을 노리고 있다.
신진서는 지난해 6월 이후 올해 2월 농심배 종료 시점까지 국제 무대서 무려 29연승(중국 24, 일본 4, 대만 1명)을 질주하고 있다. 이따금 국내 기사에게 패점을 기록했으나 외국 기사에겐 단 한 판도 패하지 않았다. 만약 결승까지 오른 뒤 2연승한다면 10연승 새 기록이 수립되고, 결승 3번기에서 한 판이라도 패할 경우엔 연승기록 타이(9승)가 되거나 1승 차(8연승)에 머물 수도 있다. 현재 페이스라면 퍼펙트 5연승으로 연승 기록 경신과 첫 2연패의 두 마리 토끼 사냥을 기대해 볼 만 하다.
LG배 통산 승률 부문에선 신진서가 1위를 독주 중이다. 26회 종료 시점에서 18승 4패, 81.8%를 마크해 신민준(10승 3패, 76.9%), 박문요(13승 5패, 72.2%), 이창호(54승 22패, 71.1%)를 압도하고 있다. 그 뒤를 장웨이제 후야오위 당이페이 양딩신이 뒤쫓는 양상. 신진서가 8할이 넘는 승률을 얼마나 더 끌어올릴지 주목된다.
LG배 통산 다승 부문 경쟁도 흥미롭다. 이창호(54승), 이세돌(32승), 유창혁(24승), 구리(23승)가 1~4위에 올라있지만 4명 모두 몇 년째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환(22승), 원성진(21승) 등이 이번 대회 우승권까지 진격한다면 통산 3위로 도약이 가능하다. 그리고 다승 공동 9위인 신진서와 중국 스웨(이상 18승) 두 기사는 전승 우승할 경우 역대 다승 부문 공동 4위에 오른다.
③결전 기다리는 한국 용사들
신진서 외 12명의 한국기사들도 저마다 꼭 이겨야 할 이유를 갖고 있다. LG배서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기록하며 13번째 본선에 오른 박정환, 아직 메이저 세계 제패기록이 없는 변상일도 더 물러설 수 없는 기로에 섰다. 신민준에게 LG배는 첫 세계 제패를 안겨준 잊지 못할 무대다. 신진서에게 빌려주었던(?) 우승컵을 되찾아 와야 한다. 올 들어 절정기에 들어선 김명훈에게도 절호의 기회가 왔다.
14번째 LG배 본선을 밟은 원성진과 김지석 두 30대 기사는 LG배서 준우승 1회뿐 우승을 못해 봤다는 한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만 40세로 이번 대회 최고령 출전자인 조한승도 무려 9년 만의 LG배 상륙 여세를 본선에서 폭발시켜야 한다. 메이저 새계대회 본선에 처음 합류한 박하민과 설현준으로선 꿈에도 그리던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에도 국내 선발전을 거쳐 본선에 올랐다가 첫판서 탈락했던 박진솔의 각오도 비장하다. 지난해 국내 선발전 결승서 이동훈에 패했던 박건호는 생애 처음 랭킹 10위권(9위)에 진입, 최고의 한 해를 설계 중이다.
④외국세, 한국 독주에 제동 다짐

▲ 중국 베이징기원에서 서울 신민준과 온라인으로 연결, 25회 LG배 결승전을 치르고 있는 커제. 중국의 간판인 그는 이 때 거둔 준우승이 LG배 최고 성적이다.
LG배 우승컵은 24회 이후 3년 연속 한국에 머물러 있다. 전체 우승 회수도 한국이 12회로 중국(!1회)에 역전 리드 중이다. 중국으로선 어떻게든 제동을 걸어야 할 시점을 맞은 셈. 총 출전자 7명 가운데 양딩신 커제 미위팅 스웨 구쯔하오 등 5명이 세계 챔피언 출신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선수는 커제. 8회에 걸쳐 메이저 정상을 정복했지만 LG배 우승은 없다. 25회 대회 결승서 선제점을 올리고도 신민준에게 역전패한 한을 안고 있다. 농심배서 신진서에게 참패 후 10번기 논쟁이 불붙는 등 긴장 상태가 계속 고조돼 왔다.
전기 준우승자 양딩신은 23회 LG배 우승자 출신이다. 당시 준우승했던 스웨는 2013년 17회 LG배 우승자다. 구쯔하오는 2017년 삼성화재배로 첫 세계 정복을 이뤘으나 이후 추가 우승이 없다. 일본은 시바노, 위정치, 사다 등이 나온다. 양강(兩强)으로 꼽히는 이야마와 이치리키가 빠져 예년보다 중량감은 덜 하다. 대만의 유일한 출전선수 왕위안쥔이 1승을 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⑤와일드카드 종전 최고기록 경신할까

▲ 2016년 제20회 LG배 시상식장에 선 우승자 강동윤(오른쪽)과 준우승자 박영훈. 박영훈이 24회 때 와일드카드를 받은데 이어 올해는 강동윤이 같은 혜택을 받아 또 한 번 우승에 도전한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올해 LG배 와일드카드는 33세 노장 강동윤에게 돌아갔다. 강 9단은 후지쓰배와 LG배서 한 번씩 우승한 바 있는 맹장이다. 특히 LG배엔 12회부터 26회 대회 중 15회 때 단 한 번을 제외하곤 ‘개근‘했을 만큼 인연이 각별하다. 이번 와일드카드 지명으로 통산 15번째 LG배 옥토에 발을 딛게 됐다. 이세돌(21회), 이창호(19회)에 이어 박영훈과 출전 회수 공동 3위에 해당한다. LG배에서의 총 전적은 16승 14패.
LG배에 와일드카드 제도는 23회때부터 정식으로 도입됐다. 그 해 지명받은 원성진은 불운하게도 첫 판서 커제를 만나 탈락했다. 역대 LG배 와일드카드 중 최고 성적을 올린 기사는 신민준이다. 23회 대회서 한국 출전기사 중 유일하게 4강 고지에 오르며 선전했다. 24회와 25회 대회 와일드 카드인 박영훈과 홍일점 최정은 32강에 머물렀고, 26회 때 지명 받은 원성진은 16강전서 다시 커제의 벽에 막혔다. 올해 지명된 강동윤이 4년전 신민준의 기록을 넘어 최고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