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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전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쓴다. 축구나 야구 같은 인기종목이 아닌 바둑은 스폰서를 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런 속사정까지 밝히는 게 구차하지만, 순전히 인맥으로 안면으로, 그것도 바둑을 좋아하는 오너(사장이나 고위 임원)가 아니고선 바둑대회 제안은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기업이 자기들 홍보에 필요하니 대회를 열 뿐이라고? 제발 죽기 전에 그런 사치 한번 누려보고 싶다.
(상금제 오픈전으로 바둑사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한 비씨카드배는 골프대회에 후원하던 예산을 바둑대회로 돌린 기전이다. 바둑대회를 없애고 골프대회로 돌아서는 게 정상(?)인 요즘의 상황을 생각하면 바둑이 골프보다 홍보효과가 크다고 판단해서였겠는가. 그 배경에는 유창혁 9단을 비롯한 몇몇 기사들의 노력과 설득, 무엇보다 추첨식이 끝날 때까지 전야제 자리를 지키는 바둑애호가 장형덕 비씨카드 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조훈현을 욕하는 이유가 뭔데?
답변할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들이긴 하지만, 이왕 기전 얘기가 나왔으니 조훈현 9단을 비방하는 팬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꼬집고 싶다. 바둑리그 존속을 위해 조9단, 여기저기 불이 나게 뛰었다. 그런데 후배가, 그것도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당대의 일인자가 불참을 선언했다. 어려운 형편에 부모는 피죽 한 그릇 못먹어가면서 자식에게 어렵사리 이밥 한 그릇 차려줬더니 고기반찬 투정이나 하며 밥상을 물린 격이라면, 선배로서 한소리할만하지 않은가.
조훈현9단의 발언도 별것이 아니다.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면 공멸한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일인자의 면모를 갖추라는 일갈에 그동안 한국바둑계의 어른 부재현상에 대해 혀를 차던 팬들이 ‘후배 죽이기’라고 몰아붙이고 나왔다. 심지어 윤기현 바둑판사건에는 침묵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떠드냐는 자격론까지 들먹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전 기사회장이란 분까지 그러셨다.
윤기현 사건의 장본인도 아니고 그 사건에 자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선배가 관련된 사건에 후배가 나서기는 참말 어렵다. 조9단은 그때 서면이긴 하지만 원고측의 주요 증인으로 나서 윤9단으로부터 원망을 톡톡히 샀다. 이것도 침묵인지?) 자격 따지는 사람들이 몇 년째 5% 납부도 거부하고 저작권 위임 서명도 거부하고 있는 이9단에 대해서는 ’한국기원 소속기사로서의 자격‘ 운운은 단 한마디 하지 않는다. 바둑만 잘 두면 다 용서된다는 논리인가.
▲"일인자는 일인자다운 면모를 보여야 진정한 일인자"라며 후배 이세돌 9단의 돌발행동에 쓴소리를 했다가 일부 바둑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듣고 있는 조훈현 9단.
프로기사들 사이엔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한 것 같아도 내가 보기엔 가장 느슨한 동네다. 스포츠 동네 같으면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왜 그런지 아시는가. 1등과 꼴찌가 분명히 가려지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기풍이 어떠하건, 그 내용과 과정이 어떠하건 궁극적으로 승패가 가려지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구조에서는 최후의 승자가 최선이요 권력이다. 그나마 단체종목이면 좀 덜하겠는데 개인종목이다. 이런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날마다 얼굴 맞대고 승부를 다퉈야 하는 사이에서는 하늘같은 선배라 할지라도 조언이나 충고 따위를 섣불리 하기 어렵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훈현 이세돌 두 사람의 예로 들어보면 이렇다. 예전 정상에서 이세돌 9단과 종종 다투던 시기의 조9단은 “내일이면 또 바둑판 앞에서 얼굴 맞대야 할 상대”여서 할말 못하고, 나이가 들어 실력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곁에서 누가 “조국수 정도 되는 사람이 한번 호되게 나무라야 하는 거 아냐?”라고 지적해도 행여 “후배에게 실력이 떨어지니 ‘구라’로 삭죽이려 한다”는 소리 들을까 싶어 꺼린다. 어른을 찾기 어려운 것은 이래서다.
지금까지 꾹꾹 참은 거 내처 참을 일이지 모처럼 비분강개하여 후배 한번 꾸짖었다가 조9단, 욕 많이 드셨다. 들을만한 이유로 들었으면 좀 덜 억울할 텐데 같잖은 얘기까지 들먹이며 퍼부어대니 어디 바둑계를 위해 발벗고 뛸 맛이 나겠는가.
조9단은 국내 최대기전인 하이원리조트배(구 강원랜드배) 명인전이 탄생하는 데 기여한 숨은 공로자이다. 강원랜드 조기송 사장은 조순 전 부총리의 아들이다. 부자가 대단한 바둑애호가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기업이란 게 사장의 의중이 중요하긴 해도 구멍가게 주인처럼 자기 마음대로 막 주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기에 조9단의 발품이 얼마나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중단되었던 명인전의 밥상을 다시 차리는데 조9단의 힘이 일부라도 보태졌고 그 밥상을 받은 사람은 강원랜드에 전할 바둑판에 사인하길 꺼려했던 이세돌 9단이었다.
구걸하다시피 바둑리그 팀을 구하러 다니는 데에도 한국기원은 조9단을 ‘얼굴마담’처럼 대동하고 다녔다. 바둑황제가 기껏 립서비스나 하고 다닌다고 수군대지 마시라. 누군 바둑판 사인 하나에도 자존심 지키는데 누군 얼굴마담 하고 싶어 그런 줄 아는가. 이게 우리 바둑계 현실이다. 이 정도면 설령 윤기현 편을 들었다 한들 한마디할 자격 있고 ‘괘씸한 후배’ 야단칠 명분 있지 않을까. 아직 영세성을 못 벗어나고 있는 바둑계이기에 그 어느 곳보다 일인자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둑팬들이야 오로지 이세돌의 바둑을 못 보게 될까 열불나겠지만 그렇다하여 내키는 대로 마구 내뱉는 것은 절대 이9단을 도와주는 행동이 아니다.
이세돌이 바둑리그를 불참한 까닭은?
얘기가 옆길로 샜다. 다시 바둑리그로 돌아가-,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이9단이 왜 8팀이면 두고 그 아래는 안두겠다고 했을까. 이9단은 형을 통해 휴직계를 내면서 처음엔 “심신이 피로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언론인터뷰(이 역시 형의 전언)를 통해 중국리그에는 계속 참가할 의사를 비쳤다. 바둑리그가 6팀이 벌일 때보다는 8팀이 싸울 때 대국수가 많아질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심신이 피로하다는 이유는 그냥 하는 소리로 다들 받아들였다. 랭킹산정이 바둑리그에 참가하는 톱랭커에게는 불합리한 요소가 있다는 말도 나왔지만 이 역시 부수적인 문제로 보인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바둑리그가 ①중국리그에 비해 실익이 없다. ②주장에 대한 예우가 적다. ③그외 여러 가지 불만요소가 제기되었다. 바둑계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한 정황으로 미루어 이것이 진짜 불참이유로 받아들여졌다.
바둑리그 대국료는 이길 경우 150만원(주장으로 출전할 경우 50만원 추가)을 받고 질 경우 50만원을 받는다 중국리그에서는 최근 위엔화의 가치상승으로 1승에 10만위엔(현 환율기준 약1800만원)을 받는다. 올해 바둑리그에 참가해 주장으로 전승(12승)을 거두더라도 2400만원에 불과하다. 중국리그에서 2판을 이기는 것보다 1200만원이 적은 금액이니(바둑리그와 중국리그를 단순비교할 순 없다 하더라도) 불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돈 싫어하는 사람 있는가. 더욱이 돈에 움직이는 프로다. 앞서 말한 국내기전 상황과 정서가 아니라면 뭐라 지적할 사항이 아니다.
▲국내에서 휴직계 파동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이세돌 9단이지만 중국갑조리그에서는 쾌조의18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6월 27일 벌어진 2009중국갑조리그 8라운드에서 구리 9단(왼쪽)에게 이겼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한국기원이 뒷북을 친 잘못이 크다. 늘 이런 식으로 허둥대니 무능하다는 소리를 달고 사는 게다.
첫째, 2001년 한국기원이 소속기사의 해외진출에 대한 규정을 만들 때도 당시 일인자 이창호 9단이 중국진출을 선언하자 사후약방문 식으로 부랴부랴 장만했다. 그해 초 무려 9명이나 대거 중국리그에 진출했을 때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바라보던 한국기원이었다. 그때 정한 핵심은 제5조이다.
“해외 진출 기사는 본원 주최, 주관의 국내외 프로기전에 우선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또한 국가간의 시합에서는 한국대표로 출전해야 한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재작년과 작년 중국리그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2008년 6월 이세돌 9단은 중국리그와 일정이 겹치자 한국물가정보배 본선(대 홍성지)을 기권했다. 한국기원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인다는 바둑리그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이9단은 2007년 제일화재팀 주장으로 팀의 에이스였음에도 신성건설과의 플레이오프전에 5장으로 배치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플레이오프처럼 중요한 경기에서 먼저 1승을 따고 들어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도 필승카드를 마지막에 세운다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중국리그 일정 때문에 앞쪽 순번으로 오더를 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제일화재팀은 에이스를 등판시켜 보지도 못한 채 3-0으로 졌다.
2008년 바둑리그에서는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디펜딩 챔피언 영남일보의 선수 중 윤준상, 김지석 두 명이 5월5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을조리그에 참가하면서 신성건설과의 경기(5월8일)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바람에 영남일보는 예비선수가 뛰어도 한명이 부족해 부득이 한판은 기권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팀의 목진석 선수도 같은 시기 을조리그에 함께 뛰었지만 다행이 한명이어서 오더 외 선수로 등록, 신성건설은 문제없이 넘겼지만 하마터면 무더기 기권사태가 나올 뻔했다. 미연에 예방하지 못한 건 한국기원과 영남일보, 바둑TV의 사전 일정조율에 엇박자가 나서였다지만 이때 규정을 재정비할 할 기회였다.
해외에 진출하는 소속기사는 한국기원이 주최, 주관하는 국내외 기전에 우선적으로 참가해야한다“는 원칙을 아무리 세워놓은들 무슨 소용인가. 규정을 지키지도 않고 적용할 의지도 없다면 2001년 고리짝에 정한 케케묵은 사문(死文)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이후 한국에도 바둑리그가 생겼고 바둑리그가 그렇게 중요한 기전이라고 생각했다면, 가령 “바둑리그에 출전하지 않는 기사는 해외 리그에 참가할 수 없다”든지 프로야구나 축구의 FA제도를 도입해 “일정 시즌을 뛴 선수라야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거나 “한국기원이 주최, 주관하지 않는 해외대국과 국내대국이 겹쳤을 때는 국내기전의 침체를 막기 위해 국내대국을 우선 둬야한다”는 구체적인 규정을 새로 박아넣었어야 할 것 아닌가. 한두 번 해본 장사도 아닌데 허구한날 뒷북을 치시니 협회가 선수에게 늘 한 박자 늦어 질질 끌려다니는 거다. 이러니 국민(바둑팬)들이 ‘무능한 정부(한국기원)’보다 ‘무정부주의자(이세돌)’가 낫다고 두둔하는 거다.
▲이세돌 9단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비금면의 폐교였던 대광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문을 연 '이세돌 기념관'.
바둑리그에 대한 이세돌의 불만
자기 박물관까지 개관한 고향 신안군이 팀으로 참가하는 데도 불참을 결단한 이세돌 9단이다. 동료기사들의 말마따나 자기 불만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고 주장이 있어도 측근이나 한국기원 직원에게 지나가듯 툭 던지는 스타일이라면 그게 공식 통보인지 농담인지, 투덜거림인지 제대로 파악되겠는가. 전화도 2~3번을 거쳐야 연결되고 만나기도 쉽지 않고 본인의 입으로 본인의 뜻을 잘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형의 입을 통해 들어야한다면 상대방의 소통방식만을 탓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둑리그에 대한 이9단의 불만 중 짚어봐야할 것은 없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프로스포츠 세계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를 쥔 쪽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예전에 바둑계의 갑(甲)은 한국기원(프로기사)이었다. 그것도 초강력 갑이었다. 그러나 바둑TV가 본령을 발휘하면서 각종 기전을 만들고(요즘 주최든 후원이든 바둑TV와 무관한 기전이 몇 개나 되는지 한번 세어보시라) 상당수 프로기사들의 밥벌이 터가 되면서 어느 쪽이 갑이고 을인지 모호해졌다.
바둑TV의 역할과 위상을 깎아내릴 심산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특히 한국기원도 엄두를 못내던 바둑리그 같은 매머드급 기전을 만들어낸 바둑TV의 공로는 극찬하고 싶다. 그러나 힘의 균형이 깨지면 쏠림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바둑TV가 한국기원에 가져다주는 주관료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갑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한때 바둑리그에 대해 재주는 프로기사가 부리고 잇속은 바둑TV가 챙긴다는 불만이 제기된 적이 있다. 바둑리그 개최권을 바둑TV에 독점으로 줄 것이 아니라 입찰해야 하네 마네 하는 일부 강경한 목소리도 나왔다.
2008바둑리그 총규모는 35억원이었다. 이 중 선수측인 한국기원과 프로기사들에게 돌아온 몫은 주관료 3.63억원(10.37%), 상금 17.146억(48.99%)이었다. 나머지 40.64%(14.224억원)는 바둑TV 몫이었다.
2009바둑리그 규모는 23.625억원. 이 중 주관료 2.45억원(10.37%), 상금 10.8875억원(46.08%)을 뺀 나머지 43.55%(10.2875억원)를 바둑TV가 챙긴다. 바둑TV는 이 몫으로 제작비, 행사진행비, 홍보비 등으로 쓰는데 이 중 지역투어비와 제작비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세상에 손해보는 장사를 계속 하는 사람은 없다. 땅 파서 장사하지 않는 이상 바둑리그를 주도적으로 창설한 바둑TV가 일정액 챙기는 걸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다. 영업의 대가를 인정하는 건 당연하다. 막상 쓰다보면 빠듯한 예산일 거다. 하지만 스폰서를 잡는 데 바둑TV뿐 아니라 한국기원도 가세해 전력투구한다. 다른 기전에 비해 바둑TV가 주최하는 기전은 주관료도 낮게 책정하고 있다. 그리고 스폰서 광고 외 다른 광고도 바둑리그 프로그램에 붙는다. 제작비를 전액 기전 예산에 집어넣어 부담을 제로로 만들면서 콘텐츠를 확보했고(바둑TV에서 바둑리그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시청료라는 부가수입도 얻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 인건비를 포함한 제작비야 적당히 부풀리기 나름 아닌가.
이런저런 점을 헤아리면 아무리 남는 것이 없다 앓는 소리(?)를 해도 최소한 1지명 선수의 대국료 정도는 인상할만한 여력은 있을 것이다. 한국기원은 소속 선수들의 권익을 최대한 신장하려 애써야 하는 단체다. 억대의 주관료에 ‘므훗’ 하여 이런 부분을 등한시한다면 규정만을 내세워 소속기사를 붙들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승부인생의 기로에 선 이세돌 9단. 6월30일 기자회견과 7월2일 한국기원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향후 방향이 정해질 것 같다.
‘불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휴직’
한국기원과 동료기사들은 이9단의 바둑리그 불참에 부아가 났겠지만 나는 정작 일인자의 휴직에 더 망연했다. 도대체 이9단은 ‘일인자의 휴직’이 던지는 의미와 파장을 알고나 있는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던진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푸념 한마디가 많은 사람에게 지탄을 받은 것은 대통령이란 직분과 그 역할이 한갓 범부와 달라도 한참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부세계에서 일인자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그 자체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권력이라 할 것인데, 더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one of them이 아닌 것이다.
기사에게 휴직이란 뭔가. 대국을 하지 않고 쉰다는 얘기다. 휴직계를 제출한다는 것은 한국기원이 주최, 주관하는 모든 기전 출전을 중단한다는 얘기다. 한국기원 소속기사로서 한국기원이 주최, 주관하는 기전에 뛰지 않으면서 외국 기전에 출전할 수는 없다. 6월30일 휴직 후에도 중국리그는 출전하겠다고 했고, 구이저우(貴州) 팀을 꼭 우승시키고 싶다고 말한 바 있기에 하는 말이다.
모 기사의 말처럼 휴직 상태서 중국리그에 참가하겠다는 것은 코미디다. 계약이 체결된 것이고 이미 반 정도 뛰었으므로 올해 중국리그를 마저 소화하겠는 바람은 욕심일 뿐이다. 그런 논리라면 본선에 올라 있는 국내기전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명인전이나 국수전의 파행진행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내기전은 한국기원을 떠나 스폰서와 팬들에게 한 약속이 아니란 말인가.
불의의 사고나 건강상의 이유로 피치못해 휴직을 하는 게 아닌 다음에야 모든 금전적 손실과 도의적 책임을 감당할 각오를 하고 휴직계를 던졌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KBS바둑왕전은 공중파라서 어찌할지 모르겠고(바둑왕전은 TV기전이라 대국료를 출연료 개념으로 지급한다. 대국 펑크는 곧 출연펑크이고 이 경우 KBS에서 한국기원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고 한국기원은 다시 이9단에게 그 금액을 청구할 수 있다), 중국리그는 올해 소속팀이 우승 못하면 내년에도 참가해 꼭 우승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 휴직계를 냈어도 챙길 것은 챙기겠다는 속셈으로 비치지 않을까. 한국기원에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는 식의 정면 반발로 보이지는 않을까. 한국기원 이사진의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다는 한상렬 사무총장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이9단의 사려 깊지 못한 결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6월30일 오후2시 이세돌 9단이 비로소 입을 연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한번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그다. 30일은 이9단이 이날부터 휴직하겠다고 신청한 날이다. 그날을 일부러 택했는지 몰라도 아무튼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전라도 광주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한 바둑팬이 이번 사태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장문의 이메일을 내게 보냈다. 사신(私信)이긴 하나 이9단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대목이 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신안군에서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출생지인 비금도에 기념관까지 마련해 주고 거금을 들여 한국바둑리그에 신안 천일염 브랜드로 참여하였는데 고향사람들에게 격려는 못해줄지언정 하필 그 시점에서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선언하였는지, 한국기원에 무슨 서운한 점이 많아서, 휴직계 내고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려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본인의 입을 통해 진솔하게 듣고 싶습니다. 차제에 한국기원 측의 잘못이 있다면 겸허히 수용하여 시정하고, 또 본인의 잘못도 인정하여 유사한 일의 재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새로운 각오로 출발할 수 있는 생산적인 마당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4편의 칼럼을 통해 이9단에게 ‘인신공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날선 비판을 많이 하였다. 내겐 양날의 검인 글이고 감당 못할 부메랑이 될 수 있는 글이다. 이9단이나 나나 바둑이 좋아 한국기원 울타리에 들어왔건만 가연을 맺지 못하고 이렇게 악연만 잔뜩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이세돌은 사랑할 순 없어도 인정해야 하는 존재다. 단언컨대 그의 바둑만큼은 단 한 순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이세돌의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되어 이 시대의 진정한 일인자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밉고 볼품없는 돌도 돌탑을 쌓는데 필요하듯이 깜냥도 분간 못하는 사람이 주제넘게 쓴 졸고이긴 하나 먼 훗날 이9단의 바둑인생에 하나의 굄돌로 작용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원망을 듣고 욕설을 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감수하겠다.
사랑하는 사이는 자존심이 필요없다. 이세돌 9단이 사랑해야할 존재는 바둑이고 팬이다. 자존심 때문에 한시라도 바둑을 중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팬들의 염원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녕 사랑하는 존재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아도, 자존감을 알아주므로.
다음편엔 예고한 대로 바둑언론 종사자로서 윤기현 바둑판사건과 이세돌 9단의 백담사 지각 오보사건을 예로 곁들이며 ‘자아비판’할 참이다. 이번 이세돌 사태가 나를 포함한 바둑글장이들에게도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 칼럼은 이세돌 9단의 기자회견과 한국기원 이사회의 결과를 지켜본 뒤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