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거기에서 오랫동안 살 수는 없다. - 버나드 쇼
(들어가며) 1편 후폭풍이 심해 또 고민 무지 했다. 2편의 논조와 톤을 어느 수위로 가야할지. 그러나 지금 ‘마이’ 아파도 어설픈 봉합으로 원상복귀를 서두르기보다는 어차피 불거진 사태, 차제에 서로의 문제가 무엇인지 바닥까지 파헤치고 판이 깨질 데까지 깨진 다음이라야 마음가짐도 달라질 거고 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겠다 판단했다. 재출발할 때를 위해서라도 이게 도움이 된다. 박치문 위원의 말마따나 “봉합해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새살이 돋기 위해서는 각자 선연한 상처를 입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에 공감한다. 파탄을 부추기자는 게 아니다. 휴직계는 던져졌고 일인자는 이미 강을 건넜기에 하는 말이다. 돌아와서도 또 서로 그 식이 장식이라면, 애꿎은 바둑팬들만 고생이다.
1편은, 괘씸죄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려면 부득이 그 사례를 나열할 수밖에 없기에 그나마 감정을 여과할 수 있었다. 2편은 일인자론이다. 글쓴이의 주관과 주장이 안들어갈 수 없다. 이번에도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불편하게 맞대야 한다는 게 못내 불편하다. 어차피 이 칼럼을 시작하게 된 의도가 알고 있는 정보를 툭 터놓아 팬들로 하여금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으며, 이세돌이든 한국기원이든 바둑언론이든 차제에 마음의 거울을 닦듯 각자의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었다.
황정민의 밥상론
팬들은 바둑(기보)만 보면 되겠지만 밥상을 차려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밥상 얘기를 하니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떠오른다. 몇년전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감동바다로 만든 그의 ‘밥상론’,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스태프들이) 멋지게 차려놓은 밥상에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했다”는 그 말. 일인자는 가장 큰 과실을 따먹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로지 내 힘(실력)으로 딴 열매 내가 먹을 뿐 나머지는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면 곤란하다. 설마 배불리 먹고 달랑 저 한몸 빼내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게 일인자가 누리는 특권쯤으로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이9단이 평범한 기사였다면 이처럼 시끄러울 이유가 없다. 일인자니까 문제가 된 거다. 이세돌이니까 문제 삼은 게 아니고 일인자니까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거다. 일인자는 반드시 타의 모범이 되고 공인으로서 언행이 항시 반듯해야 하고 무조건 희생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런 그릇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상식과 기본’이라는 게 있다. 최소한 피해는 끼치지 않는 것, 이것은 유치원생도 배우는 사람 사는 세상의 기본예의다.
1편에서 이번 비씨카드배 결승전 기자회견이 이루어지기까지 관계자들이 마음 졸였던 뒷얘기를 들려 드렸다. 그럼 올해를 끝으로 사라진 도요타덴소배 얘기도 해보자. 과연 무엇이 상식이고 예의이며 배려인지.
▶2007년 1월 도쿄에서 열린 제3회 도요타덴소배 시상식은 스탠딩 파티로 진행되었다. 일본기원 행사주관팀의 스즈끼 부장이(여성이다) 우승자인 이세돌 9단에게 우승자로서 일본기원 이사장에게 감사인사 좀 드렸으면 좋겠다고 정중히 부탁했다. 일본기원 이사장은 도요타덴소배 주최사인 (주)덴소의 오카베 히로무 회장이었고 조금전 우승상금 2억5천만원을 전달한 VIP였다.
한국기원 관계자에게 이를 전해들은 이9단의 첫 반응은 “내가 (불편하게 그쪽으로) 왜 가야하죠? 꼭 해야 하나요?”였다. 우승자의 단호한 "NO!"에 스즈끼 부장은 당황했고 한국기원 관계자는 난감했다. 다행이 이9단을 설득하여 일본기원 이사장 쪽으로 갔을 때 마침 그는 다른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있어 조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 5초쯤이나 서 있었을까. 이를 불편해한 이9단이 정색하더니 한국기원 관계자에게 “이거 누가 얘기(요청)한 거죠?”라고 짜증을 냈고 사진을 찍자마자 권갑용도장 동문인 윤춘호와 곧장 시상식장을 나가버렸다.
▶2006년 3월 제7회 맥심커피배 결승2국은 대회사상 처음으로 사이판 해외투어로 치렀다. 이 무렵 이세돌 9단은 결혼한 직후였다. 축의금을 내고 축하했던 바둑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눈인사라도 나누는 게 예의일 것인데 출발 때부터 이9단은 인천공항 저쪽 끝에서 나타나지 않고 겉돌았다. 신부와 함께 하는 여정이어서 쑥스러워 그랬다고 이해하자. 이날 공교롭게도 비행기가 20~30분이 연발되었고 현지에 도착해서도 사이판 출입국관리소에서 바둑판이란 걸 처음 보다보니 이것저것 체크하는 통에 입국수속이 40~50분 또 지연되었다.
그렇지만 현지 분위기는 뜨거웠다. 유창혁, 양재호, 조대현 9단 등의 프로기사가 동행해 교민 바둑팬들을 위해 다면기와 공개해설을 할 예정이었고 핸드프린팅 등의 행사도 마련되어 있었다. 커다란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린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주인공인 이세돌 9단이 도착 다음날 점심 무렵 느닷없이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어달라고 요구해 발칵 뒤집혔다. 대국을 하지 않고 귀국하겠다는 거였다. 무엇 때문에 수가 틀린 것인지 도통 밝히지 않으니 공항에서 짜증이 나 몽니를 부린 거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조대현 9단까지 설득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주최사인 동서식품 홍보실장은 ‘결혼식장에 하객을 모아놓고 신랑이 나가버리는 꼴’에 황당해 했다. 그런데 다행히 저녁에 이9단 부인에게서 “대국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곡절 끝에 다음날 결승2국(대 최철한 9단)은 무사히 마쳤으나 이9단은 보따리를 싸서 다른 호텔로 거처를 옮겼다.
▲해외결승사상 최초로 기권패 사태라는 신기록(?)이 나올까 노심초사했으나 고맙게도 두어주었다.
바둑은 최철한 9단에게 져 1:1 타이스코어가 됐다.
불편함을 못 참는 이9단의 성격을 “천재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성격이고 개성이니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실 참인가. <인성>은 인성이고 <바둑>은 바둑인가? 천재기사면 그렇게 간단히 이분법적으로 모든 걸 해석해줄 수 있나. 천재면 다 이해되고 실력 ‘짱’이면 다 용서되는가. 이를 강력히 주장하시는 분들은 자기 자녀에게도 “공부만 잘하면 돼. 다른 건 중요치 않아”라고 가르치셨는가? 이세돌 9단도 자기 도장의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면 안되는 거다. 스폰서와 팬을 볼모로 대국거부 카드를 써서는 안되는 거다. 여럿이 애써 지은 밥상을 개인감정을 앞세워 뒤엎어버려서는 안되는 거다.
무엇을 위한 반발인가. 스케줄이든 대우든 무언가 불만이 있으면 그걸 밝히고 협상이라도 벌이는 게 상식 아닌가. 자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그러면 그 싫은 거라도 표현해야 맞춰주든지 묵살하든지 할 거 아니겠는가. 언제 딱부러지게 말이라도 해주었는가. 곧장 감정표현이나 하고 기껏 지나가는 투로 우물거리기만 하는 행위는 “내 마음이 이러하니 다들 알아서 맞춰달라”고 투정부리는 거나 같은데, 안타깝게도 주변 사람들은 관심법에 도통한 궁예가 아니다.
이번 한국바둑리그 불참 → 휴직으로 이어지는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형 이상훈 7단을 통해서나 몇 마디 퍼즐조각처럼 말을 흘릴 뿐 속시원히 자기 입으로 직접 밝힌 얘기는 없다. 그러니 그것이 형의 생각인지 이9단의 생각인지 모호하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오는 6월30일 기자회견을 갖겠다는 소식이 떴다. 휴직에 이르게 된 표면적인 사유들 말고도 아주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얽혀 있다는 주장이고 보면 그때라도 그간 품었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길 기대한다.)
이세돌은 개혁가인가?
이세돌 9단의 품행을 두고 기성 틀을 혁신하는 혁명가 이미지로 분칠하는 이들도 있다. 집단(한국기원과 기사회) 대 개인(이세돌 9단)의 갈등구도 앞에서 여론은 죄없고 힘없는 천재기사가 말 같지도 않은 괘씸죄에 걸려 거대조직으로부터 핍박받고 있다고 상정(想定)하며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혁정신과 처지에 빗대기까지 한다. 그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힘없는 ‘죽은 권력’이었다. 그럼 한국기원 앞에 이세돌 9단도 죽은 권력이었던가?
천만이다. 바둑세계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의 세계다. 올 오어 낫싱( 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의 세계다. 실력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피라미드 구조, 그 정점에 가장 센 자가 위치하여 가장 많은 전리품을 챙긴다. 따라서 바둑세계의 일인자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살아있는 권력’이다. 이세돌 9단이 휴직계를 제출하자 바둑계가 발칵 뒤집어졌고 한국기원은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이 일인자의 위치와 힘을 입증한다. 이9단 역시 이러한 역학관계를 잘 알기에 ‘휴직 카드’로 한방 먹인 것이다.
승단대회 개정을 대표 사례로 꼽아 이9단을 선구자, 개혁가라고 추켜세우는 팬들도 있다. 이참에 호도된 사실 제대로 잡아야겠다. 명색이 바둑글 쓰는 일부 양반도 그렇게 쓰고 있는 지경이니…. 그거 사실 아니다. 2000년 초반의 바둑계 상황은 기전이 늘어나고 대국이 몰리면서 대국료 없는 대국(승단대회)에 대한 재고가 대두되었다. 이에 많은 기사들이 상당기간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 이루어낸 성과물이 승단대회 개정이다. 이세돌 9단의 승단대회 불참은 이러한 이타(利他)적 행동이 아니라 그냥 승단대회가 자기에게 이득될 게 없다고 판단해 내린 이기(利己)적 결행에 지나지 않았다.
현행 승단규정의 모태가 된 승단대회 개정은 2003년 2월8일 제71회 상임이사회에서 일부 수정하여 통과되었다. 특별승단제도 중 승단 가능한 국내대회를 랭킹1~3위 기전으로 하였으며 국제대회 우승은 3단 승단, 준우승은 1단 승단, 국내 랭킹1~3위 기전 우승은 2단, 준우승은 1단 승단 등을 골자로 하는 안이었다. 현재는 국내 랭킹4위 이하 기전의 우승자에게도 1단 특별승단 혜택이 있으며 상하반기 총10국의 승단대국은 랭킹10위까지의 기전 예선 첫판 성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은 1999년 하반기 두번째 승단대국에서 최철한 9단을 이겨 3단에 승단했으며 2001년 하반기 77회 승단대회부터 불참하다가 2003년 2월 승단규정 개정 직후 그해 3월~7월까지 국내외 기전에서 우승, 준우승하면서 단숨에 9단까지 내달았다.
개정한 승단대회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은 기사가 이세돌 9단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의 승단대회 불참이 승단대회 개정을 촉발한 계기가 되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의 참고 사례는 되었겠지만 승단대회 개정을 논의하고 확정하기까지 애쓴 사람들을 제치고 이9단에게 그 공을 돌리는 것은 그들의 노고에 대한 무례이다.
‘언터처블’ 이세돌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반상에서 이룬 이세돌 9단의 업적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폭풍 같은 그의 바둑을 그 누구보다 찬탄하고 좋아한다. 이 시대의 바둑영웅임에 분명하다. 사람들은 영웅과 자기를 동일시하려는 열망이 있다. 영웅은 항시 완벽해야 하고 완전해야 하며 영원해야 한다는 열망이 전설을 만들고 신화를 만든다. 이런 신봉자에게 불편한 진실은 거론해서는 안될 불경(不敬)이다. 우상숭배는 이렇게 등장한다.
진정 이세돌 9단을 좋아해주는 건 그를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영웅이지 완전한 신으로서 영웅이 아니다. 바둑에서 이룬 업적이 인간적인 결함을 상쇄해준다는 시각은, 영웅의 좋은 면만 골라 보려는 우리들의 욕망이 부른 착시다. “이세돌의 태도나 스타일이 맘에 안 드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 취향이니 어쩔 수 없다”는 단순한 사고로 일인자로서의 역할, 책무 따위를 방기하는 행동을 미화하고 박수쳐서는 안된다. 그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만들 뿐이다.
이세돌 9단의 성격은 그의 바둑처럼 ‘언터처블(untouchable)’이다. 내키지 않는 것은 절대 안하고 옳다고 생각하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성격은 소문났다. 이러한 성미 때문에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면서 ‘독불장군’ ‘외골수’ 소리를 듣는다. 아주 어려서부터 부모 품을 떠나 바둑 한길만 파다보니 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제는 8년전 열아홉 살의 청소년이 아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고 우리나이 스물일곱의 성인이다. 무엇보다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우리들의 일인자다. 물론 싫은 건 싫은 거다. 싫은 걸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그 위치에서는 싫더라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이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이면 더욱 좋고, 설령 자기만의 원칙이더라도 관계하는 스태프들은 예측가능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이 통하는 최소한의 소통이다.
‘건반의 수도승’으로 불리는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라는 긴 이름을 가진 전설적인 피아니스트가 있다. 클래식음악계에서 이 사람만큼 괴팍한 성미를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의 발표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무대에 들어서고도 한참 동안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냥 자리를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선생은 아마도 무대가 무서워서 그러려니 여기고 다시 내보려는 순간 아이가 돌아왔다. 그러자 의아해진 청중이 비로소 조용해졌고 그제야 아이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체르니의 연습곡을 연주하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령 관객이 기침 3번을 하면 연주를 중단한다던가 하는 괴팍한 원칙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정도는 약과다. 계약했던 음반사가 파산하면서 이탈리아 법정에서 집까지 빼앗기는 배상판결을 받은 이후 1970년 스위스로 이주한 그는 그때부터 자기 연주회에 조국 이탈리아 청중을 거부하였다. 1993년에는 애초의 약속을 어기고 주최측이 80여 장의 표를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팔았다는 이유로 잡혀 있던 4차례의 런던 연주회를 취소하기까지 했다. 어떤가. 이쯤되면 미켈란젤리의 기벽도 9단급은 될 듯한데, 자기의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거부하는 데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피아노의 수도승으로 불리며 명반을 많이 남긴 미켈란젤리.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