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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이세돌? 다시, 이세돌!
 


“또, 이세돌?” 바둑계 최고 이슈메이커인 이세돌 9단의 그간 행보를 함축하고 있는 조크다.
“다시, 이세돌.” 이세돌 9단에 대한 비평글을 8년 만에 다시 쓰고 있는 내 심경을 압축한 말이다.

이 짧은 두 문장의 두 부사 “또”와 “다시” 사이에는 바둑계의 보이지 않은 고민과 사사로이는 바둑기자로서의 내 개인적 갈등이 묻어있다. “또”(그러나 이번의 ‘또’는, 휴직계란 핵폭탄을 던진 마당에 평소의 ‘또’와는 폭발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세돌을 바라보며 “다시”(이번 역시 적잖은 파고를 일으켜 그 파장이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올 것을 각오해야 하지만) 이세돌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결심했고 ‘누군가 한번은’ 얘기해야할 문제라면 그 한번은 세계바둑사상 유례없이 일인자가 휴직계를 낸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이세돌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바둑의 좌절이기도 하다. 이게 어디 보통일인가?

이세돌의 사태는 4월말 한국리그 불참 통보로부터 일파만파 번지기 시작해 휴직계 제출로 정점에 치달은 듯 보이지만 세상에 느닷없이 폭발하는 화산은 없다. 화산이 분출하기까지 지각 아래에서 요동치는 용암의 활동과정이 보이지 않듯 ‘이세돌의 뇌관’은 그 이전, 그러니까 8년전 내가 대놓고 실명비판하던 그 이전부터 안고 있던 문제였다. 바둑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인데 단지 그 놈의 ‘성깔머리’ 때문에 내가 나섰을 뿐이다. 8년전 이세돌은 떠오르는 태양이었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사로 자리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때 이세돌은 열아홉 살 청소년이었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사실로 하여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기사로서 공인의 자세를 요구한 내 논지는 괜한 트집이나 잡아 천재의 기를 꺾으려는 ‘내부고발자 행위’로 비난 받았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 동료기사들이 투표로써 일인자가 된 이세돌 9단에게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며 결의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이세돌 9단은 휴직계를 던졌다. 1년 6개월 한시적이긴 하지만 급작스런 이세돌의 활동중지 선언에 팬들은 한국기원과 기사회에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조치 필요’를 강변했던 조훈현 9단은 이 발언 하나로 졸지에 바둑황제에서 뭇매를 맞는 신세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 전 기사회장 한철균 7단은 신문지면을 통해 공개적으로 기사회와 한국기원의 처사가 잘못되었다고 질책하며 ‘후배 천재기사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반성했다.

징계할만한 사안도 아닌 걸 가지고 지난날의 돌출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참에 이세돌을 ‘탄핵’했다는 게 한국기원과 기사회를 비난하는 주된 목소리다. 이른바 괘씸죄론. 들려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이세돌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억울해하는 듯하다.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겠지만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받아들일 여지도 있다. 기사회가 모종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상정한 3가지 사안은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는 것들이며 따라서 투표결과는 순전히 괘씸죄에 지나지 않다고 항변한다. 이런 상황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한국기원은 여론싸움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다.

그래, 괘씸죄를 적용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얼마나 괘씸했기에 법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괘씸죄까지 끌어다 단죄하려 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기사회도 한국기원도, 소식을 전하는 기자들도 그 구체적인 ‘괘씸죄의 죄목’에 대해선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세돌의 돌출행동’ ‘일인자답지 못한 자세’를 문제 삼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발언인지 아니면 거론하는 자체가 바둑계의 치부라 차마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이세돌 9단을 비호하고 나선 한철균 7단조차 그런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일언반구 않는다.

냉정하게 따져 보자. 이세돌 9단의 언행을 비판하는 것과 한국기원을 두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세돌 사태와 윤기현 사건 또한 성격이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관련지어 핏대를 세운다. 8년전 일개 바둑잡지 편집장이 비판글을 썼을 때는 프로기사의 권위를 훼손했다며 못마땅해 했고 이후에도 여전히 돌출행동을 저질러도 보호하려 애썼던 동료기사들이었다. 그런 기사들이 어찌하여 8년 후엔 투표에 부쳤을까? 도대체 얼마나 괘씸했기에 그랬을까?



이세돌 사태는 예고된 필연
이번 사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런 부분에 대한 상황설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바둑계의 베테랑 기자들조차 “언제든 돌아오라” “소소한 것은 버려라” “서로 대화하고 화해하라” 투의 정서적인 글로 변죽만 울릴 뿐 사안의 핵심을 찔러주지 않는다. 뉴스도 드러난 현상만 전할 뿐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원인과 배경을 제대로 짚어준 기사는 안 보인다. 이 정도로는 수박의 겉밖에 바라볼 수 없는 정보의 양이다. 그러니 ‘강 건너’ 팬들로선 수박이 속조차 푸른지 붉은지 알 길 없이 중구난방 갑론을박하고 있는 것이다. 바둑계의 속사정에 밝지 못한 팬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다 쳐도 한철균 7단의 글은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기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 차원을 넘어 존재의 정당성까지 부정하는 대목이 엿보이며 만약 이런 각도에서 기사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여론이 왜곡된다면 자칫 바둑계는 내홍(內訌)으로 이어져 심각한 분열상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소모적 논쟁이 가장 우려스럽다. 설령 내부고발자로 또 낙인찍힐지언정 한번 더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이번 ‘이세돌 사태’는 드러난 팩트만 가지고 봐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자면 천상 이세돌 9단의 괘씸죄 사례를 적시할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재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이며 따라서 기존의 관점과 관습으로 재단해서는 안되고 어떤 경우에도 개성과 기를 살려주어야 한다느니, 승부세계에서 실력만 세면 장땡이지 케케묵은 윤리도덕을 강요하지 말라느니, 특히 지난 일을 들추지 말라며 핏대 세우시는 분들께서는 이런 사례들을 읽고 나서도 동료기사들의 표결행위가 납득되지 않거들랑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말라. 이 따위 인신공격성 글로 일인자를 음해하고 바둑계 발전을 저해하는 짓이나 일삼는 내게도 돌을 던지시라. (대신 이런 분들께 간곡히 부탁하노니, 귀하의 자녀나 손자들에겐 절대 바둑을 가르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바둑계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윤리고 품성이고 다 필요 없고 승부세계의 일인자가 갖춰야할 미덕은 오직 실력뿐이라고 믿는 분에겐 개 풀 뜯어먹는 소리겠지만, 나는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논란은 일시적 돌발변수가 아니라 승부지상제일주의의 그늘이 파생한 돌연변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이 담론으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바둑계의 미래는 암울하다.

두어 달 ‘이세돌 사태’의 추이를 묵묵히 지켜보면서 글을 써야할 것인지 외면할 것인지를 두고 무척 갈등했던 중심에는, 만약 나서게 된다면 ‘괘씸죄 항목’을 우회할 수 없을 것인데 이러한 공개가 이세돌 9단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체가 바둑계의 부끄러운 일면이기도 하기에, 무엇보다 바둑을 배우는 꿈나무와 학부모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들이었다. 한국바둑 일인자의 의식수준을 까발려 국제적인 망신을 준 경거망동이라고 나무라도 항변하지 않겠다. 그러나 향후 제2, 제3의 이세돌을 위해서라도, 돌아올 이세돌 9단의 내적 성숙을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우리 바둑계의 진일보를 위해서라도 비굴하게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이 기회에 그를 옹호하여 환심을 사는 것보다 양심적일 것이다.

가끔 운명은 우연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세돌과의 이 코미디 같은 악연 앞에서는 필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인자가 불행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슬프다. 칭송받지 못한 일인자를 가진 우리의 시대는 불행한 것이다. 차제에 이세돌 9단뿐 아니라 한국기원과 바둑글장이로서의 자아비판까지 연거푸 쓸 생각이다. 몇 편이 될지 알 수 없으나 한국기원 이사회가 열리는 7월2일 이전에는 후속편을 모두 올리겠다.

2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아래에 든 사례는 내가 알고 있는 사건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인자면 공인 중의 공인이다. 공인으로서 공개적인 행사와 장소에서 행한 이세돌 9단의 행적 중 대표로 몇 개만 밝힌다. 연예계나 스포츠계 같았으면 하다못해 가십으로라도 기사화되었을 것들이지만(차라리 그랬더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철균 7단 같은 선배들께서 이제와 ‘지못미’를 후회하실 것이 아니라 진작 따끔하게 야단쳐 가르치지 못한 ‘방치’를 후배에게 더 미안해하셔야 하는 것 아닌지.) 아주 보수적인 바둑동네다 보니 필시 인신공격입네 망신주기입네 짱돌을 던질 게 뻔하기에 사적 행위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들은 빼고 공적 선상에 놓인 사례라고 생각되는 것들만, 이것도 최근 것들로 엄선했다. 물론 이마저 사감이 개입될 것을 우려해 순전히 사실 내용만 ‘드라이’ 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1. 사인거부

사인거부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우승자가 스폰서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전할 바둑판이나 결승(도전기) 두 대국자가 대국판에 사인하는 것은 바둑계의 관례다. 하지만 굳이 응하지 않으면 사실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세돌 9단은 어릴 때부터 사인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그토록 까다롭게 구는 사인을 중국리그나 남방장성배 같은 행사에서는 흔쾌히 하더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실망감이 들 수밖에 없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최근의 대표적인 사인거절 사례 몇 가지만 들겠다.

1) 한국바둑꿈나무장학금

한국바둑꿈나무장학금은 LG전자 구자홍 회장(한국기원 이사 역임)이 프로유망주 8명이 갓 입단했을 때부터 타이틀을 딸 때까지 6개월마다 500만원씩(타이틀을 획득하면 특별장학금 500만원을 따로 더) 지급하던 후원 장학회였다. 이세돌을 비롯 박영훈, 최철한, 원성진, 조혜연, 강동윤, 김지석, 윤준상 등 주로 권갑용도장 출신의 신예들이 도움을 받았다. 구회장은 이들이 모두 타이틀을 따자 10여년간 이어오던 후원을 끝냈고 2008년 초 한 호텔에서 종결기념 자리를 가졌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선배 이세돌을 제외한 나머지 장학생 전원이 구자홍 회장과 이헌조 고문에게 드릴 바둑판 두 개를 미리 마련해 사인을 했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후배들은 이세돌 9단도 당연히 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종결식 당일 호텔 현장에서까지 부탁을 거듭했으나 거부했다. 이 과정을 알 리 없는 이헌조 고문이 먼저 바둑판을 보고는 “어? 이세돌 사범 사인이 빠졌네.”라고 지적하고 기왕이면 전원의 사인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바둑판 2개는 한국기원으로 돌아왔고 난감해진 관계자들은 다시 이세돌 9단에게 간곡히 부탁했으나 끝내 거절했다. 결국 사인 한 자리가 빈 바둑판이 전달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LG전자는 일반기업으로는 유일하게 3천만원 규모의 LG한마음바둑대회를 여는 등 구회장의 바둑사랑이 남달랐다.


2)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즈

2008년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즈 남자단체전 시상식에서 중국기원 관계자가 한국대표팀의 사인을 부탁했다. 주최측(WMSG)에 기념으로 남길 부채로 일본, 중국 선수 등 대회 참가선수 전원이 사인했다. 이러한 설명에 시상식 현장에서 한국선수들도 모두 하였으나 이세돌 9단만은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다시 중국기원 관계자가 주최측에 전달할 것이므로 이세돌 9단의 사인이 꼭 필요하며 호텔로 부채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까지 끝내 승낙하지 않아 결국 이세돌 9단만 유일하게 사인을 하지 않은 채 귀국했다. 당시 동행했던 한국의 선수단 임원은 국제 관계자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며 그때의 심정을 전해주었다.

3) 바둑리그 제일화재팀

이세돌 9단은 2008년 한국바둑리그에서 제일화재팀으로 뛰었다. 대회가 끝난 뒤 이홍렬 감독이 구단에 증정할 바둑판에 사인을 요청하였으나 승낙하지 않았다. 결국 김수장 9단 등 다른 선수들의 사인만 담은 채 전달되었다.

4) 하이원배 명인전

이세돌 9단은 제36기 하이원배 명인전 우승자다. 2008년 12월21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결승4국 전야제가 열렸다. 한국기원은 이때 전야제에서 하이원 사장에게 전달할 바둑판에 양 대국자의 사인을 담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이9단에게 미리 부탁했으나 거부해 애를 태웠다. 결국 하이원리조트에 도착한 김인 9단이 이 얘기를 듣고 설득에 나서 전야제 이전에 간신히 사인을 받아냈다.


2. 시상식 불참
부득이한 사정으로 시상식에 지각할 수는 있다. 피치 못할 땐 사전 혹은 당일 직전에라도 연락을 주는 것이 상식이다.

1) 2004한국바둑리그

2005년 1월 열린 2004한국바둑리그 시상식에 불참해 당혹케 했다. 이세돌 9단은 당시 우승팀 한게임의 주장이었으며 MVP에 내정돼 있어(MVP는 사전에 통보한다) 파문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2)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즈 포상식

2008년 11월 제1회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즈 남자단체전에서 우승한 대표팀 6명에게 각 사전 약속한 우승포상금 500만원과 허동수 이사장이 특별히 지급하는 보너스 500만원씩을 전달하는 자리가 있었으나 펑크냈다. 그날은 이사회가 열린 날이고 이사회 직후 포상식을 잡았기에 다른 이사들도 많이 자리했다. 당연히 이사장이 직접 시상하므로 한국기원에서 사전에 꼭 참석해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3. 전야제 및 추첨식 불참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일인자시절 전야제나 기전행사에 잘 참석하지 않아 일본기원 관계자들을 골치 아프게 한 바가 있다. 보다못해 일본기원에서 계속 그러면 징계하겠다고 경고했고 이후로 고바야시 9단은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전야제나 추첨식, 팬사인회, 혹은 기자회견(개별 인터뷰가 아닌 대회인터뷰) 등은 기전 규정에 명시돼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팬서비스 차원에서 생각해야할 것들이다. 이런 데 신경 빼앗기는 걸 이세돌 9단만 싫어하는 게 아니다. 전후반 풀타임으로 뛴 축구선수들도 가쁜 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공식 인터뷰 석상에 나온다. 스포츠에서는 심지어 패장들도 자리한다. 첫대회 이후 한국바둑리그 기전계약서에 종국 후 승자는 반드시 인터뷰에 응해야 한다는 규정을 박아넣게 된 것을 발전이라 볼 것인가. 바둑룰처럼 반외의 부분들조차 관례와 상식에 기대지 못하고 미주알고주알 규정을 정해놓아야만 안심할 수 있는 세상, 과연 누가 더 불편해질까. 프로기사 자신들 아닐까.

얼마전 끝난 비씨카드배 결승에 구리 9단과 조한승 9단이 올라갔다. 주최측에서는 대회 홍보를 위해 결승진출자 두명의 기자회견을 요청했다. 그러기 위해선 준결승전을 벌이기 전 4명에게 미리 답을 얻어두어야 한다. 3명은 흔쾌히 약속했으나 우려했던 대로 이세돌 9단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조한승 9단이 이세돌 9단을 잡았을 때 남몰래 애태우던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는 말, 참말 씁쓸하지 않은가.

1) 후지쯔배 8강 추첨식

올 4월13일 일본 도쿄에서 제22회 후지쯔배 16강전이 끝나고 8강 추첨식이 이어졌다. 일본 바둑팬들이 이세돌 9단을 보려고 해설장을 뜨지 않고 구름같이 모인 상황. 그러나 이9단은 추첨도 안하고 제 방으로 가버려 한국단장인 김인 9단이 노구를 이끌고 단상에 나가 대신 추첨을 했다. 이9단이 여타 대회에서도 추첨을 잘하지 않거나 사진촬영 비협조, 인터뷰 요청 거부 등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 천원전 비금도 결승대국 및 신안군 이세돌기념관 개관 전야제

2008년 12월26일 이세돌 9단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비금도 이세돌기념관에서 제13기 박카스배 천원전 결승2국이 벌어졌다. 이세돌기념관의 개관 자축을 겸해 신안군이 유치한 대국이었으니 이세돌 9단의 홈링이었다. 서울에서 25일 아침 선수단과 동행하기로 한 이세돌 9단은 오전 형 이상훈을 통해 몸이 안좋아 따로 대국장으로 가겠으며 전야제에도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 때마침 그날 기상 악화로 배편이 묶이는 바람에 비금도에서 열기로 한 전야제도 목포에서 치렀는데 신안군수도 참석한 그 자리에 홈 선수는 불참한 채 강동윤 9단 혼자 뻘쭘하게 앉아있는 어색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세돌 9단은 대국 당일(26일) 아침에 목포에 도착해 선수단과 함께 비금도로 들어갔으며(배편이 당일 아침에나 열려 대국도 늦었다) 감기몸살에 걸렸다고 해명했다.

당일 대국장에 도착하는 행태를 “임전 자세에 문제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컨디션 문제로 부득이한 경우까지 야박하게 몰아붙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9단은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벌인 삼성화재배에서도 당일 내려오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고 지난 2월 백담사에서 벌어진 제13회 LG배 결승전(대 구리 9단)의 새벽 도착은 특히 구설에 올랐다. 이로 인해 한국기원이 “하루 먼저 가겠다는 일인자의 의사를 묵살했다”는 엉뚱한 오해를 사 팬들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다. 얘기가 길어질 듯하여 이에 대한 진실은 연재 말미에 바둑언론을 거론할 때 밝히도록 하겠다.

4월26일 열린 기사총회에서 문제 삼은 안건은 △이9단의 한국바둑리그 불참 △중국바둑리그에서 받는 대국료 중 5%를 기사회에 내지 않는 문제 △시상식에 불참하는 것 3가지였다. (△기보저작권 위임 서명 거부 문제는 안건에 들어있지 않았다.) 글이 길어졌다. 이 부분에 대한 내 관점은 다음편에서 풀어놓겠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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