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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설화]바둑으로 맺어진 효성왕과 신충
 
우리나라 고대 역사책으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쌍벽을 이룬다.

고려초기의 문인 김부식이 서기 1145년에 펴낸 삼국사기는 중국의 정사를 본떠서 엮은 기전체의 역사책이며 삼국유사는 그로부터 약 1백40년 후인 고려중기에 유명한 승려 일연이 운문사 주지승 시절에 지어낸 책으로서 삼국사기에 없는 삼국시대의 전설과 일화들을 수록했다.

특히 삼국유사는 단군의 전설과 여러 개국전설, 시조전설, 지명의 기원 등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어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선인들의 사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삼국시대의 바둑이야기가 역사책에 나온 것은 삼국사기에 두 군데, 삼국유사에 한 군데, 도합 세 군데 뿐이며 삼국유사 제5권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와 함께 향가 한 수가 적혀 있다.

신라 34대 임금 효성왕의 왕자시절 성명은 김승경이며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소덕왕후이다.

승경왕자는 성품이 어질고 총명해 덕망과 학식 있는 문인 학자들과 사귀기를 좋아했는데 승경왕자와 가장 친근한 인사 중에 신충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신충은 성격이 온유하고 학문이 높았으며 바둑을 잘 두어서 승경왕자와 좋은 적수였다. 둘이서 대국을 시작하면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고 두 사람의 우정은 바둑을 통해서 더욱 돈독해졌다.

그들은 여름철, 날씨가 더울 때면 궁중 뜰 안에 있는 큰 잣나무 아래서 대국을 하며 때로는 시문을 논하고 세상이야기도 했는데 하루는 승경왕자가 잣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다가 신충에게 이런 맹세를 했다.

"나는 그대와의 우정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만약 후일에라도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이 잣나무가 증언을 하리라."

이에 신충은 너무나 감격하여 절을 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서기 737년 성덕이 재위 36년만에 별세하고 승경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니 이가 곧 효성왕이다.

효성왕은 왕위에 오르자 즉각 죄수들에게 대사면령을 내리고 법령을 고치고, 인사조처를 단행하는 등 새로운 정치를 시작했다.

상대등(영의정자리)에 정종을 임명하고 의충을 중시(벼슬이름)로 삼았다. 그러나 태자시절에 가장 절친했던 바둑친구 신충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신충은 혼자 말하기를 "새 임금께서 즉위한 초기이므로 정무에 바빠서 총망 중에 나를 잊고 있을 뿐이지 나를 버릴 사람은 아니다. 기다리자."하고는 일각여삼추로 임금의 부름을 학수고대했으나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임금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신충은 임금의 신의 없음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원망하는 마음은 자꾸만 쌓여서 한이 되었다.

그는 예전에 효성왕이 왕자시절에 자기와 바둑을 두며 맹세했던 그 잣나무 밑에 찾아가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서 붙였다.

무릇 저 잣나무
가을 아닌데 시들어지네
너를 어찌 잊으랴 하시던 말씀
우러러 뵈옵던 낯이 계시오나
달 그림자 비친 연못에
가는 물결 하소하는 듯
님의 얼굴 뵈올 건가
세상일 애처롭네


잣나무에 신충의 한맺힌 노래가사가 붙은 뒤부터 이상하게도 나무는 잎이 마르고 가지가 축 늘어지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궁중 뜰을 산책하던 효성왕이 예전에 무성하던 잣나무가 갑자기 말라죽어 가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신충의 노래가 붙어있는 것이었다.

효성왕은 그제사 크게 깨닫고 국사다망하여 옛날 바둑친구를 잊은 것을 후회하면서 신충을 불러서 높은 벼슬을 주니 말라 죽어가던 잣나무가 되살아났다.

삼국사기 제9권 신라 효성왕편을 보면 '효성왕 3년(서기 739년) 정월에 왕은 조고묘를 참배했다. 중시 의충이 죽으므로 신충을 중시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효성왕은 왕위에 오른 지 6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위에 적은 신충의 노래는 신라 향가 25수중의 한수이다. 위의 노래 제목을 후세사람들은 '백수가(栢樹歌=잣나무의 노래)' 또는 '원수가(怨樹歌=나무를 원망하는 노래)라고 칭한다.

그후 신충은 경덕왕 16년(서기 757년)에 상대등이 되었다가 경덕왕 22년 벼슬을 사직하고 단속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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