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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우와 화타- 수술중에 바둑두는 관우
 
- 관운장의 IDEA - 바둑을 즐긴다. 그리고 잊는다.

[배경]
도원결의. 삼국지. 조조. 유비. 관우. 장비. 여포. 손권등 우리에게도 중국의 삼국지의 사건들과 그 등장인물들은 결코 아주 낳선 이름들이 아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세운 진왕조의 뒤를 이은 한(漢)나라가 왕조말기에 이르러 크게 분열되는데 이때 잠시 군사적 영웅들인 조조,유비, 손권의 세나라가 정립한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영웅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소설적인 장르로 만든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 三國志, 삼국지연의)이다.

중국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이라 불러도 될만한 이 서사시 같은 역사 소설에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바둑이야기가 한편 있다. 바로 도원결의 삼형제중 수염이 길고 너무 멋있어서 미염공(美髥公)이라는 별칭이 있는 관우 운장의 이야기이다.

배경은 적벽대전이 끝나고 삼국이 정립(鼎立)한 때이다. 조조는 가장 강력했던 위의 주군으로 통일전쟁을 일으키나 유비의 군사 제갈공명과 손권의 군사 주유가 눈부시게 활약한 적벽대전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후퇴한 후, 기회를 노리게 되는데, 유비는 적벽대전의 전과로 형주를 얻고, 그곳을 기반으로 다시 군사적 요충지인 촉에 입성하여 자리를 잡게 된다. 형주를 지키는 제후는 유비의 의제(義第)로 강직한 관우가 맡게된다.

적벽에서 패한 위나라는 관우가 지키는 형주를 도모할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으며.또한 적벽대전의 또 다른 승자인 오나라의 손권은 형주를 유비에게 빼앗긴 것으로 생각해 불만을 가지고 있어서. 역시 위나라처럼 형주를 자신의 땅에 복속시킬 염원을 지니고 있었다.

관우가 먼저 전쟁을 시작한 것은 조조의 위나라 군대였으며, 큰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조의 용맹한 장수인 방덕의 군대와 전투를 치루는 중 관우는 팔에 독화살을 맞아 상처가 심해지는 위중한 상황을 맞게 된다. 즉 상처에서 나는 열로 말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을 정도로 상처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관우의 소문을 듣고 그를 치료하고자 달려온 사람이 전설속의 신의(神醫)로 소문난 華陀(화타)였다.

[상처의 살을 찢고 뼈를 긁어내는 수술중에 바둑을 두는 관우]

관우와 만난 화타는 상처를 살펴보고 독이 뼈까지 침투했으니 오염된 살을 도려내고 독이 침투해 있는 뼈를 긁어내면 완치가 가능할 것이라 진언했다. 관우는 곧바로 시술에 대한 허락을 내려 화타로 하여금 자신의 상처를 수술하게 했다.

이에 화타는 시술을 위해, 환자가 고통에 몸부릴 칠 경우를 생각해, 환자의 몸을 먼저 묶으려 하나 관우가 이를 제지하며 바둑판과 술을 대령하게 한다. 그리고 화타가 한팔을 치료할 동안 다른 한팔로 자산의 진영에 있던 마량과 대국을 하게 된다.

화타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상처를 째고, 독에 오염된 뼈를 긁는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수술을 지켜보는 참모들은 모두 피냄새와 상처냄새. 그리고 뼈긁는 소리에 안색이 창백해져 가는데, 정작 관우와 상대 대국자인 마량은 이에 미동도 없이 조용히 대국을 두었다. 마치 대국자들의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오히려 옆에서 시술을 지켜 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수술받는 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화타가 오염된 뼈를 모두 긁어낸다음,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을 무렵, 관우가 두던 바둑도 거의 종국이 되었다.

관우는 시종 시술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담담하게 마량과 바둑에 관한 담소를 나눴다고 하며. 성공한 수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화타에게 큰 상을 내리려 했으나 화타는 거절하였다. 화타는 장군같은 환자는 처음 보았으며, 명환자가 있기에 명의가 존재할 수 있었다며 유유히 길을 떠난다.

[바둑두는 武將, 관우의 아이디어IDEA Review]
관우는 아마도 굉장한 바둑의 고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군인으로서 바둑에 관심이 많고 때때로 즐기는 그러한 타입이었을 것이다. 바둑은 정적인 두뇌스포츠이자 자리에 앉아서 몰두해야 하는 놀이(보드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군인들이 좋아하는 경우가 예부터 많은데 이는 바둑용어가 많은 부분 군사용어와 유사하기 때문일것다. 포석, 포진, 공격, 삭감. 침투.등 주요한 개념적인 용어들이 바로 군인들이 쓰는 말이나 개념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다. 관우는 바둑에 호감이 있기는 한 것 같지만. 바둑을 통해서 무슨 기발한 군사전략을 유추하거나, 인생의 커다란 의미를 찾으려 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바둑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바둑의 즐거움을 최상으로 삼으려 했을 뿐이다.

추측컨대 사실 뼈를 깎는 시술에 마취제도 없이 버티기는 힘들테고, 중국 특유의 과장이 심한점을 감안한다면, 시술이 대단치 않은 정도였거나, 아니면 화타가 요즘의 마약류에 해당하는 약제를 분명 국부의 마취제로 썼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의료시술이건간에 살을 째고 뼈를 보이는 수술자리에서, 태연하게 바둑을 두는 것은 대단한 배짱이자 낭만임에 틀림없다. 이야기로 살펴본 관우의 바둑 특징은 바둑 한판의 승부에 대한 끈끈한 집념이나 집착이 아닌. 한판의 바둑에 대한 깨끗한 집중과 소박한 즐김에 있다. 중독과는 차원이 틀린 집중과 명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관우의 IDEA는 이미 말한듯이 한가지에 정신을 집중하게 해주어 삼매경의 상태를 가능하게 하는 바둑의 맛을 즐긴데에 있다. 때로 바둑의 고수들은 바둑에 죽고 살지만, 관우는 그러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한판의 바둑을 성실히 즐기고,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바둑 본연의 놀이로서의 기능. 그 기능을 가장 극적으로, 멋있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삼국지의 거성(巨星) 관우이다.

[관우와 화타의 최후]
●....관우
관우는 유비를 군주로 모시는 신하이면서, 동시에 의동생이지만 유비와는 상당히 다른, 또 다른 유형의 지도자로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삼국지에 보면 형주땅에 그가 남아있는 동안 그를 따르는 수 많은 참모들이 나오는데, 관우의 참모들을 보면 유비를 섬긴다기 보다는 관우를 섬긴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즉 관우의 참모들과 부하 장수들은 관우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우의 특징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강직하다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신용과 의리에 있다. 우리도 그러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가끔 보는데, 그들은 항상 의지가 되고 믿을 수 있으며 곁에 있으면 든든한 그러한 사람들이다. 어쨌든 관우는 이러한 강직한 성품으로 조조에게 맞섰으며, 또한 손권에게도 맞섰다. 제갈공명의 전략대로라면 조조와는 전쟁을 하고, 손권과는 화친을 해야 마땅하고 그랬더라면 훨씬 오래살았을 것이지만 관우의 카리스마는 그런 계책을 거부하고 양쪽과 맞서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손권에게는 제갈공명에 필적하는 괄목상대(括目相對)의 주인공 여몽이 있었으며, 여몽은 조조의 위나라와 대규모 전쟁을 거치며 피곤해진, 관우의 군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연전연승. 결국 형주 근처의 산성에서 농성하던 관우와 그의 부하장수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생포하게 된다.

오나라에 붙잡힌 관우는 손권의 간곡한 항복 권유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죽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관우가 절개를 지키고 참수당하던 날, 관우와 같이 생포되었던 양아들이자 평생동지인 관평. 그리고 그를 목숨처럼 따르던 부하장수들 모두가 관우를 따라 항복을 거부하고 목이 잘려 죽었다.

관우가 죽은 뒤 관우는 신(神)이 되었다. 비장하게 죽은 전쟁영웅이나 왕들은 죽은뒤에 민중들의 추모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관우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우리한테는 고려시대의 최영장군이 이러한 경우가 될 것인데- 삼국지의 주인공인 조조나, 관우가 주군으로 모신 유비, 혹은 제갈량은 사후(死後)에 관우와 같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관제묘로 대표되는 관우에 대한 민간신앙은 중국인들에게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모든 부하가 자신의 뜻을 따라 같이 행동했던 죽는 순간과, 죽은 뒤의 대접으로만 본다면 관우는 비록 참수를 당했어도 그리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타(華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각종 신비한 소문의 화타는 의술과 관련된 기행을 계속하던중, 나이가 들어 정신질환 비슷한 것으로 고통받던 위나라의 왕, 조조에게 불려가게 된다. 조조는 화타(華陀)에게 도움을 청하며 치료방법을 묻는다. 그런데 완치를 위한 치료방법을 논하는 화타의 말은 너무나 직설적이고, 동양의학보다는 서양의학에 가까운 외과적 시술을 논하는 것이어서 조조의 반감을 사게 된다. 화타는 이런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날카로운 도끼로 머리를 가르고, 머리속의 문제되는 부분을 제거한다."

감히 왕의 머리를 도끼로 가른다는 소리를 했으니, 자칫하면 목이 달아날 판인데, 또다시 조조가 물었다.
"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화타 왈(曰) "70%"
화타는 끝까지 솔직하였다.

그리고 그의 솔직함이 큰 화(禍)를 불렀다. 젊었을 때의 조조라면 화타처럼 재주있고 강직한 자는 곁에 두고 중용했을 것이며, 화타와 같은 솔직하고 대담한 말을 웃고 넘겼을 수도 있지만, 지금 화타와 마주하고 있던 조조는 젊지 않았으며, 의심이 많고 병으로 쇠약해져 있었다. 결국 조조는 화타를 옥에 가두라 명했고, 화타는 얼마가지 않아 죽음을 맞이 해야 했다.

신기에 가까웠던 화타의 의술을 담은 의서(醫書)들은 감옥의 간수에게 전해졌으나 간수의 아내가 남편이 집을 비운 틈을 타 불에 태웠다. 불에 태운 이유는 이러한 책을 보아서 똑똑해지고 유명해져 봤자 화타처럼 죽을 것인데 남편을 그런 길로 이끌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화타의 독특한 외과시술과 마취법등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길을 줄기차게 걸었던 관우와 화타를 바둑으로 인해 기억할 수 있다. 특히 바둑을 두는 관우와 그 옆에서 시술을 하고 있는 화타의 모습을 말이다내일이 어떻게 될지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우리는 지금 한판의 바둑을 그냥 즐기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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