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이 올해(2025년)로 창설 30주년을 맞는다. LG배는 해마다 명승부를 쏟아내면서 세계 메이저 대표 기전으로 성장해왔다. 1996년 출범한 LG배는 이듬해 초 이창호를 초대 챔피언으로 배출했고, 올해 4월 30번째 주인공을 뽑기 위한 1년 레이스에 들어간다. 이에 앞서 1월 20일부터는 한국 변상일 9단과 중국 커제 9단이 29번째 정상 자리를 걸고 결승 3번기로 격돌한다. 역대 LG배 결승전 5대 명승부를 선정해보았다.
①2001년 제5회 대회 이창호 3-2 이세돌
20대 중반의 이창호는 절정기를 구가 중이었다. LG배만 보더라도 1회와 3회 대회를 모두 3대0(당시 결승은 5번기)으로 장식하는 등 무적의 포스를 뽐내고 있었다. 17세 소년 이세돌은 16강전서 창하오를, 8강전서는 루이나이웨이를 무릎 꿇리고 올라왔다.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8강전은 바둑 역사에 남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루떼치아호텔 공개 해설장엔 벽안의 팬들이 몰려와 열광했다. 세계바둑 메이저대회 사상 유럽서 열린 최초의 행사로 바둑의 세계화에 큰 획을 그었다.

▲ 제5회 대회 결승전 복기 장면. 이창호(오른쪽)가 이세돌에게 2패후 3연승으로 LG배 세 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2월 부산서 열린 준결승서 이창호와 이세돌은 각각 왕리청과 저우허양을 뿌리쳤다. 당대 최고기사 이창호와 신예 이세돌 3단 간의 결승 카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2월 26일 서울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서 열린 결승 1-2국에서 경악할 만 한 사건이 터졌다. 당초 언더독으로 지목된 이세돌이 무서운 기세로 이창호를 압도, 두 판을 연속 승리한 것이다. 바둑 내용도 대마를 때려잡고 단명기로 끝내는 등 이세돌의 완승이었다.
2009년 제13회 LG배 결승 ‘백담사 대결’. 세계 3관왕끼리의 만남에서 이세돌(왼쪽)이 구리에게 0대2로 패했다.

▲ 2009년 제13회 LG배 결승 ‘백담사 대결’. 세계 3관왕끼리의 만남에서 이세돌(왼쪽)이 구리에게 0대2로 패했다.
결승 3국은 그로부터 2개월여 뒤인 5월 7일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그 시차(時差)가 또 한 번 극적 반전으로 이어졌다. 이창호가 3~5국을 모두 승리하면서 대역전 드라마를 쓴 것. 국제 메이저대회 사상 처음 보는 ‘리버스 스윕’이었다. 이창호는 이 승리로 개인 통산 국내외 100번째 우승 고지에 오르며 LG배 홀수회 우승 전통(1-3-5회)을 이어갔다. 이세돌은 손에 들어왔던 대어를 놓친 격이었지만, 2년 뒤 통렬한 반격으로 새 역사를 쓴다.
이창호와 이세돌은 6회 대회 때 나란히 4강에 그쳤지만 이듬해 7회 대회(2003년) 결승서 또 다시 만났다. 이세돌은 이상훈(大), 박영훈, 조한승을 제쳤고 이창호는 장주주, 유창혁, 원성진으로 이어진 저지선을 뚫었다. 2년 전의 이세돌이 아니었다. 이미 국내 3개 기전 우승에 제15회 후지쓰배 제패를 이룬 세계 정상권 기사답게 1, 3, 4국을 승리, LG배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이창호와의 번기(番棋) 승부 첫 승리를 맛본 이세돌은 3단에서 9단으로 ‘벼락 승단’하는 보너스도 챙겼다.
②2009년 제13회 대회 구리 2-0 이세돌
2008년 시작해 2009년 우승자를 가린 13번째 LG배는 이세돌과 구리라는 동갑 라이벌 대결로 크게 주목받았던 무대였다. 1983년 한 달 간격으로 태어나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던 두 기사는 세계 바둑 역사상 최고의 경쟁자 커플로 매번 인용돼 왔다. 게다가 이 결승전에 임할 당시 두 기사는 나란히 세계 메이저 3관왕으로 나란히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주최사 조선일보는 이 대결을 ‘사상 최초의 세계바둑 통합챔프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결과는 승부 외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이세돌은 대국 당일(2월 22일) 새벽 2시가 넘어 대국장(백담사)에 도착,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 관계자들 간의 소통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첫 판을 흑으로 이긴 구리는 이틀 뒤 2국서도 백 불계승을 거두고 2006년 10회 대회에 이어 두 번째 LG배를 정복했다. 국제 4관왕이란 엄청난 지위에도 올랐다. 한국의 입장에선 LG배 결승서 6년 연속 중국에 패권을 내주는 악운의 첫발이었다.

▲ 신진서(오른쪽)는 24회 LG배에서 박정환을 2인자로 밀어내고 1인자에 등극했다.
③2020년 제24회 대회 신진서 2-0 박정환
한국바둑 1인자 계보는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이세돌-박정환-신진서 순으로 바톤 터치가 이뤄져 왔다. 제24회 LG배는 박정환에서 현역 전 세계 톱스타 신진서에게로 권력이 넘어가는 분수령에 해당했다. 결승 3번기가 시작될 무렵 박정환은 신진서를 상대로 9연승 포함 15승 4패로 우세, 많은 사람들이 박정환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그때까지 3번 맞붙은 결승 성적도 3번 모두 박정환의 몫이었다.
27세 박정환과 갓 20대에 진입한 신진서가 2020년 2월 10일 경기도 광명 라까사호텔에 마주 앉았다. 결과는 백을 쥔 신진서의 불계승. 난타전 속에 형세가 여러번 기우뚱 거렸지만 끝내 승리를 움켜잡았다. 고비를 넘긴 신진서는 이틀 뒤 2국서도 흑번으로 승리, 역사의 새 페이지를 썼다. 이 회전(會戰) 이후 두 천재기사의 위상은 완전히 역전됐다. 신진서로선 메이저 세계대회 7회 우승(2024년 말 현재)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④2021년 제25회 대회 신민준 2-1 커제
신진서의 제24회 LG배 이듬해, 이번엔 그와 입단 동기인 신민준(22)이 LG배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6개월째 중국 랭킹 1위를 질주하면서 삼성화재배를 보유 중이던 커제(24)를 2대1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 제패의 염원을 이룬 것이다. 1국을 내주고 2국에서 따라잡은 신민준은 최종 3국(2021년 2월 4일)서 놀라운 기량과 인내심으로 대 역전극을 이뤄냈다. 백번(白番)으로 3집 반을 남겼다.

▲ 25회 LG배를 놓고 중국 톱스타 커제와 결승전을 두고 있는 신민준. 코로나 사태로 인터넷으로 진행된 이 결승서 2대1로 역전 우승, 국내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 우승은 역대 LG배 결승전 사상 한국이 22년 만에 중국 기사를 꺾고 거둔 것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1999년 제3회 대회 때 이창호가 마샤오춘을 3대0으로 따돌린 이후 한-중 양국 기사가 펼친 다섯 번의 결승을 중국이 독식하던 참이었다. 제23회 LG배 때 거둔 4강이 국제대회 최고 성적이었던 신민준은 이 우승을 발판으로 세계적 강자로 발돋움했다. 신민준이 한국기원 기자회견장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린 지 한 시간 후 커제가 분함을 못 이겨 대성통곡하는 현지 영상이 인터넷에 떴다.
⑤2007년 제11회 대회 저우쥔쉰 2-1 후야오위
11회 LG배가 열렸던 2006~2007년 무렵은 한국 바둑이 부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시기였다. 국제무대 타이틀 판도에서 중국이 5개, 일본이 1개를 점유한 반면 한국은 무관(無冠)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재기를 염원하는 팬들의 응원도 보람 없이 그 해에도 결승 진출자를 내지 못했다. 대신 국제 메이저 사상 제4국 기사가 우승한 최초, 유일의 국제대회란 역사적 기록을 선사했다. 한 중 일 3강 아닌 대만 기사 저우쥔쉰(당시 27세)이 중국 강자 후야오위를 격침한 것이다.
국제 메이저 최초, 유일의 양안(兩岸) 결승이란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중국과 대만은 그 당시에도 승부 결과를 놓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미묘한 관계였다. 저우쥔쉰은 황익조, 다카오, 셰허, 홍민표를, 후야오위는 조훈현, 야마시타, 이창호, 조한승을 제친 뒤 결승서 만났다. 저우쥔쉰이 예상을 뒤엎고 2대1로 승리, 최정상을 밟았다. 얼굴 오른쪽에 붉은 반점이 있는 저우쥔쉰의 성공 스토리는 이 대회 후 ‘홍면기왕(紅面棋王)’이란 제목과 함께 대만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 제11회 LG배 결승전 모습. 저우쥔쉰(오른쪽)이 중국 후야오위를 누르고 우승, 대만에 메이저 국제대회 사상 유일한 우승을 안겨주었다. (사진 제공=한국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