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가 우승을 위해 혼신의 힘을 몽땅 쏟아 붓는 것은 지향점이 극상(極上), 무결(無缺), 완벽(完璧)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무패가도를 질주한 마지막 한 사람에게만 우승자의 영광이 주어진다. 수십, 수백 명의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쳐도 최후의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면 정상도전은 실패로 끝난다. 이른바 준우승이다.

▲ 이창호(왼쪽) 대 창하오
우승과 준우승은 요즘 식 표현으로 ‘깻잎 한 장’ 차이지만 둘 간의 간극은 엄청나게 크다. 준우승은 성취인 동시에 좌절이다. 기뻐할 시간은 끝나고 슬픔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승무대까지 99계단을 오른 희열은 묻힌 채 마지막 한 계단을 넘지 못한 회한(悔恨)이 가슴을 저민다. 올림픽 경기 시상대서 은메달리스트의 표정이 열이면 아홉 동메달 딴 선수의 그것보다 어두운 것이 이런 심리를 방증한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미국 대통령 선거는 트럼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투표일 직전까지 백중세 속에 당선 가능성도 점쳐졌던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패했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끝내기에 들어가 미세한 승부가 계속되다 승기를 놓쳐버린 격이다. 해리스는 패배 확정 후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의연함을 보였지만 그의 아픔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바둑의 경우를 살펴봤다. 국제 메이저대회 역사는 36년에 이른다. 1988년 9월 끝난 제1회 후지쓰배부터 2024년 9월 결승을 마친 제10회 잉씨배까지 총 132회의 결승이 치러져 우승과 준우승자를 가려냈다. (1989~1990년 열린 제1-2회 동양증권배는 세계메이저급 대회 기준에 미달해 제외함).
세계 메이저대회 최다 준우승자는 이창호다. 총 11개의 은메달을 따냈다. 이창호는 우승도 역대 최다(17회) 기록 보유자다. 금메달과 은메달 두 부문을 모두 석권한 셈이다. 결승전 승률은 60.7%. 1992년 제3회 동양증권배서 첫 메이저봉(峰) 정복을 시작으로 10연속 결승 불패가도를 달리다 1999년 6월 제1회 춘란배 결승서 처음 패했다. 이창호를 막아선 기사는 스승 조훈현이었다.

▲ 조훈현(왼쪽) 대 녜웨이핑
이창호는 우승을 17번이나 해봤으니 준우승 11회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이창호의 마지막 우승은 2005년 제5회 춘란배 우승이었다. 그 후 아홉 번이나 결승전에 올랐으나 모조리 패해 은메달 잔치로 끝났다. 서른 살 진입 이후엔 우승 트로피를 한 개도 추가하지 못한 것이다. 불세출의 톱스타 이창호가 나이 30의 벽 앞에서 느꼈을 좌절감은 다른 형태의 아쉬움으로 전달돼 온다.
메이저 정복이란 과제 앞에서 가장 절박하게 매달렸던 기사는 중국 창하오다. 중국 대륙의 1인자였던 그는 11번 결승에 올라 준우승 8회, 우승은 3회에 그쳤다. 천적 이창호를 비롯해 조훈현 이세돌 등 한국기사들에게 돌아가며 난타 당했다. 2005년 2회 도요다덴소배 이세돌과의 결승서 절대 우세의 바둑을 역전패, 7번째 준우승이 결정된 뒤 펑펑 눈물을 쏟은 일화는 유명하다. 메이저 준우승 8회는 이창호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
결승전에 오른 뒤의 승률은 대국자의 승부 근성과 컨디션 관리능력 등 여러 측면에서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가 12번 결승에 올라 준우승 한 번 없이 12번 모두 우승한 것은 경이적이다. 바둑에선 메이저 결승 5회 이상 진출한 기사 중 최고승률 보유자는 조훈현으로, 11번 결승에 올리 그 중 9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81.8%의 결승전 승률이다. 중국 커제가 80.0%(8승 2패)로 조훈현의 뒤를 추격 중이다.
이세돌은 총 20번에 걸쳐 결승 무대에 올라 그 중 14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결승전 승률이 70.0%나 된다. 통산 우승 횟수 14회는 이창호(17회)와 더불어 앞으로 좀체 깨지기 어려운 철벽 중 하나로 점쳐진다. 유창혁은 우승 6회, 준우승 7회로 결승 승률 46.2%를 기록 중이다. 준우승 7회는 이 부문 역대 3위에 해당한다.
결승전 승률이 6할을 넘는 기사는 몇 명 더 있다. 2000년대 초반 이세돌의 동갑 라이벌로 한 시대를 누볐던 구리가 66.7%(8승 4패)로 활약했다. 한국 랭킹 2위 박정환도 우승 5회와 준우승 3회로 62.5%의 결승전 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천야오예와 쿵제는 나란히 우승 3회, 준우승 2회 기록을 남기면서 60%대에 턱걸이 했다.
현역 세계 최고스타 신진서는 어디쯤 위치할까. 우승을 일곱 번, 준우승은 다섯 번 차지해 58.3%의 결승전 승률을 기록 중이다. 2018년 시작된 신진서의 세계 우승 노크는 xxoxoxooxooo(o 승리, x 패배)의 과정을 거쳐 왔다. 압도적 실력에 비해선 다소 미진한 느낌도 들지만 해가 갈수록 승점이 증가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2022년 이후만 보면 5번 정상에 서는 동안 딱 한 번(제1회 란커배 대 구쯔하오) 패했다. 신진서가 다른 어떤 패배보다 아파했고 후유증도 길었던 ‘은메달’이었다.

▲ 이세돌(오른쪽) 대 구리
당대 최고수급으로 평가 받으면서도 끝내 금메달 한 번 목에 걸어보지 못한 기사들도 수두룩하다. 20세기 말 일중 슈퍼대결의 영웅이었던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이 대표적 인물이다. 세 차례나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모두 놓쳤다. 1회 잉씨배 결승서 조훈현에게, 90년 후지쓰배 때 린하이펑에게, 95년 6회 동양증권배 때는 후배 마샤오춘에게 금메달을 내줘 메이저 우승자 명단에 평생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 신진서(오른쪽) 대 셰커
최근엔 2000년생 중국기사 셰커에게 동정의 눈길이 쏠리는 중이다. 결승전 3회, 은메달 3개가 현재 그의 성적표다. 21년 몽백합배에서 미위팅에 2대3으로 역전패한 것부터 땅을 칠 일이었다. 이어 23년 잉씨배에서 신진서에게 무릎을 꿇은 뒤 올해 같은 대회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던 일본 이치리키에게 우승컵을 내주었다. 셰커는 국제뿐 아니라 국내 대회서도 아직 단 한 번의 우승도 없이 지독한 ‘은메달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추쥔은 세 번, 일본 고바야시 사토루와 중국 저우허양은 각각 두 번 결승 고지를 밟았지만 금메달의 염원을 풀지 못했다. 목진석 송태곤 안국현 셰허 왕레이 왕시 이야마 야마다 조선진 조한승 첸위핑 최정 최명훈 펑리야오 하네 한상훈 허영호 후야오위…. 이상은 한 차례 메이저 결승에 오르고도 준우승에 머문 기사 명단이다. 반대로 딱 한 차례 찾아온 결승전 기회를 세계 챔피언으로 연결시킨 승부사들도 18명이나 존재한다. 서봉수 백홍석 박정상 신민준 뤄시허 탄샤오 퉈자시 저우쥔쉰 등이다.
영어권에선 우승자를 winner나 champion 또는 titlist로 부른다. 준우승자는 여기에 deputy나 vice 등 부(副), 차(次) 등을 붙이지 않고 runner-up으로 표기한다. second 등 등위(等位)를 매기는 방식도 피한다. 레이스에 전력을 쏟아 부은 선수의 노력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긴 것은 아닐까. 세상 어떤 경쟁에서도 준우승자 없이 탄생하는 챔피언은 없다. 준우승자가 흘린 땀과 눈물은 우승자의 그것 못지않게 값지다. (사진=한국기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