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가 끝나고 메인 스타디움을 밝히던 성화(聖火)도 꺼졌다. 제19회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총 45개국이 참가해 기량을 겨룬 40개 종목에 바둑도 포함됐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 이은 사상 두 번째 ‘아시안게임 바둑’이었다. 그러나 이 잔치에 바둑이 계속 자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항저우 대회가 바둑이 포함돼 치른 마지막 아시안 게임이 될 공산이 크고, 그래서 이번 대회는 더욱 소중했다. 어쩌면 ‘영원한 기록’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 아시안게임 남자 개인전서 우승, 대만 바둑에 새 역사를 쓴 쉬하오훙.
금메달 3개가 걸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조촐하게, 그러나 나름 각국 동호인들의 열띤 관심 속에 13일간 치러졌다. 10개국 83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한 중 일 대만의 전통 4개국과 나머지 출전국들 간의 전력 격차는 컸다. 그런 와중에 홍콩이 여자 단체전 4강에 진입하는 등 놀랄만 한 사건도 발생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배출한 바둑종목 영웅들을 정리했다.
▨첫 개인전 금메달 거머쥔 쉬하오훙
이번 대회 최고의 뉴스메이커를 꼽는다면 대만 기사 쉬하오훙(22)일 것이다. 항저우 대회 출전 당시 총 우승 횟수 28회에 현역 6관왕이었으니 웬만한 대회서 우승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중 일의 최고수들이 총 출전한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은 차원이 다르다.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가 아시아 바둑촌을 뒤흔들어 놓았다.
진앙지는 남자 개인전. 이번 대회서 신설된 종목이지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싸움터다. 쉬하오훙은 8강 결선토너 첫 판서 만난 박정환을 반 집으로 따돌렸다. 뒤이은 준결승서는 최강의 우승 후보 신진서를 제쳤다. 불계였지만 계가를 했다면 역시 반 집 승부였다. 마지막 결승에선 중국의 간판 커제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집 반 차였다.

▲ 남자 개인전 시상대에 선 은메달 커제, 금메달 쉬하오훙, 동메달 신진서(왼쪽부터)
개인전 예선서 4승 2패 A조 3위로 본선에 턱걸이 했지만 이후의 눈부신 행보로 여러 새 기록을 썼다. 우선 대만 기사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2007년 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때의 저우쥔쉰 이후 두 번째다. 대만의 아시안게임 바둑 메달 획득은 2010년 광저우 대회 때의 여자 단체전 동메달 이후 두 번째였다.
쉬하오훙은 지난 봄 끝난 2022~2023 한국바둑리그에 대만 용병 ‘보물섬’ 팀 선수로 출전했다. 출전자들 중 최다승(8승 7패)을 기록하긴 했지만 세계 정상급과는 아직 거리가 멀어보였다. 한국 기사들과의 역대 통산전적도 27승 24패로 반타작을 약간 넘은 정도다.
그러나 쉬하오훙은 이번 대회에서 결정적 순간 강한 폭발력을 보여주는 ‘클러치 히터’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개인전 이후 단체전서도 예선에선 4승 2패에 그쳤지만 본선에서 3승 1패로 분전하며 개인전 우승자 다운 모습을 이어갔다. 특히 단체 준결승 중국전 때는 리친청에 반집승했고, 일본과의 3-4위전에선 세키 고타로를 눌렀다. 두 경기 모두 대만 팀이 1대4로 패함으로써 쉬하오훙이 연속 영패를 막은 셈이 됐다.
▨ 15승 1패…최다승 기록세운 신진서

▲ 신진서는 단체전서 맹활약, 총 15승 1패를 기록하며 한국 우승을 이끌었다.
신진서에게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아쉬움이 많이 남은 무대였을 것이다. 국내외에서 쌓은 위상이 그만큼 높았다. 하지만 신진서는 이번 대회서도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작성했다. 비록 개인전 우승은 놓쳤지만 한국이 남자 단체 패권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대들보다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기록면에서도 신진서는 여전히 발군이다. 항저우서 신진서가 작성한 총 기록은 15승 1패로 승률 9할이 훨씬 넘는다. 열흘 간 16전을 치렀다는 것 자체가 경이적이다. 남자 개인전서 8승 1패, 남자 단체전서 7승을 올렸다. 쉬하오훙에게 당한 유일한 1패가 평생 한을 남겼다.
이 1패로 신진서의 대만기사 상대 무패기록(12승)이 깨졌다. 자신보다 뒤에 태어난 외국기사에 패한 것도 처음이다. 외국 기사를 상대로 255승 82패를 마크 중이었는데, 82패 상대는 모두 신진서보다 선배이거나 2000년생 동갑나기 중국 기사였었다. 쉬하오훙은 2001년생으로 신진서보다 한 살 아래다. 하지만 신진서는 일본 기사 상대 전적에선 여전히 전승 기록(40승 무패)을 지켜나가고 있다.
신진서는 항저우에서 금메달 1개, 동 1개를 목에 걸었다. 남녀를 통틀어 복수(複數) 메달을 획득한 한국 기사는 신진서뿐이다. 수 년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잉씨배와 아시안게임 우승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실제론 그 이상의 몫을 완수했다는 평이다. 그가 만약 개인전 실패 아쉬움을 못 이기고 좌절했다면 한국의 남자 단체 2연패(連覇)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통산 최다 금메달 3개 박정환

▲ 박정환은 한국의 남자 단체전 우승을 주도하면서 통산 최다 금메달(3개)의 주인이 됐다.
항저우 항해에 나선 박정환의 스타트는 좋지 않았다. 남자 개인전 예선 B조에 속해 첫판을 커제에게 졌다. 한 중 양국 랭킹 2위끼리 붙은 이 대결은 여러 면에서 꼭 이겨야할 한 판이었다. B조 2위로 결선 토너에 오른 뒤 8강 결선 첫판에선 A조 3위 쉬하오홍에게 발목을 잡혔다. 단 반 집 차이였다. 박정환의 조기 하차(下車)로 한국 팀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단체전에 들어가면서 박정환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예선서 파죽의 5연승을 질주했다. 4강이 겨룬 본선 준결승 일본전에선 이치리키 료를, 결승에선 중국 미위팅을 무릎 꿇렸다. 한국이 남자 단체전을 전승 우승으로 장식하는 과정에서 팀 고참 박정환의 역할은 컸다. 그가 항저우서 거둔 총 전적은 개인전 4승 2패, 단체전 7승을 합해 11승 2패였다.
박정환은 남자 단체전 우승으로 금메달 1개를 추가했다. 13년 전 광저우 대회 때 거둔 남자 단체, 혼성 페어전을 포함해 3개째다. 아시안게임 사상 금메달 3개를 수집한 바둑 기사는 세계적으로 박정환 한 명뿐이다. 은이나 동메달은 포함되지 않았다. 바둑 종목이 아시안게임에 존속하지 못할 경우 이 기록은 신화로 남게 된다. 다른 어떤 프로도 누리지 못한 영광이다.
▨ 주최국 체면을 살려준 31세 노장 리허

▲ 중국 리허는 여자 단체 결승서 최정을 눌러 중국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됐다. (한국기원 제공)
중국 여자 단체전 선수 4명 중엔 위즈잉(26)이 에이스다. 지금까지 국내외 무대서 거둔 성적도 압도적일 뿐아니라 두 차례에 걸친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서도 모두 1위로 승선했다. 위즈잉을 선봉으로 최연소 우이밍(17), 리허(31), 왕위보(27) 등 4명이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로 출전했다.
원래 당초 중국 대표 명단은 달랐다. 아시안게임이 1년 여 연기되면서 중국은 전 종목 대표 선발전을 새로 실시했다. 여자 바둑의 경우 1차 선발전을 통해 대표가 됐던 랭킹 2위 저우훙위, 4위 루민취안 등이 탈락하고 우이밍 왕위보 리허가 대표 팀에 새로 발탁됐다. 리허는 탕자원과 동점을 이뤄 대표 팀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또 한번 재대국을 치렀고, 그 판서 반집을 이겨 대표 팀에 막차로 합류했다.
31세 노장 리허는 여자 단체전 예선 대만과의 대결서 헤이자자를 꺾는 등 2승 2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가치는 이어진 결선 토너먼트서 발휘됐다. 일본과의 준결승서 후지사와 리나를 눕혀 팀을 결승으로 이끌더니, 결승에선 세계 여자최강 최정을 꺾은 것이다. 에이스 위즈잉이 오유진에게 패한 터여서 리허의 이 1승은 중국 우승의 결승점이 됐다.
A급 성적표를 받아든 기사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신민준과 김명훈은 각각 8전 전승, 7전 전승으로 한국의 남자 단체전 우승의 주역이 됐다. 여자 선수 중엔 5전 전승을 마크한 오유진이 돋보였다. 중국 17세 신성 우이밍은 여자부 최종 결승서 한국의 10대 라이벌 김은지(16)를 제압, 팀 우승에 결정적 공헌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