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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저우의 영광, 항저우로 이어질까
 
21세기 들면서 바둑은 스포츠로 입적(入籍)했다. 스포츠라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종합대회에 무상출입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유일한 예외가 2010년 중국 광저우서 열렸던 제16회 아시안게임이다. 4년 뒤인 2014년 인천 대회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그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불발됐다.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엔 바둑이 가까스로 포함됐는데, 코로나 사태로 1년 연기돼 24일부터 열전에 돌입한다.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 중 두 나라 선수들이 혼성페어 대국을 펼치고 있다.

19회째를 맞는 이번 아시안게임은 바둑인들에겐 그만큼 소중한 대회다. 바둑이 스포츠로서의 존재감을 확인, 계승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할 잔치이기도 하다. 경기 인구와 동호국 숫자에서 체스 브릿지 e게임 등에 비해 가뜩이나 뒤쳐져있기 때문에 이대로 나갈 경우 올림픽은커녕 아시안게임 참여도 장담할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선 주목도를 높여야 한다. 고작 10개국 안팎이 출전하는 소규모 종목인 만큼 흥행이 필수다. 결국 한국과 중국의 세계바둑 패권 다툼이 이번에도 흥행 포인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반상에서 수십년째 팽팽히 맞서고 있는 두 나라 대결은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애서도 바둑 종목의 핵심 이벤트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한국의 일방적 독주로 끝났다. 남녀 단체전과 혼성 페어전 등 3개 종목 금메달을 독식했다. 중국으로선 기가 막힌 결과였을 것이다. 바둑의 발상국이면서 아시안게임 주최국이란 체면이 제대로 구겨졌다. 인구수로도, 국토 면적으로도 두 나라는 비교가 안 된다. 중국은 절치부심 13년 만에 다시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며 설욕을 노리고 있다.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단체전서 우승 후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세부종목 선택부터 중국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번 항저우 대회에선 혼성 페어가 빠지고 남자 개인전을 넣었다. 혼성 페어라면 남녀 랭킹 1위 조합이 가장 이상적이다. 현재 한국의 남녀 1위는 신진서와 최정이다. 두 기사는 세계적으로도 최강자로 꼽힌다. 중국은 커제나 구쯔하오, 양딩신 중 한 명과 여성 최강자 위즈잉 조합이 예상되는데, 이 정도로는 신진서-최정 페어를 감당하기 힘들다. 이번 대회에 혼성 페어종목을 제외한 이유다. 광저우 대회 때는 한국 박정환-이슬아 조가 혼성 페어 정상에 올랐었다.

주최국 중국이 혼성페어를 제외하고 대신 집어넣은 종목이 남자 개인전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한 중 일 대만 등 4개국서 최강자 2명씩 총 8명이 겨루는 무대이니 일단 흥행카드로는 최고다. 웬만한 단일 국제대회 출전진보다 지명도와 대표성에서 높다. 엔트리 마감 결과 신진서 박정환(이상 한국), 커제 양딩신(이상 중국), 이치리키 료, 시바노 도라마루(이상 일본), 쉬하오훙 라이쥔푸(이상 대만)가 등록했다.

어느 나라 누가 아시안게임 사상 첫 남자 개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까. 단정하긴 이르지만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순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전망이다. 한국엔 현존 최고스타 신진서가 버티고 있다. 23세의 절정 나이인 신진서는 현재 삼성화재배와 잉창치배 등 국제대회 2개를 포함해 7관왕이다. 수준급 기사들만 상대하는데도 승률이 9할 안팎을 오간다. 누가 보아도 가장 우승에 가까이 선 기사다.

▲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진천 선수촌에 입소,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남녀 대표선수들.

박정환에게도 기회가 있다. 그는 현재 활동 중인 기사 중 단 한 명뿐인 아시안게임 2관왕이다. 만약 이번 대회서 남자 개인과 단체전을 모두 접수한다면 아시안게임 금 넷이란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우승 길목에서 신진서를 넘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박정환은 신진서에게 최근 10연패 포함 24승 40패로 뒤져 있다.

중국은 장고 끝에 남자 개인전 출전자 2명을 엔트리 마감 직전 발표했을 만큼 고심을 거듭했다. 한국처럼 넘버 1, 넘버 2가 뚜렷하지 않고 최정상권 기사들이 비등한 전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열린 왕중왕전 8인리그 우승자 리웨이칭은 이번 아시안게임 단체전, 개인전 어느 쪽도 나오지 않는다. 커제는 왕중왕전에 초청조차 받지 못했다. 양딩신은 리쉬안하오의 치팅 혐의 제기로 출전 정지를 겪은 이후 불안정한 모습이다. 남자 개인전 전망 역시 한국의 우세가 확실하다는 결론이다.

상대전적을 뽑아본 결과 신진서는 커제에게 9승 11패로 뒤져있지만 최근 네 판만 놓고 보면 전승 중이다. 패배는 대개 3~6년 전에 당한 것이다. 또 양딩신에겐 초기 한때 2승 5패로 열세였으나 현재 7승 6패로 뒤집은 상태다. 박정환은 커제에게 16승 14패, 양딩신에겐 6승 2패로 앞서있다. 일본 에이스 이치리키 료는 신진서와 박정환에게 각각 5연패 중이다.

▲ 진천 선수촌에서 기술 훈련을 실시 중인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대표 선수들.

남자 단체전은 선수 6명 중 5명씩 출전, 3승 이상 거둔 팀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신민준 김명훈 이지현이 출사표를 냈다. 최근 춘란배와 GS칼텍스배를 연속 우승한 변상일이 든든하다. 유일하게 병역 미필 상태인 신민준의 투지도 기대된다. 김명훈과 이지현의 상태도 좋다.

중국은 3개 세부 종목 중 남자 단체전을 “가장 겨뤄볼 만한 종목”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장 많은 인원끼리 격돌(5명 대 5명)하므로 선수층이 고르고 두터운 중국의 우승 기회가 높다는 것. 하지만 리웨이칭 구쯔하오 리쉬안하오 딩하오 셰커 등이 빠지고 양카이원 자오천위 등이 메운 중국 남자단체 진용은 ‘공포의 타선‘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상 컨디션으로 맞붙는다면 한국 쪽의 승산이 더 높은 느낌이다.

여자 단체전도 한국(최정 오유진 김채영 김은지)과 중국(위즈잉 우이밍 왕위보 탕자원)의 대결이다. 한국 팀은 확고한 ‘베스트 4’로 구성됐다. ‘여제’ 최정, 중국 여자갑조리그서 맹위를 떨치는 오유진과 김채영, 겁 없이 날고 있는 16세 막내 김은지까지 물 샐 틈이 없다. 이에 비해 중국은 대표 재선발 과정에서 저우훙위 루민취안 등이 빠져 전력이 약화된 인상이다. 목진석 대표팀 감독은 후지사와 리나, 우에노 아사미가 버티는 일본도 경계 대상으로 꼽고 있다.

▲ 체력이 승부를 결정한다. 진천 선수촌에서 몸을 풀고 있는 대표 선수들. (사진 제공=한국기원)

결론적으로 한국은 이번에도 13년 전 광저우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금 3개 석권을 노릴 만 한 전력으로 평가된다. 이런 성적표가 성사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목진석 감독은 “몇 종목에서 우승한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선수들에게도 메달 숫자 이야기는 피하고 있다. 열심히 싸워 결과를 기다린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스스로 압박감에 눌려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자세에 더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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