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끈덕진 구애(求愛)를 계속해왔지만 여전한 일방통행, 짝사랑이 이어지고 있다. 일편단심 내밀어온 연서(戀書)가 겹겹이 쌓여 가는데 애절한 러브콜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세계 스포츠를 총괄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바둑을 IOC의 식구로 받아달라는 국제바둑연맹(IGF) 간의 줄다리기가 반세기째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은 스포츠의 꽃이다. 전 세계 청년들의 신체·도덕 교육과 평화·우애 증진을 목표로 쿠베르탱 남작이 주도한 올림픽 운동이 기본 정신이다. 올림픽이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인류 최고의 축제로 자리 잡은 지 한 세기가 훨씬 넘는다. 어떤 종목이든 IOC에 의해 정식회원 자격을 인정받고 올림픽 무대에 올라야만 번듯한 스포츠의 일원으로 자리잡는다. 올림픽 동참은 종목, 선수, 국가를 막론하고 스포츠인 최고의 영광이다.

▲ 지난 9월 문경서 열린 제46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 광경. 이 대회는 지난 40여년 동안 올림픽을 대신하는 국제무대 역할을 하며 각국 바둑 선수들의 아쉬움을 달래왔다.
정식 종목에 들어가기 위한 문호는 꽤 좁다. IOC가 제시하는 조건이 까다롭고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굵직한 것만 꼽아도 ①국제연맹이 존재해야 하고 ②세계적으로 널리 시행돼야 하며 ③통일된 국제 규칙이 있어야 하고 ④반(反)도핑 규정을 지켜야 하며 ⑤공정성·탁월성 등 올림픽 가치에 맞아야 하고 ⑥경기장과 비용 문제가 해결돼야 하며 ⓻기계적 추진에 의존하거나 완전한 정신활동 종목은 제한된다는 조건이 걸려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① 국제바둑연맹(IGF)이 존재한다. 1982년 한국기원 포함 세계 29개 바둑 단체가 도쿄에 모여 창립했다. ② 하지만 4개 대륙에 걸쳐 75개국 이상의 협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올림픽 참가 조건은 충족하지 못했다. 당시 국가 바둑협회는 세계 46개국에만 설립돼 있었다(현재는 79개국). ③ 한 중 일 3개국 국제 경기규칙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통일 룰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④ ⑤번은 규정에 맞추면 된다. ⑥번 항목도 큰 부담이 없다. 문제는 ⓻번 항목이다. 올림픽은 “인간의 체력과 정신이 동반된 순수한 신체활동”을 지향하는데 멘탈 스포츠인 바둑은 ‘완전한 정신활동 종목’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체의 몸놀림 동작 없이 기본자세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체스, 바둑, 브리지 같은 종목들에겐 결정적 관문으로 다가오는 독소 조항이다.
올림픽 정식종목 입성 절차는 국제바둑연맹(IGF)의 신청서 접수→IOC 심사→IOC 집행위원회 추천→IOC 총회 투표로 이어진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할까. 하지만 바둑 종목 현대화의 주축 역할을 맡아온 한국 중국 일본 등 몇몇 나라는 바둑의 올림픽 상륙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IOC 문을 두드려왔다. 일본은 1997년 IGF 창설이란 첫 발짝을 주도적으로 이끈데 이어 2008년 바둑의 올림픽 종목화 추진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고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 바둑은 새천년 진입 후 스포츠 전환과 올림픽 상륙을 위한 서명을 받는 등 노력을 계속해왔다. 2001년 한국기원 한화갑 총재(맨 오른쪽) 등이 바둑 지도자들과 함께 시위를 펼치고 있는 모습.
한국도 새천년으로 넘어가면서 올림픽 상륙을 향한 움직임에 적극 가세했다. 2001년 국회도서관에서 ‘바둑, 올림픽으로 가는 길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한 뒤 바둑 올림픽 종목 가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가슴에 띠를 두르고 격문(檄文)을 외치며 100만인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바둑 주무 부서를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진흥과로 이전하고 대한체육회 경기단체로 가맹하는 등 정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IGF(국제바둑연맹)도 나름대로 온힘을 쏟았다. 한 중 일 동양 3국이 교대로 회장국을 맡으며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WAGC) 등 국제대회 운영, 세계 바둑 보급, 회원국 간 교류 등을 수행해 왔다. 바둑계에서 ‘올림픽 무대’ 역할을 대신해온 WAGC는 46회째인 올해 대회를 지난 9월 대한민국 문경서 열었고 정태순 한국기원 이사장을 2년 임기의 새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밖에도 국제사회 영향력 확산을 위해 국제마인드스포츠협회(IMSA), 스포츠 어코드 등과도 협력해왔다.
비교적 최근인 2025년 4월엔 바둑계에서 ‘세계 4강’ 중 하나로 꼽혀온 대만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과 대만 두 나라는 바둑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지속적으로 희망한다”는 내용을 양국 공동 명의로 발표한 것. 대만은 그에 앞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서 쉬하오훙 9단이 남자 개인전서 우승함으로써 한껏 존재감을 끌어올렸다.

▲ 2010년 중국 광저우서 열린 아시안게임서 한국 이창호(왼쪽)와 중국 구리가 대국 중인 모습. 바둑이 정식 종목에 들어간 최초의 아시안게임으로 기록된다.
중국은 두 차례의 자국 주최 아시안게임 때 바둑을 정식 종목에 포함시키는 큰 공로를 세웠다. 2010년 광저우 AG 개최를 앞두고 이 문제를 강력히 추진해 성사시켰다. 바둑이 국제 종합스포츠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란 점에서 의미가 컸다. 중국은 그로부터 12년 뒤인 2022년엔 항저우서 열린 아시안게임서도 바둑을 정식 종목으로 치렀다(코로나 사태로 1년 연기돼 실제 대회는 2023년 거행됨).
그러나 이 두 번의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국제무대에서 제 자리를 찾겠다는 세계 바둑민들의 소망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개막해 10월 4일까지 일본 아이치-나고야 지역서 열렸던 아시안게임에선 바둑 종목이 포함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은 바둑의 올림픽 합류를 위한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었지만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흘려보낸 것도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바둑의 올림픽 정식종목 진입은 속단하긴 이르지만 성사 가능성이 갈수록 멀어져가는 느낌을 준다. 수 천 년의 역사와 최고의 콘텐츠를 자랑하면서도 공통 규칙, 통일된 랭킹 시스템 하나 안착시키지 못한 채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 바둑과 경쟁 겸 협력 관계인 국제체스연맹(FIDE)이 1924년 창설 후 세계화, 기업화에 재빨리 성공하면서 1999년 IOC로부터 일찌감치 국제 스포츠기구로 인정받은 것과 대비된다. 현재 FIDE 회원국 수는 203개로 IGF(79개국)의 2.6배에 달한다.
올림픽은 국가별, 선수 개인별 전장인 동시에 스포츠 종목들끼리 다투는 치열한 싸움터이기도 하다. 종목 잔류냐, 퇴출이냐의 기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종목들 간 경쟁은 메달 쟁탈전이 무색할 만큼 치열하다.내후년 2028년엔 미국 LA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 야구, 소프트볼, 크리켓, 스쿼시 등 6개 종목이 첫 선을 보이는 반면 2024년 등장했던 브레이킹 종목이 한 대회 만에 올림픽서 하차(下車)한다. 2020년 도쿄 올림픽때 신입 신고를 했던 서핑,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 등은 2024년 파리 대회에 이어 LA 올림픽에도 살아남았다.

▲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서 남자 우승, 여자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선수단. 이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은커녕 아시안게임서도 바둑을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한국기원]
10월 초 끝난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은 현재 바둑이 처한 위상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기회가 됐다. 생전 처음 등장한 테크볼, 파델 등 낯선 종목들이 정규 종목 대접을 받으면서 당당히 아시안게임의 한 페이지를 수놓았다. 가장 충격을 던져준 경기는 버추얼(가상) 태권도였다. 선수들끼리 단 한 번의 신체 접촉도 없이 가상공간에서 동작을 펼치면 시스템이 이를 인식해 채점하는 방식이다. 이번 대회에선 총 43개 종목에 걸쳐 무려 469개의 메달이 주인을 찾아갔지만 바둑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이래도 바둑이 스포츠 열차에 동승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 옳은지 회의(懷疑)도 감돈다. 어쩌면 이쯤해서 올림픽 상륙의 꿈을 접고 바둑의 독자적 문화 구축에 더욱 힘을 모으는 것이 정답일지 모르겠다. 수 천년 간 인류의 지혜와 철학이 담긴 게임으로 사랑받아온 바둑이지만 기존 스포츠 세계는 아직도 한 식구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온갖 푸대접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바둑의 올림픽 짝사랑은 언제까지 지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