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펼쳐진지 꼭 10년이 지났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란 이름 아래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서 치러진 이 행사는 인공지능(AI)과 인간이 자웅을 겨룬 사실상 최초의 대결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알파고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 세계 최고수 중 한 명인 이세돌을 4승 1패로 제압해 인공지능 만능시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인간을 대표해 알파고와 겨뤘던 이세돌의 시간대별 코멘트를 중심으로 알파고 10년을 되돌아보았다.

▲ 이세돌(오른쪽)이 챌린지매치 1국서 첫 수를 놓고 있다. 왼쪽은 알파고 대리 착점자 아자황.
<대국 전>
(이세돌 9단) “인공지능의 실력이 상당한 경지에 올라왔다고 들었지만 적어도 이번에 내가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국 제안을 받고 5분도 안 돼 수락했다. 인간의 직관이나 감각은 인공지능이 따라오기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어느 정도 모방은 가능하며, 차이가 훨씬 좁혀졌다는 주최 측 이야기를 듣고서 나의 5대0 완승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인간이 패한다 해도 인공지능은 바둑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두는 것이 아니기에 바둑의 가치는 추락하지 않는다.”(3월 8일 개막 전날 회견)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 “게임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관을 따라잡을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건이며 이 점에 중점을 두고 테스트를 거듭해왔다.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어떤 단계에 한계를 보일 수 있는지 지켜봐왔는데 아직은 (그런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알파고는 유연한 학습 알고리즘이며 강력한 툴(tool)이다. 인간 창의성의 힘을 증명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앞으로 AI는 윤리적 측면도 중요하며 선하게 쓰여야 한다. 이번 승부 결과에 대해선 우리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 (3월 8일 개막 전날 회견)
(당시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 “이세돌 9단이 완승할 것으로 점친다. 내게 100위안(元)이란 돈이 있고 내기를 한다면 100위안 전액을 이세돌의 승리에 걸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계 대표를 바둑으로 이기는 상황은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들다.” (3월 1일 농심배 국가대항전 3라운드가 치러지는 동안 상하이에 머물면서 예상평).

▲ 이세돌이 딸 혜림양(당시 10세)를 껴안은 채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와 악수하고 있다.
제1국 알파고 186수 백 불계승(3월 9일)
알파고 1승, 이세돌 1패
(이세돌)“알파고가 그토록 완벽하게 둘 줄 몰랐다. 개발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알파고가 이날 보여준 두 가지 능력에 놀랐다. 초반전을 풀어가는 솜씨가 경탄할 만 했고, 어려운 장면에서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승부수를 두어서 또 한 번 놀랐다. 패배를 예상하지 못해 충격적이긴 하지만 굉장히 즐겁게 두었다. 남은 대국 네 판도 기대된다. 초반 포석서 잘 못 두었는데 이 점을 보완하면 또 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1국을 패함으로써 이번 5번기는 이제 비로소 5대5 호각 승부가 되었다고 본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 “대국 개시 직전까지만 해도 극도로 긴장했는데 알파고가 이겼다. 너무 기쁘다. 우리는 마침내 달에 착륙했다.”
(데이비드 실버 딥마인드 리서치 담당 엔지니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팽팽해 보인다. 알파고는 비록 이기긴 했지만 최적의 수를 찾아내기 위해 매번 한계치까지 가야만 했다.”
(유창혁 당시 국가대표 감독) “정말 충격 받았다. 이세돌 9단이 정상 컨디션인지 의문인 수가 많이 나왔다. 특히 초반 흐름이 너무 나빴다.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의식해서 많이 긴장한 것 같다.” (3월 9일 1국 종료 후)
제2국 알파고 211수 흑 불계승(3월 10일)
알파고 2승, 이세돌 2패
(이세돌 9단) “완패를 인정한다. 단 한 순간도 내가 앞섰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알파고가 완벽한 바둑을 두었다. 1국 포함 두 판의 대결에서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3국에선 내 스타일의 바둑을 두겠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드라마틱한 대국이었다. 알파고가 다양한 변칙수를 보여주었다.”
(송태곤 9단 TV해설) “나는 이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의 실수를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런데 결과는 패했고 그래서 더욱 허망하다.”
(유창혁 9단 TV해설) “알파고가 놀라운 끝내기 실력을 보여주었다.”
(3월 10일 2국 종료 후)

▲ 3연패 뒤 제4국서 마침내 알파고를 꺾고 첫 승을 따낸 이세돌이 환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제3국 알파고 176수 백 불계승(3월 12일)
알파고 3승, 이세돌 3패
(이세돌 9단) “대국하면서 이처럼 심하게 압박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세돌이 패한 것일 뿐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무릎 꿇은 것은 아니다.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어렵기 때문에 그 이전에 승부를 결정지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아직 알파고가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는 없다. 충분히 약점을 발견했다. 3연패로 종합 승패는 결정됐지만 남은 4, 5국에서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 겸 CTO) “구글이 바둑의 아름다움을 접목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권갑룡 8단. 이세돌 스승) “이것은 바둑 대결이라기보다는 문화와 과학의 싸움에 가깝다. 여기까지 승부를 펼친 이세돌이 승자다.”
(홍민표 9단. TV해설) “이세돌 9단이 앞섰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갈수록 알파고는 견고해졌다. 인간 한계를 넘어선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계는 고정관념이 바뀌고 기술적으로도 진보할 것이다.”
(이희성 9단. TV해설) “이번 5번기 중 이세돌 9단이 처음으로 전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한 판이다. 그런데 바둑이 끝나고 보니 과연 언제 유리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알파고는 이번에도 허점을 보이지 않고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3월 12일 3국 종료 후)

▲ 4국이 끝난 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가운데)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 이세돌, 오른쪽은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
제4국 이세돌 180수 백 불계승(3월 13일)
이세돌 1승 3패, 알파고 3승 1패
(이세돌 9단) "한 판 이겼는데 이렇게 기쁘고 축하까지 받은 건 처음이다. 국민적 성원에 감사한다. 값어치로 매길 수 없는 1승이라고 할까. 3연속 패배로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견딜 만 했다. 알파고는 예상 못한 수가 나왔을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흑번일 때 비교적 약한 것 같다. 백으로 한 판 승리했으니 마지막 남은 5국에선 흑으로 이겨보고 싶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 “이세돌 9단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는 오늘 너무 잘 두었고, 알파고가 회복할 수 없는 실수를 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4국서 알파고는 1~3국과 같은 버전을 사용했다. 알파고를 이세돌 기풍에 맞춰 훈련하지는 않았다. 인터넷상의 아마추어 기보를 알려주고 훈련해 스스로 바둑을 두는 방식으로 학습했다. 최종 5국은 이세돌의 제안을 받아들여 알파고의 백번으로 치르기로 했다.” (3월 13일 4국 종료 후)
제5국 알파고 280수 백 불계승(3월 15일)
알파고 4승 1패, 이세돌 1승 4패,
(이세돌 9단)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아쉽다. 최종 5국은 초반에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부족했다. 알파고와 대국하면서 인간의 창의력이나 바둑의 격언 등과 관련해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이 정말 맞는지 의문이 생겼다. 더 연구해봐야 풀릴 것 같다. 대국 환경 등이 생소해 적응에 애를 먹었지만 이번 5번기는 원 없이 즐겼다. 알파고의 집중력이 사람이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려운 경지이긴 하지만 알파고가 나보다 강한 실력을 가졌다고 인정할 생각은 없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 “다섯 판 중 가장 짜릿한 대국이었다. 알파고가 초반 실수를 딛고 감동적인 승리를 따냄으로써 믿기 어려운 4대1 승리를 가져왔다. 이번 승부는 인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3월 15일 5국 종료 후).

▲ 챌린지매치가 열린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대회 기간 내내 국내외 매스컴의 뜨거운 취재 열기 속에 발 디딜 틈 없는 대성황을 이뤘다. [사진=한국기원]
<후일담>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 5번기를 치른 지 3년여가 흐른 2019년 11월 19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알파고와의 대결이 큰 영향 미쳤다. 더 이상 게임을 즐길 수 없다. 인공지능(AI)의 지배력이 증가함에 따라 바둑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어 바둑계를 떠나기로 했다.” 외신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세돌은 “AI에 졌다는 것은 내 세상 전체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그 후 한 달 뒤 12월 자신의 고향 비금도에서 인공지능을 상대로 은퇴 대국을 마친 뒤 “바둑 한 판 잘 즐기고 갑니다”는 고별사를 남겼다. 바둑판을 떠난 뒤 이 9단은 또 다른 신비 세계인 보드게임 제작에도 참여했고, 대학 특임교수 직을 맡아 후학 양성에 진력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알파고도 이미 현역이 아니다. 2017년 5월 커제와의 대결을 끝으로 역시 ‘은퇴’ 수순을 밟았다. 당시 세계 최강자로 떠오르던 커제는 0대3으로 완봉패하자 아쉬움과 분함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알파고가 남긴 공식 전적은 68승 1패. 이세돌이 챌린지매치 5번기 제4국서 거둔 1승이 알파고가 인간에게 당한 유일한 패점으로 기록됐다.
챌린지매치는 인공지능 만능시대를 열어젖힌 기념비적 행사였다. 수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바둑 이론체계를 하루아침에 뒤집어 놓고 수법의 눈부신 도약에 기여했다. 바둑이란 게임을 지구촌 구석구석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도 됐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날을 되돌아보면 꿈을 꾼 듯 허망하다는 생각도 든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낳은 불퇴전의 승부사를 ‘인공지능 쇼’에 제물로 바친 격이 됐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며 흥행을 이끌던 풍운아 이세돌이 떠나지 않았다면 ‘무림(武林)’은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