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English LG
LG Home English Chinese

생중계
뉴스
기보보기
기보해설
대회개요
대진표
선수소개
역대 우승자 보기

  깨지길 기다리는 바둑 대기록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다. 식상할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지만 승부세계의 생리를 이만큼 실감나게 압축한 표현도 없다. 기존 질서를 허물기 위한 도전이 승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점령해온 진지를 실력으로 빼앗은 뒤 더 높은 진지 확보를 위해 전력질주 한다. 이 끝없는 쳇바퀴 속에서 승부세계는 더욱 고도화 되고 단련된다. 바둑 세계의 각종기록 보유 현황과 함께 경신 가능성을 난도(難度) A~C로 정리해 보았다.

▲ 세계 메이저 대회 최다 제패 및 최연소 우승 기록 보유자 이창호는 최근 통산 최다승 기록까지 스승 조훈현으로부터 탈취했다.

▨최다승 부문 이창호 독주 자세
최근 몇 달 사이 특기할 만 한 새 기록들이 쏟아졌다. 그 중 하나가 2025년 세모(歲暮)에 이창호가 프로바둑 역사상 개인 통산 최다승기록을 경신한 사건이다. 김수장 9단을 꺾고 1969승째를 올렸는데, 이는 조훈현 9단이 가지고 있던 종전 최다승(1968승)을 무려 39년 만에 앞지른 새 기록이다. 누적(累積) 기록 부문에서 제자가 스승을 앞지르기란 매우 어려운데 이걸 해냈다.

이 부문은 앞으로도 이창호, 조훈현 둘 간의 각축장으로 이어지되 이창호가 1위 자리를 다시 내주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3위 이하 다른 추격자들이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올해 51세가 되는 이창호는 시니어 무대를 활발하게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훈현은 시니어 국제기전(벽산수배 등) 등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등판 중이다. 이창호가 접수한 최다승 부문 타이틀은 이제 좀체 깨지기 어려운 난도(難度) A급 과제로 올라섰다.

▲ 2003년 제7회 삼성화재배서 우승한 조훈현. 국내 기전을 합쳐 통산 최다우승(160회) 기록을 지키고 있다.

▨최다 우승 부문 조훈현 不動
현재 개인 최다 우승(국내-국제 포함) 회수는 조훈현 160, 이창호 141, 이세돌 50개다. 역시 조훈현 이창호 사제가 경합하는 가운데 이창호가 맹추격 중이다. 이창호는 2010년 국수전 이후 2023년 울산시장배서 141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작년 이창호의 우승으로 끝났던 블리츠배는 2026년부터 공식대회로 편입됐다. 시니어 무대에서의 이창호는 지난날 전 연령대를 호령하던 ‘활화산’ 모습 그대로다.

반면 조훈현은 2003년 제7회 삼성화재배 정복 이후 우승 소식이 끊겼다. 시니어 대회마저 거의 외면하고 있다. 출전 자체 수가 몇 안 되다 보니 우승 추가는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부문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획득 타이틀 수 19개는 만만하게 볼 격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73세 조훈현, 51세의 이창호가 각각 몇 살까지 활동을 이어갈까도 변수다. 이 항목의 난도는 일단 B로 분류한다.

▨신진서, 최다 메이저 제패 놓고 이창호에 도전
이창호 17, 이세돌 14, 조훈현 신진서 9, 구리 커제 8, 유창혁 6, 박정환 5, 딩하오 3. 역대 세계 메이저 우승 회수다. 이 중 이세돌은 은퇴했고 조훈현 유창혁 구리는 현역 최일선 주자라고 볼 수 없다. 이창호의 17회 세계 제패를 최 근접거리에서 위협 중인 기사로는 신진서 커제 박정환 딩하오 등이 꼽힌다. 왕싱하오 뤼시안하오 랴오위안허 등 중국 기사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초점은 역시 신진서의 이창호를 향한 도전이다. 26세의 현역 최고수인 신진서와 51세 이창호는 25세 차이다. 이 시간적 갭을 뚫고 세계 우승컵 8개의 간격은 메워질 수 있을까. 천하의 신진서에게도 쉽지 않은 미션이다. 과거 어떤 강자도 30대에 접어들면 급격한 하락을 면치 못해왔기 때문. 앞으로 5~6년 동안 8번 우승을 하려면 매년 세계 2관왕을 유지해야 한다. 난도는 A와 B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 세계 메이저 9회 제패의 현역 최강 신진서(26). 17회 우승의 전대 1인자 이창호를 맹추격 중이다.

▨최고령/최연소 세계제패 경신도 안개 속
조훈현은 23년 전인 2003년 제7회 삼성화재배 대회서 역대 메이저 최고령 우승(49세 10개월) 기록을 썼다. 또 최연소 세계석권 부문은 1992년 이창호가 제3기 동양증권배를 통해 기록한 16세 6개월인데 34년째 꿈쩍도 않고 있다. 메이저 국제대회가 1988년 첫 닻을 내린 이후 30여년 동안 동양 4개국에서 연인원 141명의 세계 챔프가 배출됐지만 조-이 사제는 여기서도 발군의 스타임을 입증하고 있다.

최고령, 최연소 세계 제패 기록도 언젠가는 새 주인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 세계 바둑은 연소화 쪽으로 흘러가는 듯 하다가도 때론 평균 연령 상승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참신한 새 얼굴의 등장 빈도는 생각보다 낮다. 최고령 챔프 탄생 난도는 대략 B, 최연소 메이저 우승기록 경신을 위한 난도는 상대적으로 덜 어려운 C로 분석된다. 젊음이 지닌 잠재력은 노련미의 가치를 추월할 때가 많다.

▨최연소 입단 기록
생후 9세 6개월에 불과한 유하준 소년이 지난 연말 프로에 임관됐다. 조훈현이 평생 가지고 있던 세계 최연소 입단기록(9세 7개월)을 깨뜨리고 무려 63년 만에 새로운 기록을 작성했다. 일각에선 12세 이하만 출전하는 관문을 통과한 것이어서 성인들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했던 조훈현과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훈현의 실제 나이를 둘러싼 논란도 잠시 뒤따랐다.

▲ 63년 만에 최연소 입단 기록을 바꿔놓은 유하준 초단. 9세 6개월의 나이로 새 역사를 썼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하지만 한국 바둑계가 모처럼 큰 재목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신진서 등 한국바둑을 대표해온 역대 일인자들의 울창한 ‘기록 숲’을 헤치고 최연소 딱지를 얻어낸 것만으로도 자질과 대성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조기 입단은 한국기원의 정책과도 연관이 있어 경우에 따라선 수년 내 더 어린 유망주의 입단도 가능할 것이다. 이 항목 도전 난도는 B~C.

▨연간 상금 톱은 신진서
역대 연간 상금 최고액은 신진서가 2023년 기록한 14억 7962만원이다. 2020년 이후 6년 연속 10억원을 상회했다. 신진서의 2023년 기록은 지난 2014년 이세돌의 최고수입(14억 5658만원)을 근소하게 앞선 액수다. 일본 쪽은 이야마 유타 9단이 2015년 받아든 1억 7212만엔이 최고액(현재 환율로 약 16억원)이다. 중국은 2025년 왕싱하오의 406만 위안(약 8억 4000만원).

신진서가 프로 데뷔 후 거둬들인 누적 총상금이 100억 원을 넘어섰다. 엄청난 거액이지만 야구 축구 테니스 등 인기 스포츠 종목 스타들의 그것과 견주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열세다. 기사들의 수입은 앞으로도 바둑이 세계 레저 게임무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바뀔 것이다. 구미(歐美) 자본주의 선진국에 파고들지 못하면 변방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새 기전이 늘어날 수도 있어 연간 수입 기록 경신 난도는 C로 평가한다.

바둑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수(手)와 경기력 향상에만 주력했을 뿐 자체 컨텐츠가 지닌 상품성 개발엔 두 손을 놓고 지내왔다. 각국이 수 천년 동안 쌓여온 파란만장한 비사(秘史), 야사(野史)를 관리하고 스토리로 만들어 기록화, 신화화 작업을 시도해왔다면 지금쯤 다른 대접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갈수록 위상이 떨어지고 동호인구도 정체된 바둑계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최다승과 최연소 입단자 탄생 등 새 기록들이 제공해 주었다.
Top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