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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새해를 맞는 한국 바둑
 
2026년 새해 세계바둑 정상권은 어떤 기상도를 형성할까. 여전히 한국 중국 일본 등 3강의 각축이 계속될 것이란 점 외엔 국가별 타이틀 점유 수를 자신 있게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 30년 넘게 반상(盤上) 패권을 다투어 온 한국과 중국은 올해 어쩌면 세계 바둑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을 펼칠 가능성도 점쳐진다.

▲ 신진서(오른쪽)는 지난해 난양배 결승서 왕싱하오를 꺾은데 이어 연말 쏘팔코사놀배도 우승, 2관왕으로 군림 중이다.


우선 현 시점 성적표(표1)부터 확인해 보자. 메이저급 세계타이틀 9개를 놓고 한국이 3개, 중국 5개, 일본 1개를 점령하고 있다. 현역 최다관왕은 난양배와 쏘팔코사놀배를 보유 중인 2관왕 신진서다. 현존 유일의 세계 복수(複數) 챔피언이기도 하다. 29기 챔프 변상일은 제30회 LG배 우승자가 결정될 때까지 타이틀 보유자로 인정받지만 이미 탈락해 실질적으론 실관(失冠) 상태다. 한국과 중국의 현 메이저 타이틀 재고(在庫) 수는 냉정하게 2대5가 맞는 셈이다.


연도별 타이틀 수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지른 것은 2019년 이후 6년만이다(표2 참조). 2013년 중국은 6개 세계 기전을 독식하면서 한국에 한 석(席)도 허용치 않는 절정기를 구가했다. 2014년 1대1에 이어 2015년 다시 3대1로 앞선 중국은 2019년까지 한국을 압도했다. 한국은 이세돌 박정환 등이 분전했지만 구리 탕웨이싱 등에 이어 등장한 커제의 막강 화력 앞에서 무기력했다.

▲ 1998년 제2회 LG배 결승 장면. 왕리청(왼쪽)이 유창혁을 꺾고 이 대회 첫 한일 결승대결을 장식했다.

한국의 재 반격은 신진서의 등장과 함께 발동이 걸렸다. 신진서는 2020년 제24회 LG배 제패를 신호탄으로 눈부신 질주를 거듭하며 영토를 넓혀갔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5년 간 무려 9개의 ‘금메달’을 바구니에 퍼 담았다. 신진서의 이 같은 맹활약은 국가 간 우승 경쟁에 고스란히 반영돼 한국이 중국을 제치고 역전 우세를 잡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쏠림현상’이 문제가 됐다. 과부하(過負荷)가 걸리면서 천하의 신진서도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자란 그의 지위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세계 우승 점유율 하락 추세는 감출 수 없게 돼버렸다. 2025년 초 난양배를 들어 올릴 때만 해도 연말까지 3~4관왕 등극이 유력해 보였으나 북해신역배, 란커배, 삼성화재배에 이어 신설 기전인 기선전 우승컵도 그를 비켜갔다.

국제 바둑경쟁서도 한국과 중국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 관계를 유지한다. 한국이 1인(신진서) 편중 현상을 보이는 동안 중국은 ‘고른 득점’을 구가했다. 양카이원 왕싱하오 당이페이 랴오위안허 등이 줄줄이 세계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동안 세계무대에서 유망주 또는 준척(準尺)급 정도 평가를 받는데 그쳤던 기사들이다. 한국 바둑의 취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탄식이 나온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랴오위안허 투사오위 왕싱하오 딩하오 셰커 리웨이칭 등 중국 주력선수들의 나이가 신진서와 동갑이거나 더 어린 선수들이란 점이다. 국제대회가 열렸다 하면 결승전 언저리까지 중국 기사들이 벌 떼처럼 ‘상시 출몰’하는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2025년의 경우 각종 세계 기전 결승전 카펫을 밟아본 한국 기사는 신진서를 제외하곤 신민준(LG배)과 박정환(춘란배) 단 2명뿐이었다.

▲ 1월 19일 제 30회 LG배를 놓고 결승을 펼칠 신민준(오른쪽)과 이치리키 료. 이치리키가 통산 1승으로 앞서 있다.

신진서는 언제까지 한국 바둑 살림을 혼자 도맡는 ‘소년 가장‘ 역할을 해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최소 2~3년은 그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2000년생으로 오는 3월 만 26세가 되는 신진서는 73개월 연속, 통산 81번째 큰 점수 차로 한국랭킹 1위를 지키는 중이다. 공식 국제 랭킹은 없지만 경쟁국들도 신진서의 절대 아성을 인정하고 있다. 도전자 무리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신진서에겐 가장 큰 짐이다.

신인 대망(待望)의 목소리는 여전히 뜨거운데 기대와 현실 간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왕싱하오를 제치고 글로비스를 품에 안았던 05년생 루키 한우진(한국랭킹 13위)은 요즘 바둑리그에서 얼굴을 볼 수 없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 불참했다는 소문이다. 재작년 바둑리그 MVP 문민종(03년생, 29위)도 낭보가 끊어졌다. 팬들은 김승진(06년생), 박지현(05년생), 김은지(07년생) 등 유망 신예들의 폭발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며칠 뒤 1월 12일 시작하는 제30회 LG배 결승 3번기부터 주목하자. 신민준과 이치리키 료 간의 한일전이다. 1999년생인 신민준은 25회 대회(2020년) 우승으로 세계 최고무대에 화려하게 발을 들여놓은데 이어 또 한 번 LG배에서 비상(飛上) 기회를 잡았다. 신민준이 이번 결승을 승리로 장식한다면 개인적으로나 한국 바둑계로서나 새로운 전기(轉機)가 될 것이다.

일본 역시 이번 결승에 명운을 걸고 있다. 이치리키(28)가 우승할 경우 잉씨배에 이어 세계 메이저 2관왕에 등극한다. 일본 기사가 세계 메이저 2관 동시 석권을 이룬 적은 한 번도 없다. 한 중 양국에 눌려 설움을 겪어온 일본으로선 절호의 도약 기회를 맞은 셈이다. 지난 해 LG배 결승 변상일-커제전은 커제의 몰수패로 처리되면서 올해 대회는 중국 기사가 빠진 채 진행돼왔다. 이 절호의 기회를 둘 중 누가 수확할지 주목된다. 한일 간 LG배 결승전은 1998년 유창혁 대 왕리청전 이후 28년 만이다.

▲ 중국은 지난해 현역 메이저 챔프 5명을 배출하는 등 기세를 타고 있다. 사진은 삼성화재배를 놓고 집안 잔치를 벌인 랴오위안허(왼쪽. 승)와 딩하오. [사진=한국기원]

연례대회로는 사상 가장 많은 우승 상금(4억원)이 걸려있는 신설 대회 제1회 신한은행 세계기선전 결과도 주목된다. 4년여 만에 메이저 사냥에 나서는 박정환과, 8강전서 신진서를 낙마시킨 왕싱하오가 2월 25일부터 3번기로 초대 우승컵을 다툰다. 두 기사는 지금까지 세 차례 마주 앉아 왕싱하오가 2승 1패로 리드하고 있다. 기선전의 가세로 세계 바둑 메이저 무대는 두 자릿수(10개)로 늘어났다.

2026년 연말 한 중 일은 각각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까. 돌이켜 보면 한국 바둑은 조훈현 이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신진서 등, 시대 단락 별로 발군의 천재 한 명씩을 지렛대 삼아 초인적 버팀 속에 선두권을 사수해 왔다. 2025년 12월 31일 현재 한국이 배출한 메이저 세계 챔프 숫자는 총 16명으로 중국(26명)에 뒤지지만, 국가별 우승 회수에선 73대 54로 여전히 중국에 앞서있다. 일당백(一當百) 정신으로 뭉쳐온 한국 바둑의 저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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