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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기보다 싫은 한마디 “졌습니다”
 
승부사에게 패배는 최악의 결말이다. 이보다 더 쓰라린 것은 세상천지 없다. 사력을 다해 맞서고도 좋은 결과로 이어가지 못한 분함과 열패감, 후회와 아쉬움이 줄줄이 따라온다. 패자의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대다수 스포츠 게임은 심판의 종료 휘슬과 함께 최종 스코어가 전광판에 뜨면 승자와 패자가 선명하게 가려진다. 축구 농구 등 시간제 경기, 배구 테니스 같은 세트 게임도 마찬가지다. 사격 양궁 등 과녁 경기나 야구 등 아웃제 게임이라고 다르지 않다. 주어진 경기 과정을 마치면 저절로 결과가 나오고 명암이 드러난다.

하지만 어느 일방이 중도에 경기 속행을 포기함으로써 승패가 결정되는 종목도 있다. 심각한 부상을 입어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됐을 때, 대세가 너무 기울어 역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기권패가 등장한다. 종합 격투기(MMA)에서 그런 장면을 자주 본다. 극한상황에 내몰린 선수의 항복(서브미션)으로 경기가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선수가 손으로 상대 몸 또는 매트 바닥을 두드린다. 이른바 ‘탭을 친다’는 이 동작이 나오면 심판이 개입, 경기를 중단시키고 승자의 손을 들어올린다.

▲ 종합격투기 서브미션 장면. [네이버 블로그}

종합 격투기의 이 같은 특성을 가장 닮은 승부 종목이 바로 바둑 게임이다. 격투기가 심판 판정 또는 서브미션으로 승패를 가리는 것처럼 바둑에도 계가(計家)와 불계(不計)가 함께 존재한다. 패배를 인정하고 담담하게 돌을 거두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불계패엔 아쉬움과 회한이 진하게 묻어난다. 격투기의 서브미션과 다를 게 없다. 기권패는 패배 자체도 쓰라리지만 스스로의 입이나 동작으로 항복을 선언해야 하므로 판정(계가)패보다 훨씬 더 괴롭다.

경쟁관계의 라이벌을 상대로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가 역전패 위기에 몰렸을 때 싹싹하게 돌을 거두고 기권패를 받아들이기란 성인군자도 쉽지 않다. 한국기원 홈페이지 대국일지에 종종 ‘백 68집 반 승’, ‘흑 46집 반 승’ 등 천문학적(?) 계가 결과가 등장하는 배경엔 대개 이 같은 사정이 있다. 자존심 때문에 차마 자기 입으로 졌다는 말을 못하고 착점을 계속하다 계가 단계까지 도달한 경우다.

▲ 프로 대국 광경. 과거엔 중앙에 자리잡은 계시원이 소비시간을 관리했으나 요즘엔 계시원 없이 대국자가 착점 후 직접 시계를 누르는 방식이 많아졌다.

“졌습니다” 한 마디를 던지기가 죽기보다 싫다면 패배를 인정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요즘 가장 보편화 된 ‘돌 거두기’ 수법은 대국 시계를 눌러 끄는 동작이다. 시간제 게임인 바둑에서 시계를 멈추게 한다는 건 중대한 반칙 행위다. 하지만 이 방식이 보편화 되면서 대부분 반칙패 아닌 기권패로 기재된다. 과거 기록요원이 시간 관리를 맡았던 시절엔 대국자가 요원에게 초읽기 중단 요청 사인을 보내 기권 의사를 전달했었다.

더 역동적인 장면들도 등장한다. 막판 중앙에서 벌어진 대형 전투를 놓고 아마추어 시청자들이 열심히 수수(手數)를 헤아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국자 한 명이 돌연 돌을 한 무더기 들어내고 주루룩 다른 그림을 그려 보이는 장면이다. 이것 또한 우리네 상식으론 엄연히 반칙패지만 기록자는 불계패로 적어 넣는다. 이제 반상에서 “졌다”는 처절한 외침은 사라진 대신 온갖 반칙패 동작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로 옮겨 앉았다.

자진(自盡)의 수단으로 제한시간을 고의로 넘겨버리는 수법도 자주 등장한다. 마지막 초읽기 안에 착점하지 않고 시간패를 자청하는 것이다. 이 역시 ‘졌다’는 대사를 입에 올리는 괴로움을 대체하는 동작이다. 수읽기에 골몰하다 초읽기를 넘기는 ‘진짜 시간패’도 물론 없지는 않다. 그래서 서브미션인지 시간패인지 대국 현장을 지켜보지 않으면 애매할 때가 있다. 프로들은 기보를 대충 훑어보고 어느 쪽인지 쉽게 가려내는데 “불리해서 옥쇄(玉碎)한 것”이라고 판정할 때가 많다. 고도로 훈련된 프로들이 시간패가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다.

▲ 대국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대기 중이던 카메라맨들이 대국장으로 몰려든다. 이창호(왼쪽)와 구리의 농심배 대결 때 모습.

말 아닌 동작으로 패배 선언을 대신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바둑이 현대화 길을 걷기 시작한 1940년대 이후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기사들은 자신의 입을 통해 직접 패배를 선언했다.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씩 공을 들여 쌓아올린 대국을 놓고 자신이 졌다고 선언하기란 얼마나 괴로웠으랴. 하지만 기사들은 고통스런 순간에도 위엄과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패배사(敗北詞)’에 멋과 풍류가 느껴지곤 했다.

“축하하네.” 조남철은 1966년 제10기 국수전서 패배가 확실해지자 자신의 아성을 허문 김인에게 불쑥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패배를 인정했다. 한국 바둑의 1인자 교체라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후계자에게 담담히 바통을 건네는 대가다운 풍모를 보인 것이다. 이 대관(戴冠) 방식은 한 동안 도전기 등 큰 대국에서 ‘정답 모델’로 자리잡는 듯 했으나 기대만큼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가장 많이 쓰인 패배 선언은 “없습니다”였다. 더 이상 승부처가 없어 여기서 돌을 거두겠다는 뜻이다. “없군요”, “없네”, “없어요”도 같은 내용이다. 그 시점의 형세, 즉 자신이 뒤쳐진 집 숫자를 통해 패배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1집 반인가요? 아, 2집 반이군요.” 하는 식인데, 자신의 집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의미다. “내가 졌고 당신이 이 정도 이겼으니 이쯤에서 판을 멈추자”는 제안이다.

일본의 원로기사 오다케(大竹英雄) 9단의 “카메라맨을 불러주시죠.”도 한 때 회자되던 유명한 대사다. 역사적 종국(終局)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대국실 밖에서 오랜 시간 대기 중인 사진기자를 입장시킬 때가 왔다는 뜻으로 자신의 패배를 에둘러 선언하고 있다. 이 멘트는 한때 아마추어 바둑 팬들의 패러디 대상으로 이용되곤 했다. 허물없는 사이인 상대가 돌을 거두지 않고 버틸 때 “카메라맨들이 낮잠 자는가베”라며 비아냥대는 식이다.

▲ 대국자 두 사람의 사용 시간을 관리하는 대국용 시계. 요즘엔 본래 기능 외에 패배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기원]

항복 때 구두(口頭) 방식 선언이 사라지고 동작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갈수록 경쟁이 각박해지면서 승부에 대한 집착이 월등하게 강해진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과거처럼 “더 이상 해볼 데가 없다”, “내가 몇 집 졌으니 그만 끝내자” 는 식으로 부처님 같은 도량을 보일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승리한 상대방에게 빈 말이라도 축복메시지를 보낸다는 대국자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됐다.

프로기사는 뜨거운 열기를 안으로 내연(內燃)시키며 하루 종일 상대와 싸우는 직업이다. 장시간 꼿꼿이 앉아 최후의 땀 한 방울까지 짜내는 고통은 경험자만 안다. 그 과정이 다른 어떤 종목보다도 처절하다. 마지막 순간 졌다는 말을 자신의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반칙성 동작을 빌어 실력 외적 패배인양 분식(粉飾)까지 하느라 부심한다. 바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이성적 게임이지만 동시에 격투기를 능가하는 최고의 극한게임이란 상반된 얼굴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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