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성씨(姓氏)는 총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귀화(歸化)한 사람을 제외하고 순 한국 본토 출신의 성씨만 계산해도 그렇다. 이들 성씨별로 바둑과 관련된 통계를 뽑아보았다. 최신판 통계청 집계와 인터넷 문서, 한국기원 자료 등을 기반으로 정리했다. 작업 결과 우리나라에서 최다 인구를 거느린 성씨도, 프로기사 수가 가장 많은 성씨도 모두 김(金)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 전성기를 구가 중인 99년생 설현준 9단. 대표적 희성 기사 가운데 한 명이다.
김씨 인구는 우리나라 성씨 중 유일하게 1000만 명이 넘는다. 모두 1,092만 명으로, 남한 전체 인구(5,180만명)의 약 21.1%에 해당한다. 김씨 성을 가진 프로기사 수는 무려 105명. 은퇴자를 뺀 현역 450명 가운데 약 23.3%를 점하고 있다. 두 부문 모두 압도적인 1위인데 프로기사 점유율이 인구 점유율보다 2%포인트나 더 높다. 대한민국 바둑계는 김씨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 인구 수 2위는 744만 명이 살고 있는 이(李)씨다. 프로기사 수 61명으로 이 부문 역시 2위에 자리잡고 있다. 1위 김씨에겐 인구 300만 명, 기사 수로는 40명 이상 뒤져있다. 김 이 양대 성씨 뒤를 박(朴)씨가 추격하는 모습이다. 박씨는 총 417만 인구에 43명의 프로기사를 거느려 두 부문 모두 3위에 랭크됐다. 그 뒤를 각각 200만명대(帶) 인구의 최(崔)씨와 정(鄭)씨가 따르고 있다. 김 이 박 최 정 등 ‘빅 5’의 총 인구를 합하면 대한민국 전체의 45%에 달한다.
여기서부터 전체 인구 수와 프로기사 수 간의 불일치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인구 수 5위 정(鄭)씨 성을 가진 현역 기사 수는 8명인데 이는 프로 기사 수 공동 9위에 해당한다. 반면 인구 8위인 윤(尹)씨는 무려 18명, 인구 수 7위 강(姜)씨 문중은 13명을 전문기사로 배출해 기사 수 순위 5, 6위 자리를 점령 중이다. 조(趙)씨와 한(韓)씨도 각각 11명의 현역 프로기사를 거느려 바둑 잘 두는 성씨임이 확인됐다. 서(徐)씨(8명), 안(安)씨 오(吳)씨 홍(洪)씨(이상 각 7명)도 든든한 기사 층을 자랑한다.
양(梁), 류(柳), 문(文), 백(白), 송(宋. 이상 각 6명), 임(林), 권(權), 고(高), 신(申), 허(許, 이상 각 5명)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부기(附記)해 둘 것은 한글로 같은 성이라고 해도 한자 표기가 다른 성씨는 별개로 집계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강(姜)씨 13명 중엔 강(康)씨 3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유(류)씨로 표기되는 성씨는 劉, 柳, 兪, 庾씨 등 여러 개에 이르는데 이들을 동일 가문 구성원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 금지우 5단. 한국바둑리그서 다년간 활약해왔다.
통계자료를 분류할 때 양(量)과 질(質)이 부딪치는 것은 숙명이다. 인구 수 14위의 신(申)씨는 고작(?) 6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하면서 공동 14위에 그쳤지만 그 내역이 다른 어떤 성씨군(群)보다 알차다. 세계 최강자인 신진서, 국내외를 넘나들며 톱스타 중 한 명으로 맹활약 중인 신민준 등 ‘양신(兩申)’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조남철 조치훈을 배출한 조(趙)씨, 이창호 이세돌의 원투펀치를 거느린 이(李)씨 그룹의 위명도 각별히 대접받아야 한다. 조훈현을 정점으로 하는 曺씨, 서봉수와 유창혁을 낸 徐씨와 劉씨도 마찬가지. 세계대회 다관왕 출신(박영훈 강동윤 박정환 변상일)들이 속한 그룹 역시 바둑 친화적 성씨로 자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김씨 군단은 김명훈, 김지석, 김진휘, 김정현 등 4명이 20위권 안에 포진해있어 ‘현재 권력’도 막강하다.

▲ 대국 중인 노우진 초단(왼쪽)
프로기사를 배출하지 못한 성씨가 상당수에 달하다 보니 희귀 성씨 집안에서 태어나 유일한 프로기사로 가문을 빛내는 기사들의 존재가 더 돋보인다. 한국랭킹 50위권인 금지우 5단은 인구 순위 85위 금씨(琴) 집안 체면을 양어깨에 짊어진 채 용전분투 중이다. 기민찬 3단이 대표로 나선 기(奇)씨는 인구 순위 81위이고, 옥득진 8단을 배출한 옥(玉)씨 성은 인구 수 86위다. 온소진 8단의 온(溫)씨는 전체 인구수 100위권 밖이다.
희성(稀姓)을 가진 ‘나홀로 프로’ 중 현재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기사는 설현준(26) 9단이다. 국내 랭킹 10위권 안팎을 오르내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설(契)씨 전체 인구수도 100위권 밖이다. 2008년생으로 지난 해 1월 입단한 16세 소년 노우진(魯禹眞) 초단의 비상(飛上) 여부도 바둑계의 관심사로 꼽힌다. 노(魯)씨의 국내 인구별 성씨 랭킹은 66위로 나온다. 인구 수 33위인 노(盧)씨는 노영하 사범 타계 이후 아직 후계자가 없다.

▲ 제자 육성에도 공로가 큰 옥득진 8단의 대국 모습. (사진=한국기원 제공)
국민 대다수가 한 글자 성(姓)을 지녔지만 두 글자로 돼 있는 성씨도 있다. 이를 복성(複姓)이라고 부른다. 남궁 황보 제갈 선우 사공 독고 동방… 등 10여개의 복성이 존재하는데 하나같이 희성이다. 복성 프로기사는 딱 한 사람 나왔다. 올해 28세인 서문형원(西門炯元) 초단이 그 주인공. 서문 씨는 복성 중에서도 숫자가 적어 희성 중 희성으로 꼽힌다. 참고로 이어덕둥(27) 3단은 성이 이(李), 이름이 어덕둥으로 복성에 포함되지 않는다.
14억 인구 대국인 중국의 성씨는 4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중 왕(王)씨가 약 9,300만 명으로 전체의 7.2%를, 이(李)씨가 6.8%를 점유 중이다. 장(張), 유(劉), 진(陳), 양(楊), 황(黃), 조(趙), 오(吳), 주(周) 등 톱 10 성씨 인구수는 각각 2000만 명이 넘는다. 인구 랭킹 1위 왕씨 진영은 기사 랭킹 2위 왕싱하오가 있어 간신히 체면을 지키고 있다. 인구 6위 양(楊)씨도 세계챔프 출신 베테랑 양딩신 홀로 외롭게 버틴다. 커제(柯潔), 투샤오위(屠曉宇), 탄샤오(檀嘯) 등의 예에서 보듯 중국 톱스타 기사들 중엔 희성 보유자가 굉장히 많다.
일본은 어떨까. 최다 성씨인 사토(佐藤)는 약 190만 명으로 일본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다. 하지만 일본기원 홈페이지에 등재된 사토 씨 현역 프로기사는 사토 마사하루(佐藤昌晴.78) 등 3명에 불과하다. 고바야시(小林), 하시모토(橋本), 야마시타(山下) 등 바둑 팬과 친숙한 성씨가 전체 인구 순위 9위, 24위, 27위로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이치리키(一力) 이야마(井山), 시바노(芝野) 등 톱 플레이어들이 속한 성은 인구리스트 상위권에서 찾기 힘들다.
난센스 문제 하나 풀고 마무리 짓자. 세계적으로 어느 성(姓)씨가 가장 바둑이 셀까. 정답은 이씨란다. 우선 한국에서 이창호 이세돌이란 불세출의 스타가 배출됐다. 중국은 더 막강하다. 리웨이칭 리친청 리쉬안하오 등 현 랭킹 10위권 강타자들이 즐비하다. 일본도 만만치 않다. 1인자이자 현역 세계 챔프이기도 한 이치리키 료, 현역 2관왕 이야마 유타 투톱에 더해 왕관 보유자 이다 아쓰시가 모두 이씨(?) 가문이다. 물론 우스개이니 정색하면 바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