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하순 독일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남자 400m 릴레이 종목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차지한 사건(!)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세계대학경기대회는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없는 무대인데다 대회가 끝난 지 한 달 이상 지났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이 그 레이스를 아직도 ‘독일 대첩’이라 부르며 잇달아 화제에 올린다. 이 같은 분위기는 어디에 근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스포츠는 국권을 되찾은 1945년 이후 8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정치 경제 문화 못지않게, 때로는 그 이상 감동적 장면을 연출하며 국민 사기 앙양에 한 몫을 맡아왔다. 영토 규모나 인구를 감안하면 세계 스포츠계에서 한국이 점유하는 비중은 엄청났다. k팝이나 k푸드가 등장하기 전인 1950~70년대에만 해도 한국 선수들의 분전에 놀란 외국인들이 “한국이 도대체 어디쯤 자리한 나라냐”고 묻는 해프닝이 자주 펼쳐지곤 했다.

▲ 독일 라인-루르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400m 계주서 38초 50의 기록으로 육상 강국들을 제치고 우승한 한국 선수들. [사진 대한육상연맹]
한국은 스포츠 종목 스펙트럼이 넓은 나라에 속한다. 몇몇 종목에만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해왔다는 뜻이다. 인도하면 하키, 호주하면 수영이 떠오르고 육상 자메이카, 마라톤은 케냐, 탁구 스웨덴, 아이스하키는 캐나다…하는 식으로 ‘전공 종목‘ 한두 개에만 매달리는 나라들과 다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심각한 취약점을 안고 있었다. 각 종목에서 두루 강세를 보이면서도 일부 편식(偏食) 형태를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했던 게 사실이다.
스포츠의 기본은 ‘더 빨리(Citius), 더 높이(Altius), 더 힘차게(Fortius)’로 요약된다. 어떤 종목도 이 세 가지를 기본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프랑스의 고 쿠베르탕 남작이 남긴 이 명구(名句)는 인류가 스포츠를 통해 구현하려는 절대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세 구호의 머릿글자를 딴 르카프(LE CAF)란 스포츠 용품 브랜드까지 생겨났다. 세 구호 중에서도 으뜸은 ‘더 빨리(Citius)’였다. 약육강식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천적보다 한 순간이라도 더 빨리 뛰어야 성공하는 이치다.
‘더 빨리‘를 지향하는 스피드 경쟁은 현대 스포츠 종목 형성 과정에서 가장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땅(육상)과 물(수영), 얼음 위(빙상)와 눈 위(설상) 등 네 개 공간이 무대다. 육상과 수영은 하계 올림픽의 최다 메달 1-2위 종목이고, 동계올림픽의 양대 지주인 빙상과 설상 종목도 ’더 빨리‘가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다. 올림픽은 맨땅, 물, 얼음, 눈 위에서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를 겨루는 경연장이라 불러 지나치지 않은 시대다.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우주 달리기 등)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 스피드를 겨루는 이들 4개 기본종목에서 유난히 낙후된 모습을 보여왔다는 사실이다. 육상 수영 빙상 설상 국제경기에서 입상한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기록 차이가 워낙 까마득해 국제대회 예선서 떨어지기 일쑤였고, 어쩌다 본선에 진출해도 최하위권을 도맡아 하는 일이 반복됐다. 평균 학점은 높은데 과낙(科落)도 공유한 한국 스포츠의 기형적 구조는 수 십 년 동안 이어졌다(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황영조는 거의 유일한 예외다).
스피드 4대 기록 경기가 잠자는 사이 한국의 다른 종목들이 보여준 성적은 놀라울 정도로 화려했다. 구기 종목에선 탁구가 이에리사 등을 앞세워 1973년 일찌감치 세계선수권을 접수했고, 야구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정복했다. 1984년 LA서 시작된 양궁의 올림픽 석권 행진은 10연패(連覇)까지 이어지고 있다. 핸드볼 태권도 사격 레슬링 유도 농구 배드민턴 펜싱 등도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내달리며 국제무대를 달궜다.

▲ 서민준-나마디 조엘진-이재성에 이어 마지막 주자로 출전, 선두 골인 중인 김정윤. 오른쪽 작은 사진에서도 2위와 큰 격차로 들어온 것이 확인된다. (TV화면 캡쳐)
하지만 한국은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해치우고 마는 민족이다. 암흑 속을 헤매던 4대 스피드 기록경기에서도 깨어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불세출의 수영 스타 박태환이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그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건 장면은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결정적 순간으로 남았다. 박태환에 힘입어 세계와의 격차를 급격히 좁히기 시작한 한국 수영은 요즘엔 황금세대란 소리까지 들으며 선수층을 넓혀가고 있다.
박태환의 쾌거 2년 뒤인 2010년, 이번엔 빙상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영하 제갈성렬 김윤만 이규혁 등을 앞세워 꾸준히 도전을 계속하더니 밴쿠버 동계 올림픽서 대폭발을 이뤘다. 모태범과 이상화가 남녀 500m, 이승훈이 남자 10,000m 금메달 시상대에 서는 기적을 동시에 연출한 것. 물론 1992년 알베르빌 대회 김기훈을 효시로 역대 동계올림픽서 무려 27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은 쇼트트랙이 역할이 컸다. 기록보다 순위 다툼 레이스인 쇼트트랙은 우리에겐 최적의 ‘맞춤형’ 종목이었다.
설상(雪上) 종목도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2018년 평창 올림픽 스켈레톤 종목에서 윤성빈의 금메달 획득으로 어둡고 길었던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2025년 7월 유일하게 남아있던 육상 달리기 종목에서 마지막 퍼즐이 채워졌다. 독일 유니버시아드대회 400m 계주 우승으로 막차를 탐으로써 한국은 한때 땅 물 얼음 눈 위서 매번 듣던 ‘달리기 지진아’ 오명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유니버시아드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와 비교하기엔 출전 선수들 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대회다. 한국 육상은 경쟁국들에 비해 아직도 새카맣게 뒤쳐져 있다. 그러나 이번 쾌거는 아무리 높은 평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스타 한 명이 이뤄낸 것이 아닌, 4인 릴레이 합작품이란 점에서 가치가 더욱 크다. 한국 육상의 국제대회 금메달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다.
바둑으로 돌아와 과거를 되돌아본다. 한국 바둑도 변방의 촌뜨기로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다. 근세 중국과 일본이 기대조(棋待詔)니 기소(碁所)니 하는 공직제를 만들어 바둑 진흥에 진력하는 동안 우리 바둑은 사랑방 소일꺼리에 머물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국제 교류가 시작되면서 한국은 많은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조남철과 도전기를 겨루다 일본 유학에 나선 한국 2인자 김인은 2점 치수로 단위 결정 시험기를 두어야 했다. 중국과 일본은 초창기 국제 대회에서 출전 쿼터를 서구권 국가들과 비슷하게 배정할 정도로 한국 바둑을 무시했다.
30여년에 걸친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최강국으로 우뚝 선 한국 바둑의 도정(途程)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싫증은커녕 대견하기만 하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번 ‘u대첩’이 가져다 준 감동도 크다. 모든 승부는 스피드 못지않게 여유와 느긋함이 판세를 좌우한다는 교훈도 남겼다. 묵묵히 시련을 견뎌내 일등국으로 올라선 바둑처럼 한국 육상도 독일 낭보를 디딤돌 삼아 도약의 새 역사를 써갔으면 좋겠다. 올림픽 100m 종목 우승을 향한 한국 육상의 본격 출발 총성이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