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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곡점을 맞은 한 중 메이저 패권경쟁
 
제15회 춘란배가 지난 6월 중국 선전 시에서 치러져 중국 양카이원(27)을 우승자로 가려내고 막을 내렸다. 한국은 베테랑 박정환(32)이 결승까지 올라가 분전했으나 엎치락 뒤치락을 거듭한 끝에 1대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승부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늘 반복되는 상사(常事)지만 이번 결승전 패배는 박정환 개인뿐 아니라 한국 입장에서도 꽤 아팠다. 어쩌면 한국이 세계 바둑계에서 누려온 주도국 자리가 흔들리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당장 메이저 기전 보유 판도부터 한국에서 중국 우위로 넘어갔다. 대회 규모와 상금 등을 기준해 메이저로 분류되는 8개 타이틀 보유자 명단을 보자.


중국 4, 한국 3, 일본 1명의 분포다. 이번 15회 이전 14회 춘란배 보유자는 변상일이었다. 한중 양국 바둑 접경서 벌어진 결정적 전투에서 요충지를 내주며 역전 당한 것이다. 한국은 올 들어 변상일(LG배)과 신진서(난양배)의 우승으로 기선을 잡았으나 이후 중국 왕싱하오와 양카이원의 연속 제패로 2대2 균형을 이뤘다. 2023~2024년 이어오던 연도별 대중(對中) 우세도 흔들리고 있다.


▲ 제15회 춘란배 우승자 양카이신(왼쪽)과 준우승자 박정환.

중국이 2개 메이저를 연속 접수한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중국의 메이저 2연속 제패는 2023년 6월 이후 2년만이다. 신진서 3회, 박정환 1회 등 한국 기사들의 4연속 메이저 정복을 지켜만 보다가 딩하오(LG배)와 구쯔하오(란커배)가 연속 정상을 밟은 것이 마지막 기록이었다. 중국의 이번 연속 정상 등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범위를 2020년 이후로 넓혀 보면 한국이 12번, 중국이 9번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한중 양국의 우승 방정식은 대조적이다. 한국이 소수정예라면 중국은 인해전술이고, 한국이 질(質)로 우위를 점령하면 중국은 양(量)으로 반격을 시도해 왔다. 2020년 이후 한국이 일궈낸 12번의 세계 제패는 신진서(8회), 변상일(2회), 박정환 신민준(이상 각 1회) 등 단 4명이 완성했다. 반면 중국은 딩하오(3회) 1명만 복수(複數) 우승에 성공했을 뿐 커제 미위팅 구쯔하오 리쉬안하오 왕싱하오 양카이원이 각각 1승씩 분담해 총 7명이 9번의 우승을 합작했다.

양카이신의 우승으로 중국의 세계 메이저제패 클럽 가입자 총수는 25명으로 늘었다. 한국의 16명보다 9명이나 많다. 그러나 국가별 우승 회수에선 72대 52로 여전히 한국이 세계 최고지위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이 배출한 세계 챔피언 수는 각각 9명과 1명. 1988년 제1회 후지쓰배를 출발점으로 지금까지 총 137회의 메이저 타이틀전서 한 번 이상 우승한 세계 프로기사는 총 51명에 이른다.

▲ 난양배 결승서 격돌한 신진서(왼쪽)와 왕싱하오. 신진서가 초대 챔프에 오르면서 란커배 포함 2관왕에 올랐다.

앞으로 어떤 변화도가 그려질지 점치기는 쉽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최정예부대의 선수층이 상대적으로 너무 얇다는 사실이다.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등 한국 ‘빅 3’를 제외한 다른 기사가 세계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마지막 대회는 신민준이 우승한 제25회 LG배(2021년 2월)였다. 신민준 이후 빅 3를 도와 정상에 태극기를 꽂은 ‘제4의 영웅’은 만 4년 넘게 한 명도 출현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신진서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크다. 첩첩산중으로 막아서는 외세에 신진서가 단 일격이라도 허용할 경우 한국 선수단 전체가 일패도지하는 상황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을 유망주는 좀체 등장하지 않고 있다. 25세 신진서의 절대적 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신진서에게 정신적, 체력적 부담감을 뛰어넘고 항상 이기라고 주문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춘란배 패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박정환이란 사실도 마음에 걸린다. 그는 꾸준히 랭킹 2위를 지키며 한국 바둑의 버팀목으로 분투해온 기사다. 올해 32세인 그가 이번 춘란배서 우승했더라면 ‘30대 한계론’을 보기 좋게 돌파했을 텐데 눈앞에서 놓쳤다. 30대에 세계 메이저 정상에 오른 경우는 2015년 32세의 구리(제10회 춘란배)가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있다(조훈현이 49세 10개월에 제7회 삼성화재배서 우승한 것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논외로 친다.)


▲ 2025년 벽두 제29회 LG배서 우승한 변상일이 시상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준우승자 커제는 자신에게 실격패를 선언한 심판 판정에 반발,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의 선수 풀(pool)이 한국보다 훨씬 넓다는 점은 랭킹에서도 드러난다. 양카이원은 중국 21위 신분으로 한국 1~3위를 모조리 제치고 춘란배의 주인이 됐다. 세대교체 속도도 중국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다. 2004년생 왕싱하오는 올해에만 벌써 두 차례 세계 메이저 결승 무대를 밟았고 한 차례 우승도 했다. 왕싱하오보다 한 살 많은 투샤오위는 신설 국제기전인 제1회 쏘팔코사놀 결승에 진출, 신진서와 최고기사 결정전을 앞두고 있다. 중국 신예들의 약진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국내 무대에서조차 정상을 정복한 2000년대 출생기사가 아직 없다.
2025년 하반기는 세계 프로바둑 판도 재편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연말까지 3~4 개의 세계 기전이 새로운 챔피언을 배출할 전망이다. 란커배가 10월, 30번째 장정에 들어가는 삼성화재배는 11월 결승을 치를 예정이고 몽백합배도 연내 우승자를 가린다. 메이저 기전으로 발돋움 중인 쏘팔코사놀 최고기사 결정전은 9월 결승 3번기로 첫 챔프가 탄생한다. 온갖 악재를 딛고 빛나는 역사를 이어온 한국 바둑이 전통을 계승할지 주목된다.


▲ 지난해 11월 중중대결로 벌어진 딩하오(왼쪽. 승)와 당이페이 간의 삼성화재배 결승 장면(사진=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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