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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LG 챌린저스컵 회고
 
세월은 강물처럼 앞 다퉈 흐르고 그 와중에 숱한 인걸(人傑)들이 명멸해간다. 승패를 다투는 세계의 교체 속도는 특히 빠르다. 승부세계에서 10년은 일반인들의 세대 단락인 30년보다 짧지 않다. 대다수 승부사들이 그 10년 간 전성기를 누리고 자신의 정점(頂點)을 밟는다. 육체연령으로 따진다면 대략 19~28세 사이쯤일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빨리 개화하거나 더 늦은 나이까지 버텨내는 승부사들도 꽤 있다.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30번째 제전이 최근 막을 올려 첫 라운드를 마쳤다. 서른 살을 넘긴 세계 메이저 바둑대회는 오직 LG배 하나뿐이다. 1996년 창설돼 숱한 스타기사를 배출하고 바둑계 발전에 앞장서 온 명승부의 산실이다. 꼭 10년 전인 지난 2015년 LG배 창설 20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챌린저스컵을 되돌아보았다. 모(母) 대회와 별도로 부대 국제행사를 연 것도 세계대회 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 2015년 열린 챌린저스컵 대회 열전 모습. 18세 이하 세계 유망주 16명이 출전했다.

챌린저스컵은 18세 이하, 즉 1997년 이후 출생자에게만 출전을 허용한 단발성 대회였다. 한국 8명(연구생 2명 포함), 중국과 일본 각 4명 등 총 16명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됐다. 패기만만한 각국 미래 동량들이 저마다 우승의 꿈을 안고 서울로 몰려들었다. 세계 최정예 소년들이 펼친 ‘미리 보는 미래’ 각축장이었던 셈이다. 세계를 집어삼킬 것처럼 기세 넘쳤던 그들의 모습을 10년 만에 다시 소환해 보면서 감회에 젖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우승컵은 한국의 변상일 3단(이하 당시 단위)에게 돌아갔다. 첫판서 중국 황윈쑹 3단을 제쳤다. 뒤이어 한국 대표 중 최상위 랭커(당시 20위)였던 김명훈 2단과 일본 대표 쉬자위안 2단 등 97년생 동갑내기들을 연파하며 결승 고지를 밟았다. 반대쪽에선 98년생 양딩신 3단이 승승장구했다. 무츠우라 일본 초단을 일축하고 2회전서 신민준(99년생)도 따돌려 변상일과 우승을 놓고 마주 앉았다.

결승을 앞두고 중국 최연소 입단 및 우승 기록 보유자인 양딩신이 우세하리란 전망이 좀 더 많았다. 하지만 흑을 쥔 변상일은 초반 열세를 딛고 집으로 앞서기 시작한 뒤 부담이던 중앙 흑 대마를 멋지게 타개하면서 챌린저스컵의 주인이 됐다. 2년 전 한 중 교류전 첫 만남서 떠안았던 패배 설욕을 겸했다. 변상일은 이후 양딩신에 6연승, 합계 6승 1패의 ‘천적’으로 군림 중이다. ‘병아리‘ 때의 승부란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 챌린저스컵 우승자 변상일(오른쪽)과 준우승자 양딩신.

챌린저스컵 결승전에 이어 시상식이 진행됐다. 관계자들이 하나둘 퇴장하고 조용해졌을 때 복도에서 괴성이 들렸다. 환호작약. 변상일이 내지르는 기쁨의 단말마(斷末魔)였다. 그는 훗날 “챌린저스컵 우승도 감격스러웠지만 LG배 통합예선 면제 보너스가 그 못지않게 기뻐 나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며 겸연쩍어 했다. LG배 본선은 유망주들 모두가 선망하는 꿈의 무대로, 경쟁률 수 십대 1에 이르는 지옥의 레이스이기도 했다.

챌린저스컵에 출전한 한국 선수 중엔 신민준이 4강, 김명훈 오유진이 8강에 그쳤다. 김명훈은 훗날 일본 1인자자리에 오른 이치리키(97년생)를 이긴 뒤 변상일에 졌고, 신민준은 중국 셰얼하오와 한 살 위 오유진을 눌렀지만 양딩신을 넘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미래를 걸머쥘 ‘황태자’로 주목받던 신진서가 중국 리친청(98년생) 2단에게 막혀 첫 라운드서 탈락한 것. 99년생 설현준도 1회전서 무츠우라에 무릎을 꿇었다.

챌린저스컵 무대를 밟았던 기사들은 이후 LG배서 특별히 눈에 띠는 활약을 펼쳤다. 지난 10년 동안 신진서가 3차례(24, 26, 28회)나 정상에 오른 것을 비롯해 변상일(29회), 신민준(25회), 셰얼하오(22회), 양딩신(23회) 등 5명이 7회에 걸쳐 LG배를 품었다. 총 16명이 따낸 세계 메이저 타이틀 수를 합하면 14개에 이른다. 2020년을 전후한 약 10년 동안 세계 바둑 주인은 2015년 챌린저스컵 출전 멤버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월 개막한 제30회 LG배에 중국 선수들이 불참하면서 더 많은 ‘챌린저스’들의 활약상이 막힌 것이 못내 아쉽다. LG배 챔프에 올랐던 셰얼하오(22회)와 양딩신(23회), 준우승만 2회에 그친 커제, 지난 4월 끝난 제1회 북해신역배 준우승자 리친청 등이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30번째로 맞는 LG배는 국제 메이저기전 사상 처음으로 중국 기사 없이 치른 대회로 남게 됐다.

▲ 올해 16세인 스미레 4단. 지난 5월 개막한 제30회 LG배에 와일드카드로 출전, 16강에 올랐다.

챌린저스컵과 이번 30번째 LG배 양쪽에 모두 이름을 올린 기사는 신진서 설현준 신민준 변상일 등 한국기사 4명과 일본 쉬자위안 이치리키 등 2명 포함해 총 6명이다. 이 중 신민준 변상일 설현준 이치리키 등 4명이 살아남아 오는 8월 열릴 준준결승에 출전하게 됐다. 4명 모두 꾸준함과 강한 집념의 보유자들이다. 중국이 세계 바둑에서 지니고 있는 점유율을 감안한다면 현재 살아남은 기사들로선 LG배를 들어올릴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특히 주목을 한 몸에 모으고 있는 기사는 변상일이다. 만약 이번 대회를 정복한다면 그는 LG배 30년 사상 최초의 연패(連覇) 챔피언으로 탄생하게 된다. 또한 LG배와 단 한 차례로 그친 챌린저스컵 두 대회를 모두 석권한 주인공으로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변상일은 29회 LG배 커제와의 결승전서 이겨 우승하고도 반외(盤外) 해프닝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 후 몇 달 간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후유증을 겪었다. 그의 상처를 치유할 약방문(藥方文) 역시 이번 LG배가 쥐고 있다.

18세는 법적으로 성년(成年)을 공인받는 해다. 만 18세 이하만 출전할 수 있는 챌린저스컵 규정에 이번 30회 LG배 본선멤버를 대입해보면 참가 자격을 가진 기사는 나카무라 스미레(2009년생. 16세) 4단이 유일했다. 스미레는 최고령 출전자 왕리청(58)을 꺾고 첫 관문을 넘었지만 대만 대표 쉬하오훙에게 2회전서 패배, 16강을 끝으로 올해 LG배에서 하차했다. 해마다 전도유망한 영재들이 바둑계에 쏟아져 나오지만 그 즉시 ‘어른’으로 발돋움하기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것 같다.

▲ 2012년 영재입단 1기로 프로가 된 신진서(오른쪽)와 신민준. 2015년 챌린저스컵에 나란히 출전했던 둘은 훗날 LG배도 정복하는 등 한국바둑의 양대 기둥으로 성장했다. (사진 제공=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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