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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이 된 옛 기원 풍경
 
불과 20년 전만 해도 기원은 제법 붐볐다. 까까머리 중학생부터 지팡이 짚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혈전을 펼쳤다. 동년배 맞수가 마주칠 양이면 단순히 수담(手談)에 그치지 않았다. 허물없는 사이일 경우 농담, 객담을 쉴 새 없이 주고받았다. 때론 정도가 지나쳐 말다툼이나 주먹다짐까지 이어지기도 했지만 화해하는데 하루도 가지 않았다. 그 시절 아마추어 기객들에게 바둑판은 해방구였고 바둑돌은 신선놀음 도구였다. 잠시 아득한 그 무렵으로 날아가 추억 서린 대사(臺詞)들을 소환해 보았다.

▲ 바둑은 언제 두어도 즐겁다. 과일 상자 위에 바둑판을 펼쳐놓고 수담을 나누는 과일가게 아저씨와 이웃 상인.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아쉽게도 정부 인구 통계부서의 게으름 탓에(?) 정확한 자료가 나와 있지 않지만, 이 대사(臺詞)가 아마추어 바둑 객담 중 부동의 1위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둑이 우세해지면 도무지 입이 근질근질해 참지 못하고 기어이 외친다. 대국 상대가 갑자기 가긴 어딜 갔겠는가. 여전히 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사경(死境)을 헤메는 대마 수습을 위해 땀을 쏟고 있다. 이 멘트는 대개 우렁차다. 주변서 대국 중인 동료 기객들에게 “오늘은 내가 확실하게 밟아주는 중”임을 공지하기 위함이다. 상대방을 향한 조롱과 야유는 아마추어 기객들의 특권이다. 프로 기사들은 쪼잔해서 대국 상대가 자리에 있는지, 실종됐는지도 모르고 수읽기에만 골몰한다.

★“다 이긴 바둑 꼼수에 넘어갔다”

아마추어 바둑인들은 철통같은 신념 하나를 지니고 있다. 내가 이긴 바둑은 100프로 실력, 패한 판은 한 순간의 실수에 기인한 것이란 믿음이다. 예를 들어 그날 총전적이 1승 9패라면 승리한 판 외의 아홉 판은 모조리 상대의 비겁한 조작, 사술(詐術) 농간에 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방 바둑인데 마지막 꼼수 하나에 당했다”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상대방에게 승리를 안겨준 수를 승착 아닌 꼼수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아마추어들은 이긴 판만 기억하고 진 바둑은 깔끔하게 잊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 이 역시 프로들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한다.

▲ 시골 어르신들끼리의 일국.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이 천상의 신선들을 연상시킨다.

★“조남철이 와도 못 살아”

아마추어들은 화끈한 싸움으로 대세를 다툰다. 줄 하나, 돌 한 개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는 프로들과 달리 바둑판을 불길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필연적으로 사활(死活)이 승부를 결정할 때가 많다. 상대방 돌을 에워쌓는데 성공한 A영감님이 필살의 치중(置中)수를 꽂아 넣으며 외친다. “어디 살아보라지. 조남철이 온다 캐도 못 살끼다.” 순간 B영감님은 졸지에 고 조남철 9단의 명예까지 지켜야 하는 막중한 부담을 안게 된다. 조남철 선생 함자가 등장하는 것은 그가 우리 바둑의 개척자를 넘어 대표적 고수로 꼽혔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리라. 이후 한 때 조남철은 이창호 이세돌 신진서 등으로 ‘세대교체‘ 되기도 했다.

★“돌 죽지 사람 죽나”

중요한 장면에서 나름 수읽기를 마치고 출병(出兵)할 때 뿜어내는 비장한 대사다. 전투에서 패해 몰살을 당한들 대국 당사자가 죽는 것은 아니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바둑 두는 사람에게 자신이 투입한 정병(精兵)돌이 전멸한다는 건 참기 어려운 수모다. 바둑돌은 대국자의 체면과 인격을 이식한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혹시 커피나 짜장면 내기라도 걸렸다면 더욱 초연할 수 없다. 하지만 아마추어 하수 중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형 용장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으렷다.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마라. 너희(돌)들은 끝까지 싸워 내 원수를 갚아다오.”

★“한 수만 빨랐으면 만방인데”

대다수 중하급자들이 지휘하는 돌들은 상대의 돌을 섬멸하라는 사명을 띠고 반상에 투입된다. 쩨쩨하게 집 몇 칸 넓히는 식의 훈련은 해 본 적이 없다. 필연적으로 흑백 대마가 서로 얽혀 수상전이 이어지게 마련. 쌍방 수를 끝까지 조여 마지막 단수를 칠 때 비로소 어느 쪽이 분(糞)이고 된장인지 가려진다.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쪽은 그 순간 강도라도 당한 듯 씩씩거리며 비명을 내지른다. “아흐! 딱 한 수 차이네. 운도 지독하게 안 따르는군.” 그리곤 기어코 결정타 한 마디를 덧붙여 해프닝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한 수만 빨랐으면 만방 바둑이었다니까.”

▲ 기원을 가득 채운 기객들. 인터넷 등장으로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요즘은 대하기 어려운 광경이 돼버렸다.

★“팻감 안 받으면 안 받는다고 말을 해야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하루에 두 세 번은 꼭 이런 실랑이가 벌어졌다. 상대가 쓴 팻감을 불청하고 패를 해소할 경우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그 기세가 하도 당당해 대국 규칙에 그런 조항이 정말 있나보다 하고 한동안 믿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바둑은 기본적으로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게임이다. 눈으로 수를 읽고 두뇌로 판단한 뒤 손으로 돌을 착점하면 된다. “여기 팻감 쓰면 받겠수?” “나는 무조건 패를 해소할 요량이니 다른 데 두 번 두쇼” 하는 대화를 상상하면 끔찍하다. 혹시 장기(將棋)의 ‘장군’에서 비롯된 발상은 아닐까.

50대 이상 사람들에게 바둑은 젊은 시절 거의 유일한 도락이었다. 회사원들은 퇴근 후 기원으로 몰려가 미리 진 치고 있던 60~70대 노인들과 어울려 함께 오로(惡鷺)의 마술에 빠져들곤 했다. 기원엔 손님들이 언제나 꽉꽉 들어찼다. 동네 영감님들이 마주 앉아 일국을 겨루는 정겨운 모습도 흔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e게임 등 대체(代替) 오락이 쏟아지면서 그런 풍경이 급격히 사라졌다. 애기가들 상당수가 담배연기를 피해 인터넷으로 둥지를 옮겼다. 바둑 자체도 위상 제고에 실패하면서 기원은 이제 전설 속 문화재처럼 만나기 힘든 공간이 됐다. 바둑 서민들이 내뿜던 뜨거운 열정이 못내 그립다.

▲ 바둑의 장점 중 하나는 넓은 공간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화물 운송차 위에서 격돌한 숙적들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사진 제공=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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