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English LG
LG Home English Chinese

생중계
뉴스
기보보기
기보해설
대회개요
대진표
선수소개
역대 우승자 보기

  신진서, 세계 제패 몇 회까지 이뤄낼까
 
프로 초년병 시절 신진서의 조준(照準)점은 커제에 고정돼있다시피 했다. 어쩌다 대화할 기회가 생길 때면 그는 커제 이야기를 절대 빼놓지 않았다. 신진서보다 세 살 위인 커제는 그 무렵 세계 메이저 5개를 손에 넣은 세계 일인자였으니 아직 10대였던 신진서로선 그럴 만도 했다. 커제가 한창 최정상 무대를 석권하던 무렵 어느 날 신진서가 했던 당돌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제 밤 커제 기보를 놓아보고 잤는데, 뭐 그토록 엄청난 실력자는 아니란 생각이 들던데요?”
2012년 입단한 신진서는 2019년 천부배와 제4회 바이링배서 연속 세계정복 기회를 잡았지만 모두 우승 문턱에서 중국 기사들에게 덜미를 잡혔다. 특히 새해 벽두 벌어진 바이링배 결승은 신진서와 커제 두 천재가 세계 메이저 타이틀을 놓고 겨룬 최초의 대결이었는데 커제가 2대 0으로 완승했다. 커제는 이 우승으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만 5년 간 세계 메이저 7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 신진서(오른쪽)는 지난 2월 중국의 유망 신예 왕싱하오를 일축, 난양배서 우승하며 메이저 바둑대회 8회째 깃발을 꽂았다

신진서는 2020년 2월 제24회 LG배 결승서 박정환을 꺾고 우승했다. 만 20세의 나이로 국제기전 우승자 리스트에 처음 이름을 올린 신진서는 우승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야망을 털어놓았다. “메이저 제패 횟수를 두 자리 수로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기준 올 타임 누적 메이저 우승 랭킹은 이창호(17회)를 선두로 이세돌(14회), 조훈현(9회), 구리(8회), 커제(7회), 유창혁(6회), 박정환(4회) 순이었으니 가위 폭탄선언이라 할 만 했다.

신진서는 또 그 때 “내가 가장 경계하는 상대는 커제”라고 했다. “기량이 뛰어나기도 하고, 커제에게 지면 내 계획을 달성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에요.” 일인자 경쟁 상대에게 패하면 2패를 안은 셈이 된다는 논리였다. 게다가 한 중 국가 간 바둑전쟁이 첨예화돼 가는 마당에 중국 간판인 커제에게 만은 질 수 없다는 것. 이해는 됐지만 솔직히 “계획대로 될까”하는 느낌이었다. 악머구리 같은 승부세계에서 1관왕이 7관왕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커제가 발 묶인 토끼처럼 얌전히 기다려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신진서와 커제 간의 첫 메이저 결승인 2019년 바이링배. 커제(왼쪽)가 승리했다.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그해 11월 벌어진 제25회 삼성화재배 결승서 둘은 운명처럼 만났고 커제가 2대0으로 완봉 우승했다. 이른바 ‘마우스미스’ 해프닝이 곁들여진 개운치 않은 결승전이었으나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이었다. 이 대회 결과 두 기사의 메이저 우승 회수 차이는 7개(신진서 1개, 커제 8개)로 한 발 더 벌어졌다. 첫 세계 제패 후 신진서가 기세 좋게 내보였던 미래 청사진은 한낱 꿈에 머무는 듯 했다.

그러나 2021년부터 지구촌 바둑마을은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된다. 멈칫했던 신진서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2021년 제13회 춘란배, 2022년 제26회 LG배 및 27회 삼성화재배, 2023년 제9회 잉씨배, 2024년 제28회 LG배 및 제2회 란커배에 이어 최근 제1회 난양배 우승 트로피까지 품에 넣었다. 준우승 두 번이 있지만 일곱 대회를 연속 제패한 것이다. 대조적으로 커제는 2020년 삼성화재배 때의 ‘마우스미스 우승’ 이후 단 1개의 ‘금메달’도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신진서가 5년 간 8개 메이저 대회를 독점하면서 메이저 우승 회수는 커제와 8대 8 타이를 이뤘다. 2020년 첫 세계 제패 후 “커제를 따라 잡겠다”고 했던 약속을 기어이 이뤄낸 것이다. 2025년 벽두 LG배서 커제가 변상일에 패하고 난양배서 신진서가 왕싱하오를 눌러 둘 간에 ‘골든 크로스’가 발생했다. 통산 세계정복 순위도 요동쳤다. 이창호(17회), 이세돌(14회), 조훈현(9회)까지 빅3은 변동이 없지만 신진서와 커제, 구리까지 3명이 공동 4위(8회)로 재편된 것이다. 그 뒤를 유창혁(6회), 박정환(5회)이 따르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신진서와 커제만큼 치열한 숙적(宿敵) 관계를 이어온 커플도 흔치 않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커제는 신진서를 향해 “고작 그 정도 실력이냐”면서 조롱하거나 “대국 중 화장실에 자주 간다”며 의혹의 불씨를 던져 넣는 등 비매너성 가십을 쏟아내곤 했다. 돌이켜 보면 커제의 그런 처신은 신진서의 폭풍 도약에 자양분 구실을 했다. 상대의 경망스런 도발을 역이용하면서 신진서는 차분히 한 발씩 좁혀갔고 마침내 통산대국 성적에서도 15승 11패로 커제를 추월했다. 2021년 LG배 준결승부터 10연승 중이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신진서가 ‘두 자릿수 우승’과 ‘커제 앞지르기’란 ‘2차 공약’까지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역 세계 2관왕(란커배, 난양배)으로 이 부문 선두 주자인 신진서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우승을 추가할까. 절정기를 구가 중인 그는 몇 관(冠)에까지 오를 수 있을까. 메이저 정복 회수 경쟁 레이스에서 신진서가 받아들 최종 순위는 몇 위일까.

▲ 2020년 온라인으로 진행된 삼성화재배 결승서 신진서는 마우스미스 해프닝 끝에 커제에 우승을 내주었다. 커제는 이후 메이저 우승을 한 개도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기억할 것은 역대 다관왕 기사들 대다수가 30대 진입과 함께 세계 정상 등정이 막혔다는 사실이다. 이창호는 2005년 제5회 춘란배 우승을 끝으로 17회에 걸친 최정상 나들이를 마감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 만 29세 7개월이었다. 30대 진입 후 치른 8번의 결승서 모두 패했다. 2위 이세돌(총 14회 우승)도 29세 때인 2012년 제17회 삼성화재배 제패 이후 가진 3번의 결승서 전패했다. 3위 조훈현만 49세 10개월 때인 2003년 제7회 삼성화재배를 정복, 9번째 우승이란 예외적 기록을 남겼다(일본 오다케 9단이 1992년 제5회 후지쓰배서 단 한 번 우승했을 때의 50세 2개월 다음의 최고령 2위 기록이다).

결국 향후 메이저 통산 우승 순위 선두 경쟁은 신진서(25)와 커제(28) 등 최전선 20대 경주마 2명의 레이스로 이어진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신진서는 2025년 3월 17일로 만 25세가 된다. ‘마(魔)의 구역’으로 불리는 30세까지는 5년이란 시간이 남아있다. 17번 우승한 이창호와는 9번 차이다. 5년 안에 8회의 격차를 메울 수 있을까. 메이저 우승컵을 1년에 1~2회씩 건져 올리는 요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14번 우승한 이세돌은 좀 더 가까운 추월 목표가 될 수 있다. 물론 예측 불가의 다양한 변수가 깔려있어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 커제가 29회 LG배 변상일과의 결승서 반칙을 선언 당한 순간 항의하는 모습. 이 대회 우승을 놓치면서 커제는 왕싱하오를 꺾은 신진서에게 8대8 타이를 허용했다. (사진=한국기원)

신진서 자신도 바둑 승부에서 나이가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안다. “내 나이 앞 숫자가 바뀔 때(30대 진입시점을 의미)면 내 전성기가 끝나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살까지라는 한계를 정해놓지는 않았다. 설혹 전성기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세계대회 우승이 불가능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 하기에 따라 계속 발전이 가능한 시대다. 전성기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실력은 계속 늘 수 있다고 본다.” 2년 전 한 국내기전 우승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이번 난양배 우승 뒤엔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성적은 어떨지 몰라도 실력은 더 늘 것 같다”고 했다.

프로 입단 후 신진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마다 그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아진다. 그리고 이창호 이세돌 조훈현 등 대선배를 추월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래 어느 날의 바둑 기사(記事) 헤드라인을 가상으로 미리 뽑아보았다. 시점(時點)은 꼭 5년 뒤인 2030년 3월이다.
[서른 살 신진서, 17번째 메이저 기전 쟁취
역대 최다 우승 이창호와 25년 만에 타이
올해 안에 최다 타이틀 신기록 수립 기대]
Top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