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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史 漫步 - 승려 快禪의 大塗 - 자신은 뒷길을 알았을까
 
나의 반상 일기(4월 13일)
바둑史 漫步 - 승려 快禪의 大塗 - 자신은 뒷길을 알았을까


아침 6시 35분.


1750-80년대 쯤에 활약한 고마쓰 카이젠(小松快禪)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이 양반의 유명한 그림에 대해서는 여러분들 모두 잘 아실 것이다.
소위 快禪의 大塗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다음 기보를 보자.


(쾌선의 대도)

나도 어릴 적에 감탄하고 감탄했던 수순이다.
그러나 뒷날 보니, 틀린 것이었다.
















(쾌선의 대도-실패도)

앞서의 수순에서 백28이 실수였던 것이다. 가만히 잡아두면 그만이다. 백7이 유명한 맥점.
흑A 이하 축이 아니냐고? 이 축은 본래 백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흑19로는 24에 단수해서 축으로 이기고 말 것이다.

참으로 대도大塗를 무엇이라고 번역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그림인데, 아쉽게도 실패했다.
쾌선의 억겁億劫이라고 말해볼까.





(17세기 정석)

왜 그런 그림이 나왔을까?
그 이유로는 17-18세기에 다음 정석이 많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1960-70년대에 두어봤던 두었던 정석이다. 슈사쿠의 마늘모를 많이 두었으니까.













아마도 많은 아마추어들이 앞서 쾌선의 대도로 당했을 법도 하다.
아닌가. 한 번 정도 내기바둑에 나왔을까.
어찌 되었던 가르침을 많이 주었던 수순이다.

세력이란 것이 어느 정도 효율적이냐? 집이란 것이 어느 정도 유력하냐?
간단하게 말하여 수나누기(手割論)의 대표적 예가 되기도 했다.
장문의 힘을 말해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잠시 수나누기 방법을 통해 분석, 평가해보자.
많은 분들이 수나누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바 있으니, 다시 한 번 나누어 보자.
사실 저 수나누기가 없다면 쾌선의 대도에 대해서 우리가 크게 감동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대도의 수나누기-1)

앞서 쾌선의 대도에서 흑A 백B 이하 백H까지는 흑이 선수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남게 된다.
















(대도의 수나누기-2)

이 그림에서 다시 백이 잡은 흑돌을 들어내고, 다시 들어낸 흑돌 만큼 백돌을 들어내자.
그러면 백집은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 그 결과가 다음 (대도의 수나누기-2)이다.
백의 집이 모두 몇집인가. A를 경계로 하면 31집이다.
불과 31집. 흑은 B에서 G까지만 경계로 하더라도 32집이다!










참으로 유쾌한 그림인데, 그만 아쉬운 분들도 많지 않을까 싶다.
쾌선의 대도가 성립하는 것으로 아시는 분들이라면 참으로 아쉬울 것이다.
그 분들께는 쏘리!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도 있는데….


그런데 “쾌선의 대도”가 실패한다는 것을 승려 쾌선은 처음부터 알았을까?
몰랐을 가능성도 높다. 그 수순을 실패로 몰아가는 맥점은 사실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정도의 수순을 이끌어낸 실력이 과연 몰랐을까?

역사의 의문으로 남겨두기에는 무게가 너무 가볍다는 생각도 들지만,
역사라는 것이 꼭 무거운 주제만 다루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몰랐다고 하자. 그러면 언제부터 알게 되었을까?
일본의 바둑 전문 가문들은 다 알았을 것이다. 그 정도야 연구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연구를 했는가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자.

(채초세)

현현기경에 대해서 일본의 기사들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다음 문제이다. 이름은 채초세(採樵勢).
나뭇꾼이 나무를 하는 것이니, 곧 도끼 자루 썩었다는 나뭇꾼 왕질의 고사를 말한다.
바둑을 달리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채초세-답)

답을 보자.

백14가 도사쿠가 발견했다고 알려진 묘수. 패가 정답이다.
만약 백14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흑A 백B 흑C와 흑17 이하의 축을 맞봐서 백이 잡힌다.
흑15도 최선이다. 만약 흑15를 D에 두면 백이 15에 두어서 흑이 실패한다.










이 정도의 연구는 일찌감치 있었다.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만하다. 아니다. 중국에 대한 열등감은 무의식적인 것이었고, 현실적으로는 기력을 늘려서 중세 일본의 제1인자가 되고픈 것이 첫째였겠다. 중국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으니까.

언젠가 다시 살필 기회가 있겠지만, 발양론만 하더라도 1713년에 완성되었으니 일본의 수준은 이미 그 때 중국에 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발양론이 현현기경보다 어려운 것은 주지의 사실인 것.

“쾌선의 대도” 그 안팎에 대해서 당시의 전문가들은 당장 연구를 해두었을 것이다.
분명하다.


아침 7시 45분.

p.s.
사문난적 님.
현현기경의 소장생세에서 패가 답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에는 말하지 않았지요. 괜히 복잡해질까 염려했습니다.
말씀하신 것보다 실력이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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