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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史 漫步 - 격정의 시간이 지나면 - 평온이 오는가
 
나의 반상 일기(4월 11일)
바둑史 漫步 - 격정의 시간이 지나면 - 평온이 오는가


오후 1시 17분.


인세끼에 대해서 쓰다보니 승부의 고통스러운 측면만을 보인 듯하다. 재능을 한 몸에 받았으나 운이 그에 미치지 못해 쓰러진 거목巨木. 그런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1842년 5월. 최후의 승부였고 노림수를 지녔던 슈와와의 대국에 패한 이후 인세끼는 명인이 되고자 하는 모든 희망을 접었다 한다.


그 4년 후.
인세끼는 한가하게 여행길을 떠났던 모양인데 전국 각지에는 인세끼의 제자들이 많아서 심심치 않게 다닐 수 있었다 한다.

그 여정의 길목인 오오사까에서 1846년 7월 20일부터 8월 29일까지 인세끼는 슈사꾸와 연속해서 5국을 둘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두점으로 두다가, 곧 승부가 아니라고 102수에서 멈추고 그 다음 날 슈사꾸 정선定先으로 대국을 했다. 그것이 소위 耳赤의 바둑이라고 불린 대국이다.

그 耳赤之局은 닷새 걸려서 두었으니 인세끼도 어지간히 지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49살일 때니, 18살의 슈사꾸와 어찌 승부가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왜 이기고 싶지 않겠는가. 상대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 본인방 가문의 장래 후계자. 본인방 죠와에 꺽이고 본인방 슈와에 당하고, 또 이제 샛파란 18살 소년에게 지고 있었으니 그 아니 아프랴.


그러나 다음 대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세끼도 슈사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1846년 8월 4일, 5일.
白 幻庵因碩
黑(先) 桑原秀策
흑257 이하 생략. 흑 2집 승.


(즐기는 바둑)

어떤 느낌을 접하시는지?
슈와하고 둘 때의 그런 투지, 기백, 격렬한 전투에의 의지, 그런 것이 사라진 느낌이다.

먼저 수순을 잠깐 살펴보면, 하변 128이 교묘하다. 백132 끊어서 잡히면 손해인 듯하지만, 나중에 다 남는 것이 있다.

그 이전 좌상귀 백72도 교묘한 수순이다. 또 그 이전 백56도 당시로서는 새로운 수. 대국 중 불현듯이 창안한 수법이다.






과연 이 한 판으로 인세끼의 여유를 충분히 다 드러낼 수 있다고는 확단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는 분명한 듯하다. 천천히 전국적으로 반상을 즐기고 있다는 그 사실. 그 정도 인상은 반상의 수순 하나 하나에서 표현되고 있다.


수책류라고 불리는 포석이 있다.

다음 흑7이 그 완성인데, 흑7이 없다면 수책류라고 부르지 않는다.
흑7을 두어서 A와 B를 맞보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덤이 없는 시대에서 흑7은 반상을 단순화시키는 절대의 착점이랄 수 있다.

(수책류 포석)


그런데 누가 저 흑7을 제일 먼저 두었을까?

바로 여기 인세끼, 그 사람이다.
1813년 10월 죠와와의 대국에서 시도한 수법이다. 적어도 남겨진 자료로만 추정할 때.


인세끼는 돌고 도는 인생의 항로를 앞서 보았던 슈사꾸와의 대국에서, 그 대국의 흑7 수책류라고 불리는 그 수법에서 새삼 느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우리의 인과론적 자의적 해석일 뿐이다. 아마도 당시는 수책류를 완성시키는 흑7에 대해서 대부분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논리와 힘에 대해서.

인세끼도 자신이 그 원조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묘수가 아닌, 초반의 한 수 한 수에 대해서 누구도 자신이 그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지 않는다. 모든 프로들은.
바둑은 너와 내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전판을 강하게 지배하는 게임인 것이다.


인세끼에게 평온이 찾아 왔을까.
글쎄다. 이런 일화가 남아 있다. 진실 여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淸나라로 밀항을 하려고 했다. 중국에서 자신의 꿈을 다시 펼쳐보려고.

그래서 1852년 책을 저술했다. 위기묘전 囲碁妙傳. 내용은 실전보 해설과 정석 포석에 대해서 다룬 것. 책을 士農工商 네 편으로 나눈 것에서, 인세끼의 학문적 지식이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책의 분량은 200 쪽으로 만만치 않은 양이다.

청나라에 도착하면 책은 일본에 남기는 자신의 유언장 비슷한 것이 된다.

1) 그러나 풍랑이 심해서 이루지 못한다.
2) 다른 얘기: 바다를 앞두고 변소에 갔을 때, 돈주머니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180량의 금화. 비싼 똥을 누었다!

나이 52살에 청나라로 가려고 했던 마음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러나 당시 청나라는 태평천국의 난이 발생한 시절. 어지러운 시대. 일본도 그리 평온한 시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믿고 싶다.
나이야 무슨 문제. 중국의 사정? 그것까지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이가 있으니 오히려 한 번 시도해 볼 만하다.


흔들리는 운명에 능력은 없지 않고 자부심도 강한 인물.
그런 인간이 격정의 시간을 지낸 다음, 다른 기회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이상하다. 그런 인물이 내면의 평온을 얻지 못했다면 그 또한 이상하다.

일본 바둑계의 좋은 시절 한 때 이야기이다.


오후 2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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