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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史 漫步 - 경쟁의 무대 뒤에서 - 분노와 통쾌
 
나의 반상 일기(3월 31일)
바둑史 漫步 - 경쟁의 무대 뒤에서 - 분노와 통쾌


새벽 4시 46분.


지난 번에 이리 말했다.

죠와(1787-1847)는 자신의 시대에 와서 중국을 드디어 넘어섰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것이 바로 그의 책 國技觀光(1826)이 의미하는 바였다.


자부심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노력이 있으리.
전심전력이 있으리.

제1인자에 대한 욕망도 - 권력에의 욕구 - 있을까?

있으리.

그 어느 세계에서도 경쟁이 있는 곳엔 반드시 권력에의 의지가 있다. 경쟁 없는 곳에서도 그 의지는 존재하거늘 어찌 경쟁 있는 곳에 그 의지가 없으랴.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사회 유지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어디서든 발견된다. 사실 경쟁은 자본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 두 개의 답이 준비되어 있다. 하나는 시장경제.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경쟁이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그 경쟁은 바람직하게 작용하는 걸까.
어느 사회에서나 어느 인간에게나.
…….


여기, 바둑계에서는 적어도 그런 듯하다.
경쟁 없으면 바둑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반상에서는. 아니, 반외에서도.

그 점에서 보면,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선물이다. 자신에게나 그 세상에게나.
물론 경쟁자가 있다고 해서, 곧 대비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 대비되는 존재로써, 또 경쟁자로써 역사에 이름 남겨도 좋은 두 명이 있으니,
하나는 죠와 丈和(1787-1847), 다른 하나는 인세끼 因碩(1798-1859).

두 기사는 명인이 되려고 실력으로도 다투고 암투도 마지 않았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도 마다지 않았다. 약속을 저버리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당연하다.
일본 바쿠후 幕府 시대에서 명인이 된다는 것은 바둑계의 제1인자가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바둑계의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두 기사의 싸움은 두 기사의 경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둑계 모두의 전쟁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국가간의 전쟁과는 크기와 형식만 다를 뿐이다.

자, 그러나 그런 내용이야 오늘 살펴볼 주제는 아니다.
인간적인 면을 보고픈 것이 오늘.
주제를 다시 좁힌다.

분통 터지는 일과 상대를 약 올리는 일.


이런 일이 있었다.

죠와와 인세끼가 모두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죠와는 본인방 가문. 인세끼는 이노우에 井上 가문. 1819년에 동시에.
단위는 죠와 六段. 인세끼 五段.

(1822 대국)

1822년 1월 3일 개시. 12일 철야. 13일 종료.
黑 本因坊丈和
白(先相先) 井上安節(안세쓰, 인세끼의 당시 이름)
흑261 끝. 흑 불계승.

잠시 관전하자면,
백38이 안일했다. 흑57 자리에 두었으야 했다. 그랬으면 상변 흑을 방치하고 흑이 흑39를 둘 수는 없었다. 흑39가 절호점으로 흑이 우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흑87이 결정적인 승부수. 이후 난전이 계속되었으나 이미 백은 엷어졌다.


문제는 상변 백208 이하. 백이 대마를 살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초점은 그 살아가는 과정. 1선을 9번이나 기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정말 괴로웠으리.
그러나 그 후에도 약 40여 수를 더 두었으니 정말이지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지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하하.


자, 다시 초점.
왜 이 바둑일까.

다른 바둑 하나 보자.
소위 一線十本. 1선을 10번 기었다는 뜻이다.
1739년에 두어진 것인데, 이 당시는 일본 바둑이 쇠퇴했을 때였다. 도샤쿠가 바둑을 크게 일으켜 세운 뒤 그의 후계자였던 도치 道知도 일찍 세상을 떠서 인물이 없을 때였다.


(1739 대국)

1739년 6월 14일.
黑 安井仙角
白 相原可碩
백158 이하 생략. 백 11집 승.

대국을 살피자면,
앞서의 바둑과 비교해서, 포석의 기본이 다소 모자라고 수읽기와 부분 감각도 뒤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바둑 100여 년 前과는 크게 다르다. 우선 우하귀 흑13. 16세기 말부터 17세기 말엽까지는 흑13을 흑33 자리에 많이 두었다. 실전처럼 흑13이면 흑35 날일자건너붙임을 노릴 수 있다. 좀더 예민해졌다고나 할까.

힘이 약하나 백42와 같은 감각은 가볍지 않다. 예리하다.

초점은 우변 흑119 이하. 흑이 1선을 10번 기어서 겨우 살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다.


죠와는 그의 자부심을 가득 담은 國技觀光(1826)에 바로 이 바둑을 연상케 하는 앞서의 바둑을 - 인세끼와의 대국 - 실었다!

인세끼는 물론 노발대발.
죠와는 흐뭇한 미소.

1826년이면 죠와가 명인이 되기 5년 전.
명인이 되기도 전에 명인 자리를 놓고 바둑의 승부로나 반상 외의 승부로나 경쟁자였던 인세끼를 이토록 무시했으니, 과연!


그러나 뒤에 죠와는 평하기를,
“인세끼는 명인의 기량을 지녔다.”

죠와는 어떤 풍모였는가.
여러 얘기가 있지만,
“키가 작고 얼굴이 검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는 품이 괴벽을 지닌 듯하다.”
“짤막한 키에 비대한 몸, 굵직한 눈썹에 풍만한 볼. 自若한 용모에 범치 못할 眼光.”

인세끼는 어땠는가.
“곰보. 그 딱지 하나하나가 유난히도 검다. 눈썹은 짙고 굵으며 양미간이 잇댈 정도로 한 줄로 이어져있다. 정열이 넘치는 태도.”


두 기사 모두 자신만만. 세상에 대해서 자신만만. 인간 이해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신만만. 그런 인상이 남아있다.
앞서 그 대국이 죠와의 대국집에 실려있다는 그 하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상대는 자신의 거울이다.

하하. 그래도 다시.
분통 터지는 패배자의 뒷모습과 그것을 대범하게 처리하는 승리자의 얼굴.

그러나…
일생을 그려보면, 패배자라고 해서 부족한 삶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의 인상이 강하다. 이에 대해서는 …….


아침 6시 20분.

p.s.
1822년 바둑은 두 기사의 명국에는 오르지 못한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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