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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간의 승부 - 전화기를 내려놓은 순간 - 에필로그
 
나의 반상 일기(3월 7일)
- 5년간의 승부 - 전화기를 내려놓은 순간 - 에필로그


아침 7시 21분.


사진이 하나 남아 있다. 지금은 내 품에 없으나 기억 속의 사진.

겨울 아침.
오리털 잠바 입고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면서 장독대를 지나칠 때 누군가 불러서 고개 돌려 잡혔던 사진. 장독대는 누구나의 공통된 기억을 살려주는 자리.


바로 그런 날.

한국기원 기전부에서 전화가 왔다. 승단대회 참가 아니 하느냐고.
아, 그렇군. 몇 판 기권이라고요?
참가 아니 하면 5판까지 기권됩니다.
마지막 한 판은요?
그건 무효 처리됩니다. 제외됩니다.

약간 고민했다. 전화기를 들고 있었으니 불과 1분도 아니 지났을 것이다.

모두 기권 처리해 주십시오.
안 나오십니까? 왜, 나오시지 그러세요.
아니 뭐. 괜찮습니다. 기권으로 하지요.

그렇게 해서 내 승단은 멈췄다. 그 때까지 8연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니 그 보다 성적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나가면 승단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4단에서 5단으로 승단하려면 기본 대국이 21국이다. 1년에 두 번, 한 번에 6국을 둔다. 당시엔. 기본 대국에 평균 75점이면 승단. 성적이 좋으면 나머지를 미리 계산해서 - 모두 패배한다고 가정해서 - 승단된다.


그렇게 결정해서 내 바둑도 멈췄다.
그런 과정을 갖고 싶었다. 스스로 확인했다.
그 날로 바둑과는 거리가 눈에 잡힐 정도로 멀어졌다.

왜 그랬을까. 잠깐 외출했다 돌아오기만 해도 최소한의 성적은 나온다. 승단이 가능하거나 멀지가 않았다. 기권은 0점이지만 불계패는 적어도 30점 정도는 얻는다.

재밌는 것은, 여기서 사정을 말하기는 좀 그런 문제로 5국 후 6국도 기권으로 처리했다는 점이다. 나의 결정이었는데, 묘하게도 먼 훗날 다시 바둑을 손에 잡고 승단을 해 볼까 했을 때 꼭 한 판이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승단을 놓친 것이 몇 번. 하하. 15년 후에야 5단으로 승단했으니 약간은 아쉬운 일. 물론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내 결정이었으니까. 다만 삶의 과정이란 게 묘하게 앞뒤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라고나 할까.

기억나는 것이, 임해봉의 ‘바둑의 전술’이라는 책을 중학교 때 보았는데 - 큰 형이 사다준 책으로 오청원의 ‘현대포석,’ 사까다의 ‘귀수묘수’와 함께 한 전질이었다 - 이런 표현이 나온다.

초반이라도 한 수 모양이 나쁜 수를 두면, 반드시 뒤에 가서 승부에 영향을 미칩니다.

맞는 말이겠다. 그 언제나 인과로 얽혀지지 않는 것이 있던가. 있겠는가.
그 말이 승단이 안 될 때 기억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중의 일.
전화하는 순간 결정은 내려졌다. 확인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그러나 경계는 필요한 것.
바둑으로부터의 탈출.
아니면, 학문으로의 탈출.
아니면 현재로부터의 탈출.

탈출 하니까, A. O. Hirschman의 exit, voice and loyalty라는 책이 떠오르는데, 이 양반 책이 묘한 게 많다. 경제학자인데 남이 한 마디 하면, 멀찌감치서 이런 것도 있잖아? 하고 한 마디 하는 듯이 툭 던지는 듯한 글을 쓰는 느낌을 주는데, 고전古典적인 책을 많이도 썼다. 너댓 권 읽어봤는데, 그 하나가 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로 관념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념이 세상의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이 있는 분은, 자본주의의 안팎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읽어보면 좋겠다.


결정이 내려진 순간, 나의 일상은 끝이 났다.
건조한 생활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 지속되지 않았다.

그랬다.
건조한 생활이라는 것은, 목적이 없어야만 지속될 수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바둑이 사라지고 나니까, 정치학이 들어왔다.
정치학을 해야만 하게 되었다.

산책이 사라졌다. 건조한 겨울 공기는 더 이상 청명하지 않았다.

1988년 늦은 겨울이었다.



에필로그

당연히 5년간의 바둑 이야기는 이로써 끝난다.
불현듯이 찾아온 지금 이 순간.

나는 대체 뭔 말을 나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을까. 아니면, 지금쯤 한 번 의식에 끌어올려보고 싶었던 걸까. 그 어떤 이유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어떤 이유로….
과연?


1950년대에 바둑을 두던 분으로 雨田 신호열 선생이 계시다. 이 분은 한학자였는데 프로 2단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인가 바둑은 나의 길이 아니다고 말씀하시고, 한학에서 후진 키우는 일을 하셨다. 물론 난 한 번도 뵙지 못하고, 주변을 통해서만 몇 가지 일화 들었을 뿐이다. 연세가 높을 때에도 바둑을 가끔 두셨다고 한다.

1960년대인가 신언철 2단이 낙향해서 농사를 짓는데, 동료 기사들이 집 상량식 때인가, 혹은 추수를 맞추어서인가 내려가서 탁주 기울였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잡지에서 읽은 적 있다.


1970년대.
1980년대.

이 두 시대는 내가 접했던 시간대다. 가까이서. 1970년대 초반은 내 잘 모르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바둑이 우리 나라의 근대화와 함께 고도성장하던 시대다. 당연히 계층은 분화分化되고 개인의 의식 또한 새로운 가치관을 접하고 변해갈 때이다. 물론 최근의 정보화 세계화에 비교할 만큼인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이 시대, 바둑계는 바둑을 업業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 때였다. 당연히 이런 저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도 그 중의 하나.

자신을, 자신의 일을 경계境界 세우고 안팎을 구별할 때였다. 앞선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절실하게. 왜냐?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었으니까. 철로변에서 빠르게 달리는 열차를 만나면, 곧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려 든다. 바로 그것과 비슷하다.

나는 그 시대의 끝자락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프로바둑계라는 세상 속에서 하나의 평균적인 인간상을 만들 수 있고 제시할 수 있다. 평균으로부터 거리를 가진 여러 존재들이 분산되고 바둑계는 그 그림을 그린 것이 된다. 그러면 누구나 그 평균적인 기사상棋士像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가진다. 내가 어디쯤에 위치할지는 잘 모른다. 대체로 나중에 확인할 뿐이다.
이 시대에는 그것이 필요하고 또 가능한 때이기도 했다. 앞선 시대와 달리.

그러므로 나 또는 너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 누구나가 저마다의 거리를 갖는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큰 원 속에 들어간 존재로 점 찍히겠지만.


1990년대.
2000년대.

다른 시대인데…, 분명히 서로가 다른 시대인데.
그러나 함께 묶자.
세상은 분명히 다르다.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바둑계는 어떨까. 적응은 늦게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바둑계는 아직은 다르지 않다. 곧 차이를 몸으로 느끼겠지만. 의식으로도 느끼겠지만. 이미 왔을지도 모르겠다.

이 때도 각자 승부를 한다. 앞선 시대와 마찬가지로.
평균적인 棋士像을 그릴 수 있다. 그려진 것으로 느끼겠다.
각자는 약간씩 그 평균으로부터 떨어져 존재한다. 나는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을까. 너는?

나는 아마도 평균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내 얘기를 쓰기가 힘이 든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는.


그러므로, 나는 그 어떤 궤적軌迹을 그리지 않았다. 이 글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기초로 나는 내 이야기를 썼지만. 다만 평균, 아니 평균의 근사치를 그렸을 뿐이다. 평균은 분산된 원소를 기초로 자신을 확인한다. 분산된 원소는 평균이 만들어낸 또는 그 이전에 존재하는 그런 존재이다. 그러나 평균의 다른 얼굴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승부라는 말 대신에 다른 그 어떤 단어를 대신해도 별 차이가 없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아침 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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